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recent years, South Korea, the prosperous, democratic half of a country once known as the Hermit Kingdom, has provided us with as good a reminder of this as anyone. When Roh Moo Hyun was elected president in 2002, few would have predicted that the ballot choices of his country's 35 million registered voters would have played a determining role in international affairs over the next several years. And yet that is exactly what transpired.
Roh is leaving office as a deeply unpopular leader, a man lampooned as ineffectual, undisciplined and, for some, even mischievous. Seen narrowly, such a reputation would suggest the slimmest of legacies.
At least one thing that Roh believed in deeply will prove to have mattered greatly and will very likely stand the test of time, however, lending unexpected importance to his role and to the role of his country well into the future.
The South Korean leader was strongly attached to the idea of rapprochement with the estranged northern half of his country. In the end, this meant holding his ground under the most trying of circumstances, including a gale of hostile language directed at Stalinist North Korea from Seoul's most important ally, the United States, whose president, George W. Bush, branded it a member of the "axis of evil."
Few Americans outside of the small community of specialists in East Asian affairs have any sense of the role played by Roh. Indeed, exasperated with Roh over other issues, South Koreans appear not to give him much credit, either.
What we do know now, however, is that the Bush administration spent the new few years, following the famous 2002 State of the Union speech in which he first pronounced the words "axis of evil," fighting a war in one of the constituent countries, Iraq, and steadily ratcheting up pressure on another, Iran.
For a time, tensions rose strongly with the third country, North Korea, too, especially after its leader, Kim Jong Il, expelled international atomic inspectors and exploded a nuclear device. Pyongyang's nuclear breakout surely helps explain why the United States has not chosen a more confrontational approach, as it did with the other so-called axis members, but one could argue that the behavior of the supposedly feckless Roh was equally important.
Under the circumstances, avoiding conflict and enhancing engagement required a huge dose of determination and considerable diplomatic skill. At times, Washington was furious at what it perceived as Seoul's appeasement of the North, so much so that people in both countries worried about irreparable damage to the alliance.
At considerable cost to his popularity back home, Roh, who was elected 11 months after the "axis" speech, bought diplomatic maneuvering space for himself, if not outright credibility in Washington, by becoming an early joiner of the "coalition of the willing" and sending troops to Iraq.
It is, of course, impossible to know what might have happened had South Koreans elected a more hawkish leader, or simply a more compliant one. It is not far fetched to imagine, however, that the Bush administration could have taken a more confrontational approach toward North Korea than the path it ultimately settled upon.
What is certain, however, is that with an elected leader in South Korea insisting that his country would oppose any military solution to the North Korean crisis, Washington had few practical options other than to gradually reconcile itself to diplomacy.
North Korea profited from the interlude of saber-rattling to strengthen its negotiating hand, and in the end it was negotiations that eventually produced a rare diplomatic understanding between Washington and Pyongyang about nuclear proliferation and eventual normalization of relations.
South Korea has just elected a new leader, Lee Myung Bak, and it is far too soon to say what sort of impact he might have on this region's complicated diplomatic geometry.
For his part, Roh will soon shuffle off into history, reviled, belatedly celebrated, or perhaps simply largely ignored. And yet his was the kind of example that we must start being more accustomed to: the leader of a peripheral, medium-sized state having an outsized impact on the shape of our world.
[해석]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갈 노무현 대통령, 존경받을 것
(Shuffled off to history, veneration of Roh Moo Hyun will follow / 미국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인터넷판, 12.28, Howard W. French, 상하이發)
언제쯤 한 국가의 선거가 유권자 본인에게 더 이상 중요치 않은 사안이 될까?
미국의 선거장정이 막을 올리기 직전, 미국인들은 위의 질문을 자문해볼 법도 하다. 무엇보다 세계 각 지역 사람들은 여러 해 동안-물론 선거권은 없지만-미국의 정치를 따르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렸고, 미국의 선택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더더욱 잘 알고 있다.
