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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이후 선언문 (After Digital Manifestos)
BY 이광석
1. 디지털은 총체적 혁명이다. 기계 혁명이 단지 공장굴뚝시대에 국한된 힘이었다면, 디지
털은 새로운 시대에 완전히 새로이 쓰여지는 문법이다. 이제까지 혁명이라 얘기한 것들은
인간 삶의 일부만을 변화시켰을 뿐이다. 디지털은 이 모든 혁명들의 혁명이다. 삶의 결 하나
하나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것, 그것이 디지털이 만들어내는 거대 혁명이다. 과거 체제
적 모순의 반항이 공산주의였다면, 궁극적으로 인간 삶의 모순에 대한 극복의 기획이 디지
털 사회혁명이다.
디지털은 미래 우리 삶의 궁극적인 구상이다. 그 혁명은 과거의 것들을 새로이 디지털의
문법으로 바꾸고, 현재의 것들을 거대한 디지털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하고, '디지털 이
후'(After Digital)를 설계하는 역사의 흐름이다. 그래서, MIT 미디어랩(Media Lab.)의 네그
로폰테(Nichlas Negroponte)가 말한 '디지털이다'(Being Digital)는 과거형이다. 이제는 디지털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디지털이 된 사회의 미래를 우리 삶에 비추어 찬찬히 구상하는 '디지털이다' 이후의 또 다른 문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2. 디지털은 상호 관계이자 만남이다. 디지털이 고립되면, 곧 멍청해진다. 만나지 못하면
디지털은 반쪽일 수밖에 없다. 관계는 상대방을 전제한다. 더불어 상대와의 연결도 전제한
다. 상대방과 연결이 없으면 디지털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디지털을 연결하는 네
트워크가 중요하다. 디지털이 마음껏 흘러다닐 수 있는 통로와 그 디지털이 정박할 수 있는
컴퓨터들이 있다면, 디지털은 무럭무럭 자란다. 디지털이 한 곳에 몰리거나 가고자 하는 상
대에 갈 수 없다면, 디지털에 병이 생기고 장애가 생긴다. 디지털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힘을 쓸 수 있다. 인간들이 사용하는 모든 멍청한 물건들에 디지털이 나다니는
통로를 만든다면, 그 멍청한 물건들은 분명 상호 관계를 맺고 똑똑해질 것이다. 이러한 관계
를 막는 어떠한 시도들도 반역이다. 디지털이 원하는 상호 만남의 원리를 위배하기 때문이
다. 디지털을 성숙시키는 방법은 장소나 때를 막론하고 서로 연결시키는 노력이다.
상호 관계의 현실태는 지구촌을 가로지르는 인터넷이다. 이는 인간들의 작은 관계망이 거
대화하여 만들어졌고, 지금도 계속해서 그 망은 자율적으로 구성된다. 우리는 그 속을 흐르
는 것을 디지털 정보라 지칭한다. '정보의 바다'는 그 망 속을 끊임없이 흐르는 무수한 정보
의 거대한 물결을 가리킨다. 미세한 관계망이 모여 거대한 정보의 물결을 형성하고, 우리는
그 파도를 타면서 정보를 낚아오는 것이다. 잘못된 관계와 연결은 잘못된 정보의 원인이다.
예컨대, 포르노 사이트의 암초에 좌초하거나 그 파도에 휩쓸리는 근거는 잘못된 관계와 만
남에 이끌릴 경우에 발생한다. 어쨌든 우리는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무수한 관계망에 이
끌리고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이는 '디지털 이후' 사회에서 잘 적응해나가야 할 새로운 원칙
이다.
3. 디지털은 자유로움과 속도이다. 디지털에 있어서 자유는 맨 먼저 인간 살덩이로부터의
자유를 전제한다. 인간의 육체는 제약이고 족쇄이다. 초월의 욕망은 인간에게 근원적이다.
시공간의 제약을 극복하여 우리는 네트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다. 물리적 공간 이동 없이
도 붙박힌 자리에서 지구 끝을 배회한다. 프랑스의 도시연구가인 비릴리오(Paul Virilio)도
동의하듯, 지난 시기가 '동적인'(dynamic) 수송 장치들(기차, 오토바이, 자동차, 비행기 등)이 중심이었다면, 현대의 디지털 혁명은 '행동적이나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behavioral
inertia)의 속도-기계를 창조했다. 가만히 터미널에 고정된 인간에게 속도감은 시각적이지
않다. 디지털 속도감의 정체는 아직까지 시각적인 것보다 인간 상상 속의 자유로움이다. 즉
육체를 이탈하여 시공간을 넘어 다른 이와 접촉하고, 그 곳을 경험하고 있다는 상상력이 속
도감을 불러일으킨다. 디지털의 자유로움과 속도는 육체 이탈을 느끼는 중요한 수단이다. 둘
중에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인간의 디지털 체감은 떨어진다. 어디에서든 접속하기가 어렵
고, 어디든 가기가 힘들고, 변형이 불가능하다면 디지털의 자유로움에 장애가 발생한다. 마
찬가지로 디지털을 실어나르는 통로가 좁거나 없거나 가로막혔을 경우에도 속도감은 사라진
다.
