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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3/31
    여성부에는 '여성'이 없다?!
    사회진보연대 여성위
  2. 2005/01/26
    보육노조, 갈 수밖에 없는 길(1)
    사회진보연대 여성위
  3. 2004/12/29
    밀양성폭력 사건, 네티즌들의 분노와 행동, 그리고 우리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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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4/12/04
    "여성"이 전쟁범죄를 기소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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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4/11/02
    건강가정기본법, 건강한 가정의 기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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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4/10/05
    성매매방지법 시행을 맞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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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4/09/03
    공권력이 침해한 몸에 대한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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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4/09/03
    최저임금현실화 투쟁, 그리고 상관없는 이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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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4/09/03
    생리는 존중받고 배려받아야 할 정당한 여성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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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4/09/03
    당신은 자랑스런 여성노동자입니다.
    사회진보연대 여성위

여성부에는 '여성'이 없다?!

여성부에는 ‘여성’이 없다?!

 

유 나 경 | 공공연맹 조직차장

 

여성가족부.....여성과 가족을 병렬해 놓은 꼴이 어째 냄새가 심하게 났다.
이름만 들어도 한심하고 대책 없다.
자세한 내용을 들여다보니, 빠르면 5월쯤 기존의 ‘여성부’를 ‘여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고 가정기본법과 모부자복지법을 이관하여 가족보호정책과 출산정책을 여성부의 기존기능과 연계하여 핵심정책으로 수행한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란다. 법안은 이미 통과됐고....

가만 보아하니 정부가 출산율 저하와 이혼율 급증에 대해 꽤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위 두 가지 법안의 소관부서였던 보건복지부의 반발이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낱(?)’ 여성부에 미래의 노동력을 담보할 인구정책을 맡긴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여성만이 출산기능을 가졌기 때문에 여성이 노동력 감소, ‘늙은 한국’을 해결할 주인공인 것만은 확실하다. 거기까지는 정부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 해결방법 속에는 ‘여성’이 빠져있다. 진정 현재 한국사회에 살고 있는 여성들의 문제가 무엇이고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과 고민은 전혀 없고 ,국가와 자본의 이해와 요구에 따라 여성들은 애 낳으러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란다.

 

앞으로 재편될 여성가족부가 시행할 ‘건강가정기본법’과 출산율 제고를 위한 출산정책의 핵심이 무엇인가? 대표적인 조항 두 가지를 보자.(지난 소식지 참조)
법안 31조 ‘이혼예방 및 이혼가정지원’에 따르면, 이혼하고자 하는 부부는 이혼 전 상담을 필수적으로 받고, 이혼이 불가피하다는 확인서를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받아야 법원으로 갈 수 있게 된다. 소위 이혼을 어렵게 만드는 조항이다. - 우리는 이미 이것을 ‘이혼허가제’라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법안 제8조 ‘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출산장려 차원에서 피임 목적인 정/난관 수술은 건강보험 대상에서 제외했다. - 이 조항에 따르면 여성의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 침해 등 고상한 비판을 동원하기도 어렵다. 대다수 출산할 나이에 있는 비/기혼 여성들은 사회적 중요성도 인식 못하고, 의무이행을 하지 않는 반사회인이 된다. 나원....참! 졸지에 가족해체를 조장하고 비사회적인 이탈자가 된 기분이라니...(주변에 어른들이 가끔씩 왜 결혼 안 하냐고 하면서 나라 인구가 어떻고...미래 한국이 심각하다..등등의 질책성 발언까지 겹치면...진짜 이보다 더한 역사의 죄인이 따로 있으랴!! 으~~ 극심한 이데올로기 공세여~~) 사회통념상 혼기에 찼거나, 혼기가 지난 여성들 몇몇에게 물어봐도 알 일을 정부는 왜 모르는 걸까? 우리는 그러한 여성들의 문제와 요구를 ‘여성의 빈곤화(빈곤의 여성화)’, ‘비정규직의 여성화(여성의 비정규직화)’, ‘성적차이’, ‘성폭력, 성차별 해결’ 등 다양한 의제로 표현했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여성부’의 ‘여성가족부’로의 확대는 이런 여성들의 목소리는 하나도 안 들었다는 얘기다. 여성문제 해결하겠다고 여성부를 형식적으로 설치해놓고 구색 맞추기 했다가 정작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니까 여성들이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른다. 사회적으로 여성의 진출이라는 형식적 진전과 수치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여성들을 가정해체의 주범으로 낙인찍어 ‘출산기계화’하고 가사, 육아의 문제는 모두 침묵한 채 재생산의 역할을 국민의 의무로 받아 안으라 한다. 누누히 강조해 왔듯이 정부가 말하는 ‘핵가족 모델’에 근거하지 않은 가족의 형태가 전체 가구수가 3분의 1을 넘어서고 있다. 혼인/혈연/입양 외에도 비혼동거/ 동성애부부/ 독거가구 등의 가족속에도 ‘여성’은 있다.

