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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최옥란 열사 기일에 전국장애인대회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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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옥란 열사 기일에 전국장애인대회 열려

"장애해방열사 정신 계승하여,투쟁으로 열어나갈 것"
김삼권 기자 quanny@jinbo.net
26일 오후 2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제 1회 전국장애인대회(장애인대회)가 열렸다. 3년 전인 2003년 3월 26일은 고 최옥란 열사가 세상을 떠난 날이기도 하다. ‘4·20 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공동투쟁단) 주최로 열린 이날 장애인대회에는 장애인 당사자 및 사회단체 회원, 학생, 시민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최옥란, 그녀의 삶이 의미 없는 날이 될 때까지 투쟁하자”

여는 발언을 통해 박영희 공동투쟁단 공동대표는 “감회가 새롭다. 난 새해를 맞으면 달력에 3월 26일에 제일 먼저 동그라미를 친다”며 “어느새 나에겐 3월 26일이 너무도 의미 있는 날이 되었다”며 먼저 떠난 고 최옥란 열사를 추모했다.

그는 이어 “365일 장애인들은 어디선가 차별을 겪으며, 죽어간다. 이 장애인대회는 3회가 되던, 4회가 되던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장애를 가진 여성으로, 차별을 경험하며 살아왔던 그녀의 삶이 우리에게 의미 없는 날이 되는 그날까지 끝까지 투쟁하자”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현애자 민주노동당 의원은 연대사를 통해 “작은 차이를 넘어 똘똘뭉쳐야 한다”며 “장애인 관련 법안 통과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정치권을 압박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연대투쟁을 통한 정치권 압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닭장차를 저상버스로 다 바꿔야한다”

최근 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해 설명한 김광희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법제위원회 부위원장은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기 위해서는 그저 말만해서는 안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정권고가 아니라 시정명령”이라며 징벌적손해배상제와 단체소송제 포함을 주장했다. 또 그는 “국가인권위원회가 향후에도 장애인차별철폐를 위한 역할을 똑바로 못한다면, 독립된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종술 장애인교육권연대 공동대표는 투쟁발언을 통해 “장애인들에게 있어 교육은 생명과 같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특수교육5개년계획을 거창하게 발표해 놓고, 정작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고 있다”며 장애인교육권 관련 정부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 윤종술 공동대표는 “모든 문제를 가족과 장애인 개인에게 돌리려는 한국의 사회구조에 맞서 지금까지 투쟁해 많은 것을 쟁취해 왔지만, 이대로 멈출 수 없다”며 “장애인교육지원 법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 공교육을 받을 장애인의 정당한 권리를 반드시 쟁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석준 사회당 대표 후보는 “시대를 울린 최옥란 열사의 뜻을 이어 받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연대하며 살 수 있고, 차별철폐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더 퍼질 수 있도록 항상 연대하겠다”며 연대의 의사를 밝혔다.

김동효 광주전남 장애인인권연대 집행위원장은 “광주시장은 당초 2013년까지 90대의 저상버스를 도입하기로 했으나, 올해 도입예정인 1대의 저상버스 조차 돈이 없다며 버티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어 그는 “정부는 아직도 장애인들을 구걸하는 거지로 취급한다”며 “정작 거지들은 4년 마다 표를 얻기 위해 굽신거리는 국회와 청와대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집회에서 사회를 본 도경만 공동투쟁단 공동집행위원장은 “닭장차(경찰버스)를 저상버스로 다 바꿔야한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참석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그는 “닭장차가 저상버스로 바뀐다면, 한국의 모든 버스도 저상버스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며 “그렇게 되기 위해선 여러분들이 더욱 힘차게 투쟁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전국장애인대회, 2005년 이어질 장애인차별철폐 투쟁의 발화점”