디지털의 자유로움은 그 자체의 성질에서도 드러난다. 디지털은 아톰과 달리 무한히 변형
할 수 있고, 덧붙일 수 있고, 복제 가능하다. 디지털이 상품이 되려면 그 자유로움의 일부를
통제하면 된다. 디지털의 상품화를 원하는 자에게 그 자유로움의 통제권을 주는 것이다. 물
론 그 권한을 공개해버리면, 그 디지털 상품은 상품으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한다. 그래서 디
지털의 고유한 자유로움은 개방되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4. 디지털은 평등과 해방이다. 디지털은 권위를 부정한다. 장소에 따라, 시간에 따라 배열
된 모든 사물은 디지털에 이르면 동일하게 취급된다. 설사 멍멍이와 대화를 나누더라도 우
리가 그것이 동물인지 사람인지 알 수가 없는 것처럼, 디지털은 모든 사물을 동등하게 대한
다. 디지털은 그 자체로 불평등한 관계를 일소한다. 수직적이고 피라밋 구조는 디지털과 불
편하다. 디지털은 수평적 네트워크를 선호한다.
디지털은 해방이다. 모든 닫혀진 정보들은 디지털에 이르러 해방된다. 무한한 복제의 가능
성은 배고픈 이들을 위해 행한 예수의 기적만큼이나 해방적이다. 첫 작성자가 기록한 디지
털 정보는 의미가 없다. 다른 사용자에 의해 그 정보는 또 다시 변형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디지털 정보 앞에서는 주인이다.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디지털을 꾸미고 바꿀 수
있다. 따라서, 디지털 앞에서 '저자의 권위'(authorship)를 부르짖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디지털 이후'에는 디지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이를 이용할 수 있는지 여부가 더욱 더 중요하게 부각된다. 그것이 해방의 필요조건이다.
5. 디지털은 새로움과 잡종이다. 우선 디지털은 이제까지 존재했던 과거의 모든 문법을 뒤
집는다는 점에서 새롭다. 산업 시대의 모든 물건들은 디지털 시대에 다시 쓰여진다. 구시대
의 퇴물들은 인공 지능과 디지털 칩을 내장한 채 새롭게 태어난다. 한편 디지털 시대의 사
물들은 여태까지 없었던 새로운 쓰임새를 위해 준비한다. 디지털 정보도 끊임없이 갱신한다.
과거의 것들의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버전업은 디지털 시대의 필수 조건이다. 무한히 변형
가능한 속성은 하나의 정보를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새로이 짜게 만든다. 누군가에 의해 변
형된 정보가 새로운 창작 활동이 되는 것이다. 진짜는 없다. 오직 '잡종'(hybrid)과 새로움이 있을 뿐이다. 디지털에서 순종을 찾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디지털의 자유로운 잡종은 새로움의 조건이다. 잡종은 디지털과 디지털의 난잡한 결혼이다. 이를 쉽고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디지털만이 지닌 기술적 특성이다. 결국 디지털은 근원이 없다. 단지 잡종과 혼합이 있을 뿐이다. 잡종이 되기까지 디지털의 관계와 만남이 전제되어야하듯, 새로움의 근거는 디지털간의 조우에서 마련된다. 될 수 있으면 서로 많은 디지털을 '관계하도록 하는
것'(communication)이 '디지털 이후'의 새로움의 실체들을 대할 수 있는 방법이다.
6. 디지털은 나눔과 공유이다. 디지털의 속성은 애초부터 배타적이고 독점적이지 못하다.
독점적 지위는 하나의 빵을 얻기 위해 다수가 경쟁하는 환경에서 나왔다. 디지털은 이를 극
복한다. 한 사람의 이용이 타인의 또 다른 사용을 배제하지 않는다. 하나의 정보를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주어도 자신의 원정보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디지털이 지닌 나
눔과 공유의 혁명적 특징이다. 디지털의 독점은 디지털의 자유로운 본성을 위배한다. 독점과
배타적인 점유는 근본적으로 나눔과 공유의 원리를 거스른다. 디지털은 모든 이들을 이롭게
하기에 '사회적'(societal)이다. 독식은 디지털이 공개되고 공유될 때 깨진다. 즉 디지털의 사회화가 이루어지면, 그 정보의 독식권은 영원히 사라진다.
게다가 네트워크를 타고넘음으로써 그 나눔과 공유의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물리적 경계를 뛰어넘는 디지털의 속성은 나눔과 베품의 정신을 전범위로 확대한다. 더딘
면대면(F2F) 커뮤니케이션을 디지털 네트워크로 연결함으로써, 누구든지 그 공유의 혜택에
한발 다가서게 된다.
