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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3/12 11:18

전사 1  -김남주-


일상 생활에서 그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이름 빛내지 않았고 모양 꾸며

얼굴 내밀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시간엄수가 규율엄수의 초보임을 알고

일분 일초를 어기지 않았다

그리고 동지 위하기를 제몸같이 하면서도

비판과 자기비판은 철두철미했으며

결코 비판의 무기를 동지 공격의 수단으로 삼지 않았다

조직 생활에서 그는 사생활을 희생시켰다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모든 일을 기꺼이 해냈다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좋은 일이건 궂은 일이건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먼저 질서와 체계를 세워

침착 기만하게 처리해 나갔으며

꿈속에서도 모두의 미래를 위해

투사적 검토로 전략과 전술을 걱정했다


이윽고 공격의 때는 와

진격의 나팔 소리 드높아지고

그가 무장하고 일어서면

바위로 험한 산과 같았다

적을 향한 증오의 화살은

독수리의 발톱과 사자의 이빨을 닮았다

그리고 하나의 전투가 끝나면

또 다른 전투의 준비에 착수했으며

그때마다 그는 혁명가로서 자기 자신을 잊은 적이 없었다.


<나의 칼 나의 피, 1993, 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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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2 11:18 2007/03/1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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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3/12 10:04

 

 


엄청나게 큰 건물이 보인다.

앞쪽 벽에는 활짝 열어젖힌 좁은 문이 있다. 문 안에는-음산한 안개. 높다란 문지방 앞에 한 처녀가 서 있다......러시아 처녀다.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는 싸늘한 냉기를 내뿜고 있다. 얼어붙는 듯한 냉기의 흐름과 함께 건물 내부로부터 궁근 목소리가 느릿느릿 울려퍼진다.

"오오, 너는 그 문지방을 넘고 싶은가 본데 무엇이 너를 기다리고 있는지, 너는 알고 있느냐?"

"알고 있습니다" 처녀가 대답한다.

"추위,굶주림,증오,조소,멸시,모욕,감옥,질환,그리고 나중에는 죽음이라는 것을 아느냐?"

"알고 있습니다"

"아무도 만날 수 없는 몸서리치는 고독, 그래도 좋으냐?"

"알고 있습니다......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고통, 어떠한 채찍질도 참아내겠습니다"

"그것도 원수들만이 아니라 육친과 친구들까지 그렇다면?"

"네......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좋다. 너는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거지?"

"네"

"무명의 희생이라도 좋으냐? 네가 파멸한다 해도-누구 하나, 누구 하나 어떤 자의 명복을 빌어주어야 할지 기억하지도 못할 텐데!"

"저한테는 감사도 동정도 필요없습니다. 이름 같은 것도 필요 없습니다"

"죄를 지을 각오도 되어 있느냐?"

처녀는 고개를 떨구었다......

"죄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목소리는 다음 질문까지 잠시 사이를 두었다.

"너는 알고 있느냐" 이윽고 목소리는 다시 계속되었다. "지금 네가 믿고 있는 신념에 환멸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것은 기만이었다, 공연히 젊은 생명을 파멸시켰구나 하고 깨달을 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역시 저는 들어가고 싶습니다"

"들어가라!"

처녀가 문지방을 넘어서자-무거운 막이 그녀의 등 뒤로 내려졌다.

"바보 같은 년!" 누군가가 뒤에서 이를 갈았다.

"성녀다!" 어디선가 거기에 답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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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라는 부재가 붙은, 뚜르게네프의 <문지방> 혹은 <문어구>라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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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2 10:04 2007/03/1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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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1/11 13:42

내 글을 읽은 어느 노동자의 질문



일곱 성문의 테베 성을 누가 건설했는가?

책 속에는 왕들의 이름이 쓰여 있다.

바윗돌을 나른 것이 왕들이었던가?

그리고 그렇게 여러 번씩이나 파괴되었던 바빌론!

누가 그렇게 여러 번씩이나 파괴된 바빌론을 재건했는가?

황금 빛 반짝이는 리마의 노동자들은 어떤 헛간에서 살았던가?

만리장성을 쌓을 때까지 석공들은 어디서 밤을 지새웠던가?

대 로마제국은 개선문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들을 세운 자들은 누구였던가?

시저는 누구에게 승리했는가?

노래에서 그토록 찬양되었던 비잔티움의 모른 집들은 다 궁전이었는가?