 

진지하게 ‘여성’을 고민하라!

정부가 말하는 여성정책에는 ‘여성’이 없다.

‘가족’밖에서 다른 삶들을 살고 있는 여성들의 선택을 이해하라!

정부는 여성에게 가족복지를 짐 지우는 방식이 아니라 다른 삶의 조건들과 동등하게 자연스런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는 ‘여성’의 삶을 고민해야 한다. 소위 정부가 규정하는 ‘가족’, ‘가정’의 범주 안에 여성을 가두고, 여성의 ‘의무’만을 강조하는 한 여성들은 계속 ‘망명자’, ‘이탈자’의 길을 선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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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노조, 갈 수밖에 없는 길

보육노조, 갈 수밖에 없는 길

김 지 희 | 전국보육노동조합 교육선전국장


우연한 기회에 지난 1990년에 있었던 혜영, 용철이 추모제 자료를 읽었다. 혜영, 용철이는 맞벌이 부모가 일하러 간 사이 밖이 위험하다며 잠가놓은 방안에서 불장난에 목숨을 잃은 남매들이다. 어이없게 죽어간 남매의 넋을 달래기 위해 굿 형식을 빌은 추모제가 열렸고, 탁아입법 등에 영향을 미친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동시에 이 사건은 당시 탁아운동에 몸 담았던 모든 이들의 뼛속에 사무치는 하나의 나침반이 되었다.

세월이 지나 탁아(託兒)는 보다 넓은 의미의 ‘보육(保育)’이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보육 수요 역시 빈민 뿐 아니라 맞벌이 부부, 일반 가정 등으로 확대, 보편화되었으며, 사회적 인식 역시 공공서비스의 하나로 인지해가고 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세간의 인식 변화에는 아랑곳없이 보육현장 자체는 좀처럼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매년 터져 나오는 아동정원초과와 부실한 급간식 문제, 이어지는 임금체불과 일상적 무보수 초과근무, 높은 아동 대 교사 비율 등...
국가의 지원 없이는 시설 유지가 불가능한데다가 공공재로써 사회적 기능을 품지 않으면 진정한 공보육의 의미를 가질 수 없는 현장에서 영리를 추구하는 장사치들과 사회공공성 개념이 떨어지는 정부가 잘못 빠진 까마득한 수렁의 모습이다.

오늘도 보육노동자는 돌봄 노동에 대한 가치 절하, 평균 10시간 근무, 임금 60~100만원 사이, 사업장당 사용자 대 노동자 비율 평균 1:4의 생활을 버틴다. 그토록 바라던 인권보육의 실현이 여성, 비정규, 영세라는 최악의 현장 조건 속에서 조용히 조금씩 죽어가고 있는 것을 목도하면서...

그리고 보육의 역사를 볼 때 한참 뒤늦은 이 때, 드디어 노동조합이 생긴다. 전국보육노동조합은 어린이집, 놀이방, 보육정보센터 등에서 활동하는 교사, 사무원, 취사부, 운전사 등이 주체가 되는 노동조합이다. 동시에 ‘인권보육 실현’이 뿌리채 뽑혀가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이들이 갈 수 밖에 없는 길이다. 갈 수 밖에 없기에 멈출 수 없는 그 길, 전면에 내건 4대 구호인 ‘인권보육실현!, 보육노동자 노동조건 개선!, 보육의 공공성 쟁취!, 보육현장 개혁!’의 기치 아래 하나로 모인 보육노동자들의 발걸음이 행복하게 자랄 권리, 행복하게 일할 권리를 찾아나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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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성폭력 사건, 네티즌들의 분노와 행동, 그리고 우리들의 ()

밀양성폭력 사건, 네티즌들의 분노와 행동, 그리고 우리들의 (   )

