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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바람에 쓴 글 - 용산참사 4주기

 

[용산참사4주기]

 

용산, 그리고 삶의 뿌리가 흔들리는 이 나라 곳곳의 상처들을 기억하며.

 

 

비가 오면은 창문 밖을 두드리는 / 물소리가 음악이 되고 / 밤이 되면은 골목 수놓은 가로등이 / 별빛보다 더 아름답다고

하지만 이 집은 이제 허물어져 / 누구도 이사 올 수가 없네 / 마음속에 모아 놓은 많은 이야기들을 / 나는 누구에게 전해야 하나

나는 노래를 부르고 사랑을 나누고 / 수많은 고민들로 힘들어도 하다가 / 결국 또 웃으며 다시 꿈을 꾸었네 / 여기 조그만 옥탑방에서

좋아서하는밴드, “옥탑방에서”

 

집. 그것이 곧 나다. 나의 역사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와 베개 위에 머리를 눕히고 하루의 고단함도 함께 내려놓을 때, 그 마음을 ‘내 집’만이 안다. 그것이 아무리 누추하고 볼품없다 할지라도 그곳은 결코 쉽사리 지워져서는 안 될, 우리 삶의 마지노선이다. 오직 그 곳에서만 가난한 우리의 고민과 웃음 그리고 눈물의 기억들이 오롯이 담겨 있으니. ‘돈’이라는 반질반질하고 네모 각진 권력을 갖지 못한 우리들에겐, 작은 방 한 칸에 새겨진 울퉁불퉁한 기억들이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힘이니.

 

철거. 아마도 그것은 벽돌과 시멘트로 쌓아올려진 구조물을 허무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머니가 창가에 놓아두며 매일 정성껏 길러왔던 화분이 사라진다는 것, 어느 날 가족들과 여행에서 다정하게 찍어 벽에 걸어둔 사진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 또 이와 같이 다른 무엇으로 대체 불가능한 삶의 흔적들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그 집에서 살던 사람들의 삶은 다른 어딘가에서 또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내가 살던 이 곳에 다시 돌아왔을 때, 그 때를 추억할 돌멩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영문 모를 콘크리트 더미만 쌓아올려져 있다면, 나의 과거가 허리가 끊어진 채 울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말 것이다.

 

얼마 전 사당동 판자촌 지역 주민 연구를 다룬 <사당동 더하기 25>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저자는 판자촌이 철거된 이후에 이들이 서울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아온 20년이 넘는 세월을 한 권의 책에 빼곡히 담았다. 그 책을 읽으며 가장 공감이 된 부분은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 삶에 대한 서사를 만들지 못한다는 지적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삶 속에서 1년 전 또는 10년 전의 삶을 떠올리고, 이를 통해 자기 삶을 반추하며 미래를 계획하는 삶이 불가능해 진다는 것이다. 철거가 반인권적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겠지만, 나에게 이 물음이 던져진다면 나는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자신의 역사를, 삶의 뿌리를, 사정없이 흔들고 결국 끊어놓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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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 나는 노들에서 한소리반 사회수업을 맡았다. 어찌어찌 마지막 수업까지 오게 되었을 때, 무슨 내용으로 수업을 할까 고민하다가 4주기를 맞는 용산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용산 뿐만 아니라 이 나라 곳곳에서 자기 역사와 삶의 뿌리들이 끊어져 신음하고 있는 곳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국민들의 손으로 뽑은 정부가 국민들을 자기 삶의 터전으로부터 내쫓는 아이러니의 현장들. 용산, 두리반, 그리고 강정마을.

 

용산. 그곳은 콘크리트 더미를 쌓아올려 빌딩숲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살던 터전을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비록 철거 이후 자금 조달이 어려워 재개발은커녕 겨우 주차장으로 쓰일지라도, 네모 각진 화폐의 권력으로 쓰일 일이 없는 낡고 허름하고 삐쭉삐쭉한 가옥들은 대걸레로 복도를 쓸어내듯이 내동댕이 쳐졌다.

두리반. 그곳은 한 가족의 소박한 생존을 위해 파 놓은 작은 우물이었다. 그런데 이 작은 우물을, 고작 이 칼국수 가게 하나를, 수천 수만개의 우물을 가진 대형 건설사가 차지하겠다고 벌린 탐욕의 전쟁이었다.

그리고 강정마을. 물이 귀한 제주 땅에서 유일하게 깨끗하고 풍부한 물을 가진 강정천이 있는 곳. 천혜의 희귀 생물들과 수천 수만년을 이어온 구럼비 바위가 있는 곳. 이 마을을 지켜온 강동균 마을회장은 구럼비 바위를 엄마의 품과 같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엄마 품과 같은 이 곳에서 정부는 화약을 터뜨리고 있다. 마치 지구와 전쟁이라고 할 듯이.