심지어 전설적인 아틀란티스, 그 섬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던 밤에 물에 빠진 주인들은

노예들에게 여전히 큰 소리를 쳤을 것이다.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혼자서 모두 한 것인가?

시저는 갈리아를 쳐부수었다.

요리사까지도 음식을 만들어 주어 그를 돕지 않았던가?

스페인의 필립 왕은 그의 무적함대가 격침되었을 때 크게 슬퍼하였다.

다른 사람은 어느 누구도 울지 않았던가?

프레드릭 대제는 7년 전쟁에서 이겼다.

다른 누가 또 승자였는가?

모든 장마다 승리가 기록되었다.

누가 승리의 결실을 맺게 했는가?

매 10년마다 위인이 나타났다.

누가 대조표를 뽑았는가?

그렇게 기록들도 많고

그렇게 의문점도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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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1 13:42 2007/01/1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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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9/09 20:21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蹟  遂作後人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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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9 20:21 2006/09/0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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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9/09 20:17

The Road Not Taken

                                                                         by Robert Frost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가지 않은 길

                                                                프로스트(Robert Frost)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날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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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9 20:17 2006/09/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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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8/24 18:02

친구여 찬 비 내리는 초겨울 새벽은 슬프다
- 채광석

친구여
이렇게 새벽까지 비가 내리는 오늘은
내가 눈물을 찾겠네
가을 넘어선 새벽비가 겨울 문턱을 쳐오면
얇은 옷깃
차갑게 젖은 목덜미로
어느 변두리 싸구려 여관을 서성이고 있을
지친 발자국이여
행여나
가끔씩 포르노 비디오를 틀어준다는
새벽 만화방으로 숨어들어가
천원짜리 라면 한그릇 둘둘 말아삼키고
무거운 눈꺼풀 아무데나 내맡기며
작은 참새처럼 몸 떨고 있을
새벽 일기여
비원길 지나 창경궁으로 접어드는 길목
희미한 한올 불빛만 마주쳐도
흠칫 놀라
자꾸 어두운 담벼락으로 몸을 기댈
야윈 몸뚱이여
불 꺼진 곳으로 쫓겨가며 쫓겨가며
비에 젖은 담배 한가치에
백원짜리 커피 한잔 빼 마시다
왈칵 토해 버리고 있을
공복의 입술이여
오늘은
내가 눈물을 찾겠네
이렇게 새벽까지 차가운 빗소리 긁히면
그대들이 몸 뒤척이며 울어주었던
지난 날 나의 새벽 밤길
이리도 속쓰리 슬픈 시가 되는데
친구들이여
나의 푸른 시들이여
쉬지 말고 걷게나
눈물 보이지 말고 꼭꼭 숨어들게나
발 밑 새벽강에 불빛 흔들려도
어깨가 흔들려선 안되네
비에 젖은 머리칼로 새벽 바람 불어오면
나즈막히 휘파람을 불어보게
호주머니 깊숙히 두 손을 찔러넣고
허벅지의 온기를 느껴보게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비에 젖은 새벽 발자국
햇살이 날아와 다 지워놓을 때까지
오늘처럼 비 내리는 새벽 눈물은
나의 몫
오늘은 밤새워 시를 쓰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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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4 18:02 2006/08/24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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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8/24 17:56

당 활동가
- 詩 강제윤


그는 공산당원이었다.
돌이켜 보면 40년 세월 동안 싸우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전사로서 그는 부끄러움이 없었다
늘 당당했다
과학적 사상으로 무장한 노동자계급의 전위투사
대중을 지도하고 대중으로부터 배우는 활동가

현장에서 파업을 주도하고 무장봉기의 그날을 위해
무기를 준비하고 노동자 군대를 빈틈없이 훈련시켜온
강철같은 혁명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가진
그는 공산당원이었다
이가 갈리는 착취체제를 끝장내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며
때로는 공장에서
때로는 관공서에서
어떠한 임무가 주어져도 성실히 수행해온 실천가

마지막에 그는 감옥에서도 조직을 건설하고
악랄한 고문과 비인간적인 대우에 맞서 싸웠다
그리고 개처럼 끌려가 사흘 밤낮을 온갖 악형과 고문을 당한 뒤
반송장이 되서 돌아왔다
부러진 허리 찢어지고 깨진 머리
대창에 찔려 피가 그칠줄 모르는 손톱
그는 지혈을 시켜주며 눈물을 흘리는 동지들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고문을 받고 돌아온 저녁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더듬거리며 부러진 이를 악물고
"놈들이 내 손톱 끝에 쑤셔박은 꼬챙이는 대나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공산당원의 의지는 강철로 된 것입니다
슬퍼하지 마십시오 동지들
결국 우리는 승리하고야 말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웃었다

