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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의 여유

산모의 여유는 고3의 여유보다

훨씬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남편이 육아휴직을 쓰면 가끔씩 가능해집니다.

 

때때로 미루가 잠을 자는데

밥도 먹고,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끝낸 경우가 생깁니다.

 

이럴때면 주선생님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혁명가처럼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반드시 그 여유를 표현합니다.

 

 

1.

 

미루가 잡니다.

 

주선생님, 혼잣말을 합니다.

 

"아~~여유를 맘껏 즐겨야지~!"

 

제가 묻습니다.

 

"뭐 해?"

 

"여유를 맘껏 즐기는 걸 표현하고 있어~~"

 

가끔 텔레비젼에서 애들 보는 만화를 보다보면

납작하게 눌린 사람이 벽이나 책상 같은 곳에 바짝 붙어서

흘러내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선생님은 쇼파 중간쯤에 걸쳐 있는 체로

몸을 한 껏 뒤로 젖히고

고개는 그 보다도 더 심하게 뒤로 젖히고

손은 만세를 하고, 입은 벌린 상태에서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참 여유로와 보였습니다.

 

 

2.

 

역시 미루가 잡니다.

 

주선생님은

한 번 한 걸 또 하지 않습니다.

 

이번엔 바닥에 눕더니

손과 발을 위도우브러쉬처럼 왔다갔다 하면서 움직입니다.

물개나 펭귄이 헤엄치는 모습을 찍은 화면을

빠른 속도로 돌리면 똑같은 모습이 나올 것 같습니다.

 

"아~~여유로워라~~!!"

 

 

 

3.

 

역시 미루가 자고 있습니다.

 

주선생님 쇼파에 반쯤 걸쳐 있는 체로

저를 부릅니다.

 

"어...상구~~~!!"

 

집에만 있지만 매우 바쁘게 생활하고 있는 저는

그 바쁜 와중에도 대답을 합니다.

 

"왜~~?"

 

"나 너무 편해서 움직일 수가 없어..

탁자 위에 연고 좀 가져다 줘..."

 

나무늘보가 생각 났습니다. 

 

너무 편해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은 난생 처음입니다.

 

 

4.

 

이제는 미루가 안 자는 데도 여유를 부립니다.

 

어쩌다 보니 미루 귀가 좀 더러워졌습니다.

귀에서 발 냄새가 났습니다.

 

주선생님께서

걱정하며 말씀하셨습니다. 

 

"하...이거, 페브리즈를 뿌릴 수도 없고..."

 

여유를 넘어서

정신이 풀려가고 있습니다.

 

지난 번에는 미루가 보채니까

주선생님이 이런 말도 했습니다.

 

"갈증나지? 물 주까?"

 

그러더니 자기가 물을 마십니다. 

 

 

 

이 모든 여유는

미루의 생활이 안정되어 가고 있기 때문인데

그건 주선생님과 제가 함께 미루를 키우고 있으니까 가능한 일입니다.

 

...

 

그런데 요즘은 그 모든 여유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미루가 낮에 잠을 안 잡니다.

 

오늘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거의 한숨도 안 자고,

보채고 보채고 또 보챘습니다.

 

이 사태를 빨리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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