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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nation / jonathan cauotte


 

보고 싶은 다큐멘터리, tarnation

 

"because it's not your fault, renee."

 

귀에 자꾸 맴돈다.

고통스런 타인의 삶, 그리고 지독한 관음증. 원하는 것은 무엇?

 

뒷얘기. 저작권 해결 비용을 따지니 218 달러의 예산이 40만 달러로 뛰었단다.

 

 



조너선 코엣의 <타네이션>

가정해보자. 아름답고 건강했던 당신의 어머니가 지붕에서 떨어진 뒤 정신이 이상해졌다면, 그래서 위탁시설을 전전하며 자라나야 했다면, 어머니가 강간당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거지 같은 집구석에 살면서 당신 역시 정신병원을 들락날락거리게 된다면, 그러던 어느 날 스스로가 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할머니는 죽고 할아버지는 알츠하이머로 망가지고 어머니는 리튬 과다로 위독한 상태에 있다면. 그것이 당신의 삶이라면. 그것이 당신이 품고 가야 할 가족이라면. 이 버거운 삶을 만나는 사람들에게마다 설명할 수 있을까. 결국 삶의 무게에 눌려 세상을 향해 입을 다물게 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묻겠지. “도대체 뭐가 문제야? 넌 왜 늘 그렇게 고통스러운 얼굴로 살아가는 거지?” 서른해를 그렇게 살아온 남자가. 이제 영화로 대답한다. 여기, 내 엿 같은 삶이 있어. 보라고. 들으라고. 하지만 나는 이 지옥을 사랑해.

2004년 미국 영화계는 <타네이션>이라는 200달러짜리 영화 앞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조너선 코엣이라는 서른한살의 감독이 만든 이 자전적 다큐멘터리는 2004년 초 선댄스영화제를 거쳐 칸영화제에 소개되었고, LA영화제 최고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으며, 뉴욕영화제에 상영된 이후, 10월 초 뉴욕에서 개봉했다. 극장은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한동안 <타네이션>에 대한 이야기가 뜨겁게 오갔다. <뉴욕타임스>의 A. O. 스콧은 “올해 가장 이상하고, 가장 흥미로운 영화. 이제 <타네이션>의 영향을 받은 이상하고도 흥미로운 영화가 속속들이 출현할 것”이라며 이 영화의 영향력을 점쳤고,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비범하고, 직설적이고, 절박하고, 분노에 찬,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적이고 희망적인 영화”라고 평했다. 사실 <타네이션>이 선택한 ‘비디오다이어리’ 방식이나, 편집 스타일은 그리 새롭지 않다. 한물간 유행이요, 지루한 MTV스타일이라고 말해도 좋다. 그러나 회상이나 재연이 아닌, 날것 그대로 포획된 끔찍한 삶의 장면들은 강한 힘을 가지고, 그 삶에서 나온 편집스타일은 스타일에 그치지 않는다. 여전히 자아분열적 증세에 시달리는 그에게 한장의 사진이 멀티숏으로 분할되고 다시 합쳐지기를 반복하는 화면은, 팝아트적인 표현방식이 아니라 바로 코엣의 머리 속에 펼쳐진 투명한 지옥도다. 또한 가족의 역사를 커다란 자막을 통해 대상화해 소개하는 방식은 그가 이 고통스러운 작업을 완성할 수 있었던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다.

11살 때부터 이웃의 카메라를 빌려 찍은 160시간의 분량의 테이프와 200장이 넘는 스틸사진들, 전화기의 음성메시지, <악마의 씨> 같은 컬트영화 클립들을 컴퓨터로 편집한 <타네이션>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노력을 제한다면, 단돈 218달러 32센트라는 제작비로 만들어졌다. 맨해튼 5애비뉴 보석가게의 도어맨으로 일하던 코엣은 어느 날 존 카메론 미첼(<헤드윅>)의 차기작인 <숏버스>의 오디션에 참가하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러프하게 편집된 <타네이션>을 보게 된 미첼은 이 비상한 영화를 구스 반 산트에게 소개했다. 반 산트는 “글을 쓸 돈으로 영화를 찍는 시대. 나는 늘 이런 영화를 기다려왔고 여기 그가 나타났다”며 <타네이션>의 출현을 반겼다. 결국 이 두 감독이 제작프로듀서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게 되면서 브루클린의 어두운 방에서 썩어문드러졌을 이 불행한 남자의 일기장이 전세계 관객에게 펼쳐지게 된 것이다.

조너선 코엣은 “영화감독을 꿈꾸지 않았던 때를 기억할 수 없는” 태생형 필름메이커다. 그러나 그에게서 ‘영화찍기’는 천재성의 이른 발견이나, 단순히 취미생활을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그에게 영화는 자신을 지켜내는 유일한 무기였다. 따뜻한 총이요, 부작용 없는 약물이었다. 영화의 제목 ‘Tarnation’(eternal+damnation)처럼 ‘영원히 저주받은’ 지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한때 그는 밥먹듯이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결국 벗어날 수 없다면 어떻게 이 지옥을 껴안을지를 발견했다. 그것이 영화였다. 그렇게 그는 영화와 함께 살아남았다. 곪아터져서 진물이 나고 피가 흐르고 고름이 뚝뚝 떨어지는 88분간의 기록, <타네이션>은 그 처절한 생존일지다.

 

[출처 :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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