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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질

어제 처음으로 그레를 들고 바다에 나갔다. 몇년전에서 새만금에 왔을때 그레질을 한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잠깐 체험으로 한시간 정도 했던것 같고.. 별다른 기억은 없다. 이번에는 계화도 마을의 어머니들과 아저씨들과 함께 바다에 나갔다. 터덜 거리는 경운기를 타고 물빠진 갯벌의 가장끝까지 그러니까 바닷물이 출러이는 곳까지 나가서 갯일을 했다. 그레는 허리에 끈을 묶어 잇고, 어깨와 양손을 이용해서 갯뻘의 5-8cm 정도 되는 곳을 긁는다. 그러다 철컥하고 걸리는게 있으면 그게 바로 생합(백합)이다. 옛날에는 긁는 족족 생합이 나왔다고 하는데 지금은 100m를 끌어도 생합 한마리 잡기 힘든 상황이다. 바다가 막혀서 갯벌에 사는 넘들이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고 올해는 생합이 거의 마지막일꺼라는 예견이 적중하고 있고 갯사람들은 마지막 생합잡이에 하루하루 그레를 느리게 끌고 있는 것이다.

 

광할한 갯벌에서 그레와 내가 한몸이 되어 갯벌을 만난다. 그리곤 작은 명상을 하게 된다. 작은 생합 한마리 잡았다가 마을 아저씨한테 인간성이 나쁘다고 핀잔을 들었다. 보이는대로 다 잡으면 못쓴다는 나름대로의 쓴소리였다. 네시간을 바다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생합을 캤다. 생합이 좀더 잘 잡힌다면 신이나서 힘든줄 모를텐데 여간해서 생합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옛날에는 몇십키로씩 잡았다고 하지만 어제 내가 잡은건 고작 2kg하고 몇그램 더 추가 한정도.. 사람들 말로는 그나마도 많이 잡은것이라고 한다.

 

바다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있다고 한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양식도 하고 배도 사서 좀더 크게 어업을 한다는 것이고 돈이 없는이들은 맨손으로 맨손어업을 한다. 예전에 새만금을 막는다며 보상을 할때도 수십년간 맨손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했던 사람의 보상금은 500만원을 밑돌고 양식도 하고 배도 있는 사람들은 수억원의 보상을 받은것처럼 지금도 그 모습은 비슷하다.

 

이곳 계화도 사람들은 요즘 새만금 대화마당을 준비하고 있다. 2년전 삼보일배를 끝으로 새만금 이슈는 법원 소송에만 내맡겨진채로 가라앉았다. 커다란 이슈로 떠오르지는 않고 있지만 그간에 계화도 어민들은 갯벌배움터를 마련하고 체험을 위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나마 새만금 운동의 끈을 놓지않으며 이어가고 있다. 바다가 막혀 생계가 어려운것도 있지만 이들은 계화도, 그리고 어촌의 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을 가장 무서워 한다. 다시금 새로운 공동체를 준비하고 건설코자 하는 꿈을 꾸며 하루하루 고된 일을 하고 있다.

 

몇일전 욕쟁이 형인 용석형(49)이 이런말을 했다. '난 계화도가 세상에서 제일루 좋아. 일하고 싶을때 바다나가 일하고, 사람들 만나 얘기하고 술마시고.. 이만치 좋은곳 없어. 바다는 바다인거여..' 이 아저씨는 새만금 티셔츠를 꼭 안에 입는다. 그건 바로 이분의 의지이고 희망인데 가끔 진득하니 취할때마다 자기 티셔츠를 보이며.. 난 바다가 좋아를 외치신다.

 

잠시 이곳에 머물면서 그레질도 하고 대화마당도 준비하고 계화도 어머니들과 아저씨들의 작은 희망에 불이 밝혀지고 있음에 가슴이 뭉클하다. 내일은 대화마당이다. 어머니들은 아침부터 김치 담그는거 준비하느라 바쁘다. 그리고 밤마다 몇일째 깃발작업에 고된 몸으로도 자리를 함께 하신다. 그분들이 바로 새만금의 생명이고 희망일꺼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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