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시대

2007/12/10 00:47

간송학파 사람들이 쓴 책 진경시대를 보았다. 진경시대란 영정조대를 말한다.

혹자는 이 시기를 실학시대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실학이 당시까지 조선을 지배하고 있던 정주성리학과의 단절로 등장했다는 주장이 숨어 있다. 이 시대를 굳이 진경시대라고 또다르게 명명하는 이유는 이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것. 다시 말해서, 영정조기 찬란한 문화는 정주성리학의 완성, 개화인 것이지, 단절이 아니다, 라는 것. 그렇다면, 정주성리학이란 더이상 망국을 촉발한 전근대적 사상이 아니게 된다. 정조가 10년만 더 살았어도 조선이 그렇게 허망하게 망하지 않았을 거라는 허망한 가설과 더불어 생각해보면, 완전 정주성리학이 대한민국도 지배할 수 있었겠다.

 

아무튼, 이러한 주장은 필연적으로 실학개념 재규정으로 귀결된다. 즉, 일제시대 정인보, 안재홍으로부터 해방후 새마을운동기까지 상식이 된 실학=탈성리학이라는 명제가 반박되고, 실학자=탈성리학자, 혹은 적어도 성리학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이라는 등식을 해체한다. 그런데, 지두환 교수의 입론, 즉 유형원 같은 중농주의학파부터가 아닌, 다음세대의 박지원 같은 북학파, 곧 중상주의 학파부터 실학자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단 주장은 점점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것 같다. 간송파에서 이렇게 주장하는건, 다름아닌 북학파=주류 정주성리학자(노론)였기 때문이다. 역시 간송은 노론을 좋아해.

 

또 이같은 실학개념 재구성과 관련하여 뉴라이트의 이론가 이영훈 교수님처럼 18~19세기 소농사회론의 근거로 실학자들이 자본주의를 지향한거 아니라는 주장을 펴는 분들도 있는 것 갔다. 물론, 정주성리학 그 자체를 초역사적으로 중시한 나머지, 실학도 성리학일뿐이라는 주장을 펴는 분들도 있다고 알고 있다.(백민정, <<다산의 철학>>, 이학사 참조.) (만약 그렇다면, 자본론도 성리학의 일종일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이 주제에 관한 작업은, 17~19세기의 수많은 학자들과 그들의 사승관계를 이리저리 재구성하여 지도를 그리는 작업인 듯하다. 물론, 연속이건 단절이건, 기본적으로는 연속성 위에서 사고되어야 한다. 연속이 없다면 단절을 논할 수 없다. 이것은 변증법의 기본이다. 그러나, 단절을 찾아내지 못하거나 애써 은폐하는 것은 지식사회학의 전제에 어긋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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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0 00:47 2007/12/10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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