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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는 잊어도 세월호와 두 여중생만은..."

 

[현장] 세월호 삼보일배 111일 여정 마무리... 효순-미선 분향소는 무산

15.06.13 20:26l최종 업데이트 15.06.13 20:26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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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에 엎드린 '승현아빠' 팽목항을 출발한지 109일째가 되는 11일 서울 서초구 예술에 전당을 출발한 단원고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와 시민들이 용산구청을 향해 삼보일배행진을 하고 있다. 13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 도착으로 삼보일배행진이 111일 만에 끝나게 된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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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리. 90만 걸음을 걸어 30만 번 엎드려야 도달할 수 있는 멀고 먼 길.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아빠하고 나하고' 삼보일배 행렬이 13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 닻을 내렸다. 지난 2월 23일 오전 10시 진도 팽목항을 출발한 지 111일만이다. 당시 단원고 희생자 이승현군 아버지 이호진(57)씨와 누나 이아름양 단 둘이 외롭게 출발했지만 그사이 행렬은 수십 명, 백여 명으로 계속 불었다.

이날 오후 광화문에 이르는 마지막 삼보일배에도 시민 100여 명이 동참했고, 수백 명이 광장에서 지난 여정을 축하했다. 

"메르스 사태 세월호 판박이... 국민 생명 무관심-무능력 정권 맞서야" 

햇볕에 그을린 까만 얼굴에 덥수룩한 수염으로 마이크를 잡은 이호진씨는 "세월호 학살 2년이 접어드는데 뭐 하나 밝혀진 것도 없고, 처벌받은 사람도 없고, 마냥 잊히고 오욕의 역사로 들어가는 게 너무 한스러웠다"면서 "팽목항을 출발하고 나서 처음 8일 동안 외부 손님이 아무도 없어 광화문까지 아름이와 단 둘이 가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여러분의 도움으로) 삼보일배 1500리 길 막을 내리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씨는 "막연하게 나갔지만 바른 길이란 확신이 있어 미련할 정도로 정직하게 시작했고 정직하게 끝을 냈다"면서 "하늘에 있는 승현이에게 당당한 아빠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 반드시 끝난 자리에서 정직하게 다시 출발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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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23일 진도 팽목항을 출발한 지 111일만에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 도착한 단원고 희생자 이승현군 아버지 이호진씨가 13일 오후 삼보일배 '아빠하고 나하고' 마무리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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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지역에 따라 많게는 100여 명이 삼보일배에 동참했고, 시민들에게 500원씩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만든 길이 15m짜리 '구조선 나룻배'를 끌고 전국을 누볐다(관련기사: 아들 제삿날 길거리에... "그저 착잡하지 뭐" ).  

이 자리엔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과 박재동 화백을 비롯한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참석해 축하 공연을 펼쳤다. 

삼보일배에도 직접 참여했던 곽노현 전 교육감은 "이 정권은 세월호 참사와 판박이로 진행되는 메르스 사태를 통해 얼마나 국민 생명에 무관심하며 무능력하며 무책임한지를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면서 "정권이 위협을 받을 때 광속으로 반응하지만 국민 생명과 관련된 세월호나 메르스 사태에서는 굼벵이가 따로 없다"고 꼬집었다.

곽 전 교육감은 "1500리 삼보일배를 마친 공력과 염원이면 이 정권의 무도함과 무능력을 이길 수 있다"면서 "이호진-아름 부녀는 패배주의에 젖어 망연자실하게 있지 말고 삼보일배 정신을 되살려서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을 조직하면 쉽게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밝혔다.

효순-미선 13주기 분향소 설치 무산... "아직 투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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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미군 궤도차량에 치어 숨진 고 심효순-신미선양 13주기를 맞은 13일. 광화문에 분향소 설치를 방해한 경찰에 맞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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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 이날은 지난 2002년 주한 미군 궤도차량이 치어 숨진 고 신효순-심미선양의 13주기였다. 미선효순추모비건립위원회 등 시민단체는 이날 오전 경기도 양주 사고 현장에서 추모제를 연 데 이어 이어 오후엔 미국 대사관과 가까운 KT 광화문사옥 앞에 분향소를 차릴 예정이었다(관련기사:'효순�미선 13주기 추모제' 양주 사고현장서 열려 ).

하지만 경찰이 추모비와 분향소 천막을 실은 차량이 불법 주차했다며 견인하고 이를 막던 진행요원 한 명을 연행하자, 주최쪽은 항의 기자회견과 1인 시위로 맞서고 있다.

이날 세월호 삼보일배 행사에서 자유발언을 자청한 한 대학생은 이 같은 상황을 전하면서 "두 여중생 사망 사건이 잊혔다고 말하지만 우린 아직 투쟁하고 있다"면서 "(세월호 사건과 마찬가지로) 미국 정부가 정보 공개를 하지 않아 아직 사건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먼 길 돌아 다시 만나는 날, 나를 놓지 말아요."

이날 세월호 광장에선 가수 이선희의 노래 '인연'이 두 번 울려 퍼졌다. 한번은 오카리나로, 한번은 연주자의 육성으로. 바로 이호진씨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이자, 희생자를 잊지 못하는 세월호 가족들의 염원이 담긴 노래다.       

이제 1년 2개월. 제발 잊지말라고 1500리 30만 배 강행군도 마다하지 않은 세월호 가족들에게 13년 전 두 여중생의 안타까운 죽음도 남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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