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중순, 한 사업장에서 조합원들이 대거 집단 탈퇴를 했다.

지부장이 있는 사업장이기도 하고, 이 지역에서 노조의 중심적인

사업장이기도 했다.

 

영아전담시설(0세~4세)과 유아시설(5세~7세)이 법적으로는

독립적인 두 곳이 사실상 하나의 어린이집처럼 함께 논의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여차여차 하여 유아시설 문을 닫는 계획이 나왔고,  그 계획은

그곳에 아이들을 보내고 있는 학부모들이나, 그 곳에서 일하고

있는 보육교사들 또한 충분히 동의하기 어려운 계획이었다.

 

영아시설에는 7명의 교사가 일을 하고 있었고, 유아시설에는

우리 지부장 외 한명의 교사가 일을 하고 있었다.

 

교사회의에서 유아시설에 있는 지부장과 다른 한명의 교사가

유아시설을 폐쇄하는 안에 대하여 반대의견을 내었으나, 

반대하는 근거에 대하여 충분히 해소되지 않은 채로 학부모와

하는 회의는 열렸다.

 

학부모들과의 회의에서 유아시설 근무중인 지부장은 학부모들과

함께 폐쇄반대의견을 내었고, 원장과 영아시설 근무중인 교사들은

시설폐쇄의견을 내었다.

 

결국은 문을 닫으려는 원장의 의지에 따라 결론은 유아시설은 폐쇄

하고 영아시설을 확장하면서 유아시설에 있는 교사들도 영아시설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논의과정에서 원장과 영아시설 근무 교사들은 동일한 입장을 가지게

되었고, 지부장이 학부모들과 같은 입장을 내면서 영아시설 근무교사들은

지부장이 교사들 편에 서지 않았고, 재정공개 등을 제기하여 어린이집의

치부를 드러냈고, 원장과 교사들을 학부모들 앞에서 모욕을 주었다고

받아들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이전의 봉합되었던 불만들- 자신의 노동과정

에서의 억눌려왔던 불만, 노조에 대한 불만, 지부장에 대한 불만, 원장에

대한 불만까지도 엉켜서 정확히 무엇이 어떻게 풀려아 하는 지 생각하지도

못한 지경으로 폭발하면서 노조를 탈퇴하고, 어린이집도 그만 두겠다고

선언하였다.

 

노조에서는 집단 탈퇴로 조합원 수가 적어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느끼는 문제와 불만, 요구들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며 감정의

골만 깊어지고 관계가 파탄나는 것을 우려하였다. 하여 시간을 두고 갈등을

풀고, 이후 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

오래도록 알고 지내던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원장과 영아시설교사들을

만나고, 지부장이 그간의 사건에서 책임을 느끼며 사과를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이 한꺼풀 사그러들면서 뭔가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였다.

 



이번 주 들어 원장과 전 교선부장은 지부장에게 어린이집을 그만 두라고

통보하였다. 11월에는 너무 화가 나서 어린이집을 그만 두겠다고 했지만

책임지고 나갈 사람은 지부장인 거 같다. 지부장이 안 나가면 영아시설도

문을 닫겠다고 하였다. 지부장이 거부의사를 밝혔고, 어제는 아이들 앞에서

큰소리가 오갔다. 원장이 밤길 조심하라는 감정적인 위협이 있었고,

아이들은 눈이 동그래져서 눈치를 보았을 것이다.

 

다시 어제와 같은 일이 벌어질까 걱정되어 오전에 어린이집에 가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려고 애를 쓰며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는

지부장의 모습을 보는데 울컥 눈물이 나왔다.

 

고개를 숙였다.

 

노조 초기라서 조합원도 많지 않은 가운데 서로 의지하며 열심히 투쟁했던

때가 생각이 났다. 우리의 투쟁들이, 또 노조경험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노조운동이 위기라는 이야기를 하며, 단지 노동조건의 개선뿐만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이 처한 구조적인 모순을 인식하며, 사회를 변혁하는 주체를

형성해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되면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 것인가.

 

자본주의 하에서의 왜곡된 관계가 아니라 노동자민중들 서로간의 관계가

어떠해야 할까. 우리들의 관계에서 무엇이, 또 어떻게 존중되어야 할까

이런 고민은 들어설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오늘도 해맑은 얼굴로 "까치~"하며 와서 안긴다.

참새처럼 재잘거린다.

아이들의 웃음과 목소리가 오늘따라 내 가슴을 참을 수 없이 먹먹하게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1/12 13:17 2007/01/12 13:17
https://blog.jinbo.net/wldud/trackback/44
  1. 교섭 전 긴장상태

    FROM 2007/02/07 13:24  삭제

    까치님의 [눈물을 삼키며] 에 관련된 글. 아래 포스트에 있는 그 건으로 오늘 교섭이 있다. 이미 2주전 교섭에서 우리 조합원(전 지부장)의 1년 휴직은 노조에서 받을 수 없다고 입장을 밝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
  1. 알엠 2007/01/12 1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음 많이 아프시겠어요. 위로를 드리고싶지만 딱히 어떻게 위로해야할지 잘 모르겠구요...어쨌든 지부장님도 아이들도 행복한 보육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까치 2007/01/12 1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엠.. 요즘 자주 뵙지 못하여 서운하지만 이렇게 인터넷상에서라도 만나니 너무 반갑네요! 알엠님 위로를 지부장님께도 전해드릴께요. 저는 다시 어린이집으로 내려감다~~

  3. 뎡야핑 2007/01/12 1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잘 모르지만 노조가 부당해고로 대응할 수는 없나요? 지부장님은 어떡해요ㅠㅠ

  4. 까치 2007/01/12 1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뎡야핑.. 오늘 간부회의에서 이후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에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많은 걸 예측하긴 어렵지만, 만일 노조차원으로 해고반대투쟁을 하게 되면 탈퇴한 조합원들의 감정은 더욱 안 좋은 방향으로 가지 싶어요. 탈퇴한 조합원들이 원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이 걱정되요..

  5. grandma 2007/01/15 0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술주정뱅이~ ㅋㅋ

  6. 까치 2007/01/15 2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할멈.. 헉~ 그런 나의 일급비밀을 누설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