 

내가 마지막 수업 준비를 위해 돌이켜 본 이 세 곳 중에서, 두리반만이 투쟁에서 승리해서 온전한 자기 터전을 찾았고, 용산과 강정마을은 아직도 아파하고 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구속되었으며, 벌금 탄압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수업을 준비하는 내내 가슴이 아팠고, 답답했다. 이 투쟁에 늘 함께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는 나조차도 마음이 지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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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정도로 유약했다.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암담한 투쟁의 기록들을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무너져 내렸으니.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용산참사 당시 구속자들이 특별사면 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분이 찝찝한 사면이었다. 이명박 측근 비리 인사들의 특별사면에 대한 비난을 막기 위한 방패막이용인 것이다. 치사하고 더러운, 그러나 어쨌든 사면이니 받지 않을 수 없는. 나는 쏟아지는 기사들을 무심하게 찾아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특별사면으로 나오신 이충연씨의 인터뷰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들이 권력으로 나를 석방했지만 나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용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살육의 현장에서 살아남아, 결국엔 옥살이까지 해야 했던 사람. 그 때문에 누구보다 힘들고 신음했을 법한 사람. 그런 사람이 이런 사자후와 같은 일갈을 하고 있었다. 그의 일성은 마치, 저들이 여름날 밤을 귀찮게 하는 모기에게 살충제를 뿌리듯 우리 철거민을 모욕하고 모든 것을 빼앗는데도, 절대 빼앗을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 듯 했다. 용서의 자격.

 

권력자들이 보기에 모기보다 못한 목숨 따위가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감히 “용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저들은 이 말이 가소롭게 들렸겠지만, 동료‘모기’의 한 명으로서 나는 큰 위안을 받았다. 저들이 아무리 우리의 삶을 짓밟아도 결국엔 우리의 용서를 ‘받아야’하는 자들이라는 사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무너져 내리더라도 이와 같은 ‘도덕적 긍지’만은 포기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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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봄이 다가오지만, 삶의 뿌리를 위협받는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도 한겨울이다. ‘끝내 승리하리라’라고 장담하듯 응원하는 말을 하기엔 용기가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 한마디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긍지를 잃지 말자고. 자신을 버리지 말자고. 우리가 몸을 누이는 집이 비록 초라해도, 그 안에서 새긴 당신들의 삶의 역사는 매 순간 남김없이 감동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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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학 세미나 발제문 (2013.01.30) - 장애여성의 성.

주제는 “장애여성의 성”인데, 발제 내용은 막 산으로 가는 이상한 발제문.

발제자 : 금철

 

 

(주 텍스트인 <장애여성공감 10년 활동사> 글은 요약 발제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이미 요약이 잘 되어 있는 글이라, 발제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그냥 김원영씨의 글을 함께 읽으며 느낀 생각들을 그냥 주저리 주저리 읊어보겠습니다.)

 

잡설하고

 

며칠 전, 대학 동아리 후배들을 만났습니다. 그 동아리 이름은 ‘노동문제연구회’이긴 한데, 이런저런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갖고 데모를 나가는 것을 주업으로 삼고 있는 동아리입니다. 자주는 아니어도 장애인 집회, 적어도 420때 만큼은 연대하는 그런 동아리입니다. 그 동아리에 작년에 중증장애인 새내기(S군)가 들어왔더랍니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고, 언어장애가 심해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 할 때는 꼭 노트북을 이용해야만 하는 정도인 그런 친구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제 3학년에 올라가는 후배 한 명이 저한테 카톡을 보내서는 “동아리 전체에서 장애인이 같이 동아리 활동하는 것에 대해 고민도 많고 어려움도 많아서” 책으로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데 도움받을 만한 책이 뭐 없겠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래서 일단 오늘 이야기하는 김원영씨의 책을 추천해 줬습니다(저는 이 책이 장애인 개인의 욕망의 서사를 이해하고 공동체가 이를 함께 고민하게 만드는데 더 없이 좋은 소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책 몇 권 읽는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닐테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몇 년간 활동하기도 했던 동아리에서 장애인 학우와 함께하는데 있어서 후배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했습니다. 제가 뭐 대단한 도움이 될거라 생각해서 만난게 아니라, 후배들이 무슨 얘기를 할지 궁금해서, 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만나자고 했지요.

 

후배 두 명과 거의 2시간 반동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야기 중에 제가 흥미롭게 들었던 주제는 술과 귀가와 관련된 것이었는데요. 동아리 활동을 하다보면 밤 늦게까지 뒷풀이를 하고는 하는데, 이용할 수 있는 교통편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S군이 항상 고민거리가 된답니다. 그런데 S군이 늦게까지 뒷풀이를 하다가 지하철이 끊길 시간이 되어도 집에 갈 생각도 안하고 콜택시도 안부르고 있어서, “너 집에 어떻게 가려고 그러냐?” 그래도 대답을 안하고 술만 마시더라는 겁니다. 한번은 지하철이 끊길 시간이 다 되어서 S군과 급하게 지하철을 탔는데, 이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을 지나는 2호선 막차가 끊겨버린 상황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같이 탄 선배가 급한 마음에 S군의 부모님에게 전화를 했는데, 부모님의 대답은 “S는 집에 알아서 잘 온다”는 것이었답니다. (S군의 집은 마포구청 쪽입니다) 그리고 S군은 잠깐 절망한 표정을 보이다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내려 한 시간 넘게 전동을 굴려 집에 갔답니다.

