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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는 배고프면 안된다.

"상구, 나 갑자기 핑 도는 게 어지러워..."

 

주선생님이

미루가 보채는 걸 달래다가

포기하고 저한테 옵니다.

 

"그래? 그럼 니가 저녁 준비 마저 할래?

내가 미루 재워볼께.."

 

미루 달래는 게 너무 힘들었나 싶어

저는 주선생님과 역할을 바꾸었습니다.

 

"우당탕~"

 

부엌에서 일하던 주선생님이

포도씨 기름이 담긴 병을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기름이 와락 쏟아졌습니다.

 

"괜찮어~?"

 

나중에 말하는 걸 들어보니

오전 11시에 밥 먹고 아무것도 안 먹어서

허기가 진 상태였는데,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지더랍니다.

 

그러니까 배가 고파서 정신이 나간 겁니다.

중간에 간식을 먹었어야 했는데

아무것도 안 챙겨준게 실수입니다.

 

육아휴직 하고 처음에는

주선생님이 가끔 너무 배가 고프다면서

정신없어 하는 게 잘 이해가 안 갔습니다.

 

그런데 산모는 수시로 배가 많이 고픈 모양입니다.

특히, 모유수유하고 나면 무지하게 배고픔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제가 평소 열심히 간식을 챙기다가

너무 열심히 한다 싶어서 하루쯤 간식을 안 줬는데

 

그 날 주선생님은 마구 울어버렸습니다.

간식을 안 주는 게 그렇게 서러웠답니다.

 

그 사건 이후 저는 정말 열심히 간식을 해줬습니다.

 

각종 빵, 과일 같은 걸 사다가

탁자 위에 항상 쌓아놨습니다.

 

계란도 삶아놓고,

고구마, 감자, 옥수수도 삶아 놨습니다.

 

감자나 고구마 삶은 건 두세번 먹었는데도 남으면

으깨어서 샐러드를 만들었습니다.

 

두유, 우유 같은 마실 거리들도

냉장고에 채워놓고 떨어지지 않게 했습니다.

 

그렇게 안 하면 또 울 게 틀림없었습니다.

 

저의 부단한 노력으로

두번 다시 주선생님이 간식 때문에 우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잠시 방심한 탓인지

허기로 인한 어지럼증이 또 발생한 것입니다. 

 

어찌어찌 해서 겨우 저녁밥을 차려 먹고

밥이 좀 부족했던지 계속 배가 고프다고 해서

빵하고 사과를 사다 줬습니다.

 

미루도 재운 다음

주변이 평화로워지자, 주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까 나 밥 먹고 나서 상구 밥 먹을 때 

나는 미루 젖 줬잖아..

그때 밥통에 밥 조금 남은 거 있길래

젖 먹이고 나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상구가 갖다 먹어버리더라..."

 

빵하고 사과 안 사다줬더라면

또 큰 일 날 뻔 했습니다.

 

이런 때 잘 먹여야지,

안 그러면 두고두고 서운하단 소리 듣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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