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이곳저곳 기고했던 글들

[시사IN] 정연주 전 KBS 사장 무죄 판결이 전하는 ‘깊은 뜻’

[시사IN 102호]  2009년 08월 24일 (월) 16:34:25

 

정연주 전 KBS 사장 무죄 판결이 전하는 ‘깊은 뜻’


정연주 사장이 축출된 것은 MB 정부의 ‘언론 장악 시나리오’의 서곡이었다. 최근의 미디어 악법 강행 처리 이후 국면과 이병순 사장 체제 이후로 KBS 보도가 ‘대한늬우스’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광석

 

서울중앙지법이 8월18일 열린 정연주 KBS 사장의 배임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지난한 가뭄 끝에 보이는, 작지만 희망적인 싹이다. 지난해 이맘때쯤, KBS 수장을 끌어내리는 일에 현 정부, 감사원, KBS 이사회와 검찰 모두 한 몸이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제 와서 보면, 정연주 사장이 축출된 것은 정권의 ‘언론 장악 시나리오’의 서곡이었던 듯싶다. 적어도 최근의 미디어 악법 강행 처리 이후 국면과 이병순 사장 체제 이후 KBS 보도가 ‘대한늬우스’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당시 검찰은 정 사장 자신이 재임 시절 국세청을 상대로 낸 법인세 환급에 관한 1차 소송에서 이기고도 법원의 조정 과정을 밟았던 행위를 문제 삼았다. 그로 인해 KBS 공사에 금전적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로 기소했다.

이 번 판결은, 그 당시 검찰이 내세운 기소 사유에 대해 법원이 10개 항목에 걸쳐 조목조목 ‘이유 없음’을 대고 반박하고 있다.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어처구니없는 혐의 사실을 씻어냈지만, 당시 감사원과 KBS 이사회는 정 사장의 배임 혐의 자체를 불신임의 중요한 근거로 삼았다.

비슷한 일 꾸미는 MBC 최대 주주 방문진

 

 

 

 

 
8월18일 서울중앙지법은 전 KBS 정연주 사장(위)의 배임 혐의에 대해 10개 항목에 걸쳐 ‘이유 없음’ 판결을 내렸다.

유재천 교수 등 당시 친여 인사로 구성된 일명 KBS ‘돌격대’ 이사회는, KBS 방송국에 경찰 공권력을 요청하고 이를 방패 삼아 정 사장 불신임 투표를 끝내 성사시킨다. 그 후 이명박 대통령은 이병순 사장을 낙점해 발령했다.

정 연주 사장을 밀어내기 위한 이사회 투표 방식 또한 비상식이요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해임 과정에서 KBS 이사회의 걸림돌이었던 신태섭 교수를 밀어내기 위해 상상을 초월한 방법이 동원됐다. 그의 KBS 이사직 자격 요건을 박탈하기 위해, 멀쩡히 다니던 동의대학교에서 보직 해임까지 당하도록 했다. 알려진 대로 올해 초 부산고법에서 신 교수의 해임 무효 판결이 나면서, 정연주 KBS 전임 사장 해임까지의 절차와 과정에 대한 비상식과 허구성이 만천하에 폭로된 터다.

신태섭 교수의 복권도 그렇고, 정연주 전임 KBS 사장의 배임 무혐의 처리는, 그래서 그 상징성이 더욱 크다. 우리는 1년 전 정 사장 해임 시나리오에서 오늘의 불운한 KBS를 봤는데도 이를 막지 못했다. 이제 와서 정연주 사장의 혐의가 풀려도 현직 복귀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역사 속에서 퇴행하고 망가진 것을 되돌리기란 또 한 번의 지난한 과정을 요한다. 현재 안과 밖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는 이병순 사장 체제와 그로 말미암아 끝간 데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KBS 보도의 보수화와 공정성 시비가 그렇다.

KBS에 이어 또 다른 곳에서 비슷한 ‘친위 돌격대’들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MBC 최대 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친여당 이사진이 제2의 비슷한 명분과 다수 의결권을 갖고 지금의 MBC 경영진을 솎아내 민영화의 길을 닦을 태세라는 우려가 사방에서 터져나온다. 혹여 MBC 방문진 이사들이 지난해 KBS와 비슷한 일을 꾸밀 심산이라면, 이번 판결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모든 걸 다 접고 정치적 중립에 서라고 한다면 순진한 요구인가?

