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추석 이야기 7-사위와 며느리

결혼식장에서

우리가 발표한 평등부부 서약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같이 일하고 같이 쉰다'입니다.

 

그거 말고도

몇 가지가 더 있는데

진짜 고민 많이 해서 썼었습니다.

 

지금은 그 서약서가 어디 있는지

심혈을 기울여서

집안을 뒤져봐야 할 것 같지만

 

그래도 그 정신만은 생활 속에서 지킬려고 노력 많이 합니다.

 

주선생님과 저는

두 사람만 놓고 보면

그럭저럭 평등합니다.

 

그런데

각자의 가족이 끼어들면

불평등이 생깁니다.

 

대표적인 불평등이

저는 '사위'이고 주선생님은 '며느리'라는 점입니다.

 

저는 사위로서

양쪽 집 어딜 가도 편하게 있고

 

주선생님은 며느리로서

두 군데 모두에서 큰 의무를 부여 받습니다.

 

장인 어른은

주선생님만 보면

시댁한테 잘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언젠가 한 번은

아르바이트 해서 돈 벌었다니까

"시어머니한테 전화 드려서, 돈을 벌었는데

옷 한벌 사드릴까요?라고 말하고 옷 사서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제가 어디서 돈이 났다면

어머니는 "어이구, 너도 돈 벌 때가 있냐~?"라고 하시지

장모 옷 한 벌 사드리라고는 안 하실 겁니다. 

 

한 번은 어찌어찌 해서

어머니께서 정색을 하고 저한테

이렇게 말씀하신 적도 있었습니다.

 

"너, 설마 처가집 가서 설거지 하는 거 아니지?

절대 하면 안된다..절대..!!"

 

36년 동안

이 날 어머니 표정이

제일 무서웠었습니다.

 

이미 처가집에서

설거지를 몇 번 한 뒤였습니다.

 

주선생님은 저희 어머니가 살아 오신 얘기를 듣고

같은 여성끼리 연민의 정이 생겨서

결혼 초기에 자주 전화를 드렸었습니다.

 

그러다 전화가 뜸해 지니까

어머니께서 말씀하십니다.

 

"야...요새는 현숙이가 시어머니한테 전화도 안 하더라..?"

 

며느리가 전화하는 걸

일종의 의무로 생각하고 계신 듯 했습니다.

주선생님은 당연히 상처 받았습니다.

 

물론 처가집에서는

제가 전화 자주 해야 한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번 추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박 2일로 들른

처가집에서

 

저는 이틀 내내 책만 봤습니다.

매일 제가 밥 하다가

장모님이 밥 해주시니까

아~정말 좋았습니다.

 

게다가 미루도 어른들이 봐주시니까

전 그냥 이 방바닥 저 방바닥에 늘어져 있었습니다.

 

이제 주선생님 차례입니다.

 

주선생님은 시댁에 가서

방바닥에 등을 붙일 새가 없었습니다.

 

도착하자 마자

강행군입니다.

 

여기 저기 인사다닐 곳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상대적으로 저는 편한 편입니다.

미루 보느라고 예년만 못했지만

그래도 주선생님만큼 힘들진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이 너무 불편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