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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5/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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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3/15
    봄날이 끝나다.(1)
    엉망진창
  2. 2005/03/15
    죽음과 수치에 무뎌진 사람들
    엉망진창

봄날이 끝나다.

* 이 글은 Daybreak_님의 [봄날'' 을 보다가.] 에 관련된 글입니다.

봄날.
봄날이 끝났다. 보고 난 후. 그냥 한편의 하이틴로맨스 소설을 읽은 느낌이랄까? 한 쪽 구석으로는 순수한 감성이 약간이나마 살아있던 어린 시절에 순정만화나 소설을 읽고 난후 가슴이 찡해져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아주 잠깐. 정말 아주 잠깐 동안 나도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요즘 딱히 빠질 만한 것이 없는 까닭도 있긴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1회부터 마지막회까지 챙겨 본 드라마가 봄날이 처음이다. 그 유명한 옥탑방 고양이서부터 아일랜드. 미사를 한편도 제대로 보지 않았던 내가 봄날에 유독 빠졌던 이유가 뭐였을까? 한동안 곰곰이 생각했다.
  아무래도 봄날의 대사에서 나오는 인물들의 상처가 한낱 삼류 로맨스의 줄거리가 아니라 삶 자체로 다가오는 느낌 때문일랄까.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가슴 한 구석이 쓰리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점 때문에 그렇게도 봄 날에 빠져있었던 것도 같다.

  말하는 순간 사실이 되어버린다는 또 하나의 사실도. 언젠가 누군가에게서 사랑하는 연인들이 정말로 사랑하게 되는 순간은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그 순간부터라고 했던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그런것 같다. 네가 신경쓰인다, 좋다라고 말하는 순간 정말 그렇게 되어버린다. 말하는 순간 머릿속에서 복잡했던 오만가지 생각들이 하나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느낌. 그런 것은 꼭 인간과 인간 사이문제 뿐 아니라 회의를 하다가도, 공부를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줄기차게 나오는 사실이다. 왠지 작가가 일상의 삶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잡아낸 한 가닥인 듯한 느낌이 들어서 맘에 들었던 것도 있다.
  그러다가 후반부로 갈 수록 흥미가 떨어졌던 건, 내가 느꼈던 등장인물들의 아픔이 결국 작가가 그들의 내면심리를 세밀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럼으로 인해 정작 주인공의 내면심리는 덜 하게 다루었다는 점. 그래서 스토리 전개가 점점 지리해지고 감성 위주의 드라마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트랜디 드라마로 자리지워지는 느낌 때문이었다.
결국 처음에 우려했던 대로 두 형제와 한 여자의 삼각관계에서의 갈등과 사랑으로만 작품이 위치해버리는 결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맺혀있던 상처가 다시 치유되는 모습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볼만하다고 생각했던 장면들 덕에 드라마에 나왔던 음악을 들으면 감상에 빠지는 것도 같다.

조인성고현정.jpg (273k)

 

 

그냥 그런 드라마. 다음번엔 좀 다른 고현정의 이미지도 기대해본다.

그나저나...이젠 빠져들 드라마도 없어졌군. 항상 10시쯤 집에 오면 보게 되던 드라마였는데...

뭐...또 다르게 가족들의 드라마 선택에 빠져들든지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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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수치에 무뎌진 사람들

* 이 글은 뎡야핑님의 [내 여자친구가 살해당했다면] 에 관련된 글입니다.

간혹 뉴스를 듣다보면 하루에 사건사고는 무수하게 발생하고, 내가 블로그에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죽음의 위협을 느끼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자고 일어나면 하루에 몇 백명씩은 죽어있고, 나는 그 소식을 아침을 먹으면서 듣는다. 그 때마다 내가 참 무섭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요즘 사람들은, 물론 나를 비롯해서 죽음에 참으로 무감각해졌다는 생각이다. 간혹 죽은 사람의 수치가 너무 많아서 도저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때조차도 있다. 계속되는 우리 주변의 많은 수치에 무감각해진 것이 요즘의 현대인인 듯 하다. '어린왕자'를 좋아해서 가끔 빗대어 이것저것 생각해보니도 하는데, 죽음과 숫자에 무감각해진 요즘 사람들을 보면, 숫자로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는 계산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어른들이 그 정도를 넘어서 수치에도 무뎌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의아니게 요즘 전쟁영화 몇 편을 연달아 보는데, 대부분 영웅주의, 국가주의의 입장에서 앵글을 돌리는 영화이거나 혹은 전쟁의 참상과 비인간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들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전쟁이 정말 싫고 무섭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끔, 더불어 그래서 자유를 위해 싸우는 민주주의 국가의 수호가 얼마나 위대하고 고결한 산물인가를 우리에게 심어주기도 한다. 나는 그런 영화를 볼 때마다 전쟁의 참상을 얼마나 잘 표현했는가의 리얼리티적 요소와 함께, 전쟁이 나면 자살해버릴 것이라고 농담처럼 말하던 선배의 말을 떠올리고는 한다. 내가 죽는다는 것, 내 주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고 그 상상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위협적이고 공포스러운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 사람들을 제외한 불특정 다수의 죽음은 죽음 그 자체의 사실로만 다가오는 것 역시 아이러니하다.

  한 명이 죽는다는 것, 수십명이 죽었다는 것, 수 백명이 죽어가고 지금도 죽음의 위협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죽는다는 것, 내 가족이나 주변의 친구들이 죽었다는 것, 나와 관계된 여러 사람들이 지금도 죽음의 위협에서 피폐한 삶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로 굳이 환원시키지 않아도 충분히 끔찍한 일이고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그럼에도 역시 이를 나의 일로 등치시킨 후에야 더욱 더 끔찍함을 깨닫게 되는 모습이야말로, 얼마나 무관심하고 무뎌진 일상을 살아가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상, 그 자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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