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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특명: 파워레인저, 위험에 처한 인터넷 게시판을 구하라!
이광석 (suk_lee@jinbo.net)
여섯 살 먹은 아들녀석이 요새 '파워레인저'에 흠뻑 빠져 있다. 도통 다른 건전
명랑 비디오들이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서부 총잡이와 사무라이식 폭력이
난무하는 이 비디오만 보면 여린 감성을 자제 못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파워 레인저! 기다려, 내가 구출하마! 괴물아, 덤벼라, 슉슉, 퍽, 으악".
시청하거나 그 이후에 보여지는 진기한 태도 변화다. 사태가 이쯤되면 난 늘
몸을 불사르며 아들을 상대하는 사악한 괴물이 돼야 한다.
아이가 그토록 좋아하는 파워레인저 시리즈물을 두루 섭렵하다보니 내 눈에
정말 온갖 나쁜 것은 다 들어온다. 폭력은 기본이고, 인종적 편견으로 똘똘
뭉쳤다. 우리 애가 유독 다섯의 레인저 가운데 붉은 옷을 입은 백인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항상 중앙에 서 있고 제일 힘센 백인 레인저는
다른 변두리 넷과 함께 정의의 이름으로 악을 처단키 위해 무력과 폭력도
불사한다.
게다가 파워레인저의 선악 이분법은 상상을 초월한다. 현실은 단순하다. 선과
악, 적과 나 단순 대칭뿐이다. 적같기도 하고 아같기도 한 중간의 인물 설정은
애초에 없다. 또한 극 전개상 악과 적은 뻗거나 반쯤 죽는 정도론 부족하고
완전히 죽어 터지거나 사라져야 직성이 풀린다.
단순무식성은 목적하는 바에 빠르고 쉽게 이르는 방도지만, 그 가는 길에
다양한 경우들이 무시받고 다칠 수 있다. 이분 구도에 사로잡혀 악과 적을
치려다 잘못해 동료를 다치게 하거나 상관없는 제 삼자를 잡는 경우도 생긴다.
마치 미 우익 매파들이 이라크 땅에 뿌렸던 '눈먼' 폭탄들처럼 악의 씨를
말리겠다고 초가삼간은 물론이야 무고한 어린아이들까지 저 세상에 보내는 험한
꼴이 나올 수 있다.
파워레인저식 단순성의 폭력은 사회 곳곳에 배어 있다. 그저 그렇게 나두면 큰
별탈없이 갈 것을 뭔가 가두고 단속해야 직성이 풀리는 심사들이 그렇다.
잡음과 탈이 영원히 사라져야 할 것으로 보이면 이에 대한 무식한 발길질이
저도 모르게 시작된다. 특별히 새롭게 부상하는 문화 현상에 대해 구태의
버릇에 빠진 이들은 스스로 파워레인저가 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젊은이들의
총천연색 머리에 가위를 대거나, 코나 입에 뚫은 링을 잡아당기거나,
인터넷방에 통금 시간을 매기는 둥 비상식의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
얼마전 뉴욕의 한 허름하고 작은 호스텔에 묶은 적이 있다. 뉴욕 맨하턴
시내에서 여러 날을 보내야 했기에 비싼 여관비를 감내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한창 바람의 대학 초년생들이 배낭 여행길 추억을 담기 위해 잠시 머문다는
호스텔이 내 잠자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욱 당황했던 것은 8개 간이
이층 침대가 놓여 있는 방에서 얼굴도 모르는 16명의 지구촌 젊은이들이 뒤섞여
함께 잤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각자 잠자리를 유지한 채로 말이다.
알고 보니 이 작은 공간에 느꼈던 내 당혹감이 얼마나 어줍잖던지. 남녀유별의
설익은 윤리에 감염되어 살아왔던 나로선 이 호스텔의 자율 논리를 금방
깨우치질 못했다. 여럿이 방을 공유하면 슬슬 눈에 보이지않는 에티켓과 질서가
자리잡게 돼 뜬금없이 욕정이 일어설 일이 없었다. 이것이 성인 남녀가 머리
맞대고 자도 별 일이 없던 이유다. 또한 자신이 덮었던 이불을 항상 개고
퇴실시 빨래 수거함에 넣고, 사용한 식기를 각자 닦고, 뒷사람을 위해 화장실의
젖은 수건과 휴지를 갈고, 타인의 수면을 위해 실내 조명을 조절하는 등
투숙객들은 해야할 몫을 한순간에 터득한다. 매일같이 방에서 보는 얼굴들이
여럿 바뀌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규칙은 누가 크게 일러주지 않아도 유지된다.
분명 파워레인저였다면 남녀 혼숙에 의한 음탕 조장 방조죄로 호스텔을
무자비하게 때려잡았을 것이다. 공명심에 부르르 떠는 파워레인저라면 호스텔을
러브호텔로 착각할만하다. 호스텔에 드는 이들이 많다보면 간혹 문제가 있기도
하다. 밖에서 방값을 치르지않은 동료를 몰래 불러들이거나 술먹고 취중 객기를
부려 타인의 수면을 방해하거나 귀중품을 훔치거나 먹고 씻고 뒷처리를
나몰라하는 등 여러 잡음과 탈들이 많다. 하지만, 이는 호스텔의 근본적 운영
규칙을 뒤흔들지 못한다. 수십년간 호스텔 주인이 무리없이 경영해온 노하우는
그저 성별로 갈라놓는 목욕탕같은 단순한 경계와 통제의 규칙이 아니었다.
주인은 자율의 논리가 통제와 감시보다 낫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
요즘 인터넷 게시판을 관리하던 호스텔의 맘좋던 주인을 파워레인저로 전격
교체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그 과정에 정보통신부가 나섰다는 얘기가 있다.
파워레인저에게 '실명제'라는 초강력 무기를 쥐어줬다는 소문이다. 이걸로
불순한 게시판문화를 때려잡겠다는 얘기다. 인터넷 문화 현상의 소소한 탈을
다스리겠다고 할 일 많은 한 나라의 정보정책 집행기관이 주책없이 흥분해서야
되겠는가.
그간 게시판의 자율과 건전성이 익명을 이용한 소수 악덕 네티즌들에 의해
위협받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탈을 막겠다고 벌인 실명제가 공공기관 등이
개설한 게시판 참여를 떨어뜨리고 그나마 찾던 발길마저 끊게 만들면서 아예
게시판 문화 존립의 목까지 조르고 있다. 금융 '실명제'로 검은 돈을 양성화해
건전명랑한 시장 경제를 회복하듯 인터넷 게시판문화를 이에 똑같이 견주려하면
곤란하다. 익명이 게시판을 살리고 건강을 키우는 전제라면 전세계 유례없는
실명 도입은 극약 처방과 같다. 파워레인저의 단순 무식한 칼바람만 게시판에
그득해서야 곤란하다. 서로 얼굴도 모르는 전세계의 남녀가 만나도 신기하게
문제없이 잘 유지되는 호스텔의 자율적 논리는 온라인 게시판 또한 가지고
누려야할 문화다. 마땅히 지금 파워레인저에게 내린 정통부의 '위험에 처한
인터넷 게시판을 구하라'는 특명은 거둬져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게시판
문화가 고사하지 않는다.
<끝> 2003. 4. <네트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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