한 아 름 | 학생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일은 아니다.
올해의 마지막 달에 들려온 밀양 성폭력 사건 소식은 또 한 차례의-어쩌면 지긋지긋한!-분노를 안겨다주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는 종잡을 수 없이 이곳저곳으로 뻗쳤다. 가해 남학생들은 물론이고 그들을 ‘옹호’하기에 급급한 가족과 주변 사람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고려 없이 대수롭지 않게 ‘일’을 처리하는 경찰들. ‘먹잇감’을 찾았다는 듯이 달려드는 언론들.(밀양성폭력 사건과 관련한 한 인터넷 기사는 내가 알고 있는 ‘해결되지 못한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가 쓴 것이었다. 이러한 기사들을 접할 때의 오묘한 기분이란!) 그네들이 토해내는 선정적인 기사들. 그러한 기사들을 보면서 ‘마음대로’ 떠들어대는 사람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성을 상품화하는 결국 ‘여성=성상품’이 되고 마는 이 세상... 마구잡이로 뻗어나가던 분노는 세상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다. 이 놈의 세상이란.

염세주의자가 되어 세상 한참 한탄했다는 부끄러운 고백을 이렇듯 길게 늘어놓는 이유는, 분노를 모아 행동으로 취하는 대중들의 움직임 덕에 정신 차릴 수 있었다는 말- 이 역시 다소 부끄러운 고백이지만-을 하고 싶어서다.

‘성폭력’이라고 하면 ‘정신병자 혹은 치한에 의해 어쩌다 재수 없게 발생하는 강간’ 정도로 여겨져 오던 우리 사회에서 중고등학생에 의한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성폭력이 발생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일이 경찰과 학부모들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에 의해 봉합되려 한다는 사실은 큰 충격을 가져왔다. 이에 네티즌들은 온라인에서의 행동을 넘어 오프라인의 행동을 조직했다.
12월11일 토요일 광화문 앞에는 밀양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촛불을 들었다. [디씨 인싸이드]에서 활동하는 네티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남자아이는, 밀양에서 일어난 이번 성폭행 사건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임에 분명하지만 보다 안타까운 일은 이런 일이 그동안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도 많이 발생해왔다는 사실이며 그것을 알아가도록 하자고 말했다. [엽기혹은진실]에서 활동하는 네티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여자아이는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부탁한다고, 이곳에 모여서 이렇게 함께 분노한 사람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이번 일에 대해 잊지 말자고 간절히 호소하기도 하는 등 투박하고 거칠지만 감동적인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소위 ‘인터넷 폐인’, ‘?자’ 등으로 통칭되어 날밤을 새며 그 닥 쓸데없는 일을 하는 이들로 여겨지던 이들이 오프라인 상의 집단행동을 조직하고 사건해결을 위한 진심을 보이는 모습은 진정 감동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밀양 성폭력 사건을 둘러싸고 그네들이 보인 폭발적인 반응(가해자들의 미니홈피 테러, 신상정보 인터넷에 유포 등)은 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 바람직한 모습이라 할 수 없었고, 이에 대해 네티즌에 대한 그간의 인식의 연장선상에 있는 ‘우려’가 존재했던 것이었다.

