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정규직 비정규직이 아니라 싸우는 노동자와 싸우지 않는 자로

쌍용차 노동자들은 정규직 비정규직 구분없이 죽기를 각오하고 
정리해고 분쇄, 총고용 보장을 위해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금속노조 간부동지들, 이 투쟁을 엄호해주십시오. 
금속총파업을 조직해주십시오. 연대를 호소합니다
- 쌍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연설 중에

쌍용차 노동자파업이 전개되자 ‘정리해고’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1500명 희망퇴직, 976명 정리해고라는 숫자 속에는 이미 쫓겨난 300명의 비정규직은 포함되지 않았다. 36명의 무급휴직자들의 해고 통보도 포함되지 않았다. 해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남아 있는 300명의 비정규직도 이 숫자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비정규노동자들은  정규직노동자들과 함께 공장점거파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전체 노동자들을 향해 ‘총파업을 조직해주십시오’라고 호소한다. 쉬어빠진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나있다. 왜 그들은 언론의 관심밖에 벗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는 걸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하는 쌍용차 노동자파업
쌍용차 파업 현장 곳곳에 '총고용 보장'이란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다. 쌍용차 지부와 비정규직 지회가 공동으로 내거는 슬로건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투쟁하는 파업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70미터 굴뚝의 고공 농성도, 파업지도부의 기자회견도, 촛불문화제의 상징의식 때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하고 있다. 계급의 단결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을 그렇게 하고 있다.

결코 다르지 않은 노동자 처지
그러나 파업 그 전후의 행동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쌍용차 구조조정이 예상되었지만 아직 가시화되기 전인 2008년 11월에 정규직의 전환배치에 따라 비정규직 640여명 중 300명이 강압적 희망퇴직을 당했다. 아니, 쫓겨났다. 이것을 거부한 35명에게는 강제 휴업이 진행되었다. 아니, 잘렸다. 2009년 3월 9일에 짤린 게 맞다며, 정리해고를 통보해 왔다. 이 35명의 다수가 쌍용차 비정규직 지회의 임원과 조합원들인 점을 보면, 남은 300명을 저항없이 자르기 위한 수순이었던 것이다. 6월 안에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모두 폐업과 정리해고를 단행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비정규직 정리해고는 이후 정규직 구조조정과 맞물린 문제다. 3월 말부터 하청업체들이 폐업에 들어갔고, 이는 쌍용자동차 분사를 위한 정지작업이란 점이다. 분사를 통한 정규직의 대량해고와 비정규직화라는 어두운 계획을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희생된 것이다.

총고용 보장의 적용 원칙은 싸우는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조건이 다른 상황이지만, 총고용 보장의 기준이나 원칙을 다르게 적용할 수는 없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현재 파업투쟁의 과정에 있고, 함께 대오를 형성한 것을 중요하게 판단해야 한다. 정규직 조합원들도 싸우지 않는 조합원들에 대해 분명한 선을 긋고 있으며, 함께 싸우는 비정규직에 대해 함께 현장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높다. 자연스럽게 총고용 보장의 기준은 싸우는 노동자와 싸우지 않는 노동자가 되었다. 남은 것은 현장에서 인정된 소중한 원칙을 파업 이후까지 관철시키는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노무현의 죽음에 비친 ‘진보본색’

