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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e세상] 하이퍼링크 사회 만들기

하이퍼링크 사회 만들기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초고속 인터넷을 쓰며 시·공간의 벽을 넘어 마음대로 움치고, 그야말로 날아다니는 세상 이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전자공간에 비해 현실의 장벽은 부동에다 견고하기까지 하다. 그 러니 살면서 막히고 부딪히는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좁은 울타리를 둘러 쳐놓고 이방인을 꺼리며 분과 학문 속에 꼭꼭 움츠리는 학계 현실을 보자. 학문의 본성상 갈갈이 찢겨선 얘기될 수 없는 것들임에도 불구, 기득권을 위해서라면 '경계넘기'는 주제넘은 월담이요 월권으로 취급된다. 교수 임용에도 끼리끼리와 가족주의에 멍들어 암만 능력있는 학자도 룰을 벗어나거나 외도를 하면 '따' 당할 판이다. 기득권은 움켜쥐고 책임은 떠넘겨라. 이런 악습은 조직 사회에 더욱 지배적이다. 지하철 사고가 터지고 물난리가 나고 태풍이 강타해 사람이 깔리고 죽고 하면 여전히 부처간 책임 미루기에 목숨건다. 철마다 뭔가 책임지고 물러나는 고위 공직자는 많은데, 정작 부처간 협 의로 위기를 넘기고 대책을 부심하는 노력은 드물다. 부처간 정책이 중복되거나 말거나 예 산 낭비를 하더라도 이권이 달리면 목숨걸고 혼자 독식하려 한다. 하지만, 정작 함께 일을 매달려 처리해야 할 때는 흩어져 서로가 적이다. 이렇듯 사회 현실을 보면 기득권과 이권에 의해 마구잡이로 금이 그어져 있고 외부의 근접을 철저하게 막는 높은 옹벽이 솟아 있다. 대학이 분과 학문들로 분리된 지는 오래다. 그 대부분의 책임은 자본주의의 요구에 따른 "헤쳐 모여"였다. 기업이 원하는 인간형에 맞춰 각 분과 학문들은 공장 분업 마냥 철저히 나눠졌다. 그러나, 현실이 복잡해질수록 분과 지식의 한계가 뼈저리게 느껴지는 법이다. 이 젠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에서조차 학문간 경계를 넘는 '학제간' 연구가 흔하다. 서너 개의 분과 전공을 아우르는 학제간 학위 과정도 여기저기 생긴다. 교수들도 그룹 토 의에서 다양한 인종의, 서로 다른 학문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선호한다. 사회과학 분야에 공학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이 임용되는 일은 벌써부터 흔하다. 이들에게 학문적 월경은 불 경이 아니라 자연스런 학문 지평의 확장 방식이다. 오히려 분과를 넘지 못하는 학자야말로 인식의 협소함으로 한참 뒤쳐지기 마련이다. 60여년전 옛날 얘기로 잠시 돌아가 보자. 전후 1945년에 미국 과학연구개발국 국장인 배 니버 부시(Vannaevar Bush)는 '미멕스'(memex)란 이상한 기계 장치를 논한 유명한 글을 썼 다. 그는 소통하지 못하는 분과 학문들의 한계, 보다 본질적으로 인간 의식과 과학의 한계를 느끼고 이를 해소하는 장치를 구상했다. 그의 꿈은 인간 의식과 지식을 서로 연결할 수 있 는 기계 장치, 미멕스의 개발이었다. 비록 실현되진 못했지만 분과 학문과 의식의 한계치를 가상의 연결을 통해 확장하려는 그의 시도는 이제와 보면 '하이퍼링크' 기능을 지닌 거대 슈 퍼컴퓨터의 기획에 해당한다. 부시의 미멕스는 오늘날 인터넷의 하이퍼링크 기능의 원조이자 기술적 수단을 빌어 인간 의식의 경계넘기를 시도한 중요한 업적으로 꼽힌다. 물론 인간 지식을 거대 미멕스에 집적 하려는 시도는 '빅브라더'의 혐의를 충분히 받겠지만, 분과 학문간 지식을 링크로 연결해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희망은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벽을 두고 있지만 서로 부분적으로 교집합이 그려지는 곳들이 태반이 다. 인터넷은 요 합치는 부분을 검색으로 모아주고, 하이퍼링크로 넘나들게 해준다. 링크들 이곳저곳을 넘다보면 의도치않게 해결점을 찾거나 중요한 정보나 아이디어를 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현실의 법칙은 다르다. 분명 하이퍼링크로 연결만 되면 지식 효과가 제곱 이 상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부처 이기주의'와 '제 밥그릇 챙기기'가 그 연결을 가로막는다. 한가지 정책 입안 사례가 떠오르면 대개 문화관광부, 정통부, 교육인적자원부, 과학기술부 가 함께 머리를 모아 지혜를 발휘해야 해결되는 일이 다반사다. 분명 최소한 서너개의 정부 부처가 연루되고 합심해야 일이 풀린다. 현실이 복잡해질수록 모든 업무나 안건이 더욱 뒤 엉켜 그만큼 사회에 인터넷의 링크같은 기능이 절대적으로 아쉬어진다. 그래서, 학교, 관공서, 기업 조직, 정부 부처 등 모든 곳에 하이퍼링크의 태그들을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형식적인 업무 협조로는 부족하다. 어디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구색으로 의례 껏 마련한 관련 단체나 그룹 홈페이지들을 늘어놓는 형식적 링크 방식으론 곤란하다. 단위 분과, 부처, 학과 등을 링크로 연결해 상호소통의 길을 터놓을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링크 는 마치 하이퍼텍스트의 구조처럼 서로를 참조하고 서로에서 이해를 구하는 보다 긴밀한 연 결 구조라야 한다. 예컨대, 부처간 사안을 아우르는 링크 형식이 전문 위원회(task force)든 특별대책 팀이든 아니면 보다 유연하고 작은 조직 단위로라도 수시로 빠르게 구성되어 함께 지혜를 짜내는 형식이 바람직하다. 물론 사회의 장벽을 넘어 링크를 만드는 작업은 인터넷에서 링크의 태그를 만드는 것처럼 만만하지 않다. 어렵더라도 사회적 링크들을 하나둘 만들다보면 조직의 유연성과 개방성은 물론이고 이는 결국 중요한 사회적 자산으로 축적된다. 각자의 목소리를 높이기 보단 처한 곳 너머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협업하는 사회 각 부문의 하이퍼링크가 그래서 절실하다. (아름다운 e세상, 200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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