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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노동자 있긴 있는 거야?

귀족 노동자 있긴 있는 거야?


고난 

  귀족! 노동자!  귀족노동자? 


· 귀족 : 혈통·문벌·재산·공적 등에 의하여 일반 민중과는 다른 특별한 정치적·법제적 특권을 부여받은 사람, 또는 그 집단.

· 노동자 :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고 노동력을 팔아 자본가에게 임금을 받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 또는 그 집단

 귀족노동자. 중세 봉건시대의 최상위층과 자본주의로 이행하며 발생한 계급을 나타내는 두 단어가 나란히 쓰이는 아이러니한 용어. 이는 ‘노동자 중에 귀족’이라는 의미로 철밥통을 ‘약속받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통용된다. 자본과 정권은 이러한 귀족노동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주장하며 이데올로기 공세를 펼치고 있다.


 투쟁과 “밥통”  


 자본가들의 이윤 창출에 장애가 되기 때문에 자본의 나팔수인 부르주아 언론에서는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임금인상 투쟁을 당연히 나쁘게 그린다. 특히, 고액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LG 칼텍스정유나 항공사 노동자들의 경우는 나라경제는 생각도 안하는 극단적 이기주의에 빠진 존재로 묘사했다. 항공업계가 파업에 돌입해 휴가철 해외 여행객 뿐만 아니라 반도체나 휴대 전화 등의 효자 수출품의 발목이 잡힐 뿐만 아니라, 이 때문에 수출로 먹고 사는 ‘대한민국호’를 침몰시키려 한다는 등의 기사를 내보냈다.1) 내수침체와 유가 상승, 물가상승이 지속되고 청년 실업이 50만에 육박, 실업률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나라가 잘 돼야 내가 잘되고, 내가 잘 돼야 나라가 잘 된다.” 라는 것만큼 쉽게 수긍되는 구호로 여론을 공략하고 있다. 다음의 기사를 통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성남시 분당에 사는 정유미(여ㆍ24) 씨는 "일반 직장인의 경우 적은 임금과 수준 낮은 사원복지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불황을 이겨내기 위해 회사와 함께 참고 견디는 것"이라며 "업무의 특수성을 이용해 시민과 국가를 볼모로 자신의 밥그릇 싸움에 치중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성토했다. 네이버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린 `독수리`라는 필명의 네티즌은 "대형 비행기를 모는 기장의 경우 최고 1억7000만원이나 받는 것을 안 뒤 허탈했다"며 "해마다 성수기를 이용해 파업에 돌입하는 심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전했다. <헤럴드경제 2004.07.29 “남부러운 고액연봉받으며 툭하면 파업·파업” >

 이처럼 대국민에 대한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는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비판적인 여론공격으로 노조가 심각하게 고립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현대자동차노조는 닷새 만에 파업을 정리했다. 또,  LG 칼텍스 노조는 고임금공세로 인해 여론이 악화된 상태에서 ‘김선일씨 참수 재현’으로 구설수에 오르더니 흐지부지 파업을 종결짓고 말았다. 부르주아 언론은 ‘올해만 같은 협상’이 내년에도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


 하지만 귀족노동자 이데올로기는 단지 이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자본은 더 많은 초과 착취를 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만들어 놓고 그들과 정규직 사이를 이간질함으로써 이득을 챙기고 있다. 이 때에도 귀족노동자 이데올로기는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비정규직은 정규직 임금의 약 60~70% 정도만 받고, 노동3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기에 자본의 논리에 휘말리기 쉽다. 정규직 노동자가 자신들의 몫까지 가져간다는 것이나, 강성노조 덕분에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돈 많이 벌고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또한 몇몇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을 자신의 밥통을 지켜주는 안전장치로 사고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적대감을 느끼고 있으며, 정규직은 비정규직 노조 설립이나, 임금 협상 투쟁에 그들과 함께 하지 않고 방관하는 경우가 많다. 그 예로, 현대자동차 하청 노조에서는 원청 노조와 맞춰서 임금 협상 투쟁을 진행하려고 했으나, 원청노조가 투쟁을 먼저 끝내버리고 만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의 문제를 노동자 계급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자본은 노동계급의 분열과 전반적인 노동유연화를 얻어간다. 자본은 정규직에게 경기 침체를 구실로 삼아 이들에 대한 노동 조건의 하락과 양보를 강요하기 위한 술책을 짜내고 있기 때문이다.