미국주도의 이라크 전쟁과 對테러 전쟁이 국제정치무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의 무역 및 재정적자가 글로벌 시장을 좌우하는 시대에, 이와 관련된 예시들은 선뜻 생각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강력한 의제를 만들어 내기 위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될 필요는 없다. 다수 전문가들은 그 초강대국마저도 상대적 세력이 퇴조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또한, 국제문제의 조류에 큰 영향을 행사하기 위해 굳이 중국처럼 빠르게 떠오르는 강대국이 될 필요도, 러시아처럼 외견상 재기하는 국가가 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상호 맞물린 세계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진부하게 여겨질 만큼 그런 세계에 관해 논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양극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대칭적 질서와 불분명하기는 하나 더욱 복잡해질 것이 분명한 미래를 사이에 둔 과도기적 순간에, 중요한 정책들이 공백상태에서 결정되는 일이 좀처럼 없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한때 은둔의 왕국으로 알려지기도 했던 한반도의 한쪽 절반인 풍요로운 민주국가 한국은, 지난 몇 년간 우리에게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상기시켜주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때, 3천5백만 유권자들의 선택이 향후 몇 년간 국제문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확하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
노 대통령은 무력하고 규율도 모르며 언행이 방정치 못한 사람으로까지 풍자되며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지도자로서 퇴임하게 된다. 이러한 평판을 편협한 시각으로 본다면, 노 대통령이 남긴 유산이 지극히 적다고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노 대통령의 신념 한 가지는 대단히 중요했다는 것이 입증될 것이며 분명 시간의 시험을 견뎌낼 것이고, 앞으로 먼 미래에 이르기까지 노 대통령과 한국의 역할에 기대치 않았던 중요성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지도자 노 대통령은 소원해진 북한과의 화해노선을 강력하게 고수했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한국의 맹방인 미국이 독재국가 북한에게 대놓고 적대적 발언을 쏟아내는 등 극도로 지치는 상황에서 자신의 기조를 유지하는 것을 뜻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바 있다.
소수 동아시아 문제 전문가들을 제외하면, 노 대통령이 했던 역할이 무엇인지 인식하는 미국인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북한을 제외한) 다른 문제들로 노 대통령에게 격분해 있는 한국인들 역시 그를 신뢰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것은 부시가 “악의 축”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던 저 유명한 2002년 국정연설 이후 몇 년간을, 악의 축의 일부인 이라크와 전쟁을 하면서 그리고 악의 축의 또 다른 일부인 이란에 대한 압력의 수위를 꾸준히 높이면서 세월을 보냈다는 점이다.
북한 지도자 김정일이 국제 핵 사찰단을 추방하고 핵무기를 실험한 뒤로, 한동안 북한과의 긴장이 크게 고조되기도 했다. 북한의 핵 돌파구는, 미국이 다른 “악의 축”들을 대하는 것과는 달리, 왜 북한에 대해서는 대결적 접근을 지양하게 됐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분명 도움이 된다. 일각에서는 무능하다고 했던 노 대통령의 태도도 마찬가지로 주요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갈등을 피하고 포용을 강화하는 것은 엄청난 결단과 상당한 외교적 수완이 요구됐다. 이따금씩 미국이 한국의 대북 유화정책에 격분한 나머지, 양국 국민들마저 동맹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해를 입지는 않을까 우려했다.
“악의 축” 발언이 나온 지 11달 후에 선출된 노 대통령은, 고국에서의 지지율에 상당한 타격을 입으면서, 미국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는 아니더라도, 유지동맹(有珍盟)에 동참하고 이라크에 군을 파병함으로써 외교적인 여지를 얻어냈다.
물론, 한국인들이 더욱 호전적인 지도자 혹은 더욱 고분고분한 지도자를 선택했다면 어땠을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이미 닦아놓은 노선보다 더욱 대결적 접근을 할 수도 있었다는 상상을 해보는 것이 그다지 억지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북한 위기에 대한 군사적 해결을 반대하겠노라 고집하는 지도자가 선출된 이상, 미국은 점차 외교적으로 타협을 보는 수밖에 달리 현실적인 방도가 없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북한은 협상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무력을 행사하겠다는 위협으로 막간을 두어 득을 보았고, 미국과 북한 간에 핵확산과 관계정상화에 관한 외교적 이해를 이끌어낸 것은 결국 협상이었다.
한국은 이제 막 새로운 지도자 이명박을 선출했으며 이 당선자가 복잡한 역내 외교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말하기는 시기상조다.
노 대통령으로 말하자면, 곧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가 매도되고 뒤늦게 축하를 받든지, 아니면 그저 묻혀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더욱 익숙해져야할 선례였다. 세계의 판세에 큰 영향을 미친, 고만고만한 주변국가(peripheral, medium-sized state)의 지도라라는 점에서 말이다.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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