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HS, 혹은 아나로그 시대의 종말

 

 

 

<백화제방 - 고광연의 비디오읽기>

나는 극장에서 영화보는 것을 별로 즐겨하지 않는다. 타고난 게으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극장에서 겪게 되는 여러가지 '몰상식'을 경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같은 이유가 아니더라도 비디오를 통한 영화감상은 많은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법이다. 지금은 한풀 꺾였다지만 아직도 건재한 골목골목의 비디오기게들이 증명하고 있다.

비디오의 가장 큰 미덕중 하나는 세월이 지난 영화를 보급하는 데 탁월하다는 점이다. 영화마니아들은 필시 '비디오키드'이기 마련인데 80년대에 비디오가 대중화된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저런 이유로 영화마니아들이 콜렉터가 되는 것은 필연적으로 보인다. '그' 장면과 '그' 대사를 언제든지 '리플레이' 하고 싶어하는 것이 모두의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내 주위의 많은 친구들은 대부분 집안 가득 비디오테입 쌓아두고 있는 콜렉터들인데 그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집안의 벽이란 모든 벽을 비디오테입으로 채우는 것이라던가.


정도는 덜 하지만 뒤늦게 나도 폐점한 비디오가게를 돌며 콜렉터 대열에 합류하려 애쓴 적이 있다. 특히 좋아하는 왕가위의 전작품과 주성치영화를 모으기 위하여 먼지와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던 생각이 난다.

그런데 더이상 나는 비디오테입를 모으지 않게 되었다. DVD(디지털비디오디스크 또는 디지털 다기능 디스크)이후부턴데 이제 나는 '동사서독'이나 '서린기연'같은 작품이 '지역코드 3번'으로 발매되기를 기다리거나 주로 홍콩쪽 인터넷 쇼핑몰을 기웃거리게 되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극장과 똑같은 '화면비'와 5.1채널로 '리마스터링'된 DVD에 열광하는 것은 '팬'으로써는 너무도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러나 운 좋으면 500원에도 건질 수 있는 VHS테입에 비해 평균가격 25,000원인 DVD는 오랫동안 반백수로 살아 온 나에게는 '극악한' 조건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여러 기술이 동원된 녹화방지 기술은 VHS로라도 재현하려는 나의 시도를 무력화시킨다.

그런 내가 최근엔 매일 영화를 '굽'는 일에 전력을 쏟고 있다. DVD로부터 원 소스를 추출하여 최신 동영상 압축기술로 압축된 '화일'을 '초고속인터넷 망'으로 받아 '기록가능 컴팩트디스크(CD-R)'로 만들고 있다. 최신의 '툼레이더', '미이라2' 등등에서부터 챨리채플린 영화, 언제나 바라마지 않던 재패니메이션들이 400원의 '공CD'에 구워져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상영된다.

나는 영화 한 편이 구워지는 동안 '뻑'이 날까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니터를 바라보는 동안 비디오로도 보지 못하던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 애쓰던 이들을 떠올려 본다. '비디오떼끄운동'시대를 이끌던 이들의 몰락은 90년대 말의 '생비자운동'의 태동으로 설명되지만, 사실은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동영상화일로거라 생각한다.

무수한 영화제들 사이에서 나는 비디오테입에서 동영상화일로 바뀌듯 좋은 영화 보여주기를 통해 세상을 보자는 계몽의 시대로부터 이젠 영상으로 자기 발언하는 디지털시대로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틈에, 요즘 CD-R들은 웬만해선 '뻑'나지 않고 레코딩 성공!


 

2001년 0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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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5 01:51 2006/04/15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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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미디어센터를 누가 다 운영할까”

 

문득, 미디어센터의 미래에 대해 근심함

독일의 퍼블릭액세스 채널의 하나인 베를린 개방채널 운영자인 위르겐 링크는 “개방채널은 TV를 민주주의를 위한 수단으로 삼고자하는 노력의 일부다. 우리는 TV를 목표로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공유하며, 사회전반에 다양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이것은 그저 프로그램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이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미디어센터로 할 수 있는 것은 영상제작이 전부가 아니다. 퍼블릭액세스 운동의 목표는 지역을 바꾸는 것이다. 정부의 각부처가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미디어센터 설립을 지켜보며 글쓴이가 문득 되새기게 되는 말이다.

시청자를 위해 쓰겠다고 매년 2,000억가량을 방송발전기금으로 걷고 있는 방송위원회는 올해 부산에 이어 내년 10월 개소를 목표로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건립사업을 추진중에 있다.

이미 부지를 확정하고 140억원이 예산이 투입된다니 어깨춤이라도 절로 추고싶은 심정이다. 문화관광부 또한 2007년까지 전국 17개 자치단체에 국비 10억 자치단체에서 10억, 총 20억원의 사업비로 미디어센터를 건설하겠다고 2005년 진해시와 제주도에, 2006년 예정지역으로 인천과 대구를 선정하였다.

