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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랩터’의 잔혹마당 2탄
식탐하다 돌씹다
이광석 / 네트워크 편집위원
전 미음반산업협회는 도를 지나쳐 9월 8일 저작권 위반 혐의로 261명의 이용자를 무더기로 기소했다. 희생양들의 선발 기준은 의외로 간단했다. 카자아, 아이메쉬, 그록스터 등 대여섯의 일대일(P2P) 파일교환 서비스의 이용자들 중 1천 곡 이상의 엠피 파일을 컴퓨터에 저장한 ‘강성’ 이용자에 한해, 무작위 샘플링을 벌여 집단 기소했다. 물론 ‘사면’의 축복도 내린다. 시장의 법칙을 거스르는 파일교환 행위를 두 번 다시 않겠다고 반성하고 ‘준법서약’하면 과거의 죄과는 덮어준다. 랩터의 알을 훔쳐 호되게 당하고 살아남은 쥬라기공원의 인간들 마냥, 속죄하고 빌면 인정머리 없는 ‘카피랩터’(지난 호 1탄 참조)도 참을 줄 안다고 감언한다.
처음에는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대일 파일 교환 서비스 회사들이 카피랩더의 표적이었다. 그도 여의치 않자, 다음엔 인터넷서비스 제공업자들에게 이용자 신상정보를 내놓으라 엄포를 놨다. 약발이 재차 부족해지자, 아예 직접 나서서 정보 이용자들을 잡겠다 사냥을 벌인다. 음반협회가 이용자들의 사냥을 모의한 지가 지난해 여름부터라니, 그 동안 효과 분석서부터 나름대로 다 재고 꾸민 일이다.
랩터는 교활하다. 비록 식탐에 눈이 어두워 결정적일 때 실수를 범하지만, 그 사냥 과정만은 잔인하리만치 치밀하다. 덩치 큰 먹이감보다 이용자들을 각개로 잡겠다고 나서면 뭔가 얻을 잇속이 분명해서다. 어차피 음반시장의 침체는 파일 교환 변수보다 시장 내재적인 문제라는 점을 그들 스스로도 잘 안다. 전반적인 자본주의 경기 하락에 의한 문화상품 소비 위축, 디브이디(DVD)와 같은 다른 동급 대체 매체들의 소구력 상승, 가격 하락 단행에도 여전히 비싼 음악 씨디 가격 등 악재들이 제거되지 않으면 음반 시장 침체는 반영구적이다. 자연히 그들이 살길은 파일 교환을 막고 불법화하려 바둥대기 보다는, 이용자들을 놀래켜 파일교환을 시장 틀 안에 끌어들이는 방법뿐이다. 이것이 지난 1년간 카피랩터들이 모의해 얻은 결론이다. 누구는 지금을 ‘종획(Enclosure)운동 2기’라 부른다. 물론 1기는 양을 치던 공유지를 대지주들이 제멋대로 사유화해 농민으로부터, 토지로부터 박탈했던 18세기 영국 암흑기를 지칭한다. 반면 2기는 미국 내에서만 1천만이 넘는 파일교환자들을 전자 공유지로부터 겁을 줘 내쫓고, 새롭게 상업화된 전자 텐트 안으로 이들을 우격다짐으로 밀어 넣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늘 잔혹은 코미디와 통한다. 잔인한 현대판 엔클로저가 펼쳐지는가 했더니, 벌써 코미디 한편이 이어 나온다. 261명 가운데 한 여성이 카자아에서 2천 곡 이상을 저장했다는 혐의로 카피랩터들의 불법 파일교환 기소 대상자로 지목됐다. 곡 당 벌금이 1억 5천 만원이란다. 그런데, 그 여성은 칠순이 다 되가는 할머니에 컴맹에다 카자아란 프로그램을 깔 줄도 모르고 이도 전혀 작동 않는 애플 컴퓨터를 소유한다. 사냥감으로 완벽한 부적격자다. 랩터들의 과잉 식탐으로 돌까지 와드득 씹은 격이다. 이후 노인에 대한 기소를 슬그머니 취하했다고 한다. 이제 숫자상 한 명 줄어든 260명이 카피랩터들의 공식 먹이감이다. 앞으로도 종종 돌을 씹으며 전혀 무관한 생사람을 잡겠지만, 식욕이 완전 사라지면 모를까 이들의 피의 향연이 순순히 끝날 듯 싶진 않다.
<네트워커, 2003. 10. 제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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