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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2/01 19:28

이불을 꿰매면서

                           박노해


이불호청을 꿰매면서
속옷 빨래를 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의 가슴을 친다

똑같이 공장에서 돌아와 자정이 넘도록
설거지에 방청소에 고추장단지 뚜껑까지
마무리하는 아내에게
나는 그저 밥달라 물달라 옷달라 시켰었다

동료들과 노조일을 하고부터
거만하고 전제적인 기업주의 짓거리가
대접받는 남편의 이름으로
아내에게 자행되고 있음을 아프게 직시한다

명령하는 남자, 순종하는 여자라고
세상이 가르쳐준 대로
아내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나는 성실한 모범근로자였었다

노조를 만들면서
저들의 칭찬과 모범표창이
고양이 꼬리에 매단 방울소리임을,
근로자를 가족처럼 사랑하는 보살핌이
허울좋은 솜사탕임을 똑똑히 깨달았다

편리한 이론과 절대적 권위와 상식으로 포장된
몸서리쳐지는 이윤추구처럼
나 역시 아내를 착취하고
가정의 독재자가 되었었다

투쟁이 깊어갈수록 실천 속에서
나는 저들의 찌꺼기를 배설해낸다
노동자는 이윤 낳은 기계가 아닌 것처럼
아내는 나의 몸종이 아니고
평등하게 사랑하는 친구이며 부부라는 것을
우리의 모든 관계는 신뢰와 존중과
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잔업 끝내고 돌아올 아내를 기다리며
이불호청을 꿰매면서
아픈 각성의 바늘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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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1 19:28 2009/12/01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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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1/25 18:50

베일 속의 사내

  

그 사내의 얼굴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다

나는,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광채와

네 개의 하얀 앞니만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미래는 민중들의 것입니다

서서히, 혹은 갑자기

전세계의 모든 민중들이 권력을 잡을 겁니다

당신은 이 사회에 나처럼 아주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당신을 파괴시키는 이 사회에

당신 스스로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날 밤,

그 사내의 말들이 밤새도록 내 가슴 깊이 울렸다

나는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만일,

어떤 지도자가 이 세계를 두개로 나눈다면

난 기꺼이 민중들 편에 설 것임을,

그리하여

귀신에 홀린 듯 울부짖으며 온몸으로

적진의 바리케이드와 참호를 공격할 것이고

분노를 내뿜으며 무기를 피로 물들일 것이고

내 손에 잡힌 그 어떤 적이라도 단숨에 꺠부술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한껏 내 코를 팽창시켜, 유유히

매운 화약냄새와 낭자한 적들의 피 냄새를 음미하리라

  

그런 다음 또 다시 내 몸을 바짝 긴장시킨 채

다음 전투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리라

열광하는 민중들의 환호성이

또 다른 새로운 곳에서 힘차게 울려퍼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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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5 18:50 2009/11/2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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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1/25 18:49

쿠바

  

 

나는

쿠바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만져보고 싶었고,

모든 것을

느끼고 싶었고,

그리고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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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5 18:49 2009/11/25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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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1/25 18:48

바다

 

 

 

 

보름달이 바다에 그림자를 비추고

파도가 은빛으로 부서지며 철썩거렸다

우리는

바닷가의 뫠 위에 앉아

끊임없이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을 바라보며

서로

다른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다

 

 

나는

바다를 언제나 절친한 친구로 생각했다

비밀을 누설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고

항상 가장 좋은 충고도 아끼지 않는

그런 친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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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5 18:48 2009/11/25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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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1/25 18:47

질투 - 나의 연인 치치나에게

 

 

 

 

날마다 피를 토할 듯이 기침을 하자

내 몸을 걱정하던

한 연약한 매춘부의 위로의 키스가

문득,

여행 떠나오기 이전의

내 잠자던 기억을 괴롭혔다

 

 

모기떼가 잠들지 못하게 하던 그 날 밤

비록,

이제는 아득한 꿈이 되어버린

치치나를 생각했다

끝나버린 꿈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즐거웠기에

씁씁함보다는 달콤함으로 남아 있는

그녀가 그리웠다

 

 

나는 치치나에게

그녀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오랜 친구처럼

따뜻하고 잔잔한 키스를 보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내 마음은

새로운 청혼자에게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속삭이고 있을 그녀의 집으로 날아가

깊은 밤의 어둠 속을 정처없이 떠돌고 있었다

 

 

내 머리 위의 거대한 우주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별들은 마치

"이것은 과연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라는

내 가슴 깊은 곳의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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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5 18:47 2009/11/25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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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1/25 18:46

아버지에게

 

 

카리브해의

푸른 바다가

저를 부릅니다

레닌의 말들이

절절이 울려오는

쿠바의 그 풍광으로

제 가슴을 가득

채우고 싶습니다

 

 

아버님,

저는 지금

아바나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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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5 18:46 2009/11/25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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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1/25 18:45

부모님께

 

 

 

내 생의 한가운데서

나의 진실을 찾아 헤맸습니다

때로

헛된 고생도 했지만,

그러나

바로 그 와중에서

나를 영원으로 이끄는

한 여자를 만나

이제 비로소

제 자리를 찾은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나의 죽음을

어떠한 경우에라도

절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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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5 18:45 2009/11/25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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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1/25 18:45

어머니에게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쓰러뜨리긴 했지만

저는 제가 가야 할 길을 찾아 애쓰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외롭고 고독할 뿐입니다

지금 저에게는

아내도,

자식도,

형제도 없으며

친구 역시

사상이 같을 때만 친구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행복합니다

 

 

지금 제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새로운 무엇인가가 생명처럼 솟아나고 있습니다

모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 같은 것 말입니다

사실 이런 느낌은 예전부터 있어오기는 했지만

이제 저 혼자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그런 생명의 힘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감당해야 할 숙명적인 임무는

그 어떤 힘겨운 고통도 씻어주기에 충분합니다

 

 

어머니,

지금 제가 왜 이런 편지를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알레이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밤에 이 편지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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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5 18:45 2009/11/25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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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1/25 18:44

그곳에서는 그들처럼

 

 

 

과테말라에서는

과테말라인처럼

멕시코에서는

멕시코인처럼

페루에서는

페루인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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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5 18:44 2009/11/25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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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1/25 18:43

직시

 

 

 

 

멕시코 혁명은

죽었다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

그러나

우리는 한 번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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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5 18:43 2009/11/25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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