끝없는 애도, 노무현 신드롬
노무현의 죽음은 일대 사건이었다. 한국사회는 마치 노무현 생전과 생후를 기점으로 전혀 다른 사회가 되는 듯한 현상을 보였다. 상중에 벌어진 북의 2차 핵실험조차도 삼켜버릴 정도의 위력을 발휘했으며 500만에 가까운 사람이 직접 애도를 표하러 나설 만큼의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이쯤 되면 한국사회는 애도를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된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하겠다. 
국민장 기간 동안 보수진영도 일부 극우 인사를 제외하고는 노무현 추모 대열에 동참했다. 오히려 그 와중에 추모 자격 문제에 부딪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들은 직감적으로 노무현이 죽음에 이르게 된 데에 대한 부채가 있으며 그 원망의 화살이 자신들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이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독립된 정치세력으로 서지 못하고 있는 진보진영
문제는 진보진영이 보인 태도다. 진보진영은 보수진영이 보인 전전긍긍과는 정 반대로 조금 심하게 말하면 의기양양 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민주당이 노무현의 상주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야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진보진영마저 마치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려는 심정과 같은 정서를 드러냈다. 진보진영에서도 노무현은 ‘서민’, ‘탈 권위’,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었으며 진보의 아이콘으로 격상되었다. 물론 몇 가지 작은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과는 구별해야 한다거나,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것과 그의 정책을 반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거나, 노무현의 죽음을 미화하는 것과 노무현이 남긴 과제를 성찰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는 등이 그것이다.
적어도 1987년 이후 한국의 노동자 민중운동 또는 노동자 정치의 핵심 과제는 기존 보수 정치 또는 부르주아 정치로부터 독립된 독자의 영역과 세력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민주노동당이 등장함으로써 형식적 독립은 이루었다. 그러나 그 내용에서 민주노동당은 자유주의 세력의 이중대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진보진영은 지난 10년 동안 자유주의 세력의 대체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진보진영은 제 발로 서지 못하고 여전히 자유주의 세력에 기대고 있는 형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언제까지 대중의 뒤꽁무니만 따를 것인가
지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도 진보진영은 독자적인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대중의 뒤꽁무니를 따랐을 뿐이다. 탄핵을 반대하는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탄핵 반대의 동력을 노동자 민중정치로 안내하지 못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지난 ‘촛불 정국’에서도 같은 현상이 되풀이 되었다. 진보진영은 ‘촛불 대중’을 지지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것을 넘어 그들로부터 정치적 지도력을 획득하는 데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다.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만들어 낸 정치 공간 속에서 진보정치는 자신의 한계, 즉 본색을 또 다시 극명하게 드러냈다. 그러나 이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용산대참사라는 노무현의 죽음과는 또 다른 사건이 그 훨씬 전에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진영은 이를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용산대참사 초기에 보여준 노동자 민중의 분노는 결코 노무현의 죽음을 애도하는 열기에 비해 덜했다고 할 수 없다. 