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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4/20 21:30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王宮)의 음탕 대신에
오십(五十)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二十)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사십야전병원(第四十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二十) 원 때문에 십(十) 원 때문에 일(一)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一)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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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0 21:30 2009/04/2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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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2/01 20:49

희망

  

게릴라로 싸우던 동안에는 물론
심지어 지금까지도
카스트로의 이야기는
내 뇌리에 선명히 남아 있다

 

당신들은 아직
당신들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서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무기를 방기한 게릴라로서의
지불해야 할 대가는
바로 목숨이기 때문이다
적과 직접 부딪쳐 싸울 경우
살기 위해 의지해야 할
유일한 희망은
바로 무기뿐이다
그런데 그 무기를 버리다니!
그것은
처벌받아 마땅할 범죄이다

 

단 하나의 무기,
단 하나의 비밀,
단 하나의 진지도
적들에게 넘어가게 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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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1 20:49 2009/02/01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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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2/01 20:35

어떤 관료  - 김남주 -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정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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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1 20:35 2009/02/01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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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1/28 23:05

단풍 드는 날
- 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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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8 23:05 2008/11/28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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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0/11 17:55

[선천성 그리움]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청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함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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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1 17:55 2008/10/1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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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0/11 17:53

최영미 <선운사에서>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건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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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1 17:53 2008/10/1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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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9/09 13:50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 정호승 ‘풍경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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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9 13:50 2008/09/0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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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9/07 22:21

* 제대로 된 혁명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
소름끼치도록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
그저 재미로 하라

사람들을 미워하기 때문에는 혁명에 가담하지 마라
그저 원수들의 눈에 침이라도 한번 뱉기 위해서 하라

돈을 쫓는 혁명은 하지 말고
돈을 깡그리 비웃는 혁명을 하라

획일을 추구하는 혁명은 하지 마라
혁명은 우리의 산술적 평균을 깨는 결단이어야 한다
사과 실린 수레를 뒤집고 사과가 어느 방향으로
굴러가는가를 보는 짓이란 얼마나 가소로운가?

노동자 계급을 위한 혁명도 하지 마라
우리 모두가 자력으로 괜찮은 귀족이 되는 그런 혁명을 하라
즐겁게 도망치는 당나귀들처럼 뒷발질이나 한번 하라

어쨌든 세계 노동자를 위한 혁명은 하지 마라
노동은 이제껏 우리가 너무 많이 해온 것이 아닌가?
우리 노동을 폐지하자, 우리 일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자!
일은 재미일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일을 즐길 수 있다
그러면 일은 노동이 아니다
우리 노동을 그렇게 하자! 우리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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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7 22:21 2008/09/07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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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9/07 21:48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고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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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7 21:48 2008/09/07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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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8/13 16:13

숲 속에 서서

                                정희성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을 때
나는 숲을 찾는다
숲에 가서
나무와 풀잎의 말을 듣는다
무언가 수런대는 그들의 목소리를
알 수 없어도
나는 그들의 은유(隱喩)를 이해할 것 같다.
이슬 속에 지는 달과
그들의 신화를,
이슬 속에 뜨는 해와
그들의 역사를,
그들의 신선한 의인법을 나는 알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이기에,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나는 울면서 두려워하면서 한없이
한없이 여기 서 있다
우리들의 운명을 이끄는
뜨겁고 눈물겨운 여유를 찾아
여기 숲속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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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3 16:13 2008/08/13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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