원래 자본주의 정치체제에서 절차상 다수결 원칙이나 적법성 원칙을 준수한다는 것은 적어도 형식적 민주주의를 수행하겠다는 약속에 해당한다. 강제로 법적 구성 요건을 갖춰서 원하는 바를 쟁취하는 현 권력의 모습은 형식 민주주의를 악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적법을 가장한 권력의 추한 행위는, 수많은 선량한 이를 생채기내고 건강한 정치 발전을 저해한다. 이번 정연주 사장 무죄 판결에서 정상성과 적법성의 원래 의미가 무엇인지 음미할 필요가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시사IN] 미디어법 강행 처리 후 MB ‘원더랜드’ 제2막 오를까

미디어법 강행 처리 후 MB ‘원더랜드’ 제2막 오를까


재벌과 수구 언론은 서울은 물론이고 지방에 걸쳐 지상파 방송, 케이블 방송, 위성방송, IPTV까지 진입할 수 있게 됐다. 이제까지 여론 독점을 막고 방송의 공익성을 지키려 했던 모든 제어장치가 허물어진 것이다.

 

[99호] 2009년 08월 03일 (월) 14:12:49

 

이광석

 

역시 우리가 뽑은 ‘경제’ 대통령답다. 삶의 조건은 정말 경제와 시장의 논리로 바뀌었다. 물론 시장 내 공정 경쟁의 법칙도 없는 우리식 정글의 시장 논리가 판친다. 가만히 들여다보자. 재개발과 권력의 폭력으로 벌어진 용산 참사가 6개월을 넘겼는데도 어느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다. ‘4대강 살리기’ 사업도 일자리 창출과 연계되면 친환경 프로젝트다. 광장에서 자주 보이는 ‘찍힌’ 시민단체들은 나라가 나서서 보조금 지급을 막는다. 구속보다도 벌금형이 시위 가담자들을 애먹이는 특효약이 된다. 이는 대한민국이라는 ‘원더랜드’ 안에서 벌어지는 믿지 못할 비상식의 풍경이다.

시장의 논리가 신권위주의를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적 근거라면, 국회를 통과한 신규 혹은 개정 악법들은 권력 수행의 방식에 ‘합법’의 명분으로 쓰인다. 그래서인지, 정부와 여당은 얼마 전 국가경쟁력과 미디어 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시장 논리를 동원해, 그렇게도 국민 다수가 반대하던 미디어법을 날치기 강행 처리했다. 

이제까지 정부와 여당이 시장 논리를 내세우는 방식도, 그리고 합법의 명분을 쌓는 과정도 대단히 조악하고 반민주적이었다. 예를 들어, 미디어법 강행 처리조차도 신문법 대리투표 의혹에다 방송법 재투표 무효 논란까지 낳는 형국이다.

이 미 잘 알려진 대로, 미디어법의 핵심 내용은 대기업과 신문사의 방송사 지분 한도를, 지상파 방송 10%, 종합편성채널 30%, 보도전문채널 20%로 허용한다는 것이다. 조·중·동은 한술 더 떠서 지분 한도를 높이지 못한 것에 투덜대지만, 그들은 적은 지분으로도 혹은 차명 경로를 통해서도 지배적인 지분 행사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을 너무도 잘 안다.