   
▲ 방송문화진흥회의 지원사업으로 광주전남권 시청자미디어센터가 목포MBC에 설치됐다. ⓒ목포MBC시청자미디어센터
여기에 (글쓴이도 잠깐 관게했었던) 문화방송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또한 마산, 전주 그리고 목포, 춘천등 지역문화방송 계열사에 이미 시청자미디어센터를 운영하거나 설립중에 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2002년 우리나라 최초의 공공미디어센터인 ‘미디액트(www.mediact.org)’를 개소한대 이어 서울 강서구청과 전주에 미디어센터를 개소했다. 그리고 자치단체에서 독자적으로 미디어센터를 추진하고 있는 지방이 여러곳 있다. 설상가상으로 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의 계획에서까지 미디어센터를 발견하게되니 추던 어깨춤을 멈추고 나는 고민한다.

이 많아질 미디어센터가 과연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건립하는 사람들의 입장이야 분명하겠지만 이를 운영하고 활용할 지역의 역량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미디어센터가 지역 민주주의를 위한 근거지로 쓰일지, 영상교육하는 학원으로 쓰일지는 미디어센터를 들러싼 문화운동세력, 영상활동가, 지역 시민사회단체 등의 개입과 활동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으로 설립됐던 서울 강서구청의 ‘강서미디어센터’는 올해초 문을 받았다. 미디어센터를 학원처럼 인식하는 관료들과의 갈등 끝에 영상활동가들이 철수하고 급기야 영화진흥위원회가 지원을 철회하기에 이른 것이다. 공공영역을 둘러싼 이런 다툼이 강서구만이 특별함이 아니라는 것이 우리에게 너무나 낯익은 시추에이션이다.

다행히 방송위원회의 시청자미디어센터의 건립사업에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의 조직적인 대응이 가시화되고 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공공성을 확보하며, 지역의 민주주의를 위한 미디어센터를 건립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들의 일이다.

어느 가을날 떠나는 도청 앞을 지나다, 장밋빛 꿈이 난무하는 문화중심도시의 비젼을 보면서 문득 근심에 잠긴다. 그리고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과연 나에게, 우리에게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역량이 있는가에 대해….

그럼에도 꿈을 꾸어야 한다. 우리가 의지가 바로선다면 언젠가 ‘지상으로 내려 올 꿈’꾸는 이가 생겨나야 한다. 준비하고 또 준비하는 자만이 변화의 중심이 될 것이다. 공공적이고 지역민주주의 근거지가 되는 광주의 많은 미디어센터를 상상해 본다.

 

2005년 10월 19일 ;시민의 소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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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5 01:46 2006/04/15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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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미디어센터를 원하는가?

 

-변방에서의 길찾기


 

우리는 지난해 9월 20여평의 사무실을 임차해 ‘(독립)미디어센터’를 열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4년여를 매달려온 (지역)미디어센터운동의 성과였다. 그러나 내심으론 불안과 조급함이 함께했다는 것을 숨기지 않겠다. 각오와, 불안, 조급함과 함께한 9개여월의 고민을 통해 우리가 원했던 미디어센터가 어떤 것이었는지 함께 짚어봤으면 한다.


前史(전사)-우리는 미디어센터 운동을 확신하고 있을까?

보수적 문화예술만이 ‘예향’이라는 궁색함을 윤색하는, 그리고 영화운동의 전통을 단절당한 광주에서 (독립)미디어센터에 이르는 가장 큰 추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장난같은 답변일 수 있겠지만 그것은 미디어센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2000년 광주에서 열렸던 비엔날레에는 시민참여형 프로그램이 많았었다. 그중 현재의 미디어센터 주체가되었던 우리들이 진행했던 ‘영상제작워크샵’ 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우리는 이 프로그램에서 시민들이 직접 제작한 23작품을 얻을 수 있었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프로그램이었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는 지역 영화운동의 담론이 ‘어떻게 소비할까’에서 ‘어떻게 소비하고, 생산할까(생비자)’로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닳았다. 그리고 우리는 영상물을 제작하고자하는 청소년, 시민, 전업작가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작업실의 필요성을 느꼈고 이러한 생각이 미디어센터와 결합하여 마침내 ‘광주영상미디어센터’로 결실을 보게된 것이다.

이러한 전사를 돌이켜 보면서 전국각지역의 미디어센터 건립운동에 대해 갖는 의문이 있다. 이는 지난 두차례의 ‘전국미디어센터네트워크모임’에서도 든 의문인데, 우리들이 과연 ‘(공공)미디어센터’를 정말 필요로하고 있는가이다. 혹시 공적자금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미디어센터운동에 결합하고, 넓은 공간과 장비가 주어지기에 중요해지는 것은 아닌가, 자문해본다. 과연 우리는 시민들이 영상을 자신의 미디어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가, 혹은 가능성으로 여기고 있는가? 그렇다면 지역의 가능한 조건에서 미디어센터의 기능을 수행하는 ‘독립미디어센터’에 대한 논의는 없는가 말이다.

