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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 뒤집다!

5월 17일에 태어나서

오늘 10월 17일까지 딱 5개월 동안

 

미루는 세상을 등지고 살았었는데,

오늘 세상을 품에 안았습니다.

 

잘 보니까 품에 안은 자세는 아니고,

세상에 올라탄 자세입니다.

 

미루는 실컷 낮잠을 자고

누워서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저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뿌지직~" 소리가 납니다.

 

"으악~" 비명을 지르며 미루한테 달려갔습니다.

늦었습니다.

 

똥을 바가지로 싸놨습니다.

반 바가지는 옆으로 새서 방수요를 덮쳤습니다.

 

손 두개 가지고

요, 방수요, 큰 수건 치우기와

미루 닦아주고 기저귀 갈아주기를 능숙하게 해치웠습니다.

 

갑자기 이런 거 시합 나가면 내가 일등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똥 싸서 뭉개고 있는 애들 100명 나란히 눕혀 놓고 누가 빨리 치우는지 보는 시합.

 

치우는 김에 여기 저기 널려있던 기저귀도 치우고

쓰레기도 주워서 쓰레기 봉투에 꾹꾹 눌러담았습니다.

 

"이 놈의 일은 맨날 해도 별로 정이 안 들어..."

 

쓰레기를 다 치웠습니다.

 

"낑낑...히..히잉..."

 

"넌 또 무슨 소리를 그렇게 지르냐?...어?"

 

쓰레기 봉투하고 씨름을 끝내고

미루를 봤는데, 미루가 엎드려서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꼭 스핑크스 같았습니다.

 

미루는 자기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전혀 모른다는 표정으로 

계속 엎드려서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있습니다.

 

곧바로 주선생님한테

전화를 날렸습니다. 기쁜소식!

 

얼마 있으니 미루가 힘들어 합니다.

바로 눕혀줬습니다. 저를 빤히 쳐다봅니다.

 

아무래도 좀 축하를 해줘야 할 것 같았습니다.

 

"미루야, 축하해~~"

 

손을 내밀어서 악수를 청했습니다.

미루는 손을 뻗는 둥 마는 둥 합니다.

 

손을 더 내밀어서 악수를 했습니다.

미루가 제 손을 빨면 분위기 깨질 것 같아서 두 번 흔들고 놨습니다.

 

미루는 그 이후

더 이상 뒤집기 시도를 안하고

그냥 놀다가 잠들었습니다.

 

오늘의 의미를 잘 모르는 얼굴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오늘을 기억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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