이것 뿐만 아니라 동아리 MT를 가서는 대책 없이 술을 너무 마시고는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인 노트북에 술을 쏟아서 노트북을 고장을 낸다던지, 활동보조인이 오후 쯤이면 퇴근해 버려 그 이후 시간의 활보는 동아리 내의 선배·동기들의 부담이 되어버린다던지... 충분히 예상 가능하지만 딱히 뭐라고 답을 해주기 난감한 그런 일들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저한테 ‘장애인이 함께 하는 공동체의 윤리’를 어떻게 세워야 겠냐는, 초 대박 난감한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동아리 내에서 어떤 친구는 ‘여성주의를 고민하기 위해 여성주체를 세우듯이 장애주체를 세워야 하지 않냐’라는 의견도 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의견에 대해 ‘그 의견은 의도야 어찌되었건 장애주체한테 활보 전담시키는게 되지 않겠냐’라는 의문을 던졌고, 역으로 차라리 학교에 장애학생 활동보조를 근로장학생으로 쓸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하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이 온갖 문제들이 활동보조 부족의 문제에서 생기는 일이니, 부족한 활동보조 시간의 문제를 학습권의 차원에서 학교에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어찌보면 너무 재미없고 정해진 대답을 해 버렸습니다. 그러자 이야기를 나누던 한 후배의 표정이 급 실망 모드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얘기는 다른데서도 많이 들어봤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제도의 변화가 문제를 해결해 줄거라는 그런 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동아리라는 공동체 내에서 S군과 관계맺는 방식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라는... 그런 고민이었다라면서... 이를테면 S군이 옛날 옛적 어느 산골짜기 마을에서 태어나서 지금과 같은 사회 제도나 조건들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라면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그런 상황에서라면 이 동아리는 어떤 공동체의 윤리를 가져야 할까... 그런 문제였다고 말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활동보조의 확충’이라는 것이 실제 도입되는게 쉽겠냐는 문제와는 별도로, 한편으로는 그렇게 외부의 제도적 대안을 바라는 것이 공동체의 책임을 외면하는, 심리적으로 손 쉬운 방안을 찾는 것 아니냐는.... 그런 반론으로 들렸습니다.

 

이 때부터 아, 내가 얘네들을 괜히 만났구나 하는 후회도 들고, 지금부터 말 잘못했다가는 선배로서 이미지만 안 좋아지겠구나 싶어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막 그랬습니다. 어쨌든 그 상황에서 제가 막 짱구를 굴려서 해 준 대답은 뭐 이런 거였는데 잘 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S가 옛날 옛적 어느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면, 일찍 죽었거나 살아 남았다면 그 불편한 몸으로 살아갈 그 만의 테크닉을 체득해서 살아갔을 거야. 중요한 것은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도 있고 활동보조인도 있는 조건에 있는, 서울에서 살아가고 있는 S의 삶이야. 활동보조인이 퇴근하고 난 뒤에 동아리 뒷풀이에 참석한 S의 속 마음은 어땠을까? 잘은 모르지만 상상해 보자면 이런게 아닐까? ‘지하철 막차 시간이 다가온다. 저걸 놓치면 집에 못 가는데... 근데 내가 그렇게 가고 난 뒤에도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거나 더 늦게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다른 선배‧동기들은 내가 가고 난 뒤에 자기들끼리 더 많이 놀 수 있겠지? 그러면 또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만 소외되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여러 차례 멘붕이 오지 않았을까? 그래서 일부러 더 늦게까지 술을 마셨을테고... 만약 이런 상상이 어느정도 맞는 것이라면, 이런 소외감을 해소해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공동체의 윤리? 좋은 얘기이긴 한데, 그것을 동아리 내의 문제로만 한정해서 풀려고 한다면 동아리의 다른 선배‧동기들끼리 S에 대한 동정을 공유하고 봉사를 분담하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나는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을 동아리 바깥으로 터뜨려 버렸으면 좋겠어. 비장애인 친구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누리고 있는 그 자유를, 왜 S는 누릴 수 없는 건지, 그 억눌렸던 욕망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좋겠어. 그런데 그 이야기를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로 이야기 하자는 거지. 그래서 실제로 학교에서 근로장학생으로 활동보조인을 고용하는 제도를 도입해 주면 더욱 좋겠지만, 그러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더 많지 않을까? 이러한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S는 자기 삶을 서사화 할, 기존과는 다른 기회를 얻게 될테고, 그러면서 자신과 비슷한 조건에 있는 다른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 공감과 연대가 형성될 수도 있을거야. 나는 그렇게 S 스스로가 (그리고 주변의 친구들이) 자신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사회화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게 다른 어디도 아니고 우리 동아리(=운동권 동아리) 같은데서만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해.”

