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은 노조 때문에 망했다"는 것이 이명박 대통령의 '소신'인가 보다. 개인이 무슨 소신을 갖든지 그건 자기 자유지만 대통령이 잘못된 소신을 공공연하게 설파하고 또 정책화하고 나서면 그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대운하만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식의 소신이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3일 9차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GM이 위기에 내몰린 것은 노조의 과잉 요구를 CEO들이 모두 들어줬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19일에는 인천 GM대우 자동차 회사에 들렀다가 한나라당 전국위원회의에 참석해 "GM자동차도 외국인 사장이 미국의 GM과 다르다. 거기는 노동조합 때문에 망했지만 우리는 노사가 화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일까?
널리 알려진 이 대통령의 노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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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오전 인천 부평의 GM대우 자동차 공장을 돌아보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연합뉴스 |
이 대통령의 노조관은 이미 널리 잘 알려져 있다. 각목테러로 잘 알려진 노조파괴전문가 '제임스 리'가 울산바닥을 휩쓸고 다니던 1980년대 후반, 이 대통령이 회장을 지내던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엔진공업에서도 노조위원장에 대한 테러가 왕왕 있었다.
노조에 얽힌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이야기도 많다. 당시 나온 노조 관련 발언록은 이 대통령의 노조관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인도에 가보니 소위 대학 출신 종업원들이 '우리는 노동자가 아니다'며 평시에 오버타임(초과근무)을 해도 수당을 안 받는다고 하더라.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조도 만들지 않는다던데, 만들 수 없어서 못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들 수 있는데도 스스로 프라이드(자부심)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대학 교수들이 노조를 만들기 위한 법안이 국회 상임위의 소위원회를 통과했다고 해서 충격을 받았다." "서울시 오케스트라가 민주노총에 가입돼 있다. 아니, 음악하는 사람들이 민주노총에 가 있는데, 그것도 전에는 금속노조에 가 있었다. 아마 바이올린 줄이 금속이라서 그랬나 보다."이런 게 대통령을 꿈꾸는 이 대통령의 노조관이었다. 이 대통령이 쏟아내는 요즘 노조 관련 발언의 인식적 뿌리에 해당한다.
하지만 잘못된 진단은 잘못된 결과를 낳는 법이다. GM노조, 정확히 말해 전미자동차노조(UAW)는 문제가 많은 조직인 건 맞다. 한국의 완성차 노조들이 걷고 있는 길을 먼저 걸었던 이들은 하청 업체나 자신들의 생산품을 수송해야 하는 팀스터노조 등을 아랑곳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전미산별노조연맹(AFL-CIO)가 노쇠화되고 부패한 데에도 '공'이 큰 조직이다.
그렇다고 이 대통령 말대로 과연 노조 때문에 GM이 망했을까?
GM과 도요타 인건비 격차의 비밀미국 자동차 빅3 몰락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은 거의 일치한다. GM을 비롯한 미국 자동차 3사들이 지난 신자유주의 10여년의 과정에서 기술경쟁력 강화를 도외시하고 GMAC(GM Acceptance Corporation)과 같은 금융부분을 키워 단기수익을 추구하다가 결국 회복불능의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다.
또 유럽과 일본, 한국 자동차 회사들이 소형차 개발에 한창 일 때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단가와 마진을 높이기 위해 대형 SUV 생산에 매진했다. 수요도 없는데 중대형 아파트만 올리다가 미분양 사태를 만난 한국 건설업체들과 닮은꼴이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의 인건비가 높은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왜 그럴까? 노조 때문일까? GM과 도요타 자동차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각각 29.78달러와 30달러로 오히려 도요타가 미세하게 높다.
하지만 연금과 의료보험비를 포함한 시간당 총노동비용은 GM이 70달러로, 48달러의 도요타를 압도한다. 이 대통령이 "노조 때문에 망했다"고 한 주장은 아마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일 터이다.
그런데 왜 GM 사측은 연금과 의료보호비를 부담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건 '공공부문은 악이다. 모든 걸 민영화하라'는 주장을 금과옥조로 삼고 있는 이 대통령 같은 보수정치인들과 보수진영 때문이다.
일제고사 반대하는 교사들도, 낙하산 사장에 반대하는 기자들에게도 '좌파' 딱지를 붙이는 우리나라처럼 미국의 보수 정치인들과 보수파들은 전국민 의료보험에 대해서도 '공산당식 제도'라며 크게 반대한다. 오바마의 주요 공약 중 하나가 의료보험 공공성 확대이지만 만만치 않은 저항은 그래서 나온다.
여하튼 공공의료보험 제도가 없고 민영 보험료는 하늘을 찌를 정도이니 자동차 노조가 회사에 임금인상 아니면 의료보험비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 빅3의 몰락은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가 결국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극명하게 웅변하고 있다. 이걸 두고 '노조 때문에 망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건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니라 '수준'의 문제다. 실속도 없고 사실관계도 부정확한
주장을 하느니 차라리 노조활동금지법을 제정하면 어떨까? 나치처럼 말이다.
/윤태곤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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