진보진영은 그 즉시 왜 전국에 분향소를 차리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가.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애도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시하는 것이라면 용산대참사가 벌어진 당시에 대중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않았던가. 울산 북구에서의 선거 승리는 도대체 지금 무슨 의미가 있는가. 노무현의 죽음이 일으킨 정치 현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제도 정치권의 구역질나는 위선을 탓하기에 앞서 진보진영, 진보정치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냉정히 돌아봐야 한다. 
고민택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노무현은 정말 탈권위주의 대통령이었는가?

소탈함 속에 가려진
유아독존의
권위주의 리더십




슬픔 속에 묻혀버린 역사와 진실  
‘죽은 노무현과 산 이명박의 싸움’, ‘죽은 권력 앞에 살아 있는 권력이 벌벌 떤다.’ 등의 자극적인 수식어구가 난무하고 있다. 소탈한 성품으로 권위주의 정치를 무너뜨린 전직 대통령과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는 현직 대통령 간의 권력투쟁이 전개되고 있는 것처럼, 노동자·민중들을 허위의 수렁으로 빠뜨리고자 하는 수식어구들이다. 
수백만의 추모객과 조문객들은 탈권위주의적이었던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였고, 전직 왕의 남녀들은 애도정치와 추모정치를 앞세워 죽은 노무현의 그림자를 즈려밟고 정국의 주도권을 빼앗은 양 이명박 정권을 향해 민주주의의 화살을 쏘아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진보정치세력들도 마찬가지이다. 전직 대통령이 자살까지 해야만 하는 한국정치의 악폐를 걷어치우자고 소리 높이면서 이명박 정권에게 그 책임을 묻고 있고, 노동자·민중의 정치를 외치지만 몸과 마음만은 영정 앞에서 머리 숙여 슬픔을 조아린 고뇌 가득한 진보주의자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그렇다. 한 시대의 역사와 진실을 자신의 죽음으로 묻어버린 노무현의 리더십이 진정 탈권위주의적이었고 민주주의를 강화시켰는가의 문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왕의 죽음에 대한 슬픔만이 흥건하다.
민주주의의 이행과정에 있는 사회일수록 동의에 기반을 둔 탈권위주의적이고 민주적인 지도자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많은 사람들은 죽은 노무현을 이러한 리더십의 소유자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노무현이 죽고 난 이후에는 아예 역사적 사실로 화석화시키려 하고 있다. 또 다른 역사의 왜곡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억압과 강제에서 벗어나지 않은 노무현식 탈권위주의
탈권위주의적이고 민주적인 리더십은 소탈하고 겸손하거나 퇴임 이후에 고향으로 내려가서 인터넷 소통을 잘 했다는 현상만으로 규정될 수 없다. 그러한 리더십은 최소한 사회구성원에 대한 억압과 강제를 기반으로 하지 않아야 하고, 권위주의적인 법과 제도에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권위주의적인 법과제도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사회구성원들을 동원하지 않아야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죽은 노무현은 탈권위주의적이고 민주적인 리더십을 구성하는 요건 중에서 어느 하나도 충족하지 못하였다. 죽은 노무현은 항상 노동자·민중 학살정책을 추진하면서 국가의 물리력을 폭력적으로 사용하였고, 이라크파병이나 한미FTA를 관철시킬 때는 항상 권위주의적인 법과 제도에 의존하였다. 
또한 그는 사립학교문제, 언론문제, 국가보안법 문제 등을 개혁하겠다고 의기양양했지만, 의회 내 다수 의석의 힘조차 활용할 의지가 없었던 사람이었다. 당정분리가 민주적이라고 내세우면서 민주적 사회개혁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정당과 의회로 떠넘긴 무책임성까지 보여준 지도자였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전직 대통령의 탄핵을 사회구조적인 지배세력의 힘에 저항하다가 발생한 것으로 보았고, 그 이후 고통 받는 외로운 투사에게 의회의 다수 의석을 선사하였다. 하지만 죽은 노무현은 탄핵에 반대했던 사람들의 개혁의지를 실현시킬 힘이나 의지가 없었고, 기득권 세력에게는 권위주의적인 법과 제도의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완성하기 위해 노동자·민중들에게 권위주의적인 법과 제도의 폭력을 사용했던 것에서 충분히 볼 수 있다. 

