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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세대의 문화 양식과 서바이벌 게임
X, Y, Z 그리고 N 세대
X, Y, Z, N이 뭐냐고?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신세대 명명법이다. 대문자 알파벳도 모자라 1318과 386세대처럼 숫자로 그 세대를 가리키는 방식도 등장한다. 여기에선 386을 제외하곤 나머지 모두는 서로 친화력을 지닌 세대들이다.
우 리에게 'X세대'는 '서태지 신드롬'의 촉매로 93,4년에 풍미했던 10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연령층이다. 기성세대 입장에서 보면 X파일처럼 명확히 정의되지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세대가 X세대였다. 서열상 X의 동생은 Y다. 작년부터 종종 지상에서 접하곤 하는 'Y세대'는 13∼20살까지 분포해 있다. 평균 나이로 봐선 X보다 Y가 더 어리다. X와 Y의 정서적 공통점은 '새로움', '기성권위에 대한 도전', '반항', '자유', '개성', '감각주의' 등이다. 이들은 컴퓨터와 정보화에 강하고, 패션과 소비에 적극적이며, 개인적 가치를 최고의 자리에 놓는다. 이들 형제간의 차이라면, X가 소수의 아웃사이더 특징을 부각한 반면 Y는 다수의 세대 흐름을 강조하고 있다. 2천년(Y2K)에 주역이 된다는 의미에서 강조된 Y세대는 시기상으로 X세대 논의 이후에 등장한 다수의 신세대이다.
'Z세대'는 1318세대이다. 연령대로는 X와 Y세대에 비해 가장 어리다. 알파벳의 가장 끝자리를 택한 것도 그 이유에서 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N인가? 'N세대'는 네트워크 세대이다. X, Y, Z 삼형제의 가장 특징적인 속성이 N에서 수렴되기 때문이다. 미국식으로 따지면, N세대는 70년대말 이후 태어난 2∼22세까지의 전후 '베이비붐 세대'의 2세들이다.
이 들은 X, Y, Z 삼형제의 공통된 감성과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며, 특히 이들에게 컴퓨터와 인터넷은 삶의 필수 조건이다. 이것과 더불어 사고하고, 길들여지고, 생활하는 세대가 N세대이다. N이 3형제와 다른 차별성은 디지털 기술과 영상을 즐기는 세대임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이들에겐 이미 요람에서부터 즐겨온 영상, 인터넷, 게임 등이 삶의 필수 요소들이다. N세대는 네트를 통해 독식, 독점, 권위, 논리, 이성보다는 공유, 자유, 개방, 감성을 터득해 나간다.
N세대의 '진짜' 무서운 아이들
얼 마전만 해도 이루어질 수 없는 새로운 현상이 이 새로운 세대들에게서 목격된다. 송파 여중생들이 8미리 캠코더로 찍은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란 다큐 영화가 연일 화제에 오르고, <밥>이란 순수하게 청소년들이 만든 무가지와 웹진 <채널 10>이 또래들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누리는 등 과거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할 특징적 N세대 문화들이 만개하고 있다. 영상과 인터넷에 친숙한 새로운 세대들은 이같은 소수 문화 형성의 가장 전위에 서있다. 문화 향유와 메시지 생산의 주인으로 이제 나이 어린 청소년이나 신세대가 적극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앞에서 끝으로 이어지는 맥락은 별로다. 그래서 장황하고 지리한 전후 맥락은 좀을 쑤시게 한다. 그림 하나 없는 두툼한 이론서는 그들에게 지옥이나 다름없다. 만화책을 보라. 그들이 만화를 볼 때면 수십권의 책을 쌓아놓고 순식간에 눈을 굴린다. 연배가 적을수록 책읽는 속도는 빨라진다. 이미 그들에겐 영상과 도상(Icons)이 습관화되고, 훨씬 편하다. 고정되어 있는 그림보다는 움직이는 동영상, 평면보다는 3D가, 넓은 길보다는 미로같은 길을 따른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적응력이 강하며, 빠르게 배워나간다. 특히 컴퓨터에서는 더욱 그렇다. 네트는 전후 맥락을 무시한다. 예컨대 하이퍼-링크 기능이 그것이다. 이리저리 네트를 통해 넘나들며, 네트의 속성상 그들은 잠시도 어디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운 세계를 접한다. 인터넷의 홈페이지도 그 무한한 개성의 표현 방식이다. 영상과 이미지로 자신의 개성을 한껏 홈페이지에 각인한다. 채팅과 게시판에는 새로운 언어형식이 등장한다. '한글맞춤법표준'은 그들에게 권위일 뿐이다. 바로 그들이 새로운 언어의 조합과 통신예절을 스스로 창조하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청소년 또래집단의 대화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 인터넷의 기술적 특성은 새로운 세대들에게 가장 적합하다. 스스로의 차이를 드러낼 수 있는 최적의 기회를 디지털이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이들 새로운 세대는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헐렁한 바지를 찢어 질질 끌고 다니거나, 머리를 컬러로 물들이고, 부두교를 연상케하는 장식물과 피어싱(피부뚫기)으로 신체를 치장한다. 일본의 신주꾸 거리를 연상할 정도로 그들의 패션은 원색적이다.
기성세대가 보기에 N세대는 진짜 무서운 아이들이다. 신세대 스스로가 '어른들은 몰라요'를 항변하던 수세기가 가고, 이제는 그들이 미래이자 주인공의 자리로 발탁된다. 21세기는 기성 권위의 힘으로 미래를 헤쳐나가기에는 밑천이 부족하다. 기성세대는 걸림돌이다. 개인의 창조성과 실험성이 N세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미래에는 N세대가 지닌 개성과 자유를 발산하는 방식이 중요해진다. 빠르게 적응하고, 혼란스러우나 스스로의 동일성을 찾아내며,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그들만의 문화가 부각되는 것이다.