 

 

정부·여당과 조·중·동, 공생의 기회 잡은 셈


한나라당이 통과시킨, 구독률 20% 이상 신문사의 경우에 방송 진입을 불허한다는 조항은 또 다른 숫자놀음을 보여준다. 현실적으로 구독자 수가 가장 많은 조선일보의 경우 구독률이 10%가 채 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도 허구다. 게다가 2012년 말까지 지상파에 진출한 재벌과 신문사의 경영권 참여 유예 조항 또한 실효성이 떨어지긴 마찬가지다. 소유권을 쥔 이의 영향력은 어떻게든 여러 방식을 통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제 재벌과 수구 언론은, 서울은 물론이고 지방에 걸쳐 지상파 방송·케이블 방송·위성방송·IPTV까지 진입할 수 있게 됐다. 시장경쟁력의 논리는, 이제까지 여론 독점을 막고 방송의 공익성을 지키려 했던 모든 제어장치를 허물 조짐이다. 실제 경영 위기에 놓인 조·중·동 종이 신문들은, 이번 악법 강행으로 정부와 한나라당이 바라는 정치권력 재창출의 구상에 동조하면서 서로 공생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미디어법 날치기로 길거리 민심이 흉흉하다. 그런데도 이달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진 재선임에 친여당 인사를 줄줄이 앉힌다는 말이 나돈다. 미디어법이 시행되면 바로 지역 방송들이 대규모 합병·매수로 초토화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19개 MBC 지역 민방과 OBS 경인티브이의 경영 사정을 고려하면 곧 다가올 것들이다. 사실 이 모든 시나리오는 방문진 이사 물망에 오른 한 교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한발 더 나아가, 이강택 전 PD연합회 회장은, 정부 여당이 공영방송법 개정을 통해 KBS의 시청료를 올려 재원 자립도를 마련한 다음 그 광고료 수익을 조·중·동의 방송 진출 비용으로 보전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자, 이 정도면 MB 원더랜드의 제2막이다. 또 어떤 기괴한 쇼를 우리에게 선사할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시사IN] 숫자놀음의 쇼쇼쇼!

숫자놀음의 쇼쇼쇼! (원제) - 정부 여당, 미디어법 개악 위해 수치 조작하다

 

[96호] 2009년 07월 13일 (월) 10:43:20

 

이광석

 

정부 여당, 미디어법 개악 위해 수치 조작하다 정부와 여당은 보수 우익 신문사의 신문·방송 겸영과 재벌의 방송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학자들에게 정부 용역을 주어 수치를 조작하는 일 따위는 비일비재하다.

 

숫자는 18세기 중반 유럽에서 국가 통제의 수단으로 적극 도입되기 시작했다. 통치권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어떤 분포를 보이는지 어디에서 살고 그 집의 식구가 몇인지 또 세금을 얼마나 내며 벌고 있는지 따위는 권력 유지의 필수 정보가 되었다. 권력의 힘이 숫자에서 나오면서, ‘인구통계’와 숫자의 지식은 시민을 다스리는 중요한 통치 과학으로 자리 잡는다. 현대에서는 좀 더 전문화한 통계 기법이 등장하고 각종 숫자, 그리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지표가 그 이면의 현실을 설명하는 데 끊임없이 이용된다. 숫자의 힘에 비례해 전문적으로 숫자와 지표를 생산하는 단체들, 즉 정부 전문 부처, 정부 관련 용역기관, 기업 부설 전문연구소, 독립법인의 리서치 회사 등의 구실도 더욱 커졌다.

누구보다 권력자들은 자신의 특수한 정치 목적을 위해, 이들 기관으로부터 가공된 숫자를 이용해 이른바 ‘숫자놀음’을 행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성장률의 가능치를 입맛에 맞게 바꾸거나, 몇 가지 지표를 첨삭해 정치 신임도의 높낮이를 조정하거나, 경기유발 효과를 뜬금없이 뻥튀기해 늘린다거나, 과세표준 8800만원 소득자를 중산 서민층으로 분류하는 등 따지면 끝도 없다. 물론 이렇게 진실을 동반하지 않는 허구의 숫자놀음은 금방 들통나기 마련이다.

미디어법 직권 상정해 ‘개악’할 듯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국민의 녹으로 유지되고, 그래서 더욱 독립 기구여야 할 곳들이 권력을 위한 브레인 노릇을 자처할 때다. 예를 들어 최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정부 용역으로 작성한 <언론법 경제효과 분석> 보고서가 날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필자도 사이트에 들어가서 보고서를 봤다. 이 사실을 처음 발견한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의 말, 그리고 이 사건에 성명서를 낸 전국언론노동조합 이진성 정책국장의 분석을 KISDI 보고서 원본 내용과 대조해보니, 정확하게 숫자놀음의 정황이 드러났다.