그가 보여준 탈권위주의적인 모습은 단지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고민하지 않고 내뱉었던 막말 리더십이었고, 사회구조적인 기득권 지배세력의 힘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고 아예 권력에서 일탈해 개인의 존재만을 부각시킨 유아독존 리더십이었다. 1988년 청문회 스타로 부각된 엘리트 정치인은 사회구조적으로 고착화된 군부독재의 틀을 바꿔야 할 소명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역사의식을 저버리고 개인의 영욕만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소탈하고 겸손하다는 죽은 노무현의 성정을 따랐던 전직 왕의 남녀들이 또 다시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이명박의 권위주의 리더십을 공격하자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역설의 미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권위주의적이고 유아독존적인 리더십을 탈권위주의적이고 민주적인 지도자로 둔갑시켜 가고 있는 우리 안의 봉건주의적이고 사대주의적인 근성이 또 민주주의의  질곡으로 존재하는구나.
김영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위기에 빠진 MB정부 ‘북핵위기’가 호재?

대북강경대응과 안보정국 조성은 더 큰 재앙을 부를 뿐




북한 핵실험 이후 보수 일간지들은 일제히 감정을 자극하고 강경대응을 부추기는 기사들을 전면배치하고 있다. 

고독한 군주의 결단
북한이 4월 5일 로켓 발사 이후 국제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 25일 보란 듯이 핵실험을 한 것은 핵무기만이 자신들의 체제를 지탱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믿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 동안 북미 대화는 양측의 신뢰상실과 무리한 요구로 인해 표류하면서 파열음을 내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과거 북한의 1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 제공자로서 미국발 세계 경제 위기와 그로 인한 패권국으로서의 지위 상실을 우려하면서 북핵 문제보다는 예전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한 전략에 집중했던 것이다.  
북한 핵실험은 무엇보다 건강 이상설에 시달리고 있는 김정일이 강성대국으로의 진입을 예고한 2012년까지 후계자에게 견고한 권력 기반을 물려주기 위함이라는 일반적인 분석은 일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특히 2012년은 남한과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기 때문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예고되는 시점이다. 이를 감안할 때 그때까지 대미 협상을 통해 체제의 안전판 격인 북미 관계 정상화를 달성하겠다는 의도 아래 ‘속도전’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후계체제를 3남인 김정운에게 물려줬다고 남한의 국정원이 발표했지만 확인된 바가 아직 없다는 것이다. 그 진실은 좀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퍼즐 맞추기와 같은 것이어서 섣불리 판단했다가 정책적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만약 김정운에게 권력을 상속하기 위해서 핵실험을 했다면 북한 민중들의 안전은 어떻게 보장하는지, 또한 상속세는 어떤 식으로 부담할 지 자못 궁금하다.  
이번 국면에서 이례적인 것은 중국의 북핵 실험 비판에 대해 남한은 물론 국제사회가 매우 흥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강력한 불만과 분노를 표출했지만 이는 동북아 정세를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서는 북한과의 동맹관계를 파기할 수 없기 때문에 기존 정책을 유연하게 가져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남한과 미국 등이 중국에게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일장춘몽에 불과하다는 것을 빨리 인식하기 바란다. 설령 김정일이 중국의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했다고 해도 국제사회의 비주류이며 거의 왕따 수준의 외롭고 고독한 군주로서 내린 치밀한(?) 결단에 대해서는 세심한 분석과 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한반도 위기는 이명박 정권이 책임져야 한다 
이제 남은 것은 남한의 PSI 가입과 이로 인한 무력충돌 가능성이다. 올 초부터 한반도에는 보수세력 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의 통일운동 세력에게서도 위기설이 유포되면서 남한 사회를 불안에 떨게 하였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북미 관계 등을 고려하면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심각한 수준의 위기가 아니었음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위기를 증폭시키면서 정세를 교란시키고 운동 전선에 혼선을 빚은 것에 대해서는 양측 모두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부터 앞으로 한 달여 동안 위기가 최고조에 달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협상을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보지 않고 보상으로 간주하는 시각을 갖고 있다. 이는 미국 내 보수 강경여론과 궤를 같이 한다. PSI 전면 참여, 미국의 핵우산 제공 명시 추진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강경 대응은 북한이 굴복하고 대화에 나와야 한다는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강경책이 오바마의 입지를 좁혔으며, 북한의 강경대응에 명분을 주고 있다. 이에 대해 이명박 정권은 ‘위기로 느끼지 않는’ 국민 정서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고 선동하며 국면 전환을 위해 몸부림을 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역시 더욱 강경해질 수밖에 없으며, 북미간의 대화는 당분간 없을 것이다. 현재는 ‘말 대 말’의 공방이 오가고 있지만 언제 ‘행동 대 행동’으로 주고받으면서 무력 충돌로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만약 안보리가 강도 높은 제재를 취하면 북한의 반발을 불러와 ICBM의 발사 시험과 추가 핵실험으로 이어지고 서해안에서의 무력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리 비관적이지는 않다. 중국이 안보리의 제재 수준을 유연하게 조절하고 북미 대화의 중재자 역할을 한다면 무력충돌의 가능성은 매우 낮아질 것이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에 억류된 2명의 미국 여기자에게 12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한 것은 오바마로 하여금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는 긍정의 신호로 읽고 반응해야 한다. 북으로서도 상황이 악화되는 것에 대해서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섣부른 행동은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 전환이 시급하다. 이는 남북 관계개선과 동북아 정세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위기 상황을 안보정국을 통해서 돌파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과거로 회귀해서도 더욱 안 된다. 더 이상 자신을 파멸의 길로 내모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배성인 | 한신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북핵을 둘러싼 각국의 반응

북한 핵실험을 둘러싼 국제사회 논의 

2006년 북한 1차 핵실험 
2007년 2.13합의, 10.3 합의 등을 통한 비핵화논의 
2007년 북에 대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및 에너지지원 약속
2008년 북한 핵프로그램 신고 및 영변 원자료 냉각탑 폭파 
2008년 미국 북 테러지원국 해제 
2008년 6자회담 세부적 검증체계를 둘러싼 논란. 협상 실패 
2009년 5월 25일 북한 2차 핵실험 감행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및 관련 7개국 대북제재 논의 
2009년 6월 16일 한미정상회담. 핵우산 제공 명분화 계획 논의 예정

