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고바야시 다키지

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5/31
    고바야시 다키지, <게공선> 중에서
    구르는돌

고바야시 다키지, <게공선> 중에서

얼마 전에 읽은 소설 <게공선>에서 인상깊은 구절이 있어서 고대로 옮겨온다.

 

이 소설은 20세기 초 제국주의 침략에 앞장서고 있던 일본의

대표적인 프롤레타리아 문학인데, 최근 경제위기 상황에서 다시금 일본 국민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책의 표지에도 이것을 의도한 듯한 느낌이 드는

문구가 실려있다.

 

"88만원 세대, 비정규직, 양극화, 워킹 푸어(Working Poor)... 혹시 이 현상이 게공선 아닌가요?"

 

정작 나는 게공선과 이런 최근의 현상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다는 건지 잘 이해는 안되었지만, (게공선은 게를 잡아 배안에서 바로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공장형 배인데, 거기에서 벌어지는 노동탄압은 가히 강제수용소 수준이어서 대량의 산업예비군을 양산하면서 팽창하는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상황에 직접적으로 대입하는 것은 좀 무리이지 않나 싶다.) 어쨌든 이 부분은 언어와 얼굴 생김새가 달라도 노동자는 연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있는 힘껏 보여주는 구절이라 생각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하쓰코호가 제자리로 돌아온 지 사흘째 되었을 때, 갑자기(!) 행방불명됐던 똑딱선의 어어업노동자들이,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선장실에서 '똥통'으로 돌아오자, 순식간에 모든 사람들한테 소용돌이처럼 둘러싸였다. 그들은 '거대한 폭풍우' 때문에, 마침내 버티지 못하고 똑딱선을 조종할 수 없게 되었다. 목덜미를 붙잡힌 아이보다 더 제정신이 아니었다. 가장 멀리 나와 있었고, 거기에 바람은 정반대 방향이었다. 다들 이제 죽었다고 ㅅ애각했다. 어업노동자는 언제라도 '편안하게' 죽음을 각오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튿날 아침, 그 똑딱선은 반쯤 물에 잠긴 채 파도에 밀려서 캄차카 해안가에 닿았다. 그리고 모두는 근처의 러시아인에게 구조됐다. 그 러시아인의 가족은 다 합쳐서 네 식구였다. 여자가 있거나,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는 것에 목말라 있던 그들에게 , 저기근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친절한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보살펴주었다. 하지만 처음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거나, 머리와 눈 색깔이 다른 외국인이라는 사실에 어쩐지 불안했다.

그러나 자기들하고 별다르지 않은, 똑같은 인간임을 금세 알 수 있었다.

난파당한 사실이 알려지자, 마을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그곳은 일본 어촌과는 많은것이 달랐다.

그들은 거기서 이틀간 머물면서 몸을 치료하고 돌아왔다.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누가 이런 지옥에 돌아가고 싶겠어!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는 이쯤해서 끝나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다른 데 감춰져 있었다.

돌아오는 날이었다. 그들이 난롯가에서 옷가지를 챙기며 이야기하고 있을 때, 러시아인 네다섯명이 들어왔다. 그중엔 중국인도 한 사람 섞여 있었다. 커다란 얼굴에 붉고 짧은 수염이 많이 난, 등이 조금 구부정한 러시아 남자는 갑자기 뭐라 큰 소리로 손짓을 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똑딱선의 최고참 어업노동자가 자신들을 러시아어를 모른다는 사실을알리기 위해 그눈앞에서 손을흔들어 보였다. 러시안이 한마디 하자, 그 입가를 보고 있던 중국인은 일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듣는 사람의 머리가 오히려 엉망진창이 되버린 듯한, 어순이 뒤바뀐 일본어였다. 말과 말은 술주정뱅이처럼 뿔불이 흩어지며 비틀거렸다.

"당신들, 돈 정말 가지고 있지 않아."

"그렇다."

"당신들, 가난한 사람."

"그렇다."

"그러니까, 당신들, 노동자. 알아?"

"응."

러시아인이 웃으면서, 그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그리곤 때때로 멈춰 서서 그들을 보았다.

"부자들, 당신들을 이거 한다. (목을 조르는 시늉을 했다.) 부자들 점점 커진다. (배가 불러오는 흉내.) 당신들 무슨 짓을 해도 안 돼, 가난한 사람이 된다. 알아? 일본이라는 나라, 안 돼. 일하는 사람, 이거 (얼굴을 찡그리며, 아픈 사람 같은 표정.) 일하지 않는 사람, 이거. 에헴, 에헴. (뽐내면서 걷는 걸음을 보인다.)"

