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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트의 잔혹 랩터들 (Copyraptors)
이광석 / 네트워크 편집위원
살 벌한 세상이다. 멋모르고 음악 파일을 주고받는 청소년들은 5년의 감옥형에 25만 달러의 벌금을 내야 한다. 미 하원에 계류중인 소위 ‘저자ㅤㅉㅗㄲ소비자ㅤㅉㅗㄲ컴퓨터소유자 보호 및 보안법’(ACCOPS)의 흉악스런 정체다. 이 법이 발효되면, 인터넷을 통해 파일을 주고받던 미국인들 중 약 6천만 명 정도가 범죄자가 된다.
파일 교환에 대한 본보기식 각개격파는 간담이 서늘할 정도다. 지난 6월말 경 전미음반산업협회(RIAA)는 ‘강성’ 사용자들의 마녀사냥을 공식 선포했다. 사냥 방식은 주로 손해배상 청구와 이용자 신원 공개요구에 집중한다. 발부된 소환장만 수천 여 건에, 대학 캠퍼스의 불시 수색에, 컴퓨터 압수와 영장 발부는 기본이다. 파일 교환이 수시로 이뤄지는 ‘불온의 범죄현장’격인 대학 캠퍼스는 60년대식 곤봉과 군홧발이 난무하는 대신, IP 추적으로 수갑차고 벌금 채무자가 된 대학생들로 그득하다. 대학가의 영원히 시들지 않는 공권력의 추태가 재현된다.
사태가 이쯤되니 신원공개를 요구하는 음반협회의 발칙한 요구에 1백여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들이 분노, 반기를 든다. 인터넷 업체들뿐만 아니라, 메사추세츠공대(MIT)나 보스톤 칼리지 등 대학들도 협회의 소환장에 불복하거나 맞고소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미 음반업계는 사이좋던 컴퓨터ㅤㅉㅗㄲ가전업체들과 싸워 결별에 들어간 전력이 있다. 언제나 음반협회는 레코딩이 가능한 기술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고 봉합하는데 골몰해 왔다. 사사건건 가전업체들의 기술 개발에 개입해 사방 쪼아대니, 누군들 버틸 재간이 있겠는가. 결국, 가전업체들은 음반협회에 끌려다니며 각종 기술에 저작권 코드를 심어봐야 소비 심리만 위축시키고 전혀 사업에 득 될 것이 없다는 점을 간파하고, 바로 질 나쁜 폭군으로부터 멀어졌다.
철석같이 제 편이라 믿었던 인터넷 서비스와 가전업체 등이 차례로 등을 돌린다. 무엇보다 협회가 날리는 협박장에 이용자와 관련 시민단체들의 분노도 극에 달했다. 이토록 사방에 원성이 자자하지만, 협회의 해법은 늘 폭력적이다. 엄청난 돈을 들여 파일 교환 불법 캠페인을 벌이고, 속임수의 가짜 엠피 파일을 온라인에 다량 유포하고 파일 교환에 감시 프로그램을 심어 신원을 조회하며 미친 듯 용을 써보지만, 정작 주위를 찬찬히 살피는 아량은 없다.
음반업체 등 저작권 수호자들은 사용자와 현실 변화에 모질 정도로 둔감하다. 엠피 플레이어, 각종 디지털 녹음장치, 파일 교환 서비스 등 생경한 것들이 일상이 됐음에도, 독오른 눈으로 칼자루만 잔뜩 긴장해 움켜쥐고 있다. 이들은, 애초 저작권이라는 것이 전적으로 창작물에 대한 보상을 분할해 나눠먹는 이들을 위한 독점 사유권이 아니며, 이를 정당하게 쓰는 모든 이들의 공적 권리란 점을 쉽게 까먹는다. 마치 ‘쥬라기공원’에서 잔인하고 영리하게 하나씩 이용자들을 괴롭히고 잡아 먹어치우지만, 결국 티라노에 까불다 내동댕이쳐지는 랩터들마냥 처신한다. 시장의 법칙과 재산권을 들이밀더라도 상식을 따르고 상황 변화를 인정하는 장사꾼들이 되지 못하면, 그 족속은 ‘카피랩터’에 불과하다.
<네트워커, 2003. 9. 제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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