최근 지역의 공공미디어센터가 건립이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단다. 그동안 미디어센터 건립운동을 벌여온 우리들에게 좋은 기회가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에 우리가 개입하고, 나은 방향으로 흐름을 이끌수 있을까? 누가 우리의 말에 귀기울여주고 같이 싸워주고, 함께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동안 미디어센터운동가로서 실천해 왔던가? 의문은 꼬리를 문다.

 

아마, 2004년, 3년쯤인가

오늘-「‘공공’미디어센터 추진위」를 꿈꾼다

그동안 광주는 광주민언련과 광주영상미디어센터가 미디어센터건립과 관련한 논의를 이끌어왔다. 그러나 이 두조직은 미디어센터에 대한 입장에 다소간의 차이가 있었다. 우리가 보기에 민언련은 퍼블릭액세스권과 관련하여 미디어센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공간과 장비의 활용에 관심을 보인듯하다. 이런 생각은 문광부의 문화산업진흥센터건립 자금으로 설립된 ‘광주영상예술센터’의 평가에서도 나타나는데, 민언련은 이곳을 적극 활용하자는 입장을 보여왔다. 우리에게 미디어센터는 (민언련과 마찬가지로)영상에 대한 전시민의 접근권보장과 진보적인 영화운동흐름의 공동체 역할을 해내는 곳이어야 한다. 장비와 기자재를 빌려주는 것 외에, 교육과 제작지원을 통해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공간 제공과 독립영화 배급 등을 포괄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영상산업을 위한 창업지원센터를 표방하는 관료조직에 기대어 이룰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언론운동과 영화운동의 이런 차이가 갈등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입장차이가 아니라 입장차이를 해소하기 위한 논의틀의 문제다. 그동안 우리지역에 퍼블릭액세스권의 강화를 위해 조직되었던 ‘시청협’ 조직은 이런 입장차를 해소하지 못했다. 지역사회단체들의 연합조직이었던 ‘시청협’은 지역사회단체들의 영상미디어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듯 부진한 활동을 벌여오더니 2001년말 경 자연스레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1년여의 각개약진을 거치며 민언련과 광주영상미디어센터로 재정립된 미디어센터 추진조직들은 새롭게 대화의 틀을 마련하기로 하였다. 민언련과 우리가 논의를 시작하고 미디어센터 건립운동을 함께할 지역의 NGO들을 묶에 「‘공공’미디어센터 추진위」를 만드는 방안이 현재 논의중이다. 여기에는 두 조직외에 광주전남문화연대와 민족예술인총연합광주지부가 참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조직의 성격과 활동이 앞으로 광주지역의 공공미디어센터의 성격을 결정할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광주시는 노무현대통령의 문화수도 공약에 따라 문화수도를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제시하고 있다. 하드웨어와 이벤트 중심적인 이런 계획은 시민사회단체와 문화예술인들의 적극적인 정책개입을 요구하고 있다. 때문에 ‘공공’미디어센터를 추진하는 조직과 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의 네트웍도 중요한 요소가 될 것으로 본다.


어떤 미디어센터를 원하는가?

알고있듯이 공공미디어센터 건설이 발빠른 행보를 보이는 지금, 우리는 지역 미디어센터의 ‘이상’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미디어센터를 원하고 있는가? 그것을 위해 어떤 공간들이, 시설이, 장비가 필요한가? 이때 고려되어야 할 지역의 역량, 운동주체의 전망은 무엇인가? 지역 미디어센터의 기획안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이 작업을 통해 각추진세력들과의 입장을 조율하고, 완성된 기획안을 통해 미디어센터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선전하며 이 과정을 통해 논의를 주도겠다는 계획이다.

광주의 관료들 또한 ‘문화산업적 마인드’와 자신들의 ‘시야 안에서’ 문화정책을 처리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독립영상미디어센터를 통해 논점을 선점해왔다. 그리고 이달 8일에 가진 ‘제1기 디지털영화워크샵 작품발표회’ 등을 통해 시민미디어의 가능성을 재확인했다.

