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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평등의 사회, 통신의 자유가 이끈다.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2002년 대선, 전세계 유래없이 인터넷과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은 새 대통령을 세우는 일등공신이 됐다. 그렇게 만든 대통령이 지난 3월 탄핵되자 다음 카페에 '국민을 협박하지 말라'는 사이트가 네티즌들의 자발적 참여로 개설됐다. 탄핵 정국 이후 단 10여일만에 회원수 10만 육박에다, 페이지뷰가 하루 2, 3백만에 이르렀다. 비록 휘발성이 높은 단기간의 응집이라 하더라도, 그 집결력은 초유의 사건이다. 디지털 카메라 정보교환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의 '디시폐인'과 유머사이트 '웃긴대학'의 웃대생이 거리로 나서고, 라이브이즈 닷컴의 네티즌들은 발랄한 정치 패러디물로 모두 구정치의 구린내나는 악습을 조롱한다.
동호회나 인터넷 카페 등은 취미, 오락, 관심사, 철학, 인생, 운동 등을 공유하는 정기 소모임들에서 이제 오프라인으로 뭉치며 정치 세력화하거나, 약자와 소수자의 억눌렸던 가치들을 서로 모여 분출하는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광화문 한복판에는 부패 정치인 청산을 외치며 오프라인에 대거 모인 네티즌들의 촛불 물결로 넘실거린다. 철저히 막혀있던 정보 독점의 '똥꼬'에 새로운 수평 커뮤니케이션의 '똥침'이 꽂힌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1인 미디어인 블로그나 미니 홈피도 집중화된 정보 권력에 못지않은 정보생산의 활동 주체임을 선보이고 있다. 이메일과 게시판은 기본이요, 모바일로 선거 운동을 하고 총선 속보와 뉴스, 출마자 프로필 등을 수시로 내려받는 정보 서비스가 등장한다. 바야흐로 최첨단 쌍방향 시대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수평의, 민주적, 상호소통의, 다중의, 파워 중심이 없는 유연함이다. 디지털이 선사한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은 끊임없이 위아래없이 서로를 이어주고 소통하며 자유로운 유목과 이동의 전제가 되고 있다.
통신의 자유는 문화에 다양한 결을 심는다. 걸으면서 즐기는 젊은이들의 '스탠딩 문화'는 모바일 세대의 소위 '노마디즘'(nomadism)을 부추긴다. 노마디즘은 끊임없이 이동하는 유목민적 속성을 지칭한다. 걸으면서 스타벅스 커피를 '씨핑'(sipping)하고, 일대일(P2P) 파일교환 프로그램을 통해 엠피 음악을 구워 듣고, PDA로 하루 일정잡고, 휴대폰으로 시사정보와 뱅킹 업무를 보고, 랩탑에서 원하는 뉴스 정보를 한 곳에서 모두 읽을 수 있고(Really Simple Syndication; RSS), 특수하게는 휴대전화의 대중화로 이뤄진 모바일 문화가 인터넷의 접속과 함께 쌍방향 기동성을 극대화한다.