이날 마지막 순서로 투쟁선포문을 낭독한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는 “우리는 오늘 단지 눈물만이 아닌 투쟁의 분노를 모아 제1회 전국장애인대회라는 이름 아래 이 자리에 모인 것”이라며 “이것은 단지 일회적인 투쟁이 아닌 420장애인차별투쟁을 거쳐 2005년 내내 끈질기게 이어질 장애인차별철폐 투쟁의 발화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우리의 투쟁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배제와 차별을 철폐하는 투쟁이며, 이 시대의 모순을 폭로하며 그 아품에 실천으로 다가서는 투쟁”이라며 “전태일 열사의 투쟁으로 전국노동자대회라는 투쟁의 장을 만들어 왔듯이, 최옥란 열사 기일인 3월 26일, 우리는 장애해방열사 정신을 계승하여 투쟁으로 전국장애인대회를 열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종로사거리 편도 7차로 점거, 행진 도중 경찰과 충돌 발생해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장애인대회를 마친 참석자들은 4시경 ‘장애해방열사 정신계승 추모문화제’가 예정되어 있는 시청 광장까지 행진을 벌였다. 이날 세종문화회관을 출발해 세종로사거리를 지나 시청까지 가는 행진코스 중간중간 참가자들은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참가자들은 원활한 행진을 위한 차선 확보를 강하게 요구했고, 경찰은 2개 차로 이상 줄 수 없다고 맞섰다. 이에 참가자들은 한때 ‘세종로사거리’ 시청 방향 편도 차로를 완전 점거하고 연좌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연좌시위 도중 박경석 장애인이동권연대 공동대표는 “장애인들이 1년 내내 집구석에 쳐박혀 있다가 오늘 하루 밖으로 나왔다. 이대로 그냥 들어갈 수 없다”며 “행진을 위한 도로를 확보해 주지 않는다면, 경찰이 저상버스로 된 닭장차로 여기 있는 장애인들을 싣고 갈 때까지 여기 앉아있겠다”며 차선 확보를 요구했다.


행진 참가자들은 40여 분간 세종로사거리에서 연좌시위를 진행한 후 다시 행진을 시작하였다. 이후 참가자들은 경찰과의 수차례 몸싸움 끝에 남대문 방향 편도 7차로를 완전 점거한 채 행진을 계속 이어갔다. 행진을 모두 끝내고 5시 30분 경 시청 광장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7시부터 ‘장애해방열사 정신계승 추모문화제’를 진행하는 것으로 이날 모든 행사를 마무리 했다.

한편, 공동투쟁단은 오는 30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장애인 관련 정책요구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공동투쟁단은 다음달 3일 부터 열리는 장애인인권영화제를 비롯해 4월 20일 까지 전국에서 장애인 관련 각종 행사를 잇달아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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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할 땐

정신없이 이틀을 보냈다. 그래도 시험이라고 하루 반을 나름대로 공부를 했는데,

역시 한 일주일은 공부를 해 볼 걸 그랬나보다.

오늘 돈을 날린 것 같은 생각에 입에 제길을 연달아 외치면서 집에 왔다.

물론 덕분에 밀린 것들이 있어서 지금도 해야 할일이 많이 쌓여있고,

그 일들을 다 끝마치려면 난 도대체 몇 시에나 잘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지만

은근히 신경 쓰이던 것 하나가 사라져서 마음에 여유가 좀 생긴 것 같다.

 

막상 11월쯤 되면 히스테리에 걸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어쩌나란 생각에

무엇보다 지금 내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게 가장 중요하겠다란 생각도

해본다.

 

평소 같았으면 그대로 도서관으로 직행했겠으나,

고등학교 주변을 거치게 되어 은근히 시간을 즐기면서 왔던 것도 같다.

예전엔 시간이 나면 덕수궁에도 들어가서 시간도 때우고,

선배들을 통해 알게 된 샛길을 통해 학교에서 교보문고까지 점심시간을 활용해

부지런히도 다녔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나 싶긴 하다.

하긴...생각해보니 대학교가서도 공강시간에 경복궁에 가거나

졸업을 한 지금도 도서관에 드나들고 있으니,나도 참 재미가 없긴 하지.