N세대의 아슬아슬한 생존 조건
최 근 주요 신문사마다 인터넷 생존 게임을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다. 사실 이 서바이벌 게임은 알고보면 물리적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 채, 정해진 시간과 한도액을 가지고서 오로지 인터넷이란 수단을 통해 버티는 미련스런 게임이다. 이 게임의 참여자들은 가상의 네트워크를 통해 떠돌아다닐 순 있어도, 실지 옷가지와 음식, 그리고 여타의 필수품들을 외부에서 일차로 조달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게임 주최측은 참여자들이 외부 접촉없이 정해진 공간 안에서 게임 시간을 초과하여 장기간 머무를 때 생기는 정신적인 스트레스 상황은 고려에 넣고 있지 않다. 어쨌거나 주최측의 의도가 인간에 대한 네트의 무한하고 풍부한 가능성을 계산하고 이벤트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역으로 이 게임은 결국 인간의 생존 조건이 물질 공간에서 주어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워쇼스키 형제가 만든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진정 인간 정신의 세계가 하나의 가상 영역을 만들어낸다. 무중력의 집합적 공동심리가 펼쳐지는 전자장이 펼쳐진다. 가상에서의 식사, 의복, 사랑 등 모든 영역이 진짜인 것처럼 느껴지는 세계를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상의 정신 세계 밖에는 기계가 만든 자궁 안에서 인간 자신을 갈아서 만든 양수로 연명하는 자신의 육체가 전제된다. 이처럼 네트의 가상성이 부각될수록 점점 더 현실의 조건과 밀접히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본다면 N세대의 자유분방함이 제대로 된 생존 조건을 찾는 방법은 일차적으로 현실 삶의 결에 달려 있다. 단지 기계의 인터페이스를 통해 소통하는 삶의 조건만이 N세대의 생활 근거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성세대의 역할은 중요하다. N세대를 둘러싼 물리적 현실의 질과 결을 규정하는 것이 부모세대인 것이다. 가상과 네트로의 도피가 자라나는 세대를 지극히 무익한 욕망 배설의 말초적 관심사로 빠뜨릴 수도 있다. 이 상황은 기성세대로 하여금 자라나는 신세대의 개성과 자유를 우선 현실 안에서 뿌리내리게 할 의무를 갖도록 한다.
또한 그들의 개성과 자유가 기업의 현금화 관심과 맞물릴 수 있는 소지가 다분히 있다. N세대의 욕망을 자극한 디지털 상품의 미끼라는 유혹이 도사릴 수 있는 것이다. 이미 그들은 거대하고 매혹적인 떠오르는 구매층이 되어버렸다. 예로부터 인구통계학적으로 보면, 젊은 구매자층은 여타 세대에 영향을 미치는 주된 견본 시장 역할을 떠맡았다. 이른바 '청년 숭배 혹은 물신'(Jugendfetisch)은 여타 세대에게 영향을 미치는 신세대 중심의 상업화 논리를 극대화한 지칭용어이다. 이처럼 N세대에 대한 끊임없는 표적 작업과 유혹은 자유롭게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을 차단하고, 기업의 끝없는 이윤욕의 사슬로 그들을 얽어맬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 또한 N세대에 드리워진 미래의 우울한 '그림자'이다. N세대의 생존 조건은 결국 현실에서의 삶의 조건에 위태로이 매달려 있다.
하지만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럴수록 N세대의 가능성은 더욱 풍부하게 공존한다. 최근 국내에도 번역되어 발간된 {N세대의 무서운 아이들}이란 책에서, 돈 탭스콧(D. Tapscott)은 N세대의 긍정적 가치를 설득력있게 서술하고 있다. 그는 기성세대가 지닌 N세대에 대한 우려, 예를 들어 컴퓨터 중독증과 개인주의 성향 등을 기우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N세대는 기성세대와 달리 네트에 상주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스레 네트를 통해 또래 집단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사회성과 공동체 의식을 키운다. 받아들여야할 사실은 이들 네트세대가 인터넷이나 영상을 통해 접하는 가공된 현실이란 그들 자신의 삶이자 현실이란 점이다. 그들의 문화 양식 자체가 과거 세대와 달라진 것이다. N세대에게 가상 안에서의 유랑은 현실과 마찬가지로 농축된 삶의 경험이자 바탕이 된다. 그러나 물질 세계의 텍스트에 친숙한 부모세대는 네트를 두려워한다. 부모세대는 네트를 수렁으로 보며, 자신의 자식들이 그 수렁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과거의 세대들은 자신의 두려움을 자식에게 전가한다. 통신모뎀을 빼앗고, 심한 경우엔 컴퓨터 자체를 못쓰게 만든다. 탭스콧의 말대로 앞으로 세상의 모든 변화를 N세대가 주도한다면, 기성세대는 새로운 세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늘릴 필요가 있다. 물론 어느 한 세대의 월권은 자칫 파국에 이를 수도 있다. 정보화 신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억압은 가능성의 영역을 차단하고, 기성세대에 대한 N세대의 완전 부정은 대안없는 일탈로 내달을 수 있다. 기성세대의 이성 능력과 신세대의 자유적 발상이 적절히 어우러질 때만이 N세대의 미래적 가치가 밝을 수 있는 것이다.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한진해운사보> 9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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