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ary No. 232, May 1, 2008

 

인종, 젠더, 계급과 미국 정치: 새로운 건 무엇일까?

(“Race, Gender, and Class in American Politics: Anything New?”)

 

 

 

 

전 세계적으로 5월 1일은 메이 데이, 그러니까 국제 노동자의 날이란 이름의 경축일이다. 유일한 예외가 있는데, 바로 미국이 그렇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메이 데이가 미국에서 일어난 특정한 사건, 즉 시카고 헤이마켓 폭동에 그 연원을 둔다는 점이다.

 

1886년 5월 1일, 미국의 많은 도시에서는 하루 8시간 노동을 지지하고자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참여했다. 시카고에서는 8만 명의 노동자들이 미시건 가를 행진했다. 시위 나흘째, 헤이마켓 광장에서 있은 집회 끝자락에 폭력사태가 일어났다. 당시 폭력이 어디서 비롯했는지는 지금도 논란거리지만, 경찰 일부가 살해됐다. 이에 따라 파업을 이끈 이들은 체포됐고, 그 중 넷이 살인죄라는 이름으로 처형됐다.

 

미국으로 건너온 독일계 이주(노동)자들이었지만, 그들이 사형집행 와중에 불렀던 노래는 미합중국 국가인 ‘별이 빛나는 깃발’이 아니라, 당시 국제적 계급연대를 표상하던 ‘라 마르세예즈’였다. 사정이 이런데도 미국을 주무대로 삼는 정치인들은 늘상 계급 갈등이 미국 정치의 규정 변수로서 지닌 위상을 평가절하하려 애써왔는데, 그 덕에 미국에선 메이 데이를 기념하지 않는다.

 

2008년, 미국에서는 아주 격렬한 논란이 일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참이다. 그 중심에는 민주당 여성 예비후보와 아프리카계 예비후보가 마주서 있다. 공화당 후보로 나선 이는 백인계 남성이다. 처음엔, 이번 선거가 인종이나 젠더를 이슈화하리라는 걸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경선이 갈수록 치열해지자, 인종과 젠더라는 주제는 둘 다 전면에 자리를 잡았다. 계급이 이슈라는 데 대해서는 여전히 어느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인종과 젠더, 계급 변수가 상호 교차하며 접점을 이룬다는 사실은 근대 세계체제에서 오랜 연륜을 지닌 이야기로, 미국 정치사의 중심 축을 이뤄온 것이기도 하다. 근대 세계 전반에 걸쳐 주요한 정치적 격변의 해라고 할 1848년, 프랑스에선 근대(세계)사상 초유의 의미심장한 사회혁명이 한창 진행중이었고, 후대 역사가들이 이 시기를 “민족/국민의 맹아기”라 명명케 한 민족주의 봉기가 유럽 곳곳에서 들끓었다. 미국에서 이 시기 가장 중요했던 사건으로는 ‘세니카폴스 회의Seneca Falls Convention’의 개최를 들 수 있는데, 미국 페미니즘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독립선언”에 대한 반향으로 1848년 7월 19~20일 간 열렸던 이 회의에서 채택된 <소신선언문Declaration of Sentiments>은 이렇게 운을 떼고 있다: “다음의 자명한 진실, 즉 모든 남성과 여성은 태생적으로 평등하다는 점을 우린 분명히 한다.” 죽 나열된 불만 목록 중에는 시민의 제1권리라 할 피선거권이, “국내외 할것없이 못 배우고 천한 남성들”한테 있는 피선거권이 정작 여성에겐 없다는 사실이 있었다. 나중에 불거질 갈등의 불씨가 잠재해 있었던 셈이다.

 

이 시기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명성이 높던 프레드릭 더글러스는 세니카폴스 회의에 참여했는데, 여성의 권리라는 대의에 대해 (당시 대부분이 노예 상태였던) 아프라카계 미국인 커뮤니티의 지지를 표명하기 위해서였다. 더글러스는 그후 1872년, 빅토리아 우드헐의 주도 아래 공천으로 평등당의 부통령 후보가 된다. 여성으로서든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든, 공직에 입후보한 첫 사례였다.

