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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e세상] 보는데서 만지는 기술로 : 기술 제어력 키우기

보는데서 만지는 기술로 : 기술 제어력 키우기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요며칠 도서관에 가서 이상한 경험을 했다. 모처럼만에 내 구닥다리 랩탑을 끼고 앉아 유선 랜을 쓸 수 있는 인입선들이 모여있는 한쪽 구석에서 인터넷 서핑을 했었다. 흘낏 한번 주의를 둘러보니 당시 내 주위에 앉아있던 예닐곱명의 학생들은 거의 대다수가 컴퓨터 모양새도 훨씬 내 것에 비해 3, 4년 신형에다 무선 인터넷카드가 다들 장착된 랩탑들을 쓰고 있었다. 필자는 당연 무선 인터넷카드를 갖고 있는 친구들이 유선랜 케이블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나중에 얻은 허무한 답은 컴퓨터 전원 공급처가 그 곳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전기 컨센트를 찾아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무선 랩탑들이 헤쳐모여한 것이다. 거의 날아다니는 속도에 무선카드를 장착해 어디든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는 랩탑들이 전원을 찾아 모여드는 꼴을 상상해보라. 기가 막히기도 하거니와 뭔가 큰 아이러니가 존재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얼마전 미국 동부를 비롯해 거의 대부분 지역에서 정전에 휩싸였던 당시, 휴대폰의 모든 기능이 정지되고 교통대란이 벌어지면서 결국 인간의 두 다리로 맨하턴 다리를 빠져나가는 인파들의 모습과 비슷한 무기력의 정서가 감지된다. 인간이 쌓아온 기술의 '첨단'이란 수사가 단지 전기 정전으로 허무하게 무너져내린다. 그 어떤 외부의 도전에도 끄떡없다는 컴퓨터 서버들이 어느날 버그에 파죽지세로 무너지고 한 국가의 기간망을 속수무책으로 마비시킨다. 올해초 우리 대한민국의 얘기다. 정보입국의 호언장담이 몇 줄의 전자 버그에 꼴사납게 망신당한다. 정보기술에 대한 인간의 열광과 과신을 반대로 통제 불능 위기로 되갚는다. 기술 과신이 불러오는 해악과 부정적 결과는 주위에 부지기수다. 예컨대, 범죄 예방을 위해 CCTV는 사회를 수호하는 안전핀으로 격상된다. 올 한해 한참 공적 논쟁을 이끌었던 강남 주택지구의 폐쇄회로 텔레비전은 이제 전국 설치를 목표로 진군한다. 기술적 수단이 범죄를 줄일 수 있으리라는 통제욕에 눈멀어 광장에서 자행되는 시민들의 인권 침해는 아랑곳없다. 개인의 사생활은 무엇보다 정보기술이 지킬 것이라 맹신하는 부류는 프라이버시 향상 기술들(Privacy Enhancing Technologies: PETs)에 목숨건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필터링 소프트웨어와 차단 프로그램은 막아야 할 것은 못막고 쓸데없이 건강한 정보들만 수없이 다치게 한다. 외설을 지칭하는 키워드들로 무식하게 체로 걸러내 이에 맞지않는 멀쩡한 사이트들까지 황천에 보낸다. 9-11 동시다발테러 이후 테러분자를 잡겠다고 부쩍 수요가 늘어난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도 대표적인 기술 남용의 사례다. 위성으로 사람의 동작 패턴을 연구하고 각 인간이 지닌 고유의 동작에 의거 사람들을 분별하겠다는 논리나, 마구 수집된 개인 정보를 통계값으로 환산해 이례적인 수치가 발생하면 '테러분자'로 몰겠다는 구상 자체에는 인간 감정이라곤 전혀 없다. 혹 오류가 드러난다 하더라도 이는 기계 오류에 불과하다. 이에 테러 혐의를 받고 영장없이 구금되고 다치는 사람의 권리엔 별 관심이 없다. CCTV, 프라이버시 기술, 데이터마이닝 같은 통제형 기술들이 오늘날 각광받는데는 자율의 조절 능력도 깊이도 없는 소비형 기술에 익숙한 현대인의 속성이 크게 가세한다. 기술 원리를 배우려 힘을 뺄 필요도 없다. 그저 편하게 이용하고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낡으면 새것으로 바꾸면 된다. 자본주의 기업들은 기술을 이렇듯 소비 대상으로 보도록 현대인들을 길들여왔다. 그러다보니 간단한 오류나 고장에도 대개는 속수무책이다. 만들어진 기술의 원리는 항상 봉합되어 감춰져 일반인들이 알기가 더욱 어렵다. 첨단 정보기술 장비들이 전원 문제에 속수무책이고, 버그에 인프라 서버가 불통이 되고, 통제형 기술이 낳는 심각한 인권 침해에 대비 못하는 현실은 기술에 대한 맹목, 본질적으론 시민과 분리된 기술의 엘리트화로 생긴다. 해가 거듭할수록 인간이 느끼는 기술에 대한 골은 갈수록 깊어진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개인이 부품을 사서 쉽게 바꿔 끼우거나 손볼 수 있던 제품들도 이젠 개인이 접근하기에 불능에다 손쓰기도 힘들다. 소프트웨어 코드도 마찬가지다. 유저들이 개인적 용도로 쉽게 소스 코드를 바꿔 쓰던 시대는 갔다. 거대 기업들이 만들어낸 프로그램의 소스 코드는 워낙 복잡해 개인이 어쩌기에 역부족에다 들여다보려해도 온갖 보안 코드에 각종 지적 재산권의 방벽이 버틴다. 보기만하고 만지지 못하는 현실에서 기술은 맹신의 대상으로 등극한다. 막연히 좋고 추종해야 할 첨단의 어떤 것으로만 다가온다. 사람을 다치게 하는 기술도 오케이다. 동작 원리와 효과를 고려하지 않으니 기술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고 일이 크게 터지면 일반인은 고사하고 전문가도 허둥댄다. 운좋게도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새 풍속도가 관찰된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협업으로 일대일 파일 교환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공개 소스를 이용해 자유 소프트웨어를 제작한다. 기술 원리에 개입하고, 효과까지 스스로 통제하는 새로운 정보기술 이용자들이 슬슬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자본주의 기업들이 조장했던 기술 과신과 맹신을 일소하는, 일반 이용자들의 기술 통제력 상실을 메꿀 수 있는 아이디어가 과연 어디로부터 나오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전기가 나가도 당황하지 않고, 버그에 허둥대지 않고, 통제 기술들에 열광하지 않는 미래는 일반 이용자들 곁으로 여러 기술 내용을 공개하고 그 기술을 놓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때 가능하다. 그렇지 못하면 통제 불능의 기술들이 언제 발광할지 모를 일이다. (아름다운 e세상, 200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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