잠깐 우리의 불운한 과거를 되짚어 보자. 60년대말부터 군사정권의 권위에 바짝 긴장하고 상명하복에 목숨걸고 정보와 지식을 한곳에 걸어잠그는 수직의 권위 커뮤니케이션이 현실을 압도했다. 장발족들은 잦은 단발령에 길거리 한모퉁이에서 머리에 땜통을 만드는 수모를 겪어야 했고, 통금 싸이렌에 밤거리 광장을 누빌 자유를 박탈당했고, 저항하다 이유없이 곤봉에 맞거나 갇히는 억압의 논리가 압도했다. 불만을 토로하다 머리깨질 수 있는 살벌한 흑백의 세상에서, 90년대 중반 이후 퍼져나간 민주적 소통기술들은 현실의 수직 커뮤니케이션에 숨통을 틔웠다. 너무도 오랫동안 개성이 억눌리고 사회적으로 획일화를 강요당해서인지, 새로운 수평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은 자유의 바람에 엄청난 뒷심으로 작용한다. 사회에 상식이 잡혀가면서 억눌렸던 다양한 목소리들이 민주적 소통을 통해 성장하는데 큰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은 정보의 흐름과 규모, 방향, 신뢰도 등 모든 면에서 과거의 상식을 뒤집었다. 인터넷 이용자가 늘고 상호 링크에 의해 서로서로 연결된 노드수가 증가하면서 권위 커뮤니케이션은 도전받고, 수직의 룰이나 구습은 위협받기 마련이다. 예턴대, 한국사회에 팽배했던 지식 생산의 독점을 깼던 <오마이뉴스>의 실험도 이러한 민주적 커뮤니케이션의 힘에 기인한다. 즉 신문 기자의 특권으로 보였던 기사 생산에 모든 인터넷 이용자들이 동등한 주체로 참여하고 개인의 능력은 게재된 글의 조회수와 반응으로 평가받는다. 지식 독점의 룰이 깨지고 누구든 정보에 접근하고 그에 대해 누구든 표현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역으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상호 연결 구조는 의도적 바이러스 침투나 공격에 삽시간에 도미노처럼 함몰당하기 쉽다는 점도 일깨운다. 그 파급력은 얽히고 ㅤㅅㅓㄺ혀 도저히 풀 수 없는 전자적 관계망의 구조에서 비롯된다. 긴밀하게 짜여질수록 하나의 문제가 퍼져나가는 속도는 종잡을 수 없게 된다. 기업의 데이터와 전화, 전자메일 등이 다른 커뮤니케이션 경로를 움직이던 시대가 지나 모든 정보가 같은 경로로 초속의 광대역 망을 탈 때 그 파급력은 더 확대되고 순간적이다.
물론 파급력은 파괴력의 다른 이름이다. 조작하기 힘들고 그 파급력이 강하면 순간적 파괴력 또한 거대하다. 2003년 1월 25일 '인터넷대란'은 외부의 공격에 전국의 인터넷이 어떻게 파죽지세로 무너질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 모바일 세대의 상호소통 능력과 기동성은 부유하지만 어디에서든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시킬 수 있는 위험성도 동시에 지닌다. 이러한 특성은 흔히들 얘기하는 전자 모바일 감시의 가능성을 야기할 수 있다. 지난 해 개인 사생활 침해와 관련해 논쟁을 불렀던 강남구 CCTV 도입과 종로구 인사동거리의 인터넷 생중계, 휴대폰 전화 도청 시비 등은 모바일의 기동성과 자유를 가로막는 악재로 기능하고 있다. 주택가 현금인출기를 쓰든, 식당에서 계산을 하든, 공연을 보기 위해 티켓을 끊던, 룸살롱에서 술을 마시던 간에 끊임없이 모바일로 어디서든 빠른 네트워크를 타고 자료와 정보가 한곳에 전송, 집적되어 가공될 수 있다는 사실은 현대 모바일의 위험한 일면을 상기시킨다. 한편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에 의해 구상되어 문제가 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도 행정 권력에 의한 개인 정보의 집적에다 발달린 정보들의 유출 위험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모바일 시대의 새로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어디서든 존재하는 '유비쿼터스'의 비전이 실지 촘촘한 감시망으로 오용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결국, 쌍방향 기술에는 이처럼 자유와 통제의 야누스적 얼굴이 작동한다. '바리깡'이 이발소를 나와 거리를 활보하면 통제의 땜통 제조기가 되듯, 모바일과 전자네트워크의 소통 기술이 잘못 쓰이면 일거수 일투족을 낱낱이 헤아리는 전자 족쇄가 되는 법이다. 당연히 그 쓰임새는 사회 성원들의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신장하는 쪽으로 나아가야할 것이다.
(SK텔레콤, it(잇), 2004.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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