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한겨레 기사에 하와이 여행 갔던 사람이 공항에서 마약운반책이란 혐의로 잡혀서 봉변을 당한 이야기가 실려있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84289.html) 선배한테 주려고 가져간 미꾸라지 아이스박스가 화근이었던 것. 미국입국 문제가 항상 그렇듯 문제는 미국 마약경찰, 한국영사 등이 우리의 주인공을 대한 태도였다. 마약이 어디서 나왔는지 보여달라는 씨의 항의도 들은척 만척했다는 미국 마약경찰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결국 나오지 않았던 대량살상무기를 찾아 이라크를 초토화시켰던 부시의 '신'앞에서만 경건한 미소를 읽는다.

최소 10년인데, 배후를 불면 5년으로 감해주겠다는 마약경찰의 제안은 흔히 플리 바게닝인지 하는 수사기법으로, 그 근본 아이디어에는 합리적 선택이론이라는 미국 토종 이론이 도사리고 있다. 자유와 민주를 사랑하는 미국인들은 그러나 자유와 민주에 눈감는 법도 잘 알고 있다. 한국 영사관 직원이야 뭐, 수없이 발생하는 동일 종류의 사건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는, 무죄는 어려우니 감형을 노리자는 류의, 다시 말해, 제발 솔직히 말해 보라는 류의 얘길 했다고 한다. 당연한 거다. 그리고 그렇게 말한지 며칠 후에 미국 경찰이 아무 설명도 없이 '집에 가라'(you going home)고 말했을 때도, 한국 영사관 직원들은 괜히 미국 직원을 건드려서야 좋을게 하나도 없다고 문제제기 안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똥개도 자기 동네에서는 반쯤 먹고 들어가는데, 상대가 천하의 미국이래서야, 라는 거겠지.

 

혹자는 이 사태를 우연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다. 언제나 그렇듯 아무리 완벽한 시스템에도 실수는 있는 거라고. 특히, 미국 한번도 안가본 내가 하는 말이니까 별로 아무도 신빙성을 안가지겠다. 그러나 바로 우연이라고 하는 이 말에 치명적 함정이 숨어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우연이 규칙적으로 발생하는지를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 것이다. 설명도 못하면서 그냥 우연이라고, 잊으라고만 하는 것이다.

이런 유사한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특히 비굴한 웃음, 즉 교양있는 채 하는, 나는 당신들의 사고방식을 100% 지지하며, 당신들이 하는 일이라면 절대로 안티걸 생각이 없어요,라고 하는 표정을 이마에 써붙이지 않는 이상 누가 알몸 투시기 검문의 샘플로 선출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는, 이 분통터지는 사실을 앞에 두고서랴.

 

지금 장차 미국 학회에 발표하러 갈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는 마누라가 다행히 애기는 안데리고 갈 생각이겠지만, 마누라가 마약운반책으로 걸려서 10년형 받으면 나는 10년동안 엄마없는 자식을 키우면서 옥바라지를 해야한단 말인가? 더우기 죄도없이?

 

좀 오버인가?

미국은 그런 실수하는 사람보다는 따뜻하고도 치밀한 경찰이 훨씬 많은가? 세상은 밝기만 한데, 한갓 나무그늘을 어두운 음지로 생각하여 호들갑 뜨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미국이 어떤 억지로 자신들과 다르게 생긴 사람, 다시 말해서 마음에 안들게 생긴 사람들을 손쉽게 초토화시키고 있는지를 목도하고 있다.

 

미국에 그런 깡패같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요, 양심을 가진 평범한 소시민, 혹은 이들의 지적 대표자인 학자가 많다는 얘기도 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미국 학자라는 사람들은 미국에 살면서 항상 부쉬를 닮아서 정신이 좀 이상해지는 법이다. 마이클 왈처 같은, 미국에서 진보입네 설치는 사람도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다고 한다. 국제적 범죄를 관용하면 안된다나 뭐래나. 너네 나라 전범이나 처단해라 이 xx야. 이런 사람 글을 수업교재라는 이유만으로 읽고 있어야 하다니, 정말 몸에 힘이 쭉 빠진다. 내용도 난해해서 어제, 오늘 종일 보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미국의 학회와 학자의 글을 읽어야만 하도록 운명지어진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나랏말싸미 중국에 다르면서도 중국의 논리로 사유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의 조상님들처럼.

답답하면 영어공부하지 마라, 아쉬우면 미국 사람이 쓴 논문 읽지마라, 라고 말하는 얄미운 사람들도 눈앞에 떠오른다. 그러나 누구나 인정하듯이, 이 세상은, 특히 학문은 미국이 지배하고 있다. 세상은 이미 수백년 전에 중국 유행을 받아서 새로운 사유를 전개시켰던 조상님들처럼만큼도 못하도록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게 엉기고 있다.

 

그러고 보면 학문이란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힘이 세면 진리도 바꿀 수 있다. 150년 정도 전에 맑스가 한 말처럼 모든 지배적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일 뿐이다. 모든 언어가 지배계급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군대 가느라 3년. 말배우느라 몇년 쓰고나면 나보다 어린 애들이 벌써 나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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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7 00:09 2008/04/27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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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음 2008/04/27 0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이. 우리 집에 놀러오게나. http://blog.jinbo.net/house 내 핸드폰이 망가져서 번호를 날렸으니 전화 한 통 날려주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