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쇳물은 쓰지 마라
그 쇳물은 쓰지 마라.
- 무명씨
광온(狂溫)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도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못을 만들지도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모두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 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새끼 얼굴 한번 만져 보자.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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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가슴 저미는 시는 본 적이 없다
이렇게 부끄러워지는 시는.
무엇을 한 건가?
노동운동 언저리에서의 십수년,
현장은 변하지 않았다
자본은 변하지 않았다
세계는 변하지 않았다
변한 건 오로지 나뿐인 것을.
삶의 나태함과 냉소로
결국 자본의 야만에 침묵하고 만것을.
- 그의 명복을 빈다
뼛조각을 보고 유족들이 오열했다. 김씨의 부모와 세 누이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출근했다가 돌아오지 못한 아들, 동생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서도 주검조차 볼 수 없어 가슴이 무너지던 나흘이었다. 유족들은 그 나흘 동안 발인 날짜도 장지도 정하지 못한 채 장례식장을 눈물로 지켜왔다.
장례식장에 외롭게 비어 있던 나무관이 공장으로 들어왔다. 관에 하얀 창호지를 깔고 바스러져 가는 뼛조각을 넣었다. 숨진 김씨는 이제야 누울 곳을 얻었다. 지난 7일 새벽 1시50분께 충남 당진군의 환영철강 제강공장에서 일하다 쇳물에 떨어져 숨진 김씨의 입관식은 이렇게 진행됐다.
한 누리꾼이 김씨의 사고 소식을 듣고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추모시를 인터넷에 올렸고, 추모시가 빠르게 퍼지면서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사고 현장인 전기로에 더는 쇳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한 청년을 집어삼켰던 시뻘건 쇳물은 나흘을 내리 식고 나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엔 허연 재처럼 철가루만 남았다. 그래도 남은 열이 뜨거워, 기자가 신은 장화 바닥이 조금씩 녹아들 정도였다. 섭씨 1600도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열기였을 터다.
김씨는 지난해 6월 회사에 입사한 새내기였다. 당진에서 태어나 2년제 대학 자동차학과를 졸업한 뒤 조그만 광고회사에 다니며 간판을 만들었다. 그러다 안정된 직장을 찾아 이 회사에 지원했다. 회사 관계자는 “당시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나이가 많았지만 우리 회사에 오고 싶어 이 동네로 이사까지 했다는 말에 열정이 느껴져 뽑았다”고 말했다. 1년여를 일하며 안정을 찾은 그는 여자친구와 내년쯤 결혼할 꿈을 꾸고 있었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했다.
7일 새벽, 그는 여느 때처럼 작업복 차림으로 전기로 주변에서 일하고 있었다. 4조 3교대로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에서 그는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근무하는 조였다. 한 조에 6명씩, 고철을 전기로에 넣어 녹여낸 뒤 쇳물을 다음 공정으로 보내는 일이었다. 이 회사에선 하루에 100t 분량의 고철을 7~8번 녹여내고, 또 하루에 세 번씩 20분 정도 ‘스프레이 보수작업’이라는 정리 작업도 진행한다.
이날 새벽 1시20분께, 고철을 새로 전기로에 넣기에 앞서 ‘스프레이 보수작업’이 시작됐고, 김씨는 전기로 주변 청소를 맡았다. ‘스프레이 보수작업’을 할 때면 전기로의 둥근 뚜껑이 열린다. 당시 전기로에는 쇳물 15t 정도가 남아 있었다. 새벽 1시40분, 김씨의 동료는 김씨가 전기로 입구 옆에 걸쳐 있는 철근 조각을 치우려고 파이프를 들고 애쓰는 모습을 봤다. 그다음으로 본 게 김씨가 쇳물 속으로 떨어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전기로는 당분간 가동되지 않을 예정이다. 경찰은 “쇳물은 비중이 커서 사람이 빠지면 무조건 위에 뜨기 때문에 주검과 관련이 있는 곳은 전체 쇳가루의 윗부분뿐”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동료를 잃은 슬픔에 빠진 회사는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조시 제목대로 남은 15t의 쇳가루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 환영철강 이광선 관리팀장은 “조만간 회사에서 돌아가신 분을 위한 진혼제를 열어 넋을 위로하고 큰 슬픔에 빠진 동료들을 위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한해 동안 일터에서 사고성 재해로 목숨을 잃은 이는 1401명이다. 이들 중에서 30살 미만은 113명에 달한다. 아까운 청춘이 스러져간 현장에는 온종일 차가운 비가 내렸다.
당진/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