문 제가 된 용역 보고서에는, 2006년 우리나라 명목 GDP를 훌쩍 늘려서 (8880억 달러에서 1조2949억 달러로) GDP 대비 방송 플랫폼 시장의 비율을 0.68%로 축소해 선진국 수준(0.75%)에 미치지 못한다고 정리했다. 즉, 보고서는 우리 GDP 수치를 조작한 후에, 선진국 수준에 맞추려면 방송시장의 개방이 불가피하다고 결론을 냈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WTO)나 한국은행의 한국 GDP 수준에서 보면, 우리의 “방송 플랫폼 시장의 비중은 0.98%로 선진국 평균을 크게 웃돌아 시장 포화 상태”이다.

전문가의 말대로라면, 이 수준에서는 도저히 생산유발 효과나 취업유발 효과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과당경쟁으로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 KISDI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으로부터 한국 GDP 관련 원자료 구입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둥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현 상황은 친박연대조차 미디어법 개정을 무리하게 홍보하다 되레 숫자놀음에 당한 정부 여당을 비난할 정도다. 

지난해 말부터 미디어법 개악을 위해 한나라당이 벌인 비상식의 행동을 따져보면, 이번 사건이 그리 메가톤급 충격은 아니다. 그러나 수법이 발칙하고 졸렬하다. 그것도 학문하는 이들이 용역을 받아 벌인 일이어서, 정치인에 버금가는 그 비도덕성에 할 말을 잃을 뿐이다. 정부와 여당은 보수 우익 신문사의 신문·방송 겸영과 재벌의 방송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연초부터 끊임없이 그 정당성 확보의 수사학을 개발해왔다. 이번의 숫자놀음은 그 일면이지만, 나쁜 짓하다 걸린 꼴이라 체면이 말이 아니게 생겼다.

언론개혁과 방송시장의 변화와 관련해서, 사안의 중대성 때문이라도 사실상 수많은 공청회와 각계각층의 여론 수렴 방식이 선행되어야 했다. 정부와 여당은 이처럼 치부를 들켜서, 사실상 직권 상정을 통한 미디어 악법 강행 처리만을 염두에 두는 듯하다. 제발 합리적 민주주의의 구색이라도 갖추면서 살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시사IN] 대통령과 보수 언론, 찰떡궁합의 부창부수

대통령과 보수 언론, 찰떡궁합의 부창부수

 

[93호] 2009년 06월 22일 (월) 11:26:56

 

이광석

 

이명박 대통령과 현 기득권층이 국면 전환용으로 북한 변수를 이용하고 있다. 한·미 양국 정상이 만나서 내놓은 한·미 동맹 공동비전에 대해 보수 언론의 사설과 칼럼은 환영 일색이다.

 

 6월15일 보수 우익단체 회원이 대한문 앞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에 난입해 플래카드를 찢는 모습.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사회 각계각층에서 이명박 정부의 국정 쇄신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이 줄을 잇는다. 국민의 분노가 임계점에 이르고 있으나, 책임질 이들은 도통 모르쇠로 일관한다. ‘박연차 로비’ 수사도 황급히 종료됐지만, 이를 책임질 검찰도 언론도 권력도 없었다. 시민단체가 벌이는 조선·중앙·동아일보 광고중단 운동에, 해당 기업의 고소와 고발이 없이도 즉각 수사를 펼치는 검찰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정황이다. 노 전 대통령을 ‘죽임’으로 몰았던 비극의 공모자로부터 사과와 처벌 소식을 기대했던 대다수 국민의 마음이 외려 순진해 보인다. 그 와중에 우리 국가 수장은 황망히 워싱턴을 향해 떠났다.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계산된 행보였을까? 그와 현 기득권층이 유일한 국면 전환용 돌파구로, 북한 변수를 적극 이용하리라는 염려가 짐짓 현실로 다가온다. 얼마 전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6·15 선언이 몇 주년이지…”를 되뇌며, 그의 노쇠한 기억력에 덧붙여 현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가 변화했음을 슬며시 드러낸 적이 있다. 또한 남북 공동선언 9주년 기념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강연에 대해, “김대중은 자살하라”는 전여옥 지지자 모임 회장이라는 자의 극언에다가, 대북 퍼주기식 지원이 자초한 북핵 위기 책임론까지 들먹이는 지경에 이르면 우리 미래가 아득해진다.

