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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 <살아가겠다> 발췌독.

나는 '철학'을 묻는 질문을 접할 때마다 그것을 '철학한다는 것'에 대한 물음으로 바꾸곤 한다. 내게 철학은 '앎의 대상'이라기보다 '행함의 지혜'이고, 결국 '행함으로 드러나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앎이지만 또한 행함이다. (15)


우리는 수십 년을 살아왔지만 여전히 '사는 데 서툴다'는 느낌을 갖는다. 우리 딴에는 잘 살아보겠다고 한 일이 삶을 망치지 못해 안달하는 것처럼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잘 살고 싶다'는 욕망과 '삶을 망치는' 현실 사이의 간극ㅇ서, 철학에 대한 욕망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특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서로의 기술, 서로의 경험에 대해서 들려주는 것이다. (17)


철학자는 '법대로 사는 자'가 아니라 '사는 법을 아는 자'이고, 사는 법에 맞지 않을 때 법을 고치라고 용기내서 말하며, 기꺼이 감옥에 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21)


어떻든 '철학하는 왕'의 현실적 실패 이후 플라톤이 동시대인과 미래의 학생들을 위해 던진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자기가 고민하는 주제에 대해 책을 쓰려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해두었다. "거기에 대한 내 저술은 있지도, 나오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학문들처럼 말로 옮길 수 있는게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는 철학의 지혜, 철학적 앎에 대한 참으로 중요한 비유를 남겼다. '앎'이란 오랜 사귐과 공동생활을 통해 "튀는 불꽃에서 댕겨진 불빛처럼 혼 안에서 생겨나 스스로를 길러낼 것"이라고 (28-9)


디오게네스의 철학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연대는 이런 이해관계 이전의 것이다. 그것은 사회계약에 우선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타인과의 관계 이전에 나 자신의 존재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존재 자체가 타인들로 이루어졌다는 깨달음이다. 나는 언젠가 <전태일 평전>을 읽으며 그런 느낌을 가진 적이 있다. 전태일이 신문팔이, 여공 철거민들과 연대하기 이전에, 그런 존재들을 자기 안에 품고 있다는 느낌 말이다. 그의 존재 안에서 그들이 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유서에서 우리에게 동일한 존재가 되어주기를 요청했다. '나를 아는 모든 나' 그리고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에게 부친 그의 유서는 '그대 영역의 일부'로서 자신을 받아들여 주기를 요청한다. 그를 이루는 어던 부분이 우리 안에 그렇게 자리함으로써, 다시 말해 우리가 자기 안에 그의 자리를 내줌으로써, 우리는 또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그와 연대하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와 연대한다는 것은 그 존재를 우리 안에 품는 것이다.(37)

 

디오게네스에게 있어서 '길'의 두가지 의미. (38-41)
1) '모든 것을 모두에게 내보이는' 공적인 장소. (칸트적 의미에서 '계몽'을 실천하는 공간)
2) 길은 법으로는 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도록 하는 공간

 

대학인의 고백과 약속 professor의 진정한 의미 (55-57)

 

생각해보면 '앎을 매개로 한 삶의 공동체'였던 '우니베르시타스'역시 가르친 것은 '진리'(어떤 불변의 참된 지식으로서의 진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대학이 키워낸 것은 진리의 생산 조건으로서의 능력과 용기였을 것이다. 대학은 우리 삶에 필요한 모든 질문들을, 어떤 선험적 권위나 제약을 진정하지 앟는, 무조건성 속에서 던질 용기를 가르쳤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 아닌가. 앎이 구원해야 하는 것은 자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이다. 우리 삶의 혁신을 위한 대담한 실험의 장. 그 배움의 공동체가 '우리베르시타스', 즉 대학이라는 이름의 합당한 상속자일 것이다. (65)


"포기에 맞서야 한다" - 랑시에르 말 인용. "지능이 열등할 때가 아니라, 의지가 꺾일 때 바보가 생겨난다" (79)

 

<교육 이전의 교육, 운동 이전의 운동> = 감히 알려고 하라 (칸트의 계몽)  지식이 아니라 욕망이 생기게 하라 ("밤에 열린 어느 장애인 학교")


우리에게 지금 '현실적 대안이 없음'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 또 대안이 없으며 낭예 말을 못하게 하는 것, 혹은 하나의 대안을 다른 대안으로 계속 바꿔치기하며 '대안 없음'에 대한 자각을 계속해서 늦추는 것. 바로 이것들이 체제의 근간, 이 시대의 비전, 이 시대의 지배 정신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그것을 타파하련느 움직임을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닌가.
대안 없이 두물머리를 지키고 있는 농부들, 대안이 없어 무작정 대한문을 차지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 (131-2)

 