그는 죽어가는 순간까지 승리에 대한 확신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공산당원이었다
또한 그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같은 방의 동지들이 우리 혁명이 완수되는 날
우리 후손들이 당신을 자랑스럽게 기억할 수 있도록
이름을 알려주십시오
간청을 했으나 그는 끝내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나는 공산당원입니다" 그 말 뿐이었다

(중국혁명을 그린 한 보고문학작품의 주인공을 모델로 하여 강제윤님이 [노동해방문학] 제10호(1991)에 발표한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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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4 17:56 2006/08/2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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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8/24 17:52

 

[너에게로 가는 길]

강현국 


너에게로 가는 길엔

자작나무 숲이 있고

그해 여름 숨겨둔 은방울새 꿈이 있고

내 마음속에 발 뻗는


너에게로 가는 길엔

낮은 침묵의 초가가 있고

호롱불빛 애절한 추억이 있고

저문 날 외로움의 끝까지 가서

한 사흘 묵고 싶은


내 마음속에 발 뻗는

너에게로 가는 길엔

미열로 번지는 눈물이 있고

왈칵, 목 메이는 가랑잎 하나 있고

맨발엔 못 박힌 불면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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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4 17:52 2006/08/2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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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8/21 07:18

봄길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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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1 07:18 2006/08/21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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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8/21 07:02

[祭 亡 友 歌]

지구를 거꾸로 돌려 단 몇 시간만이라도 되돌릴 수 있다면,
슈퍼맨이라도 부르고 싶었던 시간들은 가고
중환자실 복도에서 마음 졸이며 서성이던
우리 모두의 머리를 잇대어 너의 혈관이 돼줄 수 있다면,
간절히 꿈꾸던 그 순간들도 다 가고
우리는 이제 너를 보내야 한다.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밤샘하느라 부르튼 네 입술에 안티푸라민을 발라주며
우리의 멍청한 사랑은 시작되었고
우린 십 오년 동안 단 한순간도 미워하지 않았다
갈라져 피가 배인 네 입술에 연고를 발라주던
우리의 마지막 날까지

야근수당까지 쳐서 십 오만원 받던 월급으로
몇몇 방의 월세를 내고 나면 회수권 몇 장뿐이던 시절
호박 하나에 식빵을 풀어 죽을 끓여 먹으면서도
너는 가난하지 않았다
남들의 반도 안되는 민주노총 상근비를 받던 날
이 사람 저 사람 못 사먹여 안달하던
너는 거창한 신념이나 의무감 때문에 씩씩했던 게 아니라
자고 나면 뒤집힐 것 같은 머릿속 혁명 때문에 헌신한 게 아니라
네 영혼의 우물 속 차오르는 사랑이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에 기우는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이
길을 놓아 너를 살게 하였다

비오는 거리를 걷다 나는 울었다
모두들 서고 앉고 웃으며 걷는데
왜 너만 누워 있어야 하는지
슬퍼서가 아니라 서러워서가 아니라
왜 하필 너를 잃어야 하는지
내가 억울해서 혼자 울었다
나보다 더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 있어
목놓아 울어보지도 못한 날들도 다 가고
이제 우리는 슬픔을 그쳐야 한다
너를 우리 속에 묻어야 한다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 없겠지만
이제 억울해하지 않기로 한다
아름다운 영혼, 네가 서른 다섯 해 살아
세상은 그만큼 아름다워졌고
온 마음과 온몸으로 사른 네 사랑으로
세상은 그만큼 사랑스러워졌으므로
서러워하지 않기로 한다
아파하지 않기로 한다

머잖아 봄이 오면
언 땅에 숨죽이던 풀들 앞다투어 고개 내밀고
개나리 진달래꽃 무심히 또 피어나도
너는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만
서럽지 않다
우리 맘 속에 너를 심어
일년 사철 피는 꽃나무로 너는 자라리니
꽃은 피고 지지만 우리가 지상에 살아 있는 한
너는 지지 않는 꽃이어니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피어나리
내 친구 명아,
이제 너를 보낸다
환생해서라도 꼭 다시 보고 싶은 내 사랑 명아,
부디 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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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1 07:02 2006/08/2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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