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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영이 이야기

은영이 이야기

 

진 재 연 | 정책편집부장

내가 은영이(가명)를 처음 만난 건 97년 겨울이었다. 도시빈민야학을 하던 동아리에서 철거지역 주민들이 떠나고 공부방에 아이들이 오지 않자, 급하게 들어간 곳이 근처의 한 보육원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은영이는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세 살 때 엄마가 보육원에 맡긴 후 다시 찾으러 오지 않았다. 물론 은영이에게는 기억도 없는 일이며 신상기록부에 한 줄 적혀 있는, 보육원선생님들한테 들었을 뿐인 이야기다. 사실 그 보다 은영이를 아프게 했던 건 초등학교 1학년 때 입양되었던 집에서 5년 만에 다시 파양(입양파기)되었다는 사실이다. 5년 동안 ‘가족의 구성원’이 되지 못한 채 지내며 상처만을 안고 다시 보육원으로 돌아와야 했다.

 

파양된 이유는 표면상으로는 은영이의 도벽이었지만, ‘피’가 섞이지 않은 은영이가 가족 구성원이 되기는 쉽지 않았다. 아이답지 않게 빨리 철들어 버려 속 깊은 은영이를 볼 때마다 파양을 겪어야 할 만큼 정말 도벽이 있었을까 의심스러웠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 나이 또래 아이의 행동이 가족에게 버림받을 만한 일이었을까. 아니, 처음부터 은영이는 단란한 가족안에서 ‘타인’일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사회에서 ‘가족’이란 두 가지 요건이 필요한데 하나는 (혼인이라는 제도를 전제하는) 남녀간의 결합이고 또 하나는 (부계만이 인정되는) 혈연이다. 그 둘 중 하나라도 만족하지 않는 비혼모, 비혼부, 동성/이성간동거, 한부모가족, 독신가구, 입양가구 그리고 그 밖의 공동체는 ‘정상가족’이 되지 못한다. 또한 ‘정상가족’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열등한 개인이 되어버린다. ‘입양’의 경우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정상가족’이 될 수 있지만, 한국사회에서 ’혈연‘의 구속력을 뛰어넘기란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정상가족‘에 대한 이데올로기속에서 개인들이 철저한 혈연주의적 배타성으로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만들어왔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 ‘정상가족’은 무엇인가? 우리가 전제하고 있는 가족,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단일한 가족형태는 존재하는가? 언론은 부모가 모두 건재(!)하고, 아들딸 비율이 적당하게 맞는 단란한 가족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내지만 정작 현실의 가족은 그렇지 못하다. 이미 많은 아이들이 이혼한 부모를 가졌고, 재혼한 부모를 가졌다. 혈연이 아닌 사람들이 가족안에 들어와 있거나, 동성애 가족을 이루기도 한다. 또 은영이처럼 부모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도 많이 있다. 내가 은영이를 처음 만났던 97년, IMF을 거치며 버려진 아이들이 보육원에 넘쳐났는데, 상황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당시에는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사람들이 잠시 보육원에 아이들을 맡긴 것이라면, 지금은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절망의 나락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이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정상가족’은 이미 오래전부터 대다수 사람들에게 이상이었을 뿐이며,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폭력은 사람들이 더 이상 그 ‘정상가족’조차 유지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비정상가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남자 친구와 다투고 새침해있던 은영이가 얼마 전에 술 마시고 던진 한마디. “고아는 고아끼리 결혼해야 하나봐요...”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정상가족’이라는 관념은, 은영이를 ‘고아’라는 열등한 존재로 짓누르고 그게 가끔 은영이를 힘들게 한다. 그런 은영이를 보며 나는 어떤 가족을 만들어야 할까, 나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면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본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공동체를 꾸리자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하기도 하고, 은영이를 알게 된 이후 관심을 갖게 된 입양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한다.(물론, 비혼에 경제력도 없는 나는 입양을 할 수 있는 자격도 안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도 하겠지만 내가 부모님 곁을 떠나 새롭게 갖게 될 가족, 혹은 공동체가 어떤 모습이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스물세 살의 은영이는 지금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과 살고 있다. 그들은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아주 어릴 적부터 ‘가족’이었다. 아니, 그 공동체가 가족으로 불리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은영이와 친구들의 공동체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를 유지해나갈 수 있는가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그 밖의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적 삶을 인정하고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세상을 위해 은영이와 함께 열심히 싸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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