7. 디지털은 살아있는 유기체이다. 엄밀히 얘기해서 디지털 그 자체가 아니라, 디지털의
'관계망'들(inter-networks)이 그 살아있는 유기체이다. 그 유기체는 고정적이지 않다. 계속
해서 끊임없이 자란다. 새롭게 태어나는 노드들(nodes)을 자신의 망 안으로 끌어들이고, 스
스로 몸집을 키워간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디지털의 순환은 자율적이고 비선형적이다. 물
론 정체되거나 막히는 지점도 존재한다. 하지만 대체로 그 디지털 흐름을 방해하는 어떤 장
애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생물 유기체 피부막 속으로 흐르는 혈액처럼, 디지털은 그것에 자양분을 공급한다. 살아
숨쉬는 생물처럼, 디지털 덩어리는 끊임없이 꿈틀거린다. 마치 <매트릭스>(Matrix) 영화에
서 터미널 인간들이 기계 탯줄에 온 몸이 매달린 채로 살아가듯, 우리는 네트의 광활한 자
궁에 접속되어 삶을 유지할지도 모른다. '매트릭스' 용어 자체가 '어머니'(mother)와 태초의
'자궁'을 암시하는 것처럼, 디지털 네트워크는 우리가 태어난 자궁과 같은 삶의 모태가 된다.
이 거대한 자궁은 우리 삶의 한가운데에 깊게 뿌리박고 서 있다.
8. 디지털은 그래서 문화요 삶이다. 디지털은 경제, 정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삶의 모든
측면의 변화이기에, 이는 문명의 전환이다. 총체적 변화이다. 문화가 인간 일상의 삶을 지칭
한다면, 디지털은 우리의 거대한 문화이자 삶의 변화다. 전자 상거래와 닷컴기업, 전자정부
가 디지털의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차가운 은색의 디지털 비전만이 아니라, 디지털 자궁처
럼 친근한 무언가가 존재한다.
보다 근원적으로 디지털 문화의 핵심에는 인간이 있다. 유토피아의 미래에 인간이 빠지면
기형적 기계주의만 남는다. 우리의 '디지털 이후'는 인간과 문화가 중심에 선다. 경제, 정치
등의 모든 영역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새로운 디지털 창조물들과 이를 이용하는 휴머니즘적
인간형을 합친 것이 디지털의 문화를 가꾸어나간다. 디지털 문화는 전 영역에서 상호 발달
하는 디지털 혁명의 가치를 고립분산적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디지털 문화란 시각을 통해,
우리는 겉보기에 단순히 한 영역에서의 변화로 간주하는 것들이 다른 영역에서의 변화와 긴
밀히 엮여있음을 감지해낼 수 있다.
9. 디지털은 족쇄다. 디지털은 역설이다. 족쇄는 해방과 평등에 배치되지 않는다. 비록 족쇄
가 단지 미래의 가능성일지라도 억압적 미래상을 미리 그려보아야만 한다. SF소설을 쓰는
사이버펑크(cyberpunk) 작가들처럼, 우리는 미래의 암울한 모습에 대한 자화상을 비춰볼 필
요가 있다. 디지털 휴머니즘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한다. '디지털 이후'
는 단지 찬란한 디지털 시대만을 예견하지 않는다. 디지털은 빛과 마찬가지로 그림자를 지
닌다. 그 곳에는 화려하고 역동적인 도시가 존재하지만, 한 쪽 켠에는 축축한 빈민굴의 냄새
도 맡을 수 있다.
디지털이 지닌 혁명성이 누군가에 의해 거세되면, 자연 그것은 현실처럼 폭력과 억압이
공존하는 또 다른 족쇄가 된다. 디지털 혁명성의 찬란함은 더러운 반역의 거울 이미지다. 디
지털은 이처럼 야누스적이다. 디지털 현실과 미래에는 빛과 그림자가 뒤섞여 공존한다. 이렇
듯 디지털의 명암 속에서 인간의 얼굴을 찾아내는 작업이 디지털 휴머니즘의 살아있는 기획
이다.
10. 디지털은 결국 '인간의 얼굴'이다. 디지털 미래는 인간이 고민하고 만들어내는 세상이
다. 디지털 자체만으로 장밋빛 미래는 도래하지 않는다. 디지털의 생생히 살아있음과 새로
움, 해방감과 평등의 느낌은 '인간의 얼굴' 안에서만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땅에 딛고선 현실의 생생한 조건이다. 디지털 혁명과 그 문화를 체감하는 인간의 조건이 빠지면, 미래는 암울한 야만이거나 단지 상상계이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디지털 문화의 원형(prototype)은 비즈니스맨에서도 대중 정치가의 논의에서도 찾기 어렵다. 오히려 디지털 문화 현실을 깊게
호흡할 수 있는 '디지털 휴머니스트'가 필요하다. 이는 인간을 중심에 놓고 '디지털 이후'를
사고하는 자들을 지칭한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은빛의 차가운 냉기를 품어내지만 인간
의 얼굴을 한 디지털 전사들이 그들이다. 이제 우리는 '디지털 이후'에 살아갈 '인간의 얼굴'
을 그리는 작업을 시작하는 첫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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