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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힘여성활동가들은 집단성폭력을 당해도 되는가?

거북이님의 [성폭력이라 말함에도 자격이 존재하는건가?] 에 관련된 글.

 

지난 금요일 이글을 쓰다 미처 게시판에 올리지 못했다. 그리고 처참하게 테러를 받은 지하조직의 글과 거북이의 글을 보았다.

 

처참하다. 여성주의 제기가 아직도 이따위로 치부되는 운동권에 내가 잔존해있었던 게 새삼 후회스럽다.

 

고 류기혁 열사의 잘못은 백번을 반성해도 지나치지 않을 일이다. 현대자동차노조라는 거대 권력을 가진 노힘이 좌파 운동이랍시고 원칙도 소신도 없는 일들을 저질렀다. 현대자동차노조 뿐이 아니다.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따위의 성폭력적 제기를 받을 이유는 하등없다.

 

고 류기혁 열사때 노힘의 잘못으로 노힘 여성활동가들을 집단 성폭력을 당해도 좋은가? 그게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지금이라도 김광수씨는 자기의 마초적 역사를 되돌아보는 철저한 자기 되돌아 보기를 통한 사과를 공개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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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씨의 글을 읽고 분노했다. 그가 쏟아낸 말들은 가히 성폭력적 발언이었다. 그리고 그에 문제제기 하는 글에는 말도 안되는 댓글들을 달렸다.

 

 

 

#. 아가씨와 건달들 (08년 10월 20일), 김광수

 


김광수씨는 지난 10월 20일 해방연대 홈페이지에 올린 “아가씨와 건달들”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나라 바람둥이들의 특징은 현장을 들켜도 왕오리발을 내미는 것이 미덕”(미덕이란다. 참으로 아름다운 처사다.)인데, 그게 가능한 것은 아내들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혼자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그런 남편을 기꺼이 용인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여기서 김광수씨가 가지고 있는 여성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을 알 수있다. 그는 여성은 가정을 지키는 내조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가정부와 다름 아니며,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혼자 살아갈 수조차도 없는 다시 말해 사회에서 주체적 역할이라고는 가정을 지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들은 바람을 피고도 왕오리발을 내미는 미덕을 부리는 남편을 기꺼이 용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광수씨가 노힘과 민투위 관계를 말하려고 했든 뭐든 그건 상관없다. 김광수씨가 말하려던 것이 노힘이 가지고 있는 아주 나쁜 더러운 정치라고 했다 손 치더라도 그는 여성비하적 비유를 들어 설명하려 했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김광수씨가 아주 정당하고 백번일계 맞는 말을 했다 하더라도 그는 명백한 성폭력적 발언을 했다. 그래서 김광수씨는 지금이라도 당장 수많은 여성활동가들에게 미안하다 죄송하다며 진심어린 사과와 자기반성을 해야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지녀온 운동권 마초이즘에 대해 스스로 비판해야한다.    

 

그 글의 마지막 단락이다.

 

“노힘아가씨들이 전국에서 벌이고 있는 정치적 재조직화에 얼마나 많은 건달들이 꼬이고 있는지는 확인할 도리는 없지만, 아무튼 참 수고 많으시다.”

노힘아가씨들에게 얼마나 많은 건달들이 “꼬이는지”란다. 김광수 씨는 여성은 남자를 꼬이고 유혹하고 그래서 다시 훈육하고 용서하고 용인하는 비주체적 삶을 사는 것으로 낙인찍고 있다.

 

 

 

#. 노힘 활동가들은 정치적 수치심은 느낄 줄은 모릅니까? (08년 11월 18일),  반관료주의

 

 

김광수씨의 글에 대한 문제제기가 해방연대 자유게시판에 띄어진 후, 댓글도 몇 개의 글들도 올라왔다. 그리고 여지없이 그러한 글 속에서는 그동안 운동권 마초들의 대응방식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반관료주의는 일단, 노힘 여성활동가들의 문제제기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반관류주의가 정말 지지하는지는 알 수 없다. 쓴 글을 곰곰이 보면 그는 전혀 지지하고 있지 않는 듯 하다) 하지만, 반관료주의는 (성적수치심은 느끼면서) 정치적 수치심은 느끼지 못하냐며 “구토유발자”로 노힘여성활동가들을 몰아넣었다.

 

반관료주의는 성적수치심을 느끼면서 정치적 수치심은 느끼지 못하는 노힘활동가들은 자기몸에 있는 오물을 먼저 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오물구덩이인 노힘에서 탈퇴해서 여성주의적 문제제기를 하던지 아니면 입 다물라는 거다. 반관료주의는 여성주의 논쟁 대응방식에서 제기되는 가장 전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왜 이렇게 흥분해? 왜 이리 감정적이야? 너는 안 그랬니? 너는 사회주의 운동은 제대로 안하면서 왜 이렇게 여성문제에만 매달려?”

 

좌파 페미니스트들이 지독하게 들어왔던 레파토리다.

 

 

 

#. '노힘아가씨와 건달들' 별 문제 없다. 본질을..(08.11.20), 주시자

 

 

그는 밝힌다. (그인지, 그녀인지 알수 없지만) 김광수 글 별 문제 없다. “영화에 비유해 솔직담백하게 쓴 것이다. 그간 해방연대에서 일관되게 주장해온 '민투위론'을 영화에 비유해 솔직담백하게 쓴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노힘아가씨'라는 말꼬리가 잡혔다는 건데 '민투위'에 대한 일말의 양심이 있으면 그것도 차마 시비걸 일이 아니었다.”