 

그러나 (남북전쟁이란) 내전을 겪은 뒤 미합중국 의회가 아프리카계 남성 시민들의 투표 배제가 위헌임을 골자로 하는 수정조항 14조를 채택했을 때, 여성운동 진영은 자신들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데 대해 침통한 분위기였다. 미국 노예제폐지 운동을 이끈 사람들 중 하나던 웬델 필립스가 1865년 5월 여성운동 진영을 향해 참정권 요구를 공표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한 이야기는 유명한데, 그 이유인즉슨 “지금은 흑인들 차례”여서란 것이었다. 많은 여성 참정권주의자들은 이에 침묵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엘리자베스 스탠턴과 수잔 앤서니의 경우, 널리 알려진 인종주의자였지만 여성 참정권을 지지한 조지 프랜시스 트레인의 대선 유세 지원에 나섰다. 그 결과 페미니스트운동 진영은 첨예하게 양분됐다.

 

19세기 중반을 지나며 여성운동계는 모든 사회-노동 의제에 대해 갈수록 보수화하는 면모를 보이는데, 이는 소수민족-인종 현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같은 보수적인 전환 속에서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자연권 사상과 절연했다. 이들 페미니스트는 자신들의 투표권 요구가 “외국 태생들이 불러올 후폭풍을 잠재우기” 위해서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1903년 주류 여성운동 진영에선 (주목할 만한 했어도 소수 의견에 그친 샬롯 퍼킨스 길먼의 반대가 있기는 했지만) 참정권 획득에 앞서 “교육적 요구”가 충족돼야 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펼쳤다. 이렇듯 내적 긴장이 팽팽한 가운데, 상당수 참정권주의자들은 정통 인종주의에 기대기까지했다. 예컨대, 세련돼 보이는 백인 여성 옆에 험상궂은 인상의 흑인 짐꾼이 앉아 있는 포스터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는 식이었다―“저런 애들도 투표하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지?”

 

이와 같이 불평등(한 체제)의 희생자들 사이에 (인종 대 젠더라는 구도로) 벌어진 온갖 갈등 속에서, 계급이란 변수에 관해선 실질적으로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 오늘날도 여전히 그렇지만,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여성의 대다수가 노동 계급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렇다 보니, 여러 상층 계급의 이해를 지지하는 투표권 행사로 일생을 보내고 (미국에서는 “중산층”이라고들 하는) 노동 계급들의 이해가 담긴 입법들은 줄곧 반대해온 완고한 보수파 공화당 후보가, 노동 계급으로서 여성 내지 아프리카계 인물을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탐탁치 않아 하는 상당수 유권자들의 지지를 바랄 수 있는 게다.

 

여기에 새로운 무언가가 있을까? 글쎄, 있기는 하다. 고작 10년 전만 해도, 민주당 대선 후보에 여성과 아프리카계가 나설 수 있다는 건 그 자체 생각 불가한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어느 쪽이 됐든 그가 대통령까지 되기란 아직 난망한 것으로 판명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계급적인 이슈들, 고상하게들 “경제” 관련 이슈라고 했던 현안들을 민주당이 얼마만큼 의제화해내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 되면야 선거는 압도적 승리로 끝을 맺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다.

 

 

 

 

원문보기http://fbc.binghamton.edu/232e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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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5 23:44 2008/05/05 23:44

Commentary No. 230, April 1, 2008

 

월가街는 정말이지 탐욕으로 굴러간다

("Wall Street is Really Predicated on Greed")

 

 

 

 

