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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육] 서평: 우리는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원한다!

<자유의 새로운 공간 (갈무리)> 서평 - 이광석 우리는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원한다! 우리교육(99년 1월호 게재) 9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도 운동의 차원과 지향에 변화가 일고 있다. 운동의 역사적이고 정세적인 쇠퇴가 모순을 혁파하고자 하는 실천적 인간 본성을 사그러지게 할 수 없듯이,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새로운 물결의 파장은 이탈리아의 아우토노미아(autonomia) 운동과 프랑스의 1968년 5월혁명에 개입했던 신좌파들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아우토노미아의 가장 널리 알려진 이론가인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와 프랑스 신좌파 운동가들 중 가장 실천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펠릭스 가따리(Felix Guattari)의 공저인 {자유의 새로운 공간}은, 바로 이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던 핵심적인 동인이다.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아우토노미아 운동은 1950년대말에서 70년대말까지 학생, 여성, 인종, 동성애 등의 부문운동이자 비정당적 소수집단의 자율적 저항 운동을 가리킨다. 실지 가따리도 아우토노미아 운동의 일환이었던 독립 라디오운동에 가담하였고, 귀국후 파리에서 '라디오 93'의 운영을 돕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그는 단일체적 정치 정당을 신사회운동의 참여민주주의에 기반한 '욕망의 미시정치'로 대체하기를 고대했다. 이렇게 본다면 그들은 인식 기반과 정치적 관점 모두에서 공유된 정서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역사적으로 68년 프랑스에 일어난 5월혁명은 그들에게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시발점이 된다. 이들이 새로운 근거는 기존 좌파들의 노동계급 중심, 거시정치 중심, 대중과 전위의 이분법, 중앙집중적 조직형, 단일의 분파적 기획 등을 거부하는데 있다. 이들은 5월혁명을 통해 사회적으로 다양한 소수자들(학생/여성/환경/동성애/인종/문화운동)의 주체적 '욕망'에 직접 노출됨으로써, 자본/사회주의 공히 개인과 소수를 억압하는 기제였다고 주장한다. 이제까지 양체제의 초월적 권력은 모두 개인/사회, 사적/공적, 가족/국가, 여자/남자, 하위/상위 등 단순화된 이원론의 위계적인 대립구도를 통해 대중의 순응을 강요했다고 본다. 그래서 그들은 복수적인 것에 대비된 '단수적'(singular)이고, 몰적인(molar) 것에 대비되는 '분자적'(molecular) 욕망이 자유롭게 발현되는 커뮤니케이션 투쟁을 선택한다. 단수적이고 분자적인 투쟁이란 주체의 이질적이고 고유한 특질을 상실하지 않는 자율적 과정이다. 이들은 새로운 자율적 주체들의 목소리를 담은 정치적 실험 속에서 위계적이고 초월적인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감지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통일되고 고정된 이미지로 정형화할 수 없는 것들의 분출을 통해 진정한 저항의 가능성을 찾아보려 한다. 문제는 각각의 분출된 욕망들을 어떻게 연합하고 조직화할 것이냐이다. 이 말은 곧 소수적인 것을 분자적 그물망으로 어떻게 정치 세력화할 것인가의 질문이다. 물론 이들에게 전제는 전통적으로 실천적 운동의 폐해였던 동질성이나 위계적/양가적 가치에 의해 억압되는 조직적 조건은 철저히 배제한다는 것이다. 가따리와 네그리의 경우에는 과거의 노동자 중심주의적 담론을 버리면서, 새로운 연합의 가능성을 노동계급, 제 3의 생산부문들, 모든 유형의 주변화된 소수집단들의 연합을 통한 운동과 저항의 구성적 과정으로 언급하고 있다. 즉 "진정한 문제는 동일화의 체계를 창안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주체적 세력들을 차이의 그물망으로 연결하는 과정 속에서, 그리고 동시에 자본주의적 권력의 여러 블록들을 파괴하는 과정 속에서 존재하는 모든 사회적 세력들의 다가적 참여의 체계를 창안하는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각각의 운동체들이 이행의 동일한 프로젝트를―사회주의 이건 공산주의이건―향해 가기보다는, "반체제적 담론 배열들의 초한적(超限的) 연결망"을 통한 "직접적 투쟁의 경험만이 그것들의 윤곽을 결정할 것"이라 본다. 결국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대안적인 사회의 청사진을 구상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과정적이고 복수적이고 풍부한 해방적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발현하고, 이를 분자적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생산적 협력'의 운동이다. 한국 사회에도 이미 통신 동호회, 마니아들, 동성애자 모임, 언더그라운드밴드 등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소수의 문화 주체들이 권력의 경계와 여백을 따라 '자유의 새로운 공간'들을 만들어나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전에는 억압되어 있었던 각 개인들의 창조적 에너지의 잠재력이 단수적이고 자율적인 방식으로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과연 새로운 정치적 대안 세력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일단 보류하기로 하자.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 책의 필자들이 지적하듯, "집단적 잠재력은 단수적인 것이 자유롭게 될 때에만 비로소 실현될 수" 있으며, 자유의 새로운 형식은 이 속에서 마련된다는데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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