 북핵문제를 둘러싼 관련국들은 저마다 ‘전쟁 억제와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실질적인 대안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시키고 있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먼저 이명박정부는 북한의 2차 핵실험 감행이후 곧바로 PSI참여를 선언했다. 그리고 김정일 이후 후계구도, 대륙간 탄도미사일 준비 등 북한 상황을 연일 발표하면서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에 대해 최근 노무현 전대통령 죽음을 계기로 확산되고 있는 이명박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저항의 분위기를 한반도 위기 증폭으로 전환시키려한다는 비판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집권정당인 자민당은 ‘대북 선제공격론’을 승인하면서 자위권 보장, 무기수출 완화 등 한반도 위기증폭으로 일본의 군사대국화의 명분을 확보하려는 적극적인 행보를 취하고 있다. 이는 최근 선거를 앞둔 보수층의 결집과 지지라는 정치적 계산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한미일 동맹흐름은 이러한 군사력 강화시도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과 함께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논의를 주도하면서 연일 강경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제재 초안에는 금융제제는 물론 선박에 대한 검색 강화 등이 포함되어 있고 무력수단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허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한반도 긴장은 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반전평화를 주장하는 단체들과 전문가들은 ‘미국이야말로 핵확산의 주범이며 NPT조약의 자의적 적용으로 군사적 패권을 유지하려는 태도가 전쟁을 부추긴다’고 비판한다. 
분명한 것은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 이명박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한반도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이 진정으로 한반도 평화를 바라하는 사람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선지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파업현장! 노동자의 로망, 계급의 로망

5색천을 기둥에 집단으로 감는 놀이. 기둥을 잡은 자들, 천을 잡은 자들의 힘조절과 협업의 난이도가 매우 높은 집단놀이다. 
5 색천이 거의 감겨 기둥이 알록달록 꾸며졌을 때 진행자 멘트, “서로 협동하느라 수고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는 이명박도 합니다. 이명박이 많은 문제를 꼬아놓고 풀지 못하잖아요? 우리가 이명박보다 낫다는 걸 보여줍시다. 어렵지만 이제 반대로 꼬인 천을 풀겠습니다. 에헤라디야~ ”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라고들 말한다. 노동자 개개인의 생존의 이유들로 파업이 시작되지만, 파업의 양상은 개인적인 이유를 넘어서 계급의 이해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또 그 과정에서 노동자 개인은 계급으로 각성한다는 의미가 바로 노동자의 학교란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골방 좌파들의 이론이거나 늙은 노동자들의 전설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2시간 파업, 4시간 파업, 하루 파업을 두고 노동자의 학교라고 말하면 그 말이 맞다 틀리다 판가름하기 전에 동시대인으로서 현실감각을 의심받을지 모른다. 지금은 그런 시대다. 그래서 파업이 노동자의 학교라는 건 하나의 로망이 되었다.
6월 6일 쌍용차 촛불문화제가 끝나고 조합원들은 그날의 일정을 정리하며 어떤 조들은 간단한 술자리를 가졌다. 창원지회 한 조합원은, “지금은 전쟁 중이라 원칙적으로 술을 마시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강력한 금지보다는 조합원들의 자율적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끔 술을 마시지만 파업일정에 피해를 안 주는 만큼에서 조합원들의 단합을 도모하는 정도”라고 했다. 현재 창원 조합원 131명이 결합하고 있고, 스스로 131특공대라 부를 만큼 파업 대오에서도 결의가 가장 높은 대오라고 소개했다. 그 자리에 모인 10여명 중 2명은 정리해고 대상에서 제외된 소위 ‘산자’인데도 함께 투쟁할 만큼 분위기가 좋다고 했다.
술자리 간담회의 첫번째 관심사는 6월 5일 있었던 노사정 교섭이었다. 내용이 정말 없는지, 있는데 모르는 것인지 의심하는 조합원들에게 그 자리는 규정력없는 비공식 자리였다는 점과 사측이 정리해고를 철회할 의사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공유했다. 그리고 6월 8일부터 창원 공장 재가동과 평택 공장의 회사측 집회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지에 대해 지도부의 방향이 어떤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구체 전술에 대해 어떤 행동이 좋을지를 두고 자유토론도 이어졌다. 이들은 평소 오전에 결의대회와 간담회, 오후에 전술 훈련, 야간에 촛불문화제를 하며 수시로 상황을 공유하고 훈련하기 때문인지, 속도감 있는 토론과 높은 실행의지를 보였다. 
파업 상황에 대한 공유가 끝나자, 삼삼오오 자유로운 분위기가 됐다. 창원에서 지역 연대투쟁의 경험이 많은 노동자가 신참 노동자에게 자기 경험에 기반한 민주노조운동사를 읊다가, “우리가 연대투쟁이 절실해서 많은 곳에 연대를 호소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동안 우리가 연대 투쟁에 나간 적이 없기 때문에 상당히 염치없는 호소다. 이 파업이 승리하면 지역과 금속에 신경써서 연대해야 한다. 월차를 내서라도 해야 지금 연대하는 동지들에 대해 보답하는 길”이라 말했다. 다른 경험 많은 노동자는 “우리가 한 것도 없지만, 이렇게 연대대오가 많은 것은 운이 좋은 것이다. 공황에 우리가 깨지면 다른 데도 깨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우리 쌍용차가 중요해 진 것”이라 덧붙이기도 했다. 귀가 의심스럴 정도로 파업 뒤에 숨은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술은 남았고 주당은 울겠지만, 자리는 일찍 끝났다.  
지면에서 생략한 자세한 이야기는, MB시대 만큼이나 아주 황량했던 시절 민주노조운동의 무용담을 재현할 조건을 갖췄다. 무기한 공장점거 옥쇄파업! 또 한편으로 이들의 분위기는 옛시절 지사풍의 무거움 보다는 경쾌하고 발랄한 느낌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결의를 높이며 쌍용차 조합원들은 노동자의 로망을 실현하고 있다. 이제 계급의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금속노조를 비롯한 민주노총이 나서야 한다.
찾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모두가 사는 길, 전선을 확대하라

