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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이 혼란스러운 세대와 선택에 익숙한 세대

70년대 수준의 지도자와 집단이 국정을 운영했을 때 벌어진 문제들
 
이진우  | 등록:2017-01-29 10:44:15 | 최종:2017-01-29 10:46:4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몇 달 전 부모님과 식사를 했는데, 그때가 수능시험 당일이라 자연스럽게 대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수시 모집에서 6개 학교까지 지원이 가능하고, 전형 종류도 학업우수자 종합전형(학교장 추천), 교과우수자 전형, 미래인재 전형, 특기자 전형, 논술 전형 등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하니, 그때부터 이해하시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으시더군요. 그리고 수시 모집과는 별도로 정시 모집이 있고, 수시에서 합격하면 아무리 수능 점수가 잘 나오더라도 정시 전형에 지원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고 하셨지요.

저희 부모님은 6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니셨는데, 그때에는 예비고사와 본고사 체제로 시험을 치렀고 내신 성적의 비중이 생각보다 높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대학을 다녔던 80년대에는 학력고사와 내신 성적을 합산하여 합격 여부를 가렸지요. 그런데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하나의 대학교만을 선택하여 학과를 1지망부터 3지망까지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의 대학교만을 선택하던 시대에서 이제 수시와 정시를 합하면 총 9개 대학교까지 지원할 수 있고, 각기 다른 전형으로 지원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으니 당연히 이해가 어려울 수밖에요.

사실, 저 개인적으로도 대입 전형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더군요. (물론, 지금도 100% 이해했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오죽하면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단지 열심히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수시 및 정시 지원 전략을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치밀하게 짜야만 비로소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통용되겠습니까. 이번에 제 둘째 아이가 지원한 학업우수자 종합전형의 경우 생활기록부 상의 교과활동 및 비교과활동의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에 고3이 되어 준비해서는 요건을 맞추기 어렵습니다. 1~2학년부터 관리해야 되지요.

제가 대입 제도의 변천에 대해 다소 장황하게 말씀드린 이유는, 어쩌면 이러한 변화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촛불집회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를 푸는 데에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전에 세대 간 갈등 문제에서 하드웨어 세대와 콘텐츠 세대의 인식 차이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를 좀 더 명료하게 하자면 결국 "선택에 익숙하지 않아 선택이 도리어 혼란스러운 세대"와 "선택에 익숙하기 때문에 선택할 수없는 상황을 참을 수 없는 세대"간 소통 단절 및 갈등 고조가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중고교 및 대학시절을 보냈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그 당시에 모든 교과서는 국정교과서였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었지요. 교복, 구두, 가방, 학용품 등도 모두 사실상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학교 앞 문방구에서 모두가 같은 것을 구입했기 때문이죠.) 학교를 벗어나더라도 선택의 폭은 거의 없었습니다. 다방에 가면 메뉴에 '커피'라고만 쓰여 있었으며, 소주도 지역별로 하나밖에 없었으며, 영화도 한 극장에서 오직 한 편의 영화만 볼 수 있었죠. 사진관도 대체로 동네에 하나밖에 없었기에 인물만 바뀔 뿐 배경과 구도가 똑같았지요.

물론, 지금도 아이들은 교복을 입고 다닙니다. 그러나 가방 종류와 색깔은 천차만별이며, 신발도 다양한 브랜드와 디자인으로 차별화되지요. 학용품은 대형문구점에 워낙 다양한 종류가 있기에 나와 똑같은 볼펜 혹은 샤프펜을 쓰는 친구를 찾기가 힘듭니다. (제 아이들도 문구점 가면 마음에 드는 것 고르느라 몇 시간씩 걸리지요.) 커피는 워낙 종류가 많아 이름을 다 외우기가 불가능하며, 영화도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10여 편 중 하나를 선택해서 봅니다. 사진은 각자가 다른 카메라와 앵글로 찍어 각자의 취향에 맞게 보정하고 편집하므로 절대로 똑같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보수세력은 올바른 국가관, 올바른 역사관, 올바른 이념 등을 확립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사 국정교과서 문제, 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 소녀상 철거 논란 등이 모두 이 연장선에 있습니다. 그러나 청소년들 입장에서 보자면, 기성세대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어떠한 선택권도 주어지지 않고 그냥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내려오는 것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과 선입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기성세대는 올바르냐 그렇지 않냐를 따지는 반면, 청소년 세대는 내가 얼마만큼의 선택권을 갖고 있고 얼마만큼 그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이지요.