월가街는 정말이지 탐욕으로 굴러간다. 내가 아니라, 스티븐 라파엘이 한 말이다. 라파엘이 누군가? 지난 달 파산한 금융회사 베어스턴즈의 전 이사다. 어디서 이런 말을 했을까? 월가의 기관지라고도 일컫는 <월스트리트 저널> 인터뷰에서였다. 라파엘이 말하려던 요점은 그럼 뭐였을까? 베어스턴즈가 어떻게 붕괴했는지에 관한 설명(아니면 변명?)이었다. 그는 “어느 회사냐를 떠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렇다. 이런 일은 어느 회사냐를 떠나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그랬다. 그 사이, 베어스턴즈가 파산으로 치닫는 동안, 이 회사 대표였던 지미 케인즈는 태연하니 판돈을 계속 돌리고 있었다. 탐욕스런 은행가 치고 그렇게 영민하진 못했던 모양이다. 그 결과 그는 소유 재산을 대부분 잃었고, 탐욕으로 굴러가는 또다른 금융회사 JP 모건 체이스는 이에 마치 죽은 고깃덩이를 노리는 콘돌처럼 개입, 끝장을 내버렸다. 아, 첨언하자면, 한 14,000명 규모의 베어스턴즈 직원들이 실직했거나, 머지 않아 실직할 참으로 있다.

 

자본주의에는 그럼, 탐욕 빼곤 아무 것도 없을까?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엔 탐욕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탐욕은 굉장히 큰 역할을 한다. 탐욕은 그 정의상 무언가 때문에 다른 무언가를 대가로 치러야 먹힌다. 요즘 들어 월가와 세계 다른 곳에서 상당수 회사들이 파산하는 한편 다른 회사들은 그렇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이 일개 국가로서 거덜이 나고,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않은 이유도 그래서다. 미국 스스로 거덜났다고 하지야 않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상황은 늘 이런 식일까? 아니, 늘 그렇지는 않다. 전체적으로 보면 절반의 시기에만 해당하는 얘기다. 월가와 미국이 어떻게 이런 유별난 재앙이나 다름 없는 코너로 내몰렸는지 살펴보자. 1945년 당시, 미국과 월가 모두에게 시작은 좋았다. 전쟁은 끝났고, 승리로 끝난 전쟁이었다. 미국은 산업 열강 중 유일하게, 전시기 동안 공장을 손상 없이 온전히 유지한 나라였다. 유럽과 아시아 지역의 경우 도시는 파괴됐으며, 기아가 실재했다.

 

미국으로서는 잘 나갈 수 있는 만반의 여건을 갖췄던 셈이었다. 그렇게 미국은 잘 나갔고, 그것도 아주 잘 나갔다. 세계의 생산을 떠받치면서, 미국은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자국에 실질적으로 손상을 입힐 만한 핵전쟁이 일절 일어나지 않도록 얄타회담이라고들 부르는 소련과의 거래도 성사시켰다. 그리고 대내적으로, 거대 제조업체들에서는 이윤(을 위한) 생산에 파괴적인 장애를 일으킬 만한 파업이 일절 일어나지 않도록 거대 노동조합들과 거래를 성사시켰다. 마치 안개가 걷힌 듯 장밋빛 시절이 도래했고, 삶의 표준은 극적으로 치솟았다. 실제로, 전쟁이 끝나고 상당 기간 동안 세계 대부분은 확실히 장밋빛으로 충만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생산과 이윤, 인구―맞다, 여기에 복지 일반에 이르기까지 가장 커다란 팽창이 일어났던 시기였다. 이 시기를 일러 프랑스 사람들은 “영광의 30년”이라고 했다.

 

좋았던 것들은 이제 모두 종언을 고할 수밖에 없는 걸까? 안타깝게도, 근대 세계체제가 굴러먹어온 지난 500년 간의 역사를 보건대, 주기적으로 늘 그랬다. 모든 사람들이 경제적 팽창 와중에 현금을 수중에 넣을 때, 이윤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윤은 여러 선도산업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이뤄지는 독점 여하에 달려 있다. 그러나 (당대의 선도산업이란 위상을 지닌) 제철 공장이나 자동차제조 공장이 너무 많은 나라에 생기면, 과도한 경쟁이 초래되기 마련이다. 경쟁의 미덕을 퍼뜨리는, 당최 이치에 맞지 않는 온갖 구호가 나돌지만, 경쟁은 자본주의/자본가들한테 좋은 게 아니다. 경쟁은 이윤을 잠식한다.

