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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뭘 들고 다니다

1.

 

필요 없는 걸 들고 다니기 분야의 1인자는

역시 저 입니다.

 

미루를 막 놀이집에

맡기기 시작했을 때의 일입니다.

주선생님과 저한테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주선생님은 사무실에 있다가 먼저 손님을 만나고

저는 집을 치우다가 약속 시간에 늦었습니다.

 

급히 의자에 걸쳐놨던

잠바를 집어 입고 뛰어나갔습니다.

 

마을버스에서 내려서

약속장소로 걷고 있는 길

햇살이 따뜻합니다.

 

손님이랑 주선생님이 있는 식당이

바로 10미터 앞인데

햇살을 좀 더 쬐고 갈까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어?"

 

다리에 뭐가 걸리적 거려서

아래를 쳐다봤습니다.

기절할 뻔 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여자 추리닝이 다리 앞에서

털럭 거리고 있습니다.

다행히 주변엔 아무도 없습니다.

다시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잠바에 교묘하게 걸려서 다리로 흘러내려와 있는 추리닝은

주선생님겁니다. 아까 의자에서 잠바를 급히 집어 입을 때

추리닝까지 같이 입었던 게 틀림없습니다.

흘러내린 추리닝을 말아서

잠바 안쪽 팔 사이에 끼웠습니다.

 

식사 내내 추리닝 신경 쓰여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2.

 

"상구 이게 뭐야?"

 

놀이집에서 미루를 데리고 왔는데 보니까

가방 속에 겨울털실 모자가 들어 있습니다.

 

"어? 아까 놀이집 데려가기 전에

미루가 서랍에서 털실 모자 꺼내서 놀고 있었는데..."

 

미루를 아기띠로 안으면서

털실모자까지 통째로 들어서

안은게 틀림없습니다.

 

참 여러가지 합니다.

 

3.

 

저는 필요없는 걸 주로 들고 다니지만

미루는 필요한 걸 들고 다닙니다.

 

놀이집에서 미루만 따로 밥 먹이는 게 힘든지

자꾸 이야기를 합니다.

 

"요리하시는 할머니가 서운해하셔요"

 

주선생님과 저는

미루가 약간 아토피 기운도 있고 해서

아침마다 이유식 도시락을 쌉니다.

 

놀이집에서는 2-3살 아이들이 먹게

음식에 간을 다 하는데

미루는 좀 나중에 먹여야겠다고 생각을 해서입니다.

 

"음식을 따로 먹이니까 애가 더 예민한 게 아닐까요?"

 

별로 과학적이지 않은 말에

주선생님 열 받았답니다.

 

"그래도 일단은 도시락 먹여주세요..."

 

열만 받고 말은 공손하게 한 뒤 돌아서는데

선생님이 그러더랍니다.

 

"어? 볼펜이 또 없어졌네. 비싼 건데"

 

놀이집 현관에

매달려 있는 볼펜이 없어졌다는 소리인데

주선생님은 신경쓸 일이 아니라서

바로 나왔답니다.

 

"앗! 미루야~~너 이 볼펜?"

 

집에 와서 보니까

미루가 볼펜을 한 손에 꽉 쥐고 있습니다.

주선생님과 놀이집 선생님이

이야기할 때 미루가 볼펜을 슬쩍 한 겁니다.

 

"히힛! 잘 했어 미루야~"

 

이유식 문제 때문에 기분이 상했는데

미루가 볼펜을 확 가져와 버리다니

주선생님 매우 상쾌해 합니다.

 

딱 적당한 때

미루가 주선생님 기분풀이를 위해

볼펜을 챙겼습니다.

 

그 볼펜

써보니까 잘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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