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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문제 발언들' 유감

합의 성과 없는 대화는 시늉일 뿐

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문제 발언들' 유감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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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20  18: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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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이례적이고 일반적 인식과는 동떨어진 공개 발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홍 장관은 지난 1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6.15남북공동선언을 부정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는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홍 장관은 그 자리에서 “낮은 단계든, 높은 단계든 연방제는 연방제고 그건 북측의 통일방안이다. 그 방안을 수용하겠다는 여론은 없다고 본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받아들일 수는 당연히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서 그는 5.24대북제재조치에 대해 일반의 이해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를 했고, 최근 결렬된 남북당국회담에서 현안으로 제기되었던 금강산관광재개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결의 2094호에서 명시한 대량현금 이전 금지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5.24조치가 남북관계를 차단한 것은 아니”라면서 “5.24 조치 하에서도 협력을 할 수 있고 민간 교류는 계속 장려한다는 입장이고 그렇게 해왔다”고 강변했다. 또 “(남북관계 발전을 저해한 데에는) 5.24조치 보다 북한의 소극적 태도가 더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고까지 말했다.

또 금강산관광이 재개될 경우 대량현금이 북에 유입돼 핵개발 등에 전용될 수 있다는 일부 우려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런 문제는 논의될 시점에 가서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금강산 관광 대금 지급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중 ‘벌크캐시(대량 현금) 이전금지’ 조항 위반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연방제’, ‘5.24조치’, ‘금강산관광과 유엔제재의 연관성’ 등이 남북관계에서 민감한 주제임을 감안하면 통일부 장관의 발언으로서는 대단히 이례적일 뿐만 아니라 사안에 대한 일반적 인식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먼저, 6.15남북공동선언은 2항에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2항을 통해 남과 북은 분단 역사상 최초로 남북이 서로 배타적인 것으로 이해하던 서로의 통일방안에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했으며, 통일을 지향해 나가는 방향의 원점으로 삼겠다고 합의함으로써 민족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통일방안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이 18일 정례브리핑에서 6.15공동선언 2항은 남북의 통일방안에 공통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지 북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우리가 수용한 것은 아니라며, 홍 장관의 발언 취지를 설명했으나 ‘말장난’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해석 수정을 꾀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또 남북 교역 중단과 대북 신규 투자 금지, 대북 지원사업의 원칙적 보류, 방북 불허 등 북과의 교류 및 지원을 중단한 2000년 5.24대북제재조치로 인해 그동안 쌓아올린 남북관계의 신뢰와 조건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은 여러 지표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체감 여론도 상당하다.

지난 8.25합의 이후 후속회담 성격으로 열린 지난 11~12일의 회담이 무려 8년만의 남북 당국회담이 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도 5.24조치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남북관계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5.24조치보다는 북의 소극성을 꼽는 장관의 발언은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조차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북에 지급하는 금강산관광 대가 문제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에 포함돼 있는 대량현금 금지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며, 국제사회의 우려를 무시할 수 없다고 한 장관의 언급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북측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남북당국회담 결렬 직후 담화를 발표해 남측이 금강산관광 재개를 요구한 북측 요구에 대해 ‘미국의 승인이 없이는 합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진 이 문제에 대해 고위 당국자가 유엔 제재를 무시할 수 없다는 언급을 하는 것이 적절한 조치였느냐 하는 것이다.

이 사안은 지난해 8월 정부가 ‘최종 유권해석은 유엔 안보리가 하는 것’이라고 밝힌 가운데 당시 한국을 방문한 미국 재무부의 한 고위 당국자가 ‘금강산 관광 재개는 유엔 안보리의 북한 제재 결의와는 무관하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된 바 있다.

이후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은 올 초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 '2015년 통일준비 부문 업무계획'에서 “정부는 금강산 관광 사업이 아직 국제사회 대북제재와 상충된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밝히는 등 정부 입장의 혼선으로 비춰지는 모습이 드러나기도 있다.

홍 장관은 관훈토론회에서 이 같은 발언과 함께 ‘기존에 해왔던 신뢰프로세스에 입각해서 차근차근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겠다는 것이 기본 목표”이며, “내년에는 남북대화의 제도적 틀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보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홍 장관이 새롭게 밝힌 몇 가지 남북관계 현안에 대한 입장과 앞으로 남북대화의 제도적 틀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서로 양립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18일자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홍 장관은 5.24조치와 금강산관광재개 문제 등에 대해 유사한 발언을 한데 이어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북측과 합의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홍 장관은 “신뢰를 쌓으려면 북한이 우선 잘못된 행동을 해서는 안 되고, 했을 때는 단호한 대응이 뒤따른다는 점을 초기 2년 동안 끊임없이 경고한 결과가 8.25합의로 이어졌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대화는 제도화해서라도 하겠는데 목표는 상대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는데 있는 것이며, 절대 원칙없는 합의는 하지 않겠다면 대화의 상대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내년 4월에는 총선이 있고 2017년에는 대선이 기다리고 있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이른바 남북관계의 대화 모멘텀을 유지하는 시늉만 할 뿐 대화의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는 그저 우려로 끝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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