 

이런 말을 주저리 주저리 떠들고 나와서, 계속 김원영씨의 책 5장 제목에 실린 단어, ‘야한 장애인’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우리가 장애인운동을 하면서 지향했던 ‘나쁜 장애인’이라는 모델이, 굳이 비유를 들자면 교장쌤이 쇠사슬 묶고 경찰한테 소리를 지르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면, ‘야한 장애인’은 사뭇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야한 장애인’ 하니까 제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처음으로 활보하러 갔던 이음여행에서 “나는 자유인이야!”라고 외치며 소주-맥주-막걸리를 섞어마시던 최○○ 형, 며칠 전 야학에서 뒷풀이 술자리가 갑자기 노래방 분위기로 변했을 때 ‘마지막 한 곡만 더’를 10번 외치며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노래를 부르던 이○○ 형, 어느 날 갑자기 진한 화장을 하고 나타난 김○○ 누나, 그리고 핸드폰으로 야동보던 몇몇 야학 학생들... 뭐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어쩌면 제 후배들에게 (그리고 야학에 몸담고 있는 저에게도) 필요한 것은 이런 ‘야한 장애인’들의 ‘야(野)’한 욕망에 더 익숙해지고 (더 나아가 이런 야한 욕망들을 교류하고(!!?잉?!!)), 이것을 사회화시켜내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쇠사슬 묶고 투쟁하는 ‘나쁜 장애인’들이 해야 할 일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구요. 그러다 이번에 김원영씨의 책을 다시 읽다가 아래 구절에 눈에 꽂혔습니다.

 

“우리는 손상된 몸의 어디까지가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장애’이며, 어디까지가 손쓸 수 없는 ‘하늘의 불운’인지는 완전히 알 수 없고, 또 최악의 경우엔 손상된 몸의 고통과 욕망을 자유롭게 하기란 아예 불가능한 세계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것들조차 우리가 책임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칸트가 말하는 자유다. 다시 말해 죽음을 앞둔, 추하고 소외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의 욕망을 차단하는 것이 ‘자연적 질서’에 속한다 할지라도, 그러한 욕망을 우리가 책임질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과감히 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다.”(218쪽)

 

 

2. 각설하고

 

‘손상된 몸의 고통과 욕망을 자유롭게 하기란 아예 불가능한 세계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에서도 ‘그러한 욕망을 우리가 책임질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과감히 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다’라는 이 말을, 만약 소설책 속에서 만났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잠깐 해 봅니다. 그러면 좀 더 거리감을 두고, 삶에 대한 무궁한 가능성을 꿈꾸는 결의의 문장으로,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텐데요. 그러나 이것은 그런 픽션 속에서가 아니라, 실제 장애인으로서 살아가며 ‘섹시해’ 보이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있는 한 청년의 고백이니 사실 너무 어렵게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장애인의 성적 욕망에 가장 솔직하게 직면한 시도가, 어쩌면 <핑크 팰리스>같은 경우가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이 다큐의 문제점은 공감의 텍스트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장애인의 섹스를 ‘선택권’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섹스는 권리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은 김원영이 소개하는 만화 <리얼>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중증장애인 ‘야마’의 대사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지점입니다(“니들 섹스는 했냐? 나는 섹스가 뭔지도 모르고 죽게 생겼다.” /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해보고 싶다. 섹스! 이런 나한테 뭘 어쩌라고! 팔을 들어 올리고 싶어도 들지를 못해. 이건 내 몸뚱이가 아니야!”). 만일 야마에게 섹스가 권리라면, 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적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야마의 권리 실현을 위해서 ‘의무’를 수행해야만 합니다.

실제 장애인 성서비스가 시행되고 있는 노르웨이에서는 이에 대한 다양한 논쟁들이 있고, 북유럽 현지 탐방을 통해 이 문제를 검토한 장애여성공감의 보고서1)에는 이런 논쟁지점들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존중받을 권리는 있지만 사랑받을 권리는 없다”는 말로 성서비스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 오슬로 대학 잉거마리 교수는, 장애인이 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프라이버시나 독립생활과 관련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지만 성적만족을 위한 권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성적만족이 제기하는 또 다른 문제는 ‘만족’의 내용이 개인마다 다르고 개인들 간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저는 “존중받을 권리는 있지만 사랑받을 권리는 없다”는 말이 상당히 인상 깊었습니다. 사랑이 상호간 육체적, 감정적 교류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라면, 상대방의 만족도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일방향적인 성서비스가 갖는 문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2)

