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패배로 끝나고
혁명은 패배로 끝나고
- 김남주
서른에서 마흔몇 살까지
황금의 내 청춘은 패배와 투옥의 긴 터널이었다
이에 나는 불만이 없다
자본과의 싸움에서 내가 이겨
금방 이겨
혁명의 과일을 따먹으리라고는
꿈에도 생시에도 상상한 적 없었고
살아 남아 다시 고향에 돌아가
어머니와 함께 밥상을 대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나 또한 혁명의 길에서
옛 싸움터의 전사들처럼 가게 될 것이라고
그쯤 다짐했던 것이다
혁명은 패배로 끝나고 조직도 파괴되고
나는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 부끄럽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징역만 잔뜩 살았으니
이것이 나의 불만이다
그러나 아무튼 나는 싸웠다! 잘 싸웠거나 못 싸웠거나
승리 아니면 죽음!
양자택일만이 허용되는 해방투쟁의 최전선에서
자유의 적과 싸웠다 압제와
노동의 적과 싸웠다 자본과
펜을 들고 싸웠다 칼을 들고 싸웠다
무기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들고 나는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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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회사의 어리버리 초짜 경리사원에 불과헸던 내가 스스로 운동단체를 찾아나섰던 건
순전히 김남주의 시 때문이었다
사립대학 등록금은 감당 못한다며 돌아선 부모님이 원망스러워,
날마다 매캐한 최루탄 연기속을 뛰어다니는 대학생들조차 얄밉기 그지없던 시절
우연찮게 손이 간 그의 시집 '나의 칼 나의 피'를 읽으며
그 뜨거운 한구절 한구절에 그만
내 심장까지 후끈 달아오르고 만 것이다
그렇게 열에 들뜬 채 나의 투쟁은 시작됐고
벌써 이십년 전의 일이 되버렸다.
'무기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들고 나는 싸웠다'는 구절이
내 가슴을 친다
나는?
그러면 나는?
'나름 최선을 다해 싸웠다' 고
말할 수 있다 단, 속삭이듯
혁명은 단칼 승부가 아닌 걸
전술은 변화해야 하며
무엇보다 자신을 추스릴 시간도 필요하다
고문과 단식으로 병들기도 하지만,
자본주의시대를 살아가는 자체가 병듦인 걸
다만 그뿐이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혁명은 시작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