 

그리고 이윤이 과다하게 창출될 때, 세계체제는 주기적으로 거듭되는 침체기 중 특정 국면에 들어선다. 이같은 상황이 발생한 건 1970년 언저리였다. 그런 뒤로,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 때조차, 또다시 온갖 당치 않은 구호가 나돌았다지만, 사정은 더 이상 장밋빛이 아니었다. 전세계적인 경제침체기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공장들은 (미국은 물론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까지 아우르는) 옛 거점을 빠져나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생산비를 확보하고자 (한국, 인도, 브라질, 대만과 같은) 다른 국가들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철강/자동차산업 생산의 새 입지 마련이라는 측면에서야 괜찮은 조치였을지 몰라도, 옛 생산의 중심지에서 그것은 일시해고를 뜻했다.

 

하지만 공장 철수/이전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이윤창출과 생산이 상대적으로 침체를 맞이한 시기, 그런데도 거대 자본가들이 돈을 벌 방법으론 뭐가 있을까? 그들은 제조업기반 사업에서 금융기반 사업으로 자금을 전환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투기에 발을 담근다는 얘기다. 이렇듯 투기가 발흥하는 시기에, 탐욕은 끝간 줄을 모른다. 우리 앞에 정크본드, 적대적 인수합병, 비우량담보(대출), 헷지펀드, 그 외 별 희한한 이름을 가진 희한한 금융상품들이 선을 보이는 게 다 그래서다. 오죽하면 로버트 루빈 같은 금융계의 거물조차 최근 “liquidity put”이 뭔지 모르겠다고 했을까.

 

이 이면에는 1970년부터 줄곧 커지고, 커지고, 또 커져온 채무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기업법인들, 개인, 국가가 져온 채무 말이다. 이들이 지금 누리는 것들은 하나 같이 실질 수입을 넘어서 있다. 돈을 빌릴 수 있는 지위에 (그러니까 신용이) 있다면, 흔히들 하는 말로 호사를 누리며 살 수 있다. 하지만 채무에는 조금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일정 시점이 되면 채무상환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당사자는 “채무 위기” 또는 “파산”을 맞이하고, 통화를 보유한 국가인 경우, 환율의 급격한 하락을 겪는다.

 

이를 일러 거품이라고들 한다. 풍선을 오래도록 불면, 그게 아무리 좋구나 싶어도 어느 시점에서 풍선은 터지게 마련이다. 거품은 지금 한창 터지는 중이다.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충분히 그럴 만하다. 거품이 실제로 터질 때, 그건 정말이지 고통스런 일이다. 중요한 건, 거품붕괴가 모두에게 고통스럽다고 할 때조차, 보통 다른 누군가보다는 또다른 누군가에게 더 고통스럽게 다가간다는 점이다.

 

이때, 가장 고통스러울 게 확실한 건 미국이지 않을까 싶다. 개별 국가로서나, 여기에 귀속해 있는 자본가들로서나, 뭣보다 여기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시민들로서나 말이다. 미국은 중동지역에서 벌여 놓은 패배중인 몇몇 전쟁에다 수십 억 달러도 아니고 수 조 달러를 쏟아붓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알기로, 이제껏 어떤 부유한 나라도 국고에다 수조 달러를 채워넣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미국은 그만한 액수를 다른 데서 빌려 써왔다. 2008년 현재, 미국이 지닌 신용은 1945년 당시에 그랬던 것만큼 좋지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채권자들은 악화가 된 달러를 받고 양화를 건네주기는 꺼려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 와중에 미국은 베어스턴즈와 같은 전철을 밟을 공산이 있다.

 

미국이란 주株를, 이를테면 중국이나 카타르 또는 노르웨이, 아니면 이들 나라들이 연합해 주당 2달러나 심지어 10달러로라도 사들이게 될까? 예컨대 수많은 나라에 주둔한 군사기지들처럼 미국이 지금도 사들이고 있는 고가의 장난감들, 그리고 낡은 장난감들을 대체한다며 주문해둔 저 전투기와 선박, 훌륭한 화기들한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여기저기 줄지어 늘어선 사람들한테는 누가 나서서 빵을 나눠줄까?

 

다가올 10년 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나도 알고프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 예일대 석좌교수, 사회학

 

 

원문보기http://fbc.binghamton.edu/230e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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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7 00:29 2008/04/07 0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