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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을 덜 먹는다

요새 미루가 젖을 잘 안 먹습니다.

 

다이어트할 몸매도 아니고

소식이 건강에 좋은 건 아직 모를텐데

하여튼 눈에 띄게 덜 먹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자꾸 깨서 젖을 먹는 바람에

피곤해 죽겠습니다.

 

주선생님은

젖이 자꾸 차니까

미루를 먹일려고 노력하지만

미루는 막 버팁니다.

 

"상구, 나 젖이 많이 불었는데...미루 좀 먹이면 안될까?"

"지금 젖 먹을 시간 아니잖아..."

"아까 젖 먹을 때 많이 안 먹었단 말이야.."

"먹여봐야 먹지도 않잖아.."

 

이 대화를 수 십 번은 더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밤에

결국 이 문제 가지고 티격태격이 있었습니다.

 

주선생님이 또 자기 젖 불었다고

미루를 먹일려고 했습니다.

 

애가 원하지도 않는데 자기 젖 불어난다고 먹이는 건

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젖량을 줄이게

양배추 같은 것 붙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얘기했지만

주선생님은 못 박힌 채로 그냥 다닙니다. 

 

"내가 진짜 그 점에 대해서는

입장이 확실한데, 너 한테 맞추는 게 아니라 미루한테 맞춰야 하는 거 아냐?"

 

강하게 나갔습니다.

자신이 있었습니다.

 

"뭐라고 좀 하지만..나도 다 생각이 있어.

미루 월령대가 되면 젖 먹는 것 보다 더 재밌는게 있다는 걸 조금씩 알아서

젖먹는 데 집중 못하는 환경에서는 잘 안 먹기도 한대.."

 

생각보다 강한 반격이었습니다.

 

"옛날에는 비디오 틀어도 젖만 잘 먹었는데

요새는 안 먹고 비디오 보잖아...시끄러워도 안 먹고..."

 

매우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젖이 남지..낮에 덜 먹으니까 배가 덜 차서

밤에 자꾸 먹으려고 하는 거고..

근데 왜 자꾸 나한테 뭐라고 그래.."

 

완벽한 논리,

제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몇일 전에도 니 눈치 보여서 안 먹이다가

젖몸살 걸릴 뻔 했잖아.."

 

사람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지만

젖 먹이는 엄마는 뭉치면 죽습니다.

 

전,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주선생님 입에서는

폭포수가 콸콸 쏟아졌습니다.

 

"양배추 같은 건 젖이 너무 빨리 줄어들어서 안된데..

애가 갑자기 젖 안 먹으면 차라리 짜내라고 하드라..

젖 먹일 때 좀 조용한 분위기에서 달래가면서 먹이고.."

 

고개를 더 숙였습니다.

코 앞에 방바닥이 보입니다.

 

"젖 모자라면 분유 살 돈도 없는데.."

주선생님은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저도 뭔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이럴 때 상황을 호전시키는 가장 강력한 대사는

"미안해, 잘못했어.." 입니다.

 

주선생님이 할 말 다 하고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기회가 왔습니다. 빨리 사과 하고 남은 하루를 즐겁게 보내야 했습니다.

 

"케케켁...히..히잉.."

 

"미루 깼다~"

 

주선생님, 미루가 깬 소리를 듣더니 휙 나가버렸습니다.

전 한 마디도 못했습니다.

 

미루를 재우고 나온 주선생님과 저는

마무리 대화를 나눴습니다.

 

"인제, 나 구박하지마.."

"성격..많이 까칠해졌어..."

"뭘 까칠해? 너도 맨날 구박 당해봐라....꿈틀거려..."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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