 

여하튼 나름대로 시간을 만끽하고 세찬 바람부는 날 이리저리 쏘다닌 탓에

몸이 많이 피곤하다.

컴퓨터 앞에 몇 시간동안 앉아있어야 할텐데

벌써 눈이 빨갛게 충열된 것을 보면.

무엇보다 집에 오자마자 갑자기 왠 필이 꽂혔는지,

내 방 구석구석 청소하고 책상정리까지 해댄 것이 큰 타격을 준 듯.

 

하긴 덕분에 옛날 사진들과 편지들도 찾았다.

이것들은 나중에 시간이 좀 나면 살 붙여서 글이나 좀 써놔야겠다.

 

피곤해서 몸을 좀 풀어주려고 떨리는 손으로 5800원짜리 핫초코 하나를 사왔는데,

따뜻한 우유에 데워서 핫초쿄 한 숟가락 넣고 책을 좀 보다가 자야겠다.

흠...맛이 있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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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의 작은 외침, No war!

  한 일주일 동안 정신이 없게 지내는 바람에 오늘이 3.20 2주년임을 오전에 뉴스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화면에 나와서 뭐라뭐라 떠들어대는 내용을 듣고, 오늘이 20일임을 그제서야 알게 된 것.

 

  정확히 2년 전ㅡ 3월 20일 이 날에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이라크전에 대해 반대의 뜻을 표명하던 그 자리에 함께 했었고 거리를 뛰어다니며 목 터져라 이라크 전쟁을 반대한다고 외쳤다. 아마도 작년이었나, 또 다른 3월 20일에는 후배들과 거리에서 줄기차게 전쟁반대를 외치며 어떤 의미의 전쟁이며 왜 반대를 할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해 침 튀기며 이야기했던 것도 기억이 났다. 그리고 정리집회를 하며 잠깐 거리에 머물러 있는 동안 종로 바닥 어딘가에, 몇일 전 촛불집회를 갔다가 남겨 둔 검은색 초를 후배에게 뺏어 "No War"라는 글씨를 촛농으로 만들어냈다.

 

 

 

그 때는 아무런 선전물도 준비를 못 해갔던 까닭에 즉석에서 뭐 하나 만들어보자는 심정으로 촛농을 떨어뜨려 만들었던 건데, 예상외로 호응이 좋아서 얼마나 당황해했었는지들 모른다. 어디 포스터였는지 지금은 기억이 잘 안나는데, 멋들어지게 찍힌 사진이 배경으로 쓰인 걸 보고 한동안 후배들도 매우 좋아했던 기억도 났다.

 

 그리고 2년이나 지나버린 오늘엔.

 전쟁도 계속되고 있고, 물론 나의 반전에 대한 생각도 변함없지만, 나의 행동면에 있어서는 좀 변화가 있었다. 난 예년처럼 거리에서 반전을 외치기보단 건물 구석 한 곳에서 친구들과 3.20의 의미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게 다였다. 정말 소시민의 자기만족적 반응인 듯한 느낌. 얼마 전에 염상섭의 만세전을 다시 읽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이인화의 소시민적이고 무기력한 지식인의 모습이 딱 내 모습인 것 같아 너무 씁쓸하단 생각이 들었다. 문제의 원인은 대충 아는데, 그냥 세상이 묘지같다고 말하고는 도피해버리는 무기력증에 빠진 그런 모습.

 

 그래서 앞으로는 더 이상 이런 느낌을 가지지 않기로, 더욱이 내년 이 맘때에는 끝나지 않은 전쟁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민중에 의해 끝나게 된 승리를 기념하고 투쟁의 결의를 다지는 그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게 외치면서 집으로 왔다.

 No war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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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이 끝나다.

* 이 글은 Daybreak_님의 [봄날'' 을 보다가.] 에 관련된 글입니다.