6월 6일 쌍용차 촛불문화제에서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파업이 공권력에 깨지더라도 다시 거점을 잡아 싸우며 최전선을 지켜달라고 쌍용차조합원들에게 당부했다. 당시 위원장의 연설을 듣던 연대온 한 노동자는 "립서비스라도 총파업을 말하면 안 돼나?"라 외치기도 했다. 그렇다고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하지 않겠다'더라고 말한 것도 아니다. 어쨌든 민주노총 지도부만큼이나 답답한 것은, 이 싸움의 양상을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번 주 초(8일)에는 공권력 배치가 예상되었지만, 예상은 1주일 정도 미뤄졌다. 노무현 죽음 이후 MB와 한나라당의 지지율 하락과 민주당의 지지율 상승, 그리고 민심 이반 등의 문제를 고려할 때, 공권력 배치가 MB에게 부담스런 전술이었을지 모른다. 또한 3,000명이나 해고하는 초대형 사고에 공권력 투입의 명분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당장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쌍용차 파업이 노-사 문제에서 노-정의 문제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고, 결국 MB정부는 쌍용차 파업에 직접 개입할 것이다. 노, 사, 정 어디든 이 파국을 피할 수는 없다. 
현재 파업대오와 공투본은 공권력 진입에 대비해 다음 단계의 전술을 준비하고 장기전으로 갈 때 필요한 물품까지 비축해 놓은 상태고, 파업대오의 투쟁 결의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공장을 점거한 옥쇄파업의 맹점은 고립이다. 다음 단계로 접어들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쌍용차 파업이 고립되지 않도록 공장 밖으로 전선을 펼치는 것이다. 쌍용차 파업이 교란당할 것인지, 적을 교란시킬 것인지는 공장 밖의 전선, 곧 연대 총파업의 유무에 달려있다.
이번 파업은 단지 쌍용자동차 노동자만의 싸움이 아니다. 전체 노동과 자본의 운명을 결정할 대표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미 많은 현장에서 쌍용차 파업 현장을 방문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연대하고 있다. 쌍용차가 무너지면, GM대우, 기아, 현대의 순으로 무너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쌍용차 파업을 지키는 것이 곧 자신과 현장을 지키는 것이고, 금속노조를 지키는 것이다. 지금까지 쌍용차 노동자가 대표선수로 최전선에서 잘 싸우고 있다면, 이제 최소한 금속노조는 금속노동자 총단결의 기치로 이 싸움을 연대하고 확대해야 한다. 지금 당장 금속노조가 취할 전술은 간명하다. 금속노조 총파업이다. 강력한 총파업으로 쌍용차 파업을 사수하고 MB와 자본을 교란시켜야 한다.
찾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굴뚝 위, 아빠아~



친구들까지 동원해 아빠를 불러보았지만, 70미터 고공까지 목소리가 전해지긴 역부족이었다. 
굴뚝 앞을 지나친 지 잠깐 뒤에 “아빠아~”하는 소리가 다시 한동안 들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쌍용차 노동자파업이 승리해야 하는 이유

6.10 서울 시청광장에서 ‘해고는 살인이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시민들은 쌍용차 노동자파업에 깊은 지지를 보냈다. 사진제공 미디어충청 