한편, 남의 땅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연일 한·미 안보 동맹에 매달리며 북한에 대한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6월16일께에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을 뺀 북핵 ‘5자 회담’을 제안하면서 북한의 군사 도발에 강력 대응하자고 운을 띄워 너무 앞서나간다는 여론까지 비등했다. 한 나라의 국운을 짊어지고 극단의 군사적 충돌을 막아 상황을 슬기롭게 대처해야 할 대통령으로서 사실상 사려 없는 멘트이자 행동이었다. 어느덧 남북 간 6·15 선언의 정신을 계승하기는커녕 이제는 남북 관계를 아예 포기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우리 대통령이 북한을 압박하고 한·미 동맹을 재확인하러 간 사이, 6월15일에는 서울역 일대에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보수 우익단체 회원의 전세버스가 빼곡히 들어찼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 모드에 때맞춘 반응이다. 한 손에 태극기를 들고 빨간색 베레모와 해병대 군복·단체복을 입은 군중 1만5000여 명이 ‘북핵 규탄, 반국가세력 척결’ 대회를 열었다. 이들 중 일부는 대한문 일대에 가스총을 쏘며 나타나 노 전 대통령 분향소에 난립하다 제지당하는 등 야만성까지 보여줬다. 갈수록 태산이다.    

MB 정부 대북 정책은 부시의 고립 강경론과 비슷

노 대통령 서거 국면 이래로 보수 언론, 일부 정치인과 우익 단체가 합세해 전방위에서 펼치는 대북 관계 청산과 적대론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여기다 가십성의 북한 ‘권력 세습’에 대한 보도 또한 도를 넘는다. 국내 정보기관이 나서 김정운 후계자설을 흘리고, 언론은 앞다퉈 이를 받아쓰면서 정치적으로 북한을 자극하는 데 앞장선다.

한·미 양국 정상이 만나서 내놓은 한·미 동맹 공동비전에 대해 보수 언론의 사설과 칼럼은 환영 일색이다. 국민이 지금처럼 정권을 불신하는 국면에서, 통치권자가 갑자기 미국에 건너가 대화보다는 압박과 제재를 통한 대북 정책을 끌어내는 것이 과연 한반도의 명운을 걸 만한 군사 외교인지 아니면 위험한 정치 도박인지를 분명히 지적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국제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을 미국 부시 시절 고립 강경론의 호전적 ‘네오콘(신보수주의자)’에 빗댈 정도라면 사태는 꽤 심각하다. 지금과 같은 절대 위기 국면에서는 남북 관계의 정상화와 대화가 시급함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보수 언론은 미국에 대한 짝사랑 ‘동맹’ 구도만을 축복하는 데 정신없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시사IN] 보수 언론은 예의를 지켜라

보수 언론은 예의를 지켜라

한때의 최고 통치권자조차 자살로 이끄는 한국 정치권력을 문제 삼지 않고, 보수 언론 스스로 비극의 공모자임을 반성하지 않는다면, 이후 전개될 정국에서 대다수 국민이 이들에게 바랄 기대치란 정말 없다.

[시사IN 90호] 2009년 06월 01일 (월) 10:54:33

이광석


보수 신문 조·중·동 은 노 전 대통령 서거 관련 기사 대신 북한 핵실험 기사를 머리기사로 다뤘다.

봉하마을과 덕수궁 대한문 앞 모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기 위한 추모 행렬이 끝이 없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시민에게 광장을 여는 데 불안해하며 경찰 병력과 버스로 틀어막는다.