 

“성노동이 성적만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기계적이거나 강제된 활동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성구매자에게 당연하게 부여되는 ‘선택’과 ‘만족’이 성판매여성에게도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 이러한 발상은, 역으로 이제껏 ‘선택’과 ‘성족만족’이라는 것이 누구와 어떤 관계를 중심으로 허용되어 왔는가를 성찰하게 하는 것이다. 구매력 있는 비장애 남성을 중심으로 섹슈얼리티의 위계와 차별이 작동하는 현실과, 이 속에서 성판매여성, 장애인 등 광범위한 성적 ‘소수자’들이 억압받고 있다는 데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제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겠다.”

 

말하자면, <핑크 팰리스>와 같은 시도는 결혼과 성매매를 두 축으로 하는 이성애적 가부장제에서 비장애 남성이 갖는 지위를 장애 남성도 갖고자 하는 것인데, 저는 이것이 매우 협소한 남성의 성적 판타지에 기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일방적인 봉사가 필요한 것이라면, 그게 꼭 사람일 필요가 있을까? 인간적인 관계망이 삭제된 이런 섹스봉사라면 고성능 자위 도구로 대체해도 무방한 것 아닌가? 물론 아무리 최첨단 자위 도구가 나와도 장애-비장애 남성의 성적 불만족 상태는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이문열의 <아가>의 경우도 이런 남성의 성적 판타지(성기결합이 사랑의 행위라고 인식하는 것!?)를 집단적으로, 또 장애여성을 대상으로 삼아 일어났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왜곡된 성적 판타지의 확장이 장애남성의 성적 욕망 재생산을 포획했다고 할까, 뭐 그런 생각이 듭니다. (방송, 광고 등에서 재생산되고 있는 그런 판타지들....)

 

오히려 우리가 요구할(?!!!) 것은 성적 불만족 상태를 해소할 ‘섹스’의 권리(또는 사랑‘받을’ 권리)가 아니라, 관계로서의 ‘사랑’을 나눌, ‘사랑’을 할, 권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예전에 이런 지점에 대해 우리 사회가 참 무감각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제작년 쯤에 장애인야학에서 공부하는 장애인들의 현실에 대해 취재하겠다고 KBS <사랑의 가족>에서 여러 야학을 취재하고, 전장야협 실무자인 저의 인터뷰를 따 갔었는데, 제가 인터뷰 하면서 야학의 긍정적 성과의 하나로 ‘야학에서 함께 공부하시다가 결혼하시는 분들도 있다’라고 하니까, 카메라를 들고 있던 방송국 직원이 어이없어 하면서 그런 얘기는 빼라고 했더랍니다. 학교교육을 받지 못한 장애인의 학습권, 뭐 이런 얘기 하고 있는데 웬 결혼 타령이냐는 반응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사랑을 통해 가정을 구성할 능력이 없는 장애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깃거리라고 여기는 것만 같았습니다.

잉거마리 교수의 말처럼 ‘성적 만족’의 내용은 사람마다 다르고 개인들 간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구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요구할 것은 획일화된 방식의 성기결합 권리가 아니라, 에로스적 관계를 맺고 만남을 유지할 정당한 ‘사적 공간’(물리적이고 또 사회적인)을 확보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3)

 

 

3. 그래도 여전히 찜찜한 문제.

 

저는 김원영씨의 책이 인상 깊었던 것이, 한 명의 장애남성으로 살아오면서 자신이 느꼈던 정체성의 불안, 욕망 (특히 섹시해 보이고 싶다는!)을 이야기하면서도, <핑크 팰리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해 나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의 장애를 온전히 긍정할 수 없는 매 순간 순간 마다 그가 택했던 ‘쿨’해지기의 방식을 내려놓고, 욕망을 직면하여 ‘핫’해질 수 있었던 과정이 감동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 순간에 대한 묘사를 다시 한번 옮겨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물었을 때 H는 내 다리를 아무 말없이 바라보았다. 내가 원하는 건 내 다리가 가진 오랜 투병의 기록, 고통의 경험, 질병의 흔적을 바라보는 게 아니었다. 만약 그런 것들이 드러난다면 내 다리는 결코 에로틱할 수 없다. 사랑은 불가능하다. 희생이나 동정은 가능할지라도. 그곳은 우리 둘 이외에는 누구의 시선도 없는, 오로지 우리만의 공간이었다. 장애인과의 에로스적 관계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침투해 들어올 틈이 없었다. 우리는 새로운 관계에 말려 들어갔다. 장애인의 몸에 씌워져 있던 동정, 시혜, 고통, 비극의 시선들이 괄호 안으로 들어갔다. 에로스는 평등한 인간의 관계에서만 출현한다. 누군가가 상대를 지배한다면, 또는 누군가가 상대를 도와야 한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내가 다리를 내보인 순간, 그동안 내가 어설프게 시도했던 지적인 동반자인 척, 쿨한 척, 숭고한 관계인 척했던 행위는 끝이 났다. 나는 더 이상 무성적 존재가 아니었다. 내 몸은 자유롭게 부유했다. 내 다리는 타인의 시선 앞에서 섹시함을 뽐냈다.섬세한 감각들이 날을 세운 채, 그러나 결코 날카롭지 않게 내 자의식을 쓰다듬었다. 우리를 잇는 어떤 감정의 선들이 ‘자연적 질서’를 예리하게 걷어냈다. 상상과 몰입. 2평방미터쯤 되는 목성의 위성을 타고 지구에서 진화한 온갖 질서가 ”병신 육갑한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떠올릴 한치의 여지도 없는 시간을, 우리는 그렇게 보냈다. 나는 그녀의 다리에 키스했다.”

