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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보러 가는 거야?

음... 최근 자동차 트렌드를 소개한다.

 

 

차 보러 가는 거야? 여자 보러 가는 거야?
2005년 서울 모터쇼 탐방기
  김동희(collin) 기자
자동차 관련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니 모터쇼는 가보면 좋을 만한 행사입니다. 회사 이 곳 저 곳에서 간다는 사람도 많았고 그 중 여러 명이 먼저 다녀온 후 모터쇼 사진들을 공유해 놓았습니다. 아침에 회사에 가면 자신이 찍은 모터쇼 사진을 공유해 놓았다는 내용의 메일이 서너 개쯤 되어 모터쇼에 가기 전 본의 아니게 사진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모든 공유 폴더의 사진에는 어김없이 레이싱 걸들이 들어 있고 심지어 가슴만 클로즈업해서 찍은 사진, 반사되는 바닥에 비친 다리만 찍은 사진까지 보기 민망할 사진들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사무실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전날 갔다 온 사람의 사진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사진들을 다 모으느라 분주합니다. 아무도 차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제 자리에서 공유된 사진을 보고 있는데 부장님이 지나가면서 한마디 합니다.

“아니 저 미인은 누구야? 멋진데.”
“A씨가 모터쇼 가서 찍어온 사진이에요.”
“다들 차보러 가라고 출장 보내줬더니만 여자만 보고 오는구먼.”

동기 한 명은 모터쇼에 다녀오더니 난리입니다.

“눈만 높아져서 왔어요. 처음에는 사진도 같이 못 찍을 것 같더니 그 다음에는 좀 뻣뻣하게 옆에서 찍고 그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찍게 되더라고요.”

그의 얼굴에서도 그 전날의 즐거움이 남아 있습니다.

▲ 레이싱 걸들은 포즈를 취해주느라 바쁘다.
ⓒ2005 김동희
3년 전 서울에서 하는 모터쇼를 가봤는데 그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는 아직 디지털 카메라가 이렇게 많이 보급되어 있지도 않았고 레이싱 걸에 대한 인기도 그다지 높지 않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뀐 것을 알았습니다.

차 앞에 누가 서 있느냐에 따라 사람이 몰립니다. 차도 중요하지만 여자의 미모가 더 중요합니다. 예쁘고 사진을 찍을 때 포즈를 잘 취해주는 여자가 서 있으면 그곳에서는 차를 구경할 시간도 없습니다. 모두들 그 여자 분과 사진을 찍기 위해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서 있을 뿐입니다.

멀리서 레이싱 걸과 차를 함께 찍으려고 해도 여자인 저에게는 별로 시선을 주지 않습니다. 사실 많은 남자들이 목 빼고 기다리는데 여자인 제가 사진 찍으려고 하는 게 어떤 곳에서는 약간 어색하기도 했습니다.

▲ 남자들의 시선을 끌 수밖에 없는 레이싱 걸
ⓒ2005 김동희
또 왜 남자 모델은 없을까? 하는 의문도 듭니다. 아직도 남자들이 차를 사는데 더 주도적이긴 하지만 강한 이미지의 SUV차량이나 멋진 스포츠카에 멋진 남자 모델이 서 있다면 왠지 더 어울릴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제 눈에 띈 남자 모델은 단 한 명이었습니다. 그나마 눈에 띄지 않았다면 있는지조차 모를 뻔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차 닦는 아르바이트생인 줄 알았으니까요.

▲ 처음 본 남자 모델. 이곳에서는 여자와 남자가 함께 서있었다.
ⓒ2005 김동희
이렇게 몇 시간을 돌아다니다 보면 기운이 빠집니다.

‘도대체 무얼 보러 온 건가?’
‘내가 차에 대해 얻은 정보는 무엇인가?’

사실 이번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차의 보닛 한 번 열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차 안에서 제가 담당하는 부분이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 확인한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습니다.

▲ 전시장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메르세데스 벤츠의 SLR McLaren
ⓒ2005 김동희

▲ 메르세데스 벤츠의 CLS 350. 자동차 색과 디스플레이가 잘 어울린 차.
ⓒ2005 김동희
왠지 주객이 전도되어 버린 듯한 모터쇼. 차를 소개하기 위한 자리인지 레이싱 걸을 소개하기 위한 자리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우스운 행사가 돼버린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차가 중심에 선 모터쇼를 보고 싶습니다.
2005/05/08 오전 12:41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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