봄날.
봄날이 끝났다. 보고 난 후. 그냥 한편의 하이틴로맨스 소설을 읽은 느낌이랄까? 한 쪽 구석으로는 순수한 감성이 약간이나마 살아있던 어린 시절에 순정만화나 소설을 읽고 난후 가슴이 찡해져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아주 잠깐. 정말 아주 잠깐 동안 나도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요즘 딱히 빠질 만한 것이 없는 까닭도 있긴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1회부터 마지막회까지 챙겨 본 드라마가 봄날이 처음이다. 그 유명한 옥탑방 고양이서부터 아일랜드. 미사를 한편도 제대로 보지 않았던 내가 봄날에 유독 빠졌던 이유가 뭐였을까? 한동안 곰곰이 생각했다.
  아무래도 봄날의 대사에서 나오는 인물들의 상처가 한낱 삼류 로맨스의 줄거리가 아니라 삶 자체로 다가오는 느낌 때문일랄까.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가슴 한 구석이 쓰리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점 때문에 그렇게도 봄 날에 빠져있었던 것도 같다.

  말하는 순간 사실이 되어버린다는 또 하나의 사실도. 언젠가 누군가에게서 사랑하는 연인들이 정말로 사랑하게 되는 순간은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그 순간부터라고 했던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그런것 같다. 네가 신경쓰인다, 좋다라고 말하는 순간 정말 그렇게 되어버린다. 말하는 순간 머릿속에서 복잡했던 오만가지 생각들이 하나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느낌. 그런 것은 꼭 인간과 인간 사이문제 뿐 아니라 회의를 하다가도, 공부를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줄기차게 나오는 사실이다. 왠지 작가가 일상의 삶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잡아낸 한 가닥인 듯한 느낌이 들어서 맘에 들었던 것도 있다.
  그러다가 후반부로 갈 수록 흥미가 떨어졌던 건, 내가 느꼈던 등장인물들의 아픔이 결국 작가가 그들의 내면심리를 세밀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럼으로 인해 정작 주인공의 내면심리는 덜 하게 다루었다는 점. 그래서 스토리 전개가 점점 지리해지고 감성 위주의 드라마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트랜디 드라마로 자리지워지는 느낌 때문이었다.
결국 처음에 우려했던 대로 두 형제와 한 여자의 삼각관계에서의 갈등과 사랑으로만 작품이 위치해버리는 결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맺혀있던 상처가 다시 치유되는 모습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볼만하다고 생각했던 장면들 덕에 드라마에 나왔던 음악을 들으면 감상에 빠지는 것도 같다.

조인성고현정.jpg (273k)

 

 

그냥 그런 드라마. 다음번엔 좀 다른 고현정의 이미지도 기대해본다.

그나저나...이젠 빠져들 드라마도 없어졌군. 항상 10시쯤 집에 오면 보게 되던 드라마였는데...

뭐...또 다르게 가족들의 드라마 선택에 빠져들든지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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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수치에 무뎌진 사람들

* 이 글은 뎡야핑님의 [내 여자친구가 살해당했다면] 에 관련된 글입니다.