 

‘에로스는 평등한 인간의 관계에서만 출현한다’는 말은, 성적자원봉사와 같은 방식으로 실현할 수 없는 관계맺음의 전혀 다른 경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 책을 호식이형과 함께 읽고 나서 책을 덮었을 때, 호식이형은 재밌기는 한데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그런 불편한 감정을 우리는 김원영의 친구 정훈이의 발언과 같은 방식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형 정도의 장애니까 그런 거야. 혼자 휠체어도 밀고 다니고, 서울대도 다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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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애여성공감 북유럽 <장애인 성서비스> 연수 리포트」, 『여/성이론』 통권 24호 (2011년 전장연 활동가대회 자료집에도 실림)

2) 장애여성공감, 위와 같은 글.

3) 그런 면에서 시설 내에서 연애 못하게 하는 게, 이 문제와 관련해 가장 시급히 다뤄져야 할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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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영,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1탄. 읽고서 재미난 부분 중심으로 정리해 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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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영의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에 대한 감상

 

0. 이거 왜 쓰는지 말해 봐.

 

첫 번째 세미나 시간에 어쩌다보니 ‘장애개성론’, ‘장애문화론’ 과 같은 개념에 대한 토론이 오고갔다. 이와 함께 장애의 모든 문제를 사회적 차별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는 장애인 개인 또는 그 집단만이 갖는 불편함과 삶의 장벽 들은 어쩔 것이냐와 같은 이야기들을 나왔다.

나는 그 시간에 산재 장애인이신 우리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며, 실제로 사회적 차별로 환원할 수 없는 그런 불편함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걸 (장애인운동의 입장에서) 어쩔 수 있겠냐라는 의문을 던졌었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니 나의 이런 발언이 너무 비겁하게 이 쟁점에 대해 회피하려는 태도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만난 김원영씨의 책,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는 이 문제와 관련된 몇 가지 중요한 갈등 지점을 드러나 보이게 해 준다는 측면에서 아주 의미있는 독서 소재였다.

이 책의 내용을 다 이야기하기는 좀 그렇고, 이 책에서 누가봐도 가장 센세이션 하게 느낄 법한 5장 “나는 ‘야한’ 장애인이고 싶다”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고자 한다.

 

저자 김원영에 대한 소개 : 골형성부전증으로 지체1급 장애인이 되었고, 열다섯 살까지 병원과 집을 오가는 생활만을 해 옴. 이후 검정고시를 통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재활학교 및 일반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사회학과에 진학. 재활학교에서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하려는 노력은 해당학교의 입학 거부로 영영 꿈이 되어버릴 뻔 했지만, 봉사활동을 하러 오던 대학생을 통해 알게 된 장애인자립생활운동가들의 도움으로 일반고등학교에 진학 할 수 있었음. 대학 진학 후에는 장애인권연대사업팀 활동을 통해 장애 대학생의 권리 보장을 위한 활동을 해 옴. 현재 서울대학교 로스쿨 재학 중.

 

 

1. ‘장애를 정체성으로 긍정하는 것이 정말 가능한가라는 물음 앞에서.

 

“나는 장애인권연대사업팀 활동을 하면서, 장애를 가진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애썼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대화, 독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나는 자신을 ‘장애인’이라 당당히 칭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장애인 친구들에게도 장애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알려주고, 우리가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여한 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달리 나는 여전히 질병을 가진 몸의 운명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과 싸워야 했다.”

