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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이야기 4-미루, 인기 끌다

주선생님의 시댁에 내려갔더니

어머니께서 미루 전용 요와, 이불 그리고 베개를 사 놓으셨습니다.

 

이불과 요가 참 이쁩니다.

 

제가 태어나고 12750일 동안

덮고 잔 모든 이불 보다 이쁩니다.

 

미루가 태어난 지 140여일만의 쾌거입니다.

완전 호강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신 '큰 집'으로 갔습니다.

부모님 집과, 큰 집은 200미터쯤 떨어져 있습니다.

두 분이 나란히 앉아 계십니다.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시고,

할아버지는 최근에 무릎 수술 후 회복 중이십니다.

 

두 분 입장에서 최초의 증손주이자

6대 장손인 미루가 안 이쁠 수 없습니다.

 

"어이구, 우리 애기...이리와..한번 안아보자..."

 

저는 순간 멈칫했지만

할머니께 미루를 건네줬습니다.

 

매우 과감한 행동입니다.

 

할머니는 치매에다가

몸에 힘까지 없으셔서 평소에

무거운 걸 잘 안 드십니다.

 

그래도 마음은 따뜻해졌습니다.

몸은, 팽팽히 긴장됐습니다.

 

"근데, 애기 몇 달 됐냐?"

"네달이요, 할머니.."

 

"아이고, 이 놈의 자식~!! 또렷또렷한 거봐..

애는 이래야 명이 길어..."

 

보통 어른들은 애가 총명하게 생겨서

공부를 잘 하게 생겼다든가

엄마 말 잘 듣게 생겼네 등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미루가 만수무강하기를 비십니다.

좀 이른 감이 있습니다.

 

"애기 몇 달 됐냐?"

"네달이요.."

 

옆에 계신 할아버지가

토를 다십니다.

 

"하이고..물어본 거 또 물어보기 시작하네..

방금 두번째 물어봤으니까 앞으로 10번은 더 물어볼 거다.."

 

미루는 처음 뵙는 분들 앞에서

좀 잘 보이려는 지 얌전히 있습니다.

 

"애기가 차~암 순하네..즈그 아빠 닮아서 순한가 보네..

근데, 애기가 몇 달 됐냐?"

"네달됐어요. 할머니..."

"인제 9번 더 물어볼 것이다.."

 

"할아버지 무릎은 좀 어떠세요.."

"무릎.? 전보다 나아지긴 했어도, 멀리는 못 다녀.."

"네..운동은 계속 하시죠?"

"상구야, 애기 몇 달 됐냐?"

"앞으로 8번 남았다..."

 

다음날이 됐습니다.

 

주선생님과 저는 미루한테

집에서 제일 이쁜 옷을 입혔습니다.

 

미루와 그 일행이 큰 집에 들어서는 순간

바글바글 모여 있는 친척들이

환호와 함성을 지르며 우리를 맞이하는 장면을 머리 속에서 그렸습니다.

 

아,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광경입니다.

 

그 중에는 틀림없이

상구가 인제 사람 구실했다고 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괜찮습니다.

 

미루를 데리고 큰 집으로 갔습니다.

바람도 상쾌한 아침입니다.

드디어 큰 집 대문을 들어섰습니다.

 

우리가 제일 먼저 왔습니다.

 

생각보다 날씨가 덥고 미루가 싫어해서

이쁜 옷을 다 벗기고, 그냥 집에서 입던 걸로 갈아 입혔습니다.

 

그러고도 한참 있다가

친척들이 하나둘씩 모이긴 했었는데

올해에는 유난히 사람들이 별로 안 왔습니다.

 

꿈에 그리던 환호는 전혀 없었습니다.

소리지르는 건 미루 뿐이었고

할머니만 부지런히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즈그 아빠는 용해 빠졌는디...이 놈은 울락불락허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습니다.

 

미루가 계속 떠듭니다.

 

"즈그 아빠는 용해 빠졌는디...이 놈은 펄렁펄렁허네...

상구야, 애기 몇 달 됐냐..?"

 

저는 순한데

미루는 안 순하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주변에 모인 몇 안된 친척들은

그래도 오며 가며 미루를 이뻐해주셨습니다.

 

전엔 안 그랬는데

갑작스레 용돈을 주시는 분이 계셨고

주선생님은 어머니한테서 옷을 얻어 입었습니다.

 

아마도 미루가 한몫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쁜 짓은 미루가 하고

이익은 우리가 챙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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