마 음이 강건한 이는 오히려 불명예와 모욕을 견딜 수 없어서 쉽게 부러진다고 했던가. 비극적 길을 택한 우리의 전임 대통령이 그랬고, 그래서 검찰과 언론 듀오의 ‘모욕주기’의 죄질이 더욱 치졸하고 무겁다. 그런데 KBS는 그와 상관없다며 억울해한다. 조선·중앙·동아 보수 언론마냥 KBS도 봉하마을에서 쫓겨났고, 분향소 앞 시민에게 위협까지 당했다고 푸념이다. 군부독재 시절의 관제방송꼴로 떨어진 데 대해, 분통한 시민의 원성이 담겨 있음을 KBS는 몰라도 한참 모른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과 관련한 KBS의 ‘하찮은’ 오보(노 전 대통령 실족사 오보와 국민장 대신 가족장 결정 오보)를 예서 조목조목 따지고 싶지는 않다. 이병순 사장 체제 이래로 관제화하고 연성화하는 KBS 시사 뉴스 보도의 권력 기생성에 국민이 진저리 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보수 언론의 사설과 칼럼은 여전히 ‘정치적 타살’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고사하고 ‘제2의 촛불’ 경계론을 펼치며 사건이 일파만파 확산되는 것을 걱정한다. 북한 핵실험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내환”이요 “갑작스러운 악재”란다. 조선일보식 화답이요, 조선답다.

권력과 보수 언론은 국민의 저항 두려워해

조 선일보의 ‘묻지 마’ 갈등 봉합론에 따르면, “사회·정치적 분열과 갈등을 유발하면 우리 경제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 이들의 사설은 시장과 경기 회복을 위해 어지간한 것들은 모두 덮고 가자 한다. 중앙일보는 “추모 열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일부 세력을 경계한다. 슬픔에 빠져 있는 국민(중앙일보는 이에 앞서 “간혹 슬픔은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한다”라고 걱정한다)의 감정선을 앞서서 예단하는 꼴이다. 결국 권력과 보수 언론이 두려워하는 것은 국민의 분노와 저항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유발자’로, 분노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집중되는 것이 심히 부담스러운 듯하다. 

때마침 북한 핵실험과 이명박 정부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라는 극한 한반도 정세가 보수와 관제 언론에게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관련 기사들을 대신할 메인 뉴스거리가 호사를 누린다. 시민사회의 성숙도와 비교하면, 보수 언론의 보도 태도는 이렇듯 심히 부끄럽고 후진적이다. 대한문 앞 분향소에 늘어나는 조문객을 위해 인터넷 동호회 회원들이 나서서 장시간 기다리는 이들에게 주먹밥을 나눠준다고 한다. 또한 누리꾼은 인터넷 커뮤니티 내에 빈소을 꾸미고 추모의 뜻을 전하며, 추모 노래와 동영상을 만들어 공유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대다수 국민이 느끼는 슬픔과 상처를 장례를 통해 대강 봉합하려는 시도는 더 큰 사회 위기를 부른다. 한때의 최고 통치권자조차 자살로 이끄는 한국 정치권력을 문제 삼지 않고, 보수 언론 스스로 비극의 공모자임을 반성하지 않는다면, 영결식 이후 전개될 정국에서 이들에게 대다수 국민이 바랄 기대치란 정말 없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시사IN] ‘생까기 저널리즘’과 신뢰 상실이 신문 위기 불렀다

‘생까기 저널리즘’과 신뢰 상실이 신문 위기 불렀다

[87호] 2009년 05월 11일 (월) 14:19:05

이 광 석

신문의 위기는 꽤 오래전부터 얘기돼왔는데, 무엇보다 신뢰를 상실한 기사 제작 관행에 그 원인이 있다. 여기에는 보수 언론의 활약상이 두드러진다.





5월1~5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09 신문·뉴미디어 엑스포’ 행사 모습.



얼마 전 신문 엑스포 행사에 다녀왔는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난 5월1일부터 5일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렸던 ‘2009 신문·뉴미디어 엑스포’를 말한다. 신문 역사 이래 이렇게 많은 신문사가 모인 행사 기획은 처음이라고 하니, 보기에 따라서는 풍성한 것 같다. 현실적인 힘의 우위에서 전혀 격이 다른 전국 30여 신문사가 이날만은 똑같이 부스 하나씩 점유하고 4만여 명을 맞이했다니 말이다.