 

“그런 의무의 진원지는 바로 내 몸이었다. (...) 나는 자신이 없었다. 장애인 인권 문제에 대한 거창하고 추상적인 담론을 떠들어대는 동안에도 내 신체는 약하고 볼품없었다. 나는 직립보행에 에로틱한 매력을 느낀다. 어깨의 움직임 그리고 팔과 다리의 교차. 나는 휠체어를 1.8초당 한 번씩 미는 것이 가장 섹시하다고 주장하고는 하지만 사실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170센티미터가 넘는 세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기분, 누군가의 손을 잡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는 데이트,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다른 손에는 책을 들고 거니는 캠퍼스. 나는 어느 순간 걷고 싶다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때 나는 장애인권연대사업팀의 팀장이었다. 장애는 하나의 정체성이며, 손상된 몸은 곧 우리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말해야만 했다. 그런 내가 ”사실 난 걷고 싶어요“라고 말한다는 것은 구차하고 비굴한 고백처럼 느껴졌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나는 좀 놀랐다. 그런데 사실 이런 정도의 이야기는 얼마든지 예상 가능한 욕망의 표현이지 않은가. 근데 왜 나는 놀랐을까? 어쩌면 ‘장애’라는 개념은 사회구조적 차별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차별을 깨는 것을 통해 불합리한 ‘장애’개념을 깰 수 있다는 발언 구조 속에서 이런 욕망의 발화 자체를 억압해 왔던 것이 아닐까? 사실 이런 욕망은 저상버스가 100% 도입되고, 활동보조가 24시간 이상 보장된다고 해도 해결 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이런 욕망이 충족되지 않는 문제를 모종의 ‘억압’의 결과라고 부르는 것도 망설여지지만, 그 배경에는 인간 몸의 ‘탁월함’에 대한 서열화가 깔려 있기 때문에 그저 외면하는 것도 올바른 것 같지는 않다. 그럼 어쩌지? -_-;;

 

저자는 이어서 다른 장애인 친구들의 몸이 그 의문의 진원지임을 밝힌다. 재활원 동기였던 정훈이는 항상 쾌활하고 운동도 공부도 잘했지만, 근육장애가 점차 심해져 결국 휠체어를 혼자 밀 수 없는 상황까지 되었다. 결국 그는 스물 셋의 나이에 죽었다.

그런 그가 죽기 전에 저자는 정훈이를 찾아가 자립생활운동을 소개하고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으라고 권유했다. 우리에겐 활동보조인을 지원받을 권리가 있으며, 집에만 있을 이유가 없다, 당당하게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네 근육 장애, 그 자체가 너야, 인마. 너 중증인 거 내가 아는데, 그래도 밖으로 나와라. 다 살 길이 있다.” 그리고 한참 뒤에 입을 연 정훈이의 대답. “그건 형 정도의 장애니까 그런 거야. 혼자 휠체어도 밀고 다니고, 서울대도 다니잖아.”

 

정말 장애를 온전히 긍정하고,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저자는 혼란스럽다. 그렇다. 솔직히 아무리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쳐대서 자기 긍정을 해대려고 해도, 결국 자기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인 것인데, 눈 앞의 친구에게 자신의 한 마디를 알아듣게 하는데 온 몸을 다 써도 1분 이상 소요되는 상황에서 자기 긍정이 말처러 쉬울 수 있을까. 나도 자신이 없어진다.

 

저자가 소개하는 만화 <슬램덩크>의 작가가 썼다는 또 다른 만화 <리얼>의 한 장면도 나를 얼어붙게 했다. 장애인 농구 국가대표가 된 경증의 장애인(키요하루)이 중증 장애인 친구(야마)에게 찾아가 농구팀의 소식을 전할 때, 친구가 한 말은 이랬다. “나한테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거냐?” / “니들 섹스는 했냐? 나는 섹스가 뭔지도 모르고 죽게 생겼다.” /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해보고 싶다. 섹스! 이런 나한테 뭘 어쩌라고! 팔을 들어 올리고 싶어도 들지를 못해. 이건 내 몸뚱이가 아니야!”

 

그리고 저자는 작은 챕터 하나를 마무리 지으면서 이런 말을 남긴다.

 

“키요하루 정도의 장애인이라면 의족을 달고 리프트가 달린 버스를 타고 ‘정상 세계의 거주민’으로 편입될 수 있을지 모른다. 장애인 운동은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야마와 정훈이에게 더 길고 건강한 생명을 보장하거나 나와 같은 장애인에게 아름다운 사랑과 활력 있는 대학 생활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결국 우리가 져야 할 운명, 신 앞에 무릎을 꿇고 구원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하늘의 영역’인 것처럼 보였다.”

 

 

2. 쿨해지는 것을 관두기.

 

이렇게 장애를 온전히 긍정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비굴하게 보이는 것도 싫은 딜레마 앞에서, 저자가 택한 방식은 ‘쿨’해지는 것이었다. 계단 앞에서 누군가에게 들어올려질 때, 자신을 돕는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기 때문에 그저 쿨하게 한마디 한다. “야, 이거 완전 왕이 된 기분인데?”

그런 쿨함이 (사실상) ‘강요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 바로 sexuality에 있다. 저자는 대학에 입학한 후 자주 만났던 H와 깊은 정서적 교감까지 나누게 되었으나, “난 너에게 속물적인 감정 따위는 없어. 오직 나이에 비해 똑똑하고 장애인 문제에 관심이 많은 너와 지적인 교류를 하고 싶을 뿐이야.”라는 듯 행동해야 했다.