그 말은 젊은 노동자들에겐 재미있었다. 그들은 '그렇다, 그렇다!'고 맞장구치면서 웃었다.

"일하는 사람, 이거. 일하지 않는 사람, 이거. (앞서 했던 동작을 되풀이한다.) 그런거 안 돼. 일하는 사람, 이거. (이번에는 거꾸로, 가슴을 펴고 뽐내는 못을 보인다.) 일하지 않는 사람, 이거. (늙다리 거지 같은 흉내.) 이거 좋아. 알아? 러시아라나는 나라는, 이런 나라. 일하는 사람들만이. 일하는 사람들만이, 이거. (뽐낸다.) 러시아, 일하지 않는 사람 없다. 교활한 사람 없다. 사람 목 조르는 사람 없다. 알아? 러시아 조금도 무섭지 않은나라. 전부, 전부 거짓말만 하고 다닌다."

그들은 막연하게, 이것이 '무서운' 빨갱이물'이라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것이 '빨갱이물'이라면 너무 '당연한' 것이라는 기분이 한편으로 들었다. 더군다나 무엇보다도 그 말에 줄곧 이끌려 들어갔다.

"알아, 정말. 알아!"

러시아인 두세 명이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중국인은 그 말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말더듬이처럼 일본말을 하나, 하나 주워가며 말했다.

"일하지 않고, 돈 버는 사람이 있다. 노동자, 언제나 이거. (목이 졸리는 시늉.) 이거, 안 돼! 노동자, 당신들,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백명, 천명, 오만 명, 십만명, 모두, 모두, 이거 (아이들의 손에 손을 잡는 시늉을 한다.) 강해진다. 괜찮아. (팔을 두드리며) 안 진다, 누구에게도. 알아?"

"응, 응!"

"일하지 않는 사람, 도망간다. (일제히 도망하는 시늉) 괜찮아, 정말. 일하는 사람, 노동자, 뽐낸다. (당당하게 걷는 걸음을 보인다.) 노동자, 제일 위대하다. 노동자 없으면. 모두, 빵 없다. 모두 죽는다. 알아?"

"응, 응!"

"일본, 아직, 아직 안 돼. 일하는 사람, 이거. (허리를 구부리며 움츠리는 모습을 보인다.) 일하지 않는 사람, 이거. (으스대며, 상대를 때려눕히는 시늉.) 그거, 전부 안 돼! 일하는 사람, 이거. (얼굴 모습 무섭게 바뀌며, 덤벼드는 시늉. 상대를 넘어 뜨려 짓밟는 흉내.) 일하지 않는 사람, 이거. (도망가는 시늉) 일본, 일하는 사람만, 좋은 나라. 노동자의 나라! 알아!"

"응, 응, 알아!"

러시아인은 괴성을 지르며, 춤을 출 때 처럼 발을 굴렀다.

"일본, 일하는 사람, 한다. (일어서서 칼을 들이대는 시늉.) 기쁘다. 러시아, 모두들 기쁘다. 만세. 당신들 배로 돌아간다. 당신들의 배, 일하지 않는 사람, 이거. (뽐낸다) 당신들, 노동자, 이거 한다! (권투를 흉내 내는 모습, 그리고 손에 손을 잡고, 다시 덤벼드는 시늉) 괜찮아. 이긴다! 알아?"

"알아!"

어느 틈에 흥분한 젊은 어업노동자는, 갑자기 중국인의 손을 잡았다.

"할 거야, 꼭 할 거야!"

최고참 어업노동자는, 이것이 '빨갱이물'이라곳 ㅐㅇ각했다. 너무나 무서운 일을 시킨다. 이걸로, 이런 식으로, 러시아가 일본을 감쪽같이 속인다고 생각했다.

러시아인들은 이야기가 끝나자, 무슨 소리를 지르며, 그들의 손을 힘껏 쥐고 흔들었다. 부둥켜 안고 뻣뻣한 털로 덮인 얼굴을 비벼대기도 했다. 당황한 일본인은, 목을 뒤로 빼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모두는 '똥통'의 입구에 가끔씩 눈길을 부며, 그 이야기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재촉했다. 그들ㅇ, 지금까지 보고 온 러시아인에 대해 많은 것을 말했다. 그 어느 것도, 흡수지에 빨려드는 것처럼, 모두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어이, 이제 그만해,"

최고참은, 다들 이상하게 진지한 얼굴로 그 이야기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고, 열심히 떠들고 있는 젊은 어업노동자의 어깨를 쿡쿡 찔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