간혹 뉴스를 듣다보면 하루에 사건사고는 무수하게 발생하고, 내가 블로그에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죽음의 위협을 느끼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자고 일어나면 하루에 몇 백명씩은 죽어있고, 나는 그 소식을 아침을 먹으면서 듣는다. 그 때마다 내가 참 무섭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요즘 사람들은, 물론 나를 비롯해서 죽음에 참으로 무감각해졌다는 생각이다. 간혹 죽은 사람의 수치가 너무 많아서 도저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때조차도 있다. 계속되는 우리 주변의 많은 수치에 무감각해진 것이 요즘의 현대인인 듯 하다. '어린왕자'를 좋아해서 가끔 빗대어 이것저것 생각해보니도 하는데, 죽음과 숫자에 무감각해진 요즘 사람들을 보면, 숫자로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는 계산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어른들이 그 정도를 넘어서 수치에도 무뎌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의아니게 요즘 전쟁영화 몇 편을 연달아 보는데, 대부분 영웅주의, 국가주의의 입장에서 앵글을 돌리는 영화이거나 혹은 전쟁의 참상과 비인간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들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전쟁이 정말 싫고 무섭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끔, 더불어 그래서 자유를 위해 싸우는 민주주의 국가의 수호가 얼마나 위대하고 고결한 산물인가를 우리에게 심어주기도 한다. 나는 그런 영화를 볼 때마다 전쟁의 참상을 얼마나 잘 표현했는가의 리얼리티적 요소와 함께, 전쟁이 나면 자살해버릴 것이라고 농담처럼 말하던 선배의 말을 떠올리고는 한다. 내가 죽는다는 것, 내 주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고 그 상상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위협적이고 공포스러운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 사람들을 제외한 불특정 다수의 죽음은 죽음 그 자체의 사실로만 다가오는 것 역시 아이러니하다.

  한 명이 죽는다는 것, 수십명이 죽었다는 것, 수 백명이 죽어가고 지금도 죽음의 위협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죽는다는 것, 내 가족이나 주변의 친구들이 죽었다는 것, 나와 관계된 여러 사람들이 지금도 죽음의 위협에서 피폐한 삶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로 굳이 환원시키지 않아도 충분히 끔찍한 일이고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그럼에도 역시 이를 나의 일로 등치시킨 후에야 더욱 더 끔찍함을 깨닫게 되는 모습이야말로, 얼마나 무관심하고 무뎌진 일상을 살아가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상, 그 자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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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던 몇가지

#1.

3월이 되고, 이래저래 사람들의 소식이 전해져온다.

간만에 오는 연락에 여차저차해서 다시 싸이에 접속한 지 몇일간.

잊었던 사람들과 잊으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의 소식이 원하지않게 들려오기도 한다.

어쩌다 생각나는 것을 억지로 잊으려고 노력하면 할 수록

더 생각난다는 것쯤은 이미 예전에 알게 되었기에,

생각나면 생각나는데로 놔두면서 잊어가는 중이었는데.

 

한 동안 접어뒀던 사람의 모습이 계속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불편하다, 불편하다, 불편하다,,,

 

 

 

 

#2.

연쇄법

 

언제나 뜨거운 열기를 혼자 품기에는 너무 더워서

손 가득 움켜쥐던 뜨거움을

네 차가운 손 움켜잡아 따뜻함으로 맞바꾸던

그런 때가 있었다.

 

하지만 겨우 새 차가워진 내 손이

더 이상 열기를 나눠줄 수 없기에

혼자 움켜진 채 펼 줄 모르면서도

한 없이 서리는 냉기에 더욱 굳게 손을 닫았다.

 

손을 펴면 널 잡고 싶고,

널 잡으려면 봐야하고,

널 보려면 내가 다가서야 하고,

내가 다가서려면 마음을 열어야 하고ㅡ

마음을 열면, 보고 싶어지고 생각이 나고,

생각이 나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니까.

 

난 다시 아무것이라고 하기 위해서 생각을 잠그고,

마음을 닫고, 한발자국 물러서고

눈도 감고, 다시 손을 꼭 쥐고 펼 줄 모르고.

 

그래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두 손 꼭 쥔채 서 있기만 하는 참 바보같은 이야기.

 

 

 

#3.

옛날 생각 하나 -

 독한년이란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철 없는 것이란 소리를 듣고 난 다음 단계 정도였던 것 같다. 매년 명절때마다 친척들이 모이면, 사람 하나 잘난 놈이나 나쁜 놈으로 둔갑하는 건 순식간이다. 그렇게 화제거리에 잘 오르는 인간 중 하나가 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집안의 기둥이자 희망으로 곱게 곱게 자라던 내가 갑자기 공부는 때려치고 매일 데모질만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 무렵, 우리 어머니는 눈물도 많아졌고, 아픈 곳도 많아졌다. 그리고 친척들의 잦은 잔소리도 공공연한 정당성을 띠게 되었다.