박근혜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5070세대는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더 나아가 '올바른 국가관과 역사관'이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지도자가 정한 것을 당연히 우리가 따라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익숙합니다. 더 나아가 그들의 자녀에게도 선택권을 부여하는 상황이 거의 없었던 세대입니다. 퇴근길에 아버지가 통닭을 사들고 가면 당연히 아이들은 좋아하는 것이고, 짜장면을 시켜주던 돈까스를 사주던 손뼉 치며 맛있게 먹을 거라고 생각하며 지냈지요.

그런데 제가 아이들을 키워보니 지금의 아이들은 이와 사뭇 다릅니다. 브랜드와 기능에 대단히 민감하고, 맛과 분위기도 많이 따집니다. 그러니 휴가지를 선택을 하건 호텔이나 콘도를 예약을 하건 자신들이 직접 이미지와 동영상을 훑어보고 심지어는 블로그 후기까지 면밀히 읽어보고 결정하지요. 제 입장에서 보자면 그냥 아무 곳이나 대충 정해서 가면 될 일인데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 세대에게는 그러한 일들이 귀찮고 스트레스 받는 것이지만 아이들에게는 그것도 하나의 재미있는 과정이고 작은 행복인 것이지요. 선택이 주는 묘미를 누리는 겁니다.

이제 결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보수세력의 간절한 소망에 힘입어 올바른 국가관, 역사관, 이념관이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하달되었다고 가정합시다. 과연 그 후에는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요? 어떠한 선택권도 자신들에게 주어지지 않았고 어떠한 다른 콘텐츠도 언급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것을 학생과 학부모들이 그냥 일사불란하게 복종하고 수용할까요?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학생들의 흥미와 참여를 끌어 모을 수 없기에 교사와 학부모들은 다양한 보충교재를 활용하려는 욕구를 가지게 될 것이고, 중고교 교육과정 속에서 사회적 논란이 큰 근현대사 부분 에 대한 비중을 대폭 줄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과 보수세력이 강조하는 올바른 국가관, 역사관, 이념관이 교육 현실 속에서 중고등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심어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정책 입안자가 범하기 가장 쉬운 오류는 정책 수혜자에 대해 잘못된 관점과 정보를 기정사실화함으로써 정책이 현실과 동떨어지고 지원내용과 지원대상간 심각한 불일치(Mis-match)가 발생하는 것이죠. 박근혜 대통령과 보수세력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들이 생각하는 '중고등학생'이 현재의 '중고등학생'과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행과 파국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거지요.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로잡을 것을 권합니다. 올바른지 아닌지, 애국심이 있는지 없는지, 이념적으로 편향되었는지 아닌지… 이 모든 것에 대한 기준은 그대들이 세워서 강제로 주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났지요.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정하는 것이고 함께 참여해서 결론을 도출하는 것입니다. 하드웨어는 매뉴얼에 나와 있는 것 그대로 조립하면 되고 한번 조립되면 오직 그 용도로만 쓰이지요. 그러나 콘텐츠는 집단적 지성의 결과물이고, 한번 완성이 되었다 할지라도 다양한 분야로의 어플리케이션과 콜라보레이션이 가능합니다. 그 차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이제 국가지도자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보면서 제가 드는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대한 인식수준, 그리고 우리 청소년에 대한 인식수준이 70년대 수준에 머물러있는 지도자와 집단이 국정을 운영했을 때 어떤 문제들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절절히 깨닫게 해줬다는 점에서 박근혜에게 고맙고, 최순실에게 고맙고, 정유라에게 고맙습니다. 철 지난 반공 이데올로기와 하드웨어 중심 사고로 국정을 운영해나가기에는 우리 사회가 너무 빠르고 광범위하게 변했습니다. 그것을 보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 변화에 대응하려는 노력조차 안 하는 사람들에 대해 반드시 역사적으로 단죄해야 합니다.

이진우 /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KPCC)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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