단기투쟁은 '투쟁'이 곧발 '일상의 중단'을 의미하지만, 장기 투쟁의 경우에는 '일상의 삶'과 '투쟁'이 구별되지 않는다. 즉, 살아가는 방식으로 싸울 수밖에 없고, 싸우는 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는 '장기투쟁 사업장'에서, 그 '장기'라는 말과 달리, 시간의 길이를 넘어선 문제, 즉 운동이 어떻게 시간적 '무한정성'을 다룰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느낀다. 우리는 그런 운동의 형식을 발명해야 한다. (147)
우리는 '살아가는 일'과 '착취당하는 일'이 수렴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런 사회이기에 '살아가기'와 '투쟁하기' 또한 수렴해가는지도 모르겠다. (149)

<생정치 시대, 지킴이의 개입과 실천> (152~ )

 

<밀양식 보수주의>
밀야의 노인들이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는 그 '보상 불가능한 것'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처분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나는 나무를 부둥켜안고 울었다는 한 할머니의 말에서 그것의 정체를 느낄 수 있었다. "이 나무는 나보다 더 오래 살아왔다. 이것들 다 베어내고 나면 너희는 어디 기대고 살래?" (173)

 

<죽은자와의 약속>
"우리 시어른이 돌아가실 때 내게 그랬어. 고향을 지켜줄 거냐고. 그 양반이 돌아가실 때 시누이가 그러는 거야. 아버지가 언니 찾아요. 그래서 뭐 때문에 그럴까 하고 갔는데 나한테 그러는 거야. 모두들 ...고향을 지킬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다 떠날 궁리만 하고. 가만 보니 니가 고향을 지켜줘야겠다. 그래서 내가 그랬지. '고향 지키는 기 뭐 어렵습니꺼. 이것저것 심고 무덤에 풀이나 베어주고 하면 되지. 그러다 자식들한테 물려주면 되고. 걱정 마세요. 제가 지키겠심니더' 그랬지. 지금 이 일을 당하고 보니 내가 왜 그때 그리 쉽게 답해버렸을까, 왜 그렇게 말해버렸을까 후회도 되고. 어느 날은 너무 힘들어서 그랬어. '아버님, 너무 힘듭니더' 그리고 나서 한참 울었어. 내가 일흔에만 죽었어도 자식들한테 소임 넘겼으니 제 세상 아버님한테 편히 갔을 텐데. 인제는 별수가 없다. 나는 철탑이 세워지든 안 세워지든 싸우다가 그 아래 묻여야 해. 그래야 그 어른한테 할 말이 있지. 나는 하는 데까지 했다고 말야. 난 어디 안 가. 저기 묻혀야 해." (177)

 


나는 김주영 씨가 걸어온 저 삶의 모든 시도에서 그녀의 용익와 자유를 본다. 우리 사회가 부여한 '자애인'의 자리에 그녀는 그대로 주저안지 않았다. '장애인'이라는 자리는 그녀가 자유에 대해 끊임없이 시도하고 물었던 장소이고, 삶에 대한 포기할 수 없는 열망을 쉬지 않고 증명해왔더 장소였을 뿐이다. 그녀는 장애인을 장애인 안에 가두는 문턱들 중 가장 악랄한 감옥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역사의 모든 억압받는 자들은 '바깥으로 나가면 죽는다'는 협박 아래서, 그 두려움 아래서 노예적 삶을 강요받아왔다.
"밖에 나가기 두려워  집 안에만 있으면 악순호나이 계속됩니다. 열악해도 용기를 내서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김주영) (198-9)

 


(최정은) 병에 대해서 이수영 선생이 책에 쓴 부분, 특히 거기를 다룰 때 반응이 컸죠. 많이 아파 본 사람은 그 삶이 더 나아지지는 않아도 심오해질 수 있다는 구절, 나만 제일 아프고 제일 불행했다고 아픈 것만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 아픔이 그냥 아픈게 아니고 더 깊어지는 거고.... 아픔이란 게 그냥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 올 거라는 것. 하지만 과거에 자기가 아팠던 부분에 대해서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지금까지 사회복지사들이 해준 것은 그냥 희망이엇죠. 희망을 가져라, 희망을 가져야 한다, 그런 식이었어요. (248)

 

(최정은) 그동안 우리가 쉼터에서 해왔떤 일들을 선생님과 함께 정리를 해보았죠. 그래서 '가족주의', 가족로망스, 게토, 연민.... 그런 것들을 발견한 거에요. '쉼터체제'라고 할까요? 그냥 연민의 주사만 놓는 거죠. 여기는 위안받아야 하고 쉬어야 하고 그런....
(이수영) 사실 제가 본 바로는, 쉼터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어요. 한쪽에는 아예 눌러앉는 친구들이 있고, 다른 쪽에는 뭔가 조금이라도 귀찮게 하면 다른 곳으로 옮겨버리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어느 쪽도 쉼터에서 뭘 해볼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눌러앉는 것에 의해서도, 옮기는 것에 의해서도, 쉼터는 모두 무력화되고 맙니다. 그러니까 쉼터는 어느 쪽이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죠. 여기 있는 실무자들이 할 수 있는 건 봉사,  헌신, 인내밖에 없어요.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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