  그 잔소리 중 가장 나를 곤혹스럽게 했던 건,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청주에서 올라온 고모할머니가 진득히 내 손을 붙잡고 울면서 했던 말. 철 좀 들으라는 내용의 말이었는데, 아직까지 잊지 못한 말은 언제까지 네 어머니 피를 빨아먹으면서 살꺼냐는 말이었다. 그건 부정할 수 도 없을 만큼 정확한 말이었기 때문에, 당시 난 정말 아무말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나서 철이 없는 단계를 넘어서는 말이 독한년이었다. 하필이면 내가 잠깐 집을 비운사이 어머니가 병원에 신세를 지시는 바람에, 말많은 집안에서는 또 한번 내 이야기가 돌았다. 데모에 정신나간 년, 지 엄마가 죽어도 눈 깜짝 안할 독한 년이라나... 뭐...덕분에 평생 먹을만한 나쁜년 시리즈의 욕을 바가지로 잡수셨으니, 나도 장수는 못해도 제 명에는 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뭐, 이런 종류의 말은 꽤 여러번 들어서 이젠 별로 대수롭지도 않은 편이다. 내가 어렸을 적 일을 기억할 때부터 들어왔던 말이기도 하니까. 한번은 아버지를 따라 회사수련회에 놀러갔다가,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과 장을 보러 간 사이에, 내가 발을 다치게 된 적이 있었다. 아직도 흉터가 남아있을 정도로, 줄줄줄 흐르는 피를 어찌할 바를 몰라서, 옆에 있던 언니들이 더 당황해했다. 그런데 그 때 기억에 온다간다 말 없이 나를 언니들 틈에 놓고는 사라져버린 아버지가 꽤 미웠던 모양이다. 당시 아버지 친구분들이 아버지께 전하던 말이, 제 애비가 어디갔냐고 한 마디 묻고는 울지도 않고 발을 움켜쥐고 앉아서는 줄줄 흐르는 피를 계속 쳐다만 보고 있는게 어찌나 섬뜩했는지 몰랐다고 한다. 내 기억에는 한 바가지는 안되더라도 꽤 많은 피를 흘렸는데, 내 발과 손에 모인 피가 응고될 때까지 아버지가 오지 않아 꽤 한참을 발을 움켜쥐고 앉아있었던 건 같다. 그 때부터 아버지 친구분들께는 내가 독한년이라고 불렸다니 나름의 역사가 있긴 한 말인 듯 하다.

   몇일 전에 감기도 잘 걸리고 몸도 많이 안 좋아서 비틀거리면서도 바득바득 공부하겠다고 나가는 나를 보고 어머니는 나보고 또 독한 년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들은 말이라 웃고는 도로 들어와서 그냥 자리를 펴고 누워 며칠을 앓았다. 독한 년이면 몸도 독해져야 하는데, 이 큰 허우대에 허약이란 말은 붙이기가 심히 민망스러운데 말이다. 봄이 되면 또 목이 아프고, 5월 쯤 되면 한동안 목소리가 안 나오겠지? 하아... 내 몸에 주문을 외워야겠다. 독해져라, 독해져라, 짠!

 

 

#4.

간만에 만난 친구. 그래서 간만에 웃기도 하고 정말 기쁜 일이 생기기도 하고.

너라도 좀 재미있게 살아야, 나도 사는 낙이 좀 생길 것 같다.

맨날 뭘해야 좋겠냐고, 뭘 해야 할지 앞길이 안 보인다고 투정부리던 녀석이

하나 둘 씩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계획을 세우고, 그걸 이뤄내고,

그리고 아직은 억지 웃음이지만, 그래도 내 앞에서 웃어간다.

 

아...제발 내 주변에 좋은 일들만 생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모습보면서 나도 덩달아 웃고 좀 살 수 있게...