위기의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를 둘러싼 치열한 전투 
경제위기가 오면 자본은 언제나 ‘위기 비용’을 노동자가 부담하도록 강제한다. 경찰을 동원하고 부르주아 법제도를 동원해 노동자들의 권리를 박탈한다. 필요하다면 법제도를 초월해 민주주의에 역행을 감수하면서까지 말이다. 정권과 자본의 무차별 공격이 본격화되자 이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전선도 만들어지고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그 전선의 맨 앞에 서있다. 공장을 점거하고 정권의 폭력진압을 방어할 준비를 하면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분명 자신의 생존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그만큼 그들은 절박하다. 하지만 이 투쟁은 전체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칠 것이다. 

산별노조운동의 시험대
쌍용차 노동자파업은 몇 가지 지점에서 향후 노동운동의 방향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우선 ‘총고용 보장’을 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파업은 ‘계급적 단결’의 모범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투쟁이 승리한다면 노동자투쟁의 계급적 단결과 연대문제가 당위를 넘어선 실제 투쟁원칙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둘째, ‘크게 뭉쳐 제대로 싸우자’는 금속산별 전환의 기치를 실현하는 문제다. 하지만 곳곳에서 이미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현대자동차지부를 비롯한 완성차지부들은 금속노조의 투쟁일정을 사실상 거부했고 기업의 울타리에 갇혀 투쟁을 회피하고 있다. 
결국 단위현장-지역을 중심으로 금속총파업을 조직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싸움을 금속노동자투쟁으로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산별노조는 조합원들에 의해 부정당하게 될 것이다. 자본도 ‘무늬만 산별노조’를 무력화시킬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금속산별노조운동은 시험대에 올라섰다. 

민주당 2중대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추모정국은 민주주의 문제를 전사회적 문제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민주당이 서있다.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세력들은 대중들의 이명박정권에 대한 분노를 ‘민주주의 수호’로 모아내면서 주도력을 형성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진보정당들과 시민단체들이 그 뒤를 열심히 쫓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민주주의인가’다. 이명박정권의 민주주의 파괴는 ‘자본 살리기’를 위한 통치행위다. 이를 위해 노동자민중의 손과 발을 묶고 눈과 입을 틀어막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민중들의 분노는 바로 자본 살리기를 위해 노동자민중의 모든 권리와 생존을 짓밟는 지배세력 전체를 향해, 자본주의 그 자체를 향해야 한다.
그 정점에 바로 쌍용차 노동자파업을 비롯한 노동자민중 투쟁이 있다. 계급적 정치운동을 하는 세력들은 바로 이 투쟁에 집중해야 한다. 이 속에서 파괴되고 있는 민주주의, 자본에 의해 압살당하고 있는 노동자민중의 생존의 권리를 지켜내는 투쟁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투쟁이 승리할 수 있도록 전국적 연대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이것이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2중대로 전락하지 않고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운동을 전망을 밝혀낼 수 있는 길이다.
명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니 거기 아직 장례 안치뤘어요?

용산참사 유가족 정영신님 (故 이상림 열사 며느리)

1월 20일 용산참사가 벌어진지 140일이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용산은 여전히 아프고 전혀 치유되고 있지 않다. 전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스타 정치인을 전국민적으로 애도하고 있을 순간에도, 용산의 철거민들은 계속되는 국가폭력 앞에 분노해야 했다. 용산참사에서 희생된 故 이상림 열사의 며느리 정영신씨를 지난 3일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났다. 

지금 문화공간으로 꾸며져 있는 레아호프에서 장사를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전에는 어땠나요? 

그 자리에서 시부모님이 갈비집을 하셨어요. 저는 강변에서 신랑은 용산에서 노점을 했죠. 부모님들 연로하시고 해서, 2006년에 리모델링을 해서 넷이서 호프집을 열었어요. 빚도 갚고, 전세방이라도 마련해보려고 했죠. 장사가 잘됐어요. 결혼을 미뤘었는데, 장사도 잘되고 하니까 작년에 결혼도 하고. 그때는 정말 좋았죠. 그런데 가게 문 열고 6개월 만에 사업승인이 나더라고요. 그리고 용역들이 들어오고 나더니, 공포분위기가 조성되고 장사가 안되고. 옆에 빈 가게에 냄새나는 것 가져다 놓고. 결혼하지 3~4개월 만에 계속 용역하고 싸웠죠.