미디액트가 미디어센터의 전범이 되었듯 광주지역의 공공미디어센터 추진운동이 제대로된 지역 미디어센터 건설의 모범이 될 것이다. 각오는 새롭고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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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5 01:41 2006/04/15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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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에서 영상으로 운동하기

            이런 종류의 글쓰기는 마치 늙은 퇴기의 회고담같다. 또는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지만 벼락스타의 스포츠지 연재물, ‘뜨기까지의’ 고생담 같다. 따라서 매우 곤혹스러운데, 첫째 (황지우시인의 ‘늙기 전에 죽자’를 경구처럼 떠받드는) 나는 아직 ‘충분히 늙지’ 않았기 때문이고, 아직 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분석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강제적으로 주어지는 기회를 통해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점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로 글쓴이가 새로운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

글쓴이가 갑자기 ‘비디오액티비스트’라고 했을 때, 친구들이 보인 반응은 ‘이게 뭐야’였다. 다시 ‘영상미디어운동가’라고 고쳐 말하니 ‘그걸로 운동이 되냐’란다. ‘문학운동’, ‘학생운동’을 함께하다 글쓴이가 ‘정보통신운동’, ‘청소년운동’ 등등을 거치는 동안 길을 달리하긴 했지만 친구들이 이렇게 ‘무식해 졌는지’는 몰랐다. 그러나 곧 나는 당연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는 극장에서 보는 영화나 결혼식 비디오를 가끔 돌려보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낄낄거리는 것이 영상문화체험의 전부인 것을 내가 생각 못한 것이다. ‘네가 그 나이에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결혼식 비디오를 찍겠다는 거도 아닐 텐데 너 하는 꼴이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글쓴이가 동료들과 ‘광주영상미디어센터’라는 간판을 내걸자 십시일반 했던 고마운 동무들이다.

그러나 친구들의 이 말이 진실을 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말속엔 ‘광주에서?’라는 뜻이 담겨있음도 알게되었다. 광주의 문화정책은 전통적인 예술장르에 집중되어 있어 새로운 무엇을 시도하는 것이 어려운 조건이다. ‘광주에서 비디오로 운동을 한다.’ 이게 내가 아직 뜨지 못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사파티스타의 마르코스가 새삼 일깨워준 것처럼 ‘말은 우리의 무기다’. 이는 문학청년이던 시절부터 내내 추구하던 바다. 따라서 나에게 남한 변혁운동의 몰락은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로부터 온 내재적인 원인 때문이었으며, 정보통신-커뮤니케이션운동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인터넷에 진보적인 방송국을 만들면 어떨까 등등의 공상만 일삼던 시절이었지만 미디어운동의 가능성을 확인하던 시절이었다. 대안교육과 청소년운동에 관심을 갖던 내가 갑작스레 영상미디어운동으로 선회한 것도 이 ‘말’ 때문이었다.

과장된 표현을 사용한다면, 1998년은 남한 청소년들이 영상으로 자신들의 ‘말’을 시작한 때로 역사가 기록할 것이다. ‘고딩영화제’와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가 맹위를 떨칠 때 청소년운동을 하고 있던 나는 곧바로 ‘청소년영화모임 출아’를 조직했고 이를 통해 이제 영상이 청소년에게뿐만 아니라 우리모두에게 ‘말의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절감했다. 특히나 2000년에 있었던 제3회 광주비엔날레의 영상프로그램은 지역민을 대상으로 초보적인 영상제작교육을 시켜 그들이 직접 영상물을 제작하게하는 내용이었는데 이 프로그램의 운영팀으로 참가했던 나는 시민들의 영상창작 욕구에 놀라고 영상을 다루는 그들의 솜씨에 놀랐다. 수강생들이 제작한 23편의 작품을 상영하면서 영상운동의 가능성을 확신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게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시민이 영상으로 자신의 발언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많은 경제적, 기술적인 문제가 따르기 때문이다. 디지털기술의 발전으로 장비의 가격과 기술이 낮아졌다지만 이를 익히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교육기관과 무엇보다 장비가 필요했다. 영상미디어운동이 ‘영상예술센터 건설운동’으로 집중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궁극적으론 21세기 공공문화인프라의 핵심인 미디어센터가 세워져야 되겠지만, 우리의 문화정책이 산업적 마인드에 기반하고 있음을 생각할 때 서울의 ‘미디액트’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글쓴이는 도무지 공무원들의 마인드를 믿을 수 없어서 ‘독립’미디어센터를 만들었다. 꼭 공무원들의 마인드 때문만은 아니지만 지역영상운동은 많은 문제들에 봉착해 있다. 창작의 문제, 교육의 문제, 시설․장비의 문제와 돈벌이와 오락, 또는 예술로만 대접받고 있는, 그래서 미디어가 될 수 없다는 온갖 편견들 등이 있다.

이쯤에서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나’라는 자문을 하게 된다. ‘사람과 진보에 대한 믿음’이라고 한다면 진실성이 있어 보이나? ‘재미있어서’라고 한다면 ‘마누라’한테 저녁밥 얻어먹길 포기해야 할텐데! 글쓴이는 뭔가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 며칠을 보낼 것이다. 어찌됐건 나는 아직 ‘충분히 늙지’ 않았으므로.

 

아마, 2004년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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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5 01:38 2006/04/15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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