 

그러나 우연히 H와 늦게까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자신의 방에 함께 들어오게 된 저자는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말을 꺼내 본다.

 

“저... 내 다리를 좀 봐 줄래?”

 

온갖 수술자국이 남아 있어, 어머니 말고는 어떤 여성에게도 드러내 보이지 않았던 다리. 절대 섹시해 보일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 다리를 드러내 보이는 순간에 대한 그의 묘사는, 솔직히 너무 아름다워서 다른 말로 요약하며 담으려는 이상한 짓은 그만두겠다. 그냥 옮겨 적으련다.

 

“내가 물었을 때 H는 내 다리를 아무 말없이 바라보았다. 내가 원하는 건 내 다리가 가진 오랜 투병의 기록, 고통의 경험, 질병의 흔적을 바라보는 게 아니었다. 만약 그런 것들이 드러난다면 내 다리는 결코 에로틱할 수 없다. 사랑은 불가능하다. 희생이나 동정은 가능할지라도. 그곳은 우리 둘 이외에는 누구의 시선도 없는, 오로지 우리만의 공간이었다. 장애인과의 에로스적 관계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침투해 들어올 틈이 없었다. 우리는 새로운 관계에 말려 들어갔다. 장애인의 몸에 씌워져 있던 동정, 시혜, 고통, 비극의 시선들이 괄호 안으로 들어갔다. 에로스는 평등한 인간의 관계에서만 출현한다. 누군가가 상대를 지배한다면, 또는 누군가가 상대를 도와야 한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내가 다리를 내보인 순간, 그동안 내가 어설프게 시도했던 지적인 동반자인 척, 쿨한 척, 숭고한 관계인 척했던 행위는 끝이 났다. 나는 더 이상 무성적 존재가 아니었다. 내 몸은 자유롭게 부유했다. 내 다리는 타인의 시선 앞에서 섹시함을 뽐냈다. 섬세한 감각들이 날을 세운 채, 그러나 결코 날카롭지 않게 내 자의식을 쓰다듬었다. 우리를 잇는 어떤 감정의 선들이 ‘자연적 질서’를 예리하게 걷어냈다. 상상과 몰입. 2평방미터쯤 되는 목성의 위성을 타고 지구에서 진화한 온갖 질서가 ”병신 육갑한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떠올릴 한치의 여지도 없는 시간을, 우리는 그렇게 보냈다. 나는 그녀의 다리에 키스했다.”

 

 

3. 그래도 어렵다.

 

그렇게, 김원영이라는 한 장애인은 쿨해지는 것을 관두고, ‘핫’한 장애인이 되었다. 하늘이 내려준 불운에 걸려 장애인으로 살게 된 사람들은 오로지 착하게 살아야한다고,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합의를 가로질렀다. 이 횡단은 우리가 접해왔던 (장애인의 사회로의 출현을 촉발한) 장애인운동의 문제의식과 닮았으면서도 조금은 달랐다. 그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고통과 욕망의 흔적들을 직시했다. 그래서 사실은 자신의 몸이 아주 유약하다는 것, 그리고 내 몸이 자유와 함께 사랑을 갈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래도 아직까진 어렵다. 그의 삶을 따라, 그의 욕망이 알을 깨고 내 눈 앞에 튀어나온 이 날것의 모습을 보면서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훈이의 말처럼, 그가 ‘핫’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혼자서 휠체어도 밀고 서울대도 다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아마도 그가 ‘핫’하고자 시도하기 전에는, 이 조차 불가능의 영역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계속 병원에 다니면 다른 사람들처럼 걸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 기도원에 들어가려고 했었다고 말한다. 그 때 김원영의 삶은 말 그대로 “하늘이 준 불운”이었다. 그러나 김원영은 절대로 가능하지 않을 것 같던 일들이 “공동의 노력으로 통제되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사회적 불운”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우리는 손상된 몸의 어디까지가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장애’이며, 어디까지가 손쓸 수 없는 ‘하늘의 불운’인지는 완전히 알 수 없고, 또 최악의 경우엔 손상된 몸의 고통과 욕망을 자유롭게 하기란 아예 불가능한 세계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것들조차 우리가 책임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칸트가 말하는 자유다. 다시 말해 죽음을 앞둔, 추하고 소외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의 욕망을 차단하는 것이 ‘자연적 질서’에 속한다 할지라도, 그러한 욕망을 우리가 책임질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과감히 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다.”

 

우리는 그가 말하는 대로 ‘하늘의 불운’을 역행하는 자유를 가질 수 있을까? 그런 자유를 갈망하는 ‘비정상’ 신체들의 삶을 서사화하고 핫하게 드러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너무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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