근데, 정말 네 말대로 내가 즐겁지 않아서 죄다 그런 사람들만 보이는 걸까?

 

너도 결혼 안하고, 나도 할 생각 없고. 그럼 나중에 같이 살아도 되겠다.

에이...그러다 너에게 좋은 사람 생기면 우선은 꼼꼼하게 내가 따져주고,

됐다 싶으면 평생 행복해서 웃다가 죽기를 빌어주마. ㅋㅋ

그 전까지는 내가 언제든 네 편이 되어줄께.

힘내. 지금 하고 있는 네 생각들. 부모님이 반대하실거야 당연하지만

난 네가 정말 대견스럽기까지 하니까 언젠간 부모님도 알아주실꺼야.

 

아! 그리고 아웃백도 데려가줄께..ㅠ.ㅠ

 

 

어느 순간 비슷해져버린 우리.

평생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가슴 속 뭉친 실타래 하나를

너한테 풀어놓았더랬지.

생각해보니, 그건 내 옛날 남자친구한테도 말하지 않았던 거다.

너 빼고는 아무한테도.

넌...이모님께 다 말했을 걸 알고 있지만..

 

아...이모님 생일이었는데, 이 녀석

이모 선물 잘 샀나 모르겠군. 헉...이모님 생일을 내가 씹어버렸군.

어서 문자를 날려야겠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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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어진 영화

 

사과껍질이 안 끊어지면, 차보다 내가 먼저 모퉁이에 다다르면,

일곱을 셀 때까지 검표원이 안 오면 ... 그는 살아있다!

 

오드리 도투라는 배우를 기억하는 건 <아멜리에>에서 누군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기 위해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던 깜찍한 여배우의 모습.

  별 생각없이 보면 왠 할일없는 여자가 하루종일 시덥지않은 일에 골머리를 앓는 건지 모를 그런 영화이기도 하고, 하지만 내용을 이리저리 보면 녹색의 영화포스터가 가져다주는 원색적인 이미지와 함께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쓸쓸하고 외로운 사람들의 이면을 색감있게 그려낸 경쾌한 영화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아멜리에>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고는 지하철 역에서 사진을 모으던 남자와 오드리 도투와의 만남, 그리고 프랑스어에서 살아나는 그녀만의 독특한 억양의 목소리.

 

 그런 그녀가 장 피에르 주네와 <아멜리에>에 이어 또 다시 영화 한편을 만들었다. <인게이지 먼트>라는 다분히 멜로의 분위기를 풍기는 영화. 나에게 장 피에르 주네에 대한 기억은 <아멜리에>말고도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라는 영화가 더 먼저인 편이다. 처음에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팀 버튼이 만든 영화인 줄 알았는데(당시 난 팀 버튼이 만든 "크리스마스 악몽"이란 스톱 모션 에니메이션에 빠져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아마도 영화 전반에 흐르는 몽환적인 분위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언제가 더 먼저 만든 작품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해 볼 때, 감독의 성향이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세계에서 점차 현실로 '발전'해나가는게 아닐까란 생각을 해 본다. ('발전'이라고 표현한 건 다분히 내 영화관에 비추었을 때의 표현이다. 실제로 이 감독이 어떤 작품성향을 띠고 있는지는 찾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본 세 편의 영화 중에서 줄곧 흐르고 있는 감독의 성향 한 가지를 꼽으라면, 그건 인간애. 즉 휴머니즘인 것도 같다.

 

  <인게이지먼트>의 정확한 내용은 잘 모르겠다. 다만, 전반적으로 시대적 배경은 1차 세계대전이고, 오드리 도투는 전쟁 때문에 헤어진 연인을 찾아 일대 여정을 벌인다는 것이 스토리이다. 과연 감독이 그녀의 여정을 어떻게 그릴 것인지, 감독의 성향 상 전쟁에서 벌어지는 사실주의적인 표현이나 묘사가 드러나기 보다는 그 안에서의 인간의 삶, 사람들의 모습과 다양한 인간 군상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표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을 뿐이다.