 잠시 2002년 겨울을 생각해본다. 노무현은 비정규직의 이러한 열악한 상황을 ‘가엾게’ 여겼는지, 표를 구걸하기 위해서였는지 알 수 없지만, 2002년 대선 후보 정책토론회에서 이들의 처우 개선을 약속했다. 하지만, 집권 후 열사 정국에서 그는 이제 더 이상 죽음으로 노동자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때는 지났고, 정규직 노동자는 자기 배만 불리지 말고 갖고 있는 ‘밥통’을 비정규직에게 나눠주자고 말했다. 뭐 뀐 놈이 성낸다더니, 애초에 비정규직을 만든 것은 누구이며, 갈라놓고 분열 책동을 한 것은 누구이며, 노동자들을 일상적으로 착취해온 것은 누구인데 이렇게 기만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인가.

  정규직 노동자는 왜 그리도 많은 임금을 받는다고 생각하는가? 아님 실제로 그들이 ‘귀족’ 이라는 이름을 붙여질 만큼 쉽게 돈벌고 있다고 여겨지는가? 한때 인기 신랑감 후보에도 올랐던 현대자동차 생산직 노동자의 연봉은 6000만원이라 한다. 하지만 그들이 이 정도의 돈을 받으려면 20년 근속자가 12시간 맞교대근무로 365일 중에 380여 일을 일해야 한다!!


“당신의 굳센 팔이 원한다면 모든 수레바퀴는 멈출 것이다.”


 왜곡된 실상을 깨닫고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의 본질을 알아차렸다면 이제 우리는 다음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왜 이러한 파업이 일어나는 것일까? 고임금은 아니더라도 정규직은 비정규직에 비해 먹고 살만하잖아? 라는 질문에 단순히 돈을 더 받기 위해서라고 답하기는 뭔가 부족하다. 레닌이 말하고 있듯이 이는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자본가들에 대항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야기하기 때문이며, 생산이 대규모일 때 투쟁은 필연적으로 파업의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이 가진 생산수단에 노동력을 적용하여 가치를 생산한다. 그러나 자본가는 그들이 가족과 함께 겨우 생존할 만큼의 임금만을 지불한다. 반면 노동자들이 이것을 초과하여 생산하는 모든 것은 이윤으로 자본가의 주머니에 들어간다. 따라서 자본가와 노동자가 임금 문제를 가지고 싸우는 것은 당연한 문제가 된다. 그런데 개별 노동자는 자본가 앞에서 절대적으로 무력하게 되므로 노동자들이 함께 싸워나가야 한다.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자본가들과 거래해야 한다면, 자본가들의 이윤을 얻도록 쉬지 않고 노예처럼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소자본가가가 대자본가들에 의해 더욱 더 몰락할수록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저항할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모든 파업은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지위가 절망적이지 않으며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며, 자본가 계급 전체 그리고 노동자 계급 전체를 생각하도록 가르친다. 노동자들에게 그들이 단결했을 때에만 자본가들에 대항해 투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

 즉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는 ‘귀족’ 이 아니라 자본가에게 착취당하는 노동자일 뿐이며, 개별적으로 활동했으면 그들의 노예가 될 뻔했으나 공동행동을 통해서만이 겨우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귀족 노동자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노동자란 자본가들에 의해 착취당하는 계급이기 때문이다.


 “나는 재빨리 그 녀석의 목을 조였지.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 그 망할 녀석에겐 목이 없더란 말이야.” 3)

 

 




1) 세계일보 2004.07.30 “귀족노조들 해도 너무해”



 

2) 레닌 「파업에 관하여」1899. 전진출판사 레닌저작집 1권



 

3) 로자룩셈부르크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96p 우스펜스키의 소설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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