 

여성주의 문제가 제기되는 될 때마다 운동권 마초들은 말한다. 차가운 이성으로 판단하라고. 과학적으로 접근하라고 한다. 말꼬리 잡고 늘어지지 말고 감성적으로 대응하지 말라고 한다.

몰성적 인식접근으로 성차별 언행을 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감성적이고 개인적이며 말꼬리를 잡는 것인가?

 

논제와 무관한 여성피해자론을 들이대고 있다고? 그래서 문제제기 하는 것이 아닌가. 왜 김광수씨는 논제와 무관한 여성비하적 비유로 노힘과 민투위 관계를 설명했냐고. 김광수씨가 말하는 여성주의에 대한 시각이 장황한 글(어디서 본듯한 글들, 어디서 베껴온듯한 그글들.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자신이 지금까지 얼마나 반여성적으로 살아왔는지에 대한 눈꼽만큼의 반성없이 여성노동자들에 대해 줄기차게 써놓은 메마른 그 글이 여성주의에 대한 김광수씨의 진정성 있는 입장이라 읽혀지지 않을뿐더러, 그런 글은 누구든지 얼마든지 쓸수 있다. 김광수씨가 사과를 하려 했다면 그는 그 글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반여성적으로 살아왔는지 그래서 지금의 이 논란이 얼마나 잘못된것인지 자신을 반추하여 진심어린 자기 되돌아보기를 했어야 했다)을 봐도 그가 왜 노힘과 민투의 관계를 노힘 아까시와 민투위 건달로 설명하려 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왜 김광수씨는 주시자의 말대로 논제와 전혀 상관없는 아가씨와 건달들로 노힘과 민투위를 설명했는가? 왜 노힘(아가씨들)을 매번 나쁜짓에 바람피고도 집에 돌아와 왕오리발을 내미는 민투위 건달을 용서하고 용인한 것으로 표현했는가. 이게 노힘(여성활동가들)에 대한 성폭력이 아니고 무엇인가?

 

주시자는 또 말한다.

 

“남한사회 좌파들의 금기는 NL과 페미니즘이다.
민노당 건으로 NL에 대한 금기는 깨졌고 지금도 깨지는 중이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그 속도가 지지부진하다. 페미니즘 지형 자체에서 답이 워낙 지난한 형세인지라 가끔 외곽에서 발원한 충격파가 조금 전해지는 정도다.

 

사회주의 정당 건설과 사회주의 운동의 전면화가 요구되는 현시기, 그 다양하다는 페미니즘 세계에서 이렇다 할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 혹여 있다해도 좌파운동의 피로도를 가중시키는 '과도한' 비계급적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과도한 비계급적 현상. 주시자에 의하면 여성은 좌파에 끼지도 못하고 계급에 끼지도 못한다. 주변자일 뿐더러 비주체적이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되지도 않고 더구나 사회변혁을 이룰 계급에 여성 따위는 없다. 사회주의 운동이 전면화 되는 시기에 귀찮게 시리 피로도만 가중시키는 짜쯩나는 여성들만 있다.
 
그 따위 입장을 가진 주시자의 입장에서 보면 노힘여성활동가들의 문제제기는 당연한 막연한 감성과 말꼬리 잡기일 것이다.

 

 


#. 열사의 대한 도리를 잊지 않았다면 노동자의 힘 회원은 공개비판과 탈퇴를 단행하십시오,( 081120), 문창호

 


좋다. 난 문창호씨의 글에 동의한다. 노힘은 썩은 정치의 극날함을 고 류기혁 열사를 둘러싼 민투위 과정에서 드러냈다. 노힘은 잘못했다. 그리고 반성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많은 동지들이 비판하며 떠났고 노힘의 정치적 강제력을 떨어져갔다. 사실이다. 지금도 민투위를 둘러싼 이견이 내부에 팽배하지만 난 분명히 그것은 노힘이라는 조직이 민투위라는 권력을 가진 집단을 통해 표출한 썩은 정치의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문창호씨의 혹은 해방연대의 그 문제제기를 받아았는다 치러라도, 그래서 내 마음 깊숙이에서 전해져 오는 썩은 정치의 뿌리를 잘라내어 피를 철철 흘린다고 해도 지금 김광수씨의 성폭력적 발언에 대해 노힘을 탈퇴하지 않고 말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막무가내의 고집을 피우는 문창호씨의 입장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문창호씨 말대로 (모든)노힘(활동가들)이 비계급적이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치자.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사람들은 성폭력 피해자가 되더라도 어쩔수 없는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사람들은 우선 정치적으로 올바름을(자신의 좌파로서 열사의 도리를 잊지 않았음을) 확인해줘야만 성폭력 가해사실을 밝힐 수 있는가? 왜 그것이 선후의 문제여야 하는가. 

 

난 고 류기혁 열사를 둘러싼 민투위 동지들의 오류와 노힘의 잘못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성폭력 가해를 정당화하는 이유가 된다고는 결단코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세상은 도리를 다할 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에 앞서서 문제제기 하고 바로잡으려 투쟁할 때 가능한 것이다. 난 도덕주의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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