 

 가장 기대할 만한 것은 오드리 도투를 통해 보여질 그녀의 생각과 그것이 그려지는 방법들.

영화 예고편을 우연히 보다가 "사과껍질이 안 끊어지면, 차보다 내가 먼저 모퉁이에 다다르면" 등으로 표현되는 영화 카피를 보고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무엇인가에 불확실한 감정, 더욱이 그것이 불행과 겹쳐질것만 같은 막연한 불안감에 맞닥드렸을 때, 정말 말도 안되고, 별 연관성도 없는 것들을 애써 껴 맞추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는 그 결과로 다가오는 불안감을 억누르려는 심리가 종종 보이곤 한다. 마치 시험 전날 공부를 하면서 이 시험문제 10개를 풀고 나서 다 맞으면 내일 시험을 100점을 맞을 것 같은 주문을 거는 것처럼...

 

 그저 연인들을 위한 영화라는 소개 카피보다도, 왠지 삶의 일상을 예리하게 잘 포착해놓은 것만 같은 그런 느낌에 보고싶단 생각이 들었다.

 

 

 

p.s) 그런데 글을 쓰다가 팀버튼의 영화가 생각나서...

예전에 크리스마스 악몽을 보면서 나야 물론 재미있게 봤지만,

그 인형들이 실제로 움직이는 것처럼 영화를 만들기 위해

땀 꽤나 쏟았을 제작자들이 생각났다.

이번에 미국에서는 '시체 신부'라고 9월에 개봉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던데...

보고싶은 생각 한 편, 우리나라는 언제 쯤 볼 수 있을까란 생각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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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잠을 자야할 때를 놓치면 잠을 못 자는 경우가 있다.

밥 때를 놓쳐서 밥을 먹지 않는 경우와 비슷하다.

이런 경우에는 후유증이 남기 마련이다.

지금 잠을 자지 않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으니,

아마 평소 때처럼 일어나는 것은 힘들 것이다.

이렇게 되면 평소 생활 사이클은 무너지기 마련이고,

난 또 그 사이클을 되잡기 위해 이 삼일간은 고생을 해야할 거다.

젠장 젠장...

 

아침에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몇 일을 아침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로 운동을 못 하고 있다.

몇 일 전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꼭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역시 쉽지 않다.

 

원래도 뜀박질을 잘 못하는 타입이고, 선천적으로 기관지와 폐가 기능이 약하다.

근데 엊그제 배가 더부룩해서 제자리 뛰기를 하는데

2분도 못하고는 숨쉬기 운동으로 방법을 바꿔야만 했다.

힘들고 숨이 차는 정도가 아니라 호흡이 매우 곤란해서 2분 뛴 대신 5분동안

숨을 쉬지 못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젠장 젠장...

 

운동방법을 바꾸는 것과 생활패턴을 다시 조정해야 하는 문제.

거의 절대절명의 생존위기와 함께 다가오다.

아...예전엔 아무리 못 뛰어도 이정도는 아니였는데.

젠장 젠장...

 

 

하고 싶은게 하나 둘씩 생겼다.

물론 지금 하는 일도 최근 내가 너무 하고 싶은 일이였기 때문에

몸은 고단한건 사실이지만 대단히 흡족해하고는 있다.

그런데 사람이란게 참으로 간사해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나면 또 다른 하고 싶은 것이 생기고

그 외에 것들이 하나 둘 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난 욕심이 많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짐짓 공상에 빠진 나를 보고 있으면 난 아직도 17,18살 뭐든지 가능할 것 같은

그 때에 아직도 살고 있는 것 같다.

 

꼭 해야겠다는 것들이 생겼다.

생각만해도 벅차오를 만한 것.

지금의 이 시간과의 싸움이 끝나면,

 

 

 

 

-나는 아직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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