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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8/06 21:05

선운사 동백꽃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詩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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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6 21:05 2006/08/06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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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8/06 20:58

 

우산

                                          도종환

혼자 걷는 길 위에 비가 내린다

구름이 끼인 만큼 비는 내리리라

당신을 향해 젖으며 가는 나의 길을 생각한다

나도 당신을 사랑한 만큼

시를 쓰게 되리라

당신으로 인해 사랑을 얻었고

당신으로 인해 삶을 잃었으나

영원한 사랑만이

우리들의 영원한 삶을

되찾게 할 것이다

혼자가는 길 위에 비가 내리나

나는 외롭지 않고

다만 젖어 있을 뿐이다

이렇게 먼 거리에 서 있어도

나는 당신을 가리는 우산이고 싶다

언제나 하나의 우산속에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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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6 20:58 2006/08/06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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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8/06 20:58

[사십대]

고정희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 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 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

선택할 끈이 길지 않다는 것도 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지루하던 고비도 눈물겹게 그러안고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사십대 들녘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어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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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6 20:58 2006/08/06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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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8/06 20:56

 

[삼십세]

최승자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내 꿈은 말이야, 위장에서 암 세포가 싹트고

장가가는 거야, 간장에서 독이 반짝 눈뜬다.

두 눈구멍에 죽음의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

피는 젤리 손톱은 톱밥 머리칼은 철사

끝없는 광물질의 안개를 뚫고

몸뚱어리 없는 그림자가 나아가고

이제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은

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 묻고

흰 손수건이 떨어뜨려지고

부릅뜬 흰자위가 감긴다.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 우리 철판 깔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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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6 20:56 2006/08/06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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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8/06 20:56

 

[대학시절]

기형도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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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6 20:56 2006/08/06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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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8/06 20:55

 

[내 가슴 빈터에 네 침묵을 심는다.]

김정란 


네 망설임이 먼 강물소리처럼 건네왔다

네 참음도

네가 겸손하게

삶의 번잡함 쪽으로 돌아서서 모르는 체하는 그리움도


가을바람 불고 석양녘 천사들이 네 이마에

가만히 올려놓고 가는 투명한 오렌지빛

그림자도


그 그림자 슬프게 고개 숙이고

뒤돌아서서 만져보는 네 쓸쓸한 뒷모습도


밤새

네 방 창가에 내 방 창가에

내리는, 내리는, 차갑고 투명한 비도


내가 내 가슴 빈터에

네 침묵을 심는다, 한번, 내 이름으로,


너는 늘 그렇게 내게 있다

세계의 끝에서 서성이는

아득히 미처 다 마치지 못한 말로


네게 시간을 줘야 한다고 나는

말하고 쓴다, 내 가슴 빈터에


세계가 기웃, 들여다보고 제 갈 길로 가는

작은 , 후미진 구석


그곳에서 기다림을 완성하려고

지금, 여기에서, 네 망설임을, 침묵을, 거기에 심는다,

한번 더, 네 이름으로,


언제든 온전히 말을 거두리라


너의 이름으로, 네가 된 나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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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6 20:55 2006/08/0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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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8/06 20:54

 

[너에게]

정호승 


가을비 오는 날

나는 너의 우산이 되고 싶었다.

너의 빈 손을 잡고

가을비 내리는 들길을 걸으며

나는 한 송이 너의 들국화를 피우고 싶었다.


오직 살아야 한다고

바람 부는 곳으로 쓰러져야

쓰러지지 않는다고

차가운 담벼락에 기대서서

홀로 울던 너의 흰 그림자


낙엽은 썩어서 너에게로 가고

사랑은 죽음보다도 강하다는데

너는 지금 어느 곳

어느 사막 위를 걷고 있는가


나는 오늘도

바람 부는 들녘에 서서

사라지지 않는 너의 지평선이 되고 싶었다.

사막 위에 피어난 들꽃이 되어

나는 너의 천국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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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6 20:54 2006/08/06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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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8/06 20:52

당신과 헤어지고 보낸
지난 몇 개월은
어디다 마음 둘 데 없이
몹시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는 것들을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두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의 입장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잊을 것은 잊어야겠지요.
그래도 마음 속의 아픔은
어찌하지 못합니다.
계절이 옮겨가고 있듯이
제 마음도 어디론가 옮겨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의 끝에서 희망의 파란 봄이
우리 몰래 우리 세상에 오듯이
우리들의 보리들이 새파래지고
어디선가 또
새 풀이 돋겠지요.
이제 생각해 보면
당신도 이 세상 하고 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을 잊으려 노력한
지난 몇 개월 동안
아픔은 컸으나
참 된 아픔으로
세상이 더 넓어져
세상만사가 다 보이고
사람들의 몸짓 하나 하나가 다 이뻐 보이고
소중하게 다가오며
내가 많이도
세상을 살아낸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당신과 만남으로 하여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고맙게 배웠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애틋이 사랑하듯
사람 사는 세상을 사랑합니다.

길가에 풀꽃 하나만 봐도
당신으로 이어지던 날들과
당신의 어깨에
내 머리를 얹은 어느 날
잔잔한 바다로 지는 해와 함께
우리 둘인 참 좋았습니다
이 봄은 따로따로 봄이겠지요
그러나 다 내 조국 산천의 아픈
한 봄입니다.
행복하시길 빕니다
안녕.
                  ---김용택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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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6 20:52 2006/08/06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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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8/06 20:50

숨길 수 없는 노래 2

-이성복



아직 내가 서러운 것은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봄하늘 아득히 황사가 내려 길도 마을도 어두워지면 먼지처럼 두터운 세월을 뚫고 나는 그대가 앉았던 자리로 간다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우지 못하면 서러움이 나의 사랑을 채우리라

서러움 아닌 사랑이 어디 있는가 너무 빠르거나 늦은 그대여, 나보다 먼저 그대보다 먼저 우리 사랑은 서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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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6 20:50 2006/08/06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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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9/14 09:51

돌맹이 하나

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 한점 없고 답답하여라

숨이 막히고 가슴이 미어지던 날

친구와 나 제방을 걸으며
돌멩이 하나 되자고 했다
강물 위에 파문 하나 자그맣게 내고
이내 가라앉고 말
그런 돌멩이 하나

날 저물어 캄캄한 밤
불씨 하나 되자고 했다
풀밭에서 개똥벌레쯤으로나 깜박이다가
새날이 오면 금세 사라지고 말
그런 불씨 하나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 그 얼마일 거냐고
그대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 그 얼마일 거냐고
죽음 하나 같이할 벗 하나 있음에
나 그것으로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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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4 09:51 2004/09/14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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