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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음악의 원초적인 힘을 생각하면 좀 질리는 기분이 되기도 하고, 배경음을 귀에 꽂고 드라마처럼 살자 덤벼들기엔 배알이 약하다.

무엇에건 애정보단 흑심이 많아, 욕심부려 취하다보면 골이 아파 못 버틴다.

 

음악을 듣거나 사진 찍는 기계에 관심을 가져본 적 있지만 곧 이건 내게 안 맞다, 버리다시피 했고

그러다 다시 갖게 된 게 연초에 동료 언니가 하나 남는다며 건네준 엠피쓰리 플레이어다.

가끔, 받은 물건에 잘 밀착한다. 지금껏 그 기계가 괴로운 출근길의 위로, 몽롱한 퇴근길의 치하 정도 되어주고 있다.

 

클래식은 나이 들어서도 못 들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의 취향은 대부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인데, 클래식은 그 만드는 과정이 가장 어색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장 만만한 게 elliott smith와 portished, blonde redhead...등인데 숲 표현대로 칙칙한 노래들만 나는 들어줄 수 있고, 듣던 걸 다시 듣기 때문에 얼마 필요하지 않다.

 

문학을 향한 얼마간의 열정을 제하면, 싱겁게 산다. 열일곱에 학교 관두고 한두해를 책보다 영화와 음악에 더 신경 쏟았는데, 영화에도 워낙 이상한 집중을 해서 하루에 한편을 넘어가면 두통이 생기고 속이 메슥거린다. 그러고도 많이 흘리며 보고, 그마저 마구 보고 싶지 않다. 누구누구의 신작이 나오면 한번, 혹하는 영화가 걸리면 다시 한번. 잘 해야 그쯤일 거다. 그리곤 어릴 때 봤던 걸 다시 들추겠지.

 

어쩌다 카메라 하나 주워올 일 있다면, 소박하고 무의미한 사진을 몇장 찍어보고 싶기는 하다. 충동적으로 드로잉 입문서를 사뒀지만 미술도 사실 데면데면...내 기계적인 도식을 내가 못 깨 그런다. 조금만 무리해도 신물이 넘어온다.

(다행히 숲이 사진을 잘 찍는다. 사진 찍히는 걸 나는 도저히 좋아하지 못하지만 숲이 찍은 내 사진만은 그게 가능하다.)

 

내가 탐미를 불편해한다면, 그건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일까? 예술이란 단어가 고깝지만, 그쪽에서 그나마 덜 노골적으로 탐미하는 것이 문학이라는 생각에 가장 해볼만하다 여긴걸까? 내가 아름다운 몸이었다면 글 같은 것 쓰지 않고, 어릴 적 티브이로부터 조금씩 배당받았던 배우 기질이나 발휘하며 살았을지 모를 일이다. 단순하고 찜찜한 마무린데, 내가 지금의 나인 걸 다행이라 여기고 있다면 일단 가망 있으려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포즈에 대해 나는 그리 너그럽지 않다, 다시 말해 깐깐하다. 그걸 하나쯤 제대로 취해서 이 미끈덩거리는 부식의 직전을 벗어나는 것이, 내 당장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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