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법을 공부한다는 것이, 변호사라는 것이 부끄러울 때가 많다. 대학 때 전태일 평전을 처음 읽었을 때, 그가 온 몸을 불사르기 전에 혼자 노동법을 공부하면서 법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 대목에서 내가 법대생이라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
최근 인혁당 사건에 대한 법원의 재심결정, 송씨일가 간첩단 사건에 대한 국정원 과거사위 조사결과 등을 통해 대표되는 사법부의 추악한 과거가 부끄럽다. 아니 부끄럽기에 앞서 분노가 일고 그 피해자들 앞에 같은 동업자라서, 법조계의 과거청산을 위해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어서 죄송스럽다.
내가 변호사인 게 부끄러운 것은 비단 법조계의 잘못된 과거사 때문만은 아니다. 희한한 억지논리를 만들어낸 행정수도이전법 위헌판결로 대표되는 법조계의 서울중심의 기득권 옹호 의식, 국가보안법에 대한 계속된 합헌판결과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병역법에 대한 합헌판결로 대표되는 법조계의 미약한, 아니 없다고 할 수 있는 인권의식과 시대의식 또한 부끄럽기 그지없다.
법조계, 자본의 충실한 대변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법조계의 자본에 대한 굴종 앞에서 또 부끄럽다. 예전에는 법조계가 권력의 시녀내지 공범이었다면 이제는 자본의 충실한 대변인이자 후견인이 되어가고 있다. 정몽구, 김승연 같은 재벌총수는 거악을 저지르고도 전혀 법적이지도 않고 납득할 수도 없는 사유로 버젓이 걸어 나오게 하면서, 생존의 위협 앞에서 절망에 찬 절규를 한 노동자, 농민은 “법과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어김없이 철창으로 보내고 거액의 손해배상까지 물게 한다.
이런 지경이니 국민들의 법조에 대한 믿음은 땅에 떨어지고 법치, 정의 이 따위 단어들은 쓰레기통에나 버려야 할 말이 되었다. 얼마 전 이른 바 “석궁테러”사건에 대해 ‘기본권 보장의 보루인 사법부에 대한 위해 가능성 증대’를 운운하며 김명호 전 교수에게 중형을 선고했을 때 왜 많은 사람들이 코웃음을 쳤는지 법원은 진지하고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반성해야 한다.
나는 최근 로스쿨을 두고 극성을 부리고 있는 법조계의 지역이기주의도 부끄럽다. 물론 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진입장벽을 두텁게 하고, 기존의 대학 서열화를 고착시키는 이런 식의 로스쿨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떻든 로스쿨을 도입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법안이 통과되고, 제도가 시행되는 이상, 최선은 아닐지라도 그 제도의 취지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법조계, 교육계 및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조계는 당장 눈앞의 자기이익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도대체 그들에게서 향후 법조인력을 어떻게 양성할 것인지, 땅에 떨어진 법조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다시 찾을 것인지, 어떻게 법조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 등에 대한 어떤 고민도 읽을 수가 없다.
눈 앞의 이익 지키기에 여념이 없는 법조계
최근 또 한번 내가 변호사인 것이 부끄럽고도 화나게 하는 사건은 단연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에 대한 법조의 태도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의 본질은 단순하다. 국내 제1의 기업인 삼성이 불법으로 조성한 자금으로 언론, 정관계에 뇌물을 공여해왔고, 재벌 2세에게 불법적으로 경영권을 승계시켰으며, 에버랜드 편법증여 사건의 증거를 조작하여 허위의 수사 및 재판결과가 나오게 했다는 것이다.
삼성 내부에서 사건에 깊숙이 관여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전직 임원의 구체적 진술로 범죄혐의가 드러난 이상 검찰의 수사착수는 재량이 아니라 형소법상의 의무이고 검찰의 존재이유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고발이 없어 수사를 못한다고 하다가 막상 고발을 하니 떡값 검사 명단을 제출하지 않으면 수사를 못한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떡값 검사 명단이란 것은 본 사건의 작은 곁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떡값 검사에 대해서는 김용철 변호사를 불러 조사하면서 사실 여부를 확인할 것이지 명단의 제출여부가 수사의 전제조건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태 앞에서, 역시 삼성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검찰의 익숙한 모습을 다시 보는 중에 대한변호사협회가 황당하기 그지없는 결정을 준비중에 있다고 하니 변호사로서 또 다시 부끄럽다. 김용철 변호사가 의뢰인으로부터 지득한 비밀을 누설했기 때문에 징계감이라는 의견이 많다고 하는 뉴스가 그것이다.
대한변협의 김용철 변호사 징계
이 건은 김용철 변호사가 수임인으로서 의뢰인인 삼성으로부터 지득한 직무상 비밀이 아니기 때문에 비밀유지 의무가 성립할 여지가 없다. 설사 직무상 비밀이라고 하더라도 그 비밀을 유지함으로써 얻는 의뢰인의 이익 또는 의뢰인의 변호사에 대한 신뢰라는 이익과 그 비밀을 공개함으로써 얻는 사회적 이익을 비교형량하지 않고 비밀누설만으로 징계하는 것 또한 타당하지 않다.
이 건의 경우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공개로 인한 공익이 월등히 크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변협은 김용철 변호사에 대한 징계소식을 언론에 흘림으로써 이 사건의 본질을 김용철 변호사 개인의 문제로 몰고 가려는 삼성과 일부 보수언론의 의도에 날개를 달아주는 역을 자청하고 있다. 대한변협이 도대체 왜 존재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럴 거면 차라리 간판을 내리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다시 기회가 왔다. 검찰은 삼성 및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자에 대한 성역없는 수사로, 법원은 엄격한 판결로 지금까지의 오명을 벗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어떻게 보면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대한변협도 변호사들의 명예를 진정 위한다면 그 따위 징계타령을 할 것이 아니라 검찰을 향해 조속히, 철저한 수사를 하라고 촉구해야 할 것이다. 삼성도 이 번을 기회로 투명한 기업으로 재탄생해야 할 것이다. 이런 기대가 이번에는 기대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인가.
계속된 배신과 환멸 앞에 다시 기대를 거는 것이 부질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불의와 반칙과 특권이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세상, 그래서 변호사인 게 더는 부끄럽지 않은 세상이 어서 왔으면 하는 기대를 끝내 저버릴 수 없기에 다시금 희망을 걸어본다. 김용철 변호사와 사제단 신부님들의 결단과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