용산참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재개발과 철거민의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사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철거민에 대한 시선은 아직도 곱지 만은 않은 것 같고요. 

‘재개발하면 뭔가 좋다’ 생각했는데,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나갈 수 있다는 걸 알았죠. 원주민 다 내쫓고 투기꾼들 들어와서 하는 개발이죠. 주위의 땅은 오히려 오르니. 갈 데가 없어요. 또 용역이 들어오면서 눈으로 보니까 열 받더라고요. 제가 보는 앞에서 시어머니 뺨을 때려요. 신고를 해도 경찰이 와서 “쟤들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얘기뿐이죠. 그 때부터 제가 더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했죠. 억울해서 못나가겠다. 돈 없는 것도 억울한데, 니들한테 맞으면서 도망가는 것은 하지 않겠다. 

참사 이후 5달이 다되어 가네요. 많이 힘드시죠?

좀 많이 답답해요.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고. 하지만 지금까지도 철거민들이 불내서 죽었다고 하고 있고. 불리한 기록은 다 공개하지 않고. 검찰은 법을 무시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날 사건의 본질은 용역과 경찰이 같이 진압을 했잖아요. 누구의 지시로 했는지. 언제부터 철거민들과 대화가 아니라 때려잡으려 했는지. 그런 기록들은 공개를 안하고, 9명의 철거민이 죽였다고 재판을 받고 있는데, 그럼 누가 죽였냐고요. 

얼마 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세상이 떠들썩했습니다. 영결식 하는 날 가셨다고 들었는데요.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에 가서 정말 속상했어요. 우리 이야기는 잊혀지고 있는데, 모든 사람들이 추모하고, 청계가 열리고. 이것도 있는 자가 죽으니까 참 다르다. 우리가 그렇게 소리 지르고 도와달라고, 다시 한 번 뭉쳐달라고 했을 때는 잘 안되었는데. 죽어도 서럽다. 철거민들은 가진 게 없어서 끝내는 그렇게 비참하게 돌아가셨거든요. 우린 진짜 억울한데, 우리는 정부가 아무것도 못하게 막고만 있잖아요. 

이명박 정부가 용산참사범대위 집회 불허는 물론 추모제까지 막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연행도 되고 구속도 되고 참 어렵게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은데요. 그런 부분이 또 사람들을 함께 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구요. 

아무리 지금 당장 힘들고, 공권력이 무섭고, 계란으로 바위 치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지만. 한 사람 한 사람 모이면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 있어요. 그런데 촛불이든 연대한다는 단위든 정작 정말 저희가 필요할 때 같이 있어줄까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죠. 많이들 이 싸움에 대해 정부랑 싸워서 과연 이길 수 있겠느냐는 판단을 하기 때문에. 하지만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함께 싸우면 이길 수 있어요. 

용산참사에 대해 정당들도 그렇고 얘기는 많은 것 같습니다. 특별법을 추진한다는 얘기도 들리고요. 그래도 아직 많이 부족하죠?

말은 민주당, 민주노동당 용산참사 발의를 하고 상정을 하고…. 그런데 한 번 더 현장에 와서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우리가 왜 아직까지도 경찰들에게 가로막혀서 추모제를 못하는지. 이의제기를 한번이라도 같이 해달라는 거죠. 말로만 제발하지 말고. 액션을 해줘야 되는데. 나보다 어쨌든 힘세잖아요. 국회의원들 오면 전경차도 싹 빠지고. 전경차 빠지면 우리 추모제도 하고, 집회도 하고.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길이 열리면 우리도 조금조금 희망이 보이는 거죠. ‘용산참사 용산참사’ 하나의 타이틀 잡고 정치운동 하듯이 하지 말고. 

다행히 다시 용산참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많이 와줬으면 좋겠어요. 많이 모였으면 좋겠고. 추모대회도 다시 하고. 미사에도 많이 와서 국민들이 다 알았으면 해요. 지방가면 “아니 거기 아직 장례 안치뤘어요?”라고 해요. 다 잊혀졌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 가슴이 아파요. 용산참사는 철거민들만의 얘기가 아니고, 어느 누구나 있을 수 있는 그런 일이라는 거죠. 노동자들도 마찬가지고. 박종태 열사도 그렇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도 그렇고.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어가자는 거죠. 나 잡아가면 다른 사람이 하지 않겠어요.

인터뷰 및 정리: 안재훈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