행 사 일부로 신문 제작 체험, 신문사 채용박람회, 언론학회 주관의 ‘신문의 미래 전략’ 세미나가 삽입돼, 말 그대로 다채롭게 진행됐다. 개막 행사에는 알 만한 정·관계 인사와 언론인 300여 명이 왔다 갔다고 한다. 행사 첫날 축사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을 대신해, 우리 신문을 “미디어 융합시대의 대표적 문화콘텐츠 산업으로서 미래 신성장 동력의 하나”라고 추어올렸다. 이날 역시나 신문이 만들어내는 콘텐츠는 정치인과 통치자에게 경제 논리를 제외하곤 달리 보이지 않았다.

대 규모 행사에 궁금증이 난 필자도,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동행해 관람했다. 행사장은 몇몇 잘나가는 신문사를 중심으로 각자 부스에서 신문사 홍보를 하고 있었다. 주변 어린이날 행사를 찾았던 엄마들과 아이들 관객으로 행사장이 북적였다. 역시나 지역신문 부스들은 한가했다. 냉정하게 따지자면 네이버의 신문 기사 아카이브 프로젝트와, 몇몇 유력 신문사의 뉴스 콘텐츠 디지털화와, 새로운 플랫폼 활용에 대한 사업 외에 사실상 흥미로운 것은 없었다. 그래도 뭔가 행사로부터 신문업계의 희망과 미래를 보여줄 게 많았다고 믿었던 터라, 관람 뒤 허탈해하는 우리 학생들에게 더욱 미안했다.

있는 사실조차 보도하지 않는 ‘생까기 언론’


올 4월에 53번째 신문의 날이 있었고, 1883년 10월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가 발행된 지 125년이 지났다. 따져보니 적지 않은 신문의 나이요 연륜이다. 일제 강점기와 군사정권 시절 여러 차례 부침이 있었으나, 몇몇 보수 족벌 언론은 특유의 생존 본능으로 다들 그 고비를 잘 넘겼다. 사실상 신문의 위기는 정치적으로 험난한 시절보다 지금이 더 심각하다. 지난해에만 전국 종합지 10개가 366억원 적자(한국언론재단, <신문과 방송> 5월호 참고)를 기록한 것을 보면, 이제 그들 스스로 생존의 기로에 서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져보면 신문의 위기는 꽤 오래전부터 얘기됐다. 어떤 이는 긴 호흡의 종이 신문 글을 더 이상 읽지 않는 이 시대 독자의 변화를 지적했다. 혹자는 포털의 가공된 뉴스를 소비하는 누리꾼의 가벼움을 탓했다. 사리와 정략에 눈먼 이들은 신문사에 종이 신문 외에 방송처럼 좀 더 돈이 되는 겸영의 출구를 마련하라고 호통친다. 최근에는 그나마 신문사 조직과 경영 효율성 제고, 독자와의 상호 작용에 기초한 뉴스 생산 등 신문사 내 개혁안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들 위기의 본질을 비켜간 논의이다.

인터넷 뉴스의 등장, 경제 한파, 신문 원부재료 가격 상승, 신문 구독 감소, 광고율 급락, 생활 무가지의 대중화 따위를 위기의 핵심으로 읊조리는 이가 있다면, 그는 좀 더 사리 판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위기는 신뢰를 상실한 기사 제작 관행에 있다. 한국언론재단은 지난 해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서, 신문구독률이 10여년 전에 비해 거의 반토막난 것으로 집계했다. 신문 신뢰도는 16%로, 인터넷(20%)에 비해서도 낮다. 게다가 사실 왜곡은 고사하고, 있는 사실조차 보도하지 않는 ‘생까기’ 저널리즘이 문제다. 이 같은 구독률과 신뢰도 하락에 보수 언론의 활약상이 두드러진다. 아직도 해결 못한 용산 참사는 지면으로부터 외면당한 지 오래고, 촛불 1주년 기념 행사는 “시위대가 망친 서울의 주말”로 묘사되었다. 이런  신문들을 돈 내고 읽을 독자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