naver, daum, 싸이월드, 디씨인사이드등에 밀양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해결 촉구와 피해자들을 지지하기 위한 공간을 마련한 네티즌들은 인터넷 선전 및 서명운동과 촛불집회등을 지속하고 있다. 인터넷 선전의 한 예로 ‘나무 키우기’ 운동을 진행하는 모습을 들 수 있겠다. daum 이벤트의 일종인 ‘나무 키우기’는 까페회원들의 단합된 행동으로 순위 안에 들면 지원금을 탈 수 있는 것인데, 밀양성폭력 사건과 관련하여 daum에 까페를 차린 이들은 활동비 마련과 피해학생들에게 지지금 전달을 목표로 하여 ‘나무 키우기’를 하나의 운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인 25일에도 촛불집회를 제안하고 진행했던 이들은 돌아오는 토요일인 신년 첫날 저녁의 집회도 의미있는 모습으로 만들어나가기 위해 고민 중이다.
비록 네티즌들의 반응과 행동을 곧바로 대중들의 그것으로 치환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들의 분노를 정치적인 행동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는 그네들의 모습은 주목할 만한 것임이 분명하다. 딸가진 부모로서 세상살기 무섭다는 이야기, 딸없는 부모들은 이 사건에 관심을 안두는 세태가 속상하다는 이야기, 가해자들에게 너무나도 경미한 처벌이 가해지는 현행법이 어떻게든 바뀌어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 청소년들의 성의식을 바로잡아야하겠다는 이야기, 결국 이 사회에서 성과 관련하여 큰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 피해학생들의 상처가 모쪼록 치유되길 바란다는 이야기, 그런데 왜 대학가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토록 조용한지 왜 국보법과 호주제 폐지와 관련한 이야기만 있는지 불만이라는 이야기...대중들이 스스로의 입으로 고민을 이야기하고 그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올곧은 방향을 마련해나가는 모습들 말이다. 실지로 네이버의 한 까페에서는 ‘서울경기지역/부산대구경상지역/광주전라지역/대전충청지역/강원제주지역’오프라인 모임을 꾸려내어 지역별 촛불집회를 조직하고 있고, 또한 비단 밀양 성폭력 사건 뿐만 아니라 여타의 청소년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고민들을 심화시키고 성범죄/성폭력에 대한 확장된 합의들을 정립해나가는 등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네티즌들의 움직임을 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나만의 모습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여성에 대한 억압의 기원을 인식하고 있는 운동주체라 할지라도, 여성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준 이러한 충격을 현실 자체를 변화시켜낼 계기로 삼지 못하고 오히려 네티즌들의 역동적인 분노와 행동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밀양 성폭력 사건을 통해 대중들은 솔직하게 분노하고 기민하게 행동하는데, 과연 운동주체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들의 ( )"라는 괄호 안에는 과연 어떠한 말이 들어가야 적절하겠는가? 실질적인 피해자 지원과 사건의 올바른 수사 촉구를 넘어, 분노하는 대중들에게 정치적으로 올곧은 행동양식을 제시하는 것, 정세적으로 창출된 국면을 대중이데올로기 지형을 변화시키는 계기로 삼는 운동은 어떻게 사고되어야 하는가?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순결이데올로기등 기존의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분노에 대한 비판도, 피해자들의 상처치유를 고려하고 있지 않은 분노표출방식에 대한 비판도, 모두 분노한 대중들과 함께 행동을 취해가는 과정에서 제기되어야 유효할 비판들이라는 사실이다. 입장의 올곧음은 행동의 기민함과 만날 때에야 비로소 쓸모 있어지는 법이다.

물론 운동주체들의 기민하지 못함만이 현재 밀양 성폭력 사건과 관련하여 ‘정작’ 운동주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원인은 아닐 것이다.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서, 어떠한 운동‘들’이 필요하며 그러한 운동들이 어떻게 서로서로를 견인해 나갈 것인지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내지 못한다면, 돌발적인 상황에 대해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 기존의 운동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운동을 포용함으로써 보다 위력적인 운동을 벌여내는 것 등은 버거운 일일 테다. 한 네티즌이 올린 이야기 -왜 동아리 방에서는 지금 모든 사람이 관심 있는 밀양성폭력 사건과 관련해서는 이야기되지 않고 늘 국가보안법 철폐만 이야기 되는가 -가 담고 있는 일말의 진실에 대해 고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밀양 성폭력 사건, 그리고 그에 대한 네티즌의 분노와 행동은 우리에게 현명하고 민첩해 질 것을 촉구할 뿐 아니라 운동의 근본적인 부분까지 심사숙고하도록 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을 반대하는 의미에서의 반성폭력 운동은 어떻게 계속될 것인가. 성(性)의 상품화,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대한 반대는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성(性)적 교통, 여성의 섹슈얼리티(sexuality)의 발현의 문제와 어떻게 조우할 것인가. 그리하여 여남 간의 관계의 전화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그것들은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운동과 어떻게 근본적으로 관계 맺을 것인가.

"밀양 성폭력 사건, 네티즌의 분노와 행동, 그리고 우리들의 ( )"의 괄호 안에 들어갈 적절한 말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진지한 모색과 때를 놓치지 않는 행동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 같다.

 


<참고>
**** 밀양 집단성폭행 사건에 관련한 네티즌 요구문

이번의 밀양집단성폭행 사건은 불과 14살 남짓 밖에 안 된 어린 여중생들을 상대로, 현재 밝혀진 것만으로도 무려 41명에 달하는(직접가담의 혐의가 확인된 범인은 현재 12명) 용의자들이 일 년 간에 걸쳐 집단적-조직적으로 행했다는 점에서, 성범죄의 간악한 수법이 청소년에게까지 퍼져있을 정도로 성범죄의 수위가 현재 극도로 위험한 상태에 달해있음을 알려준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또한 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피해자에 대한 비인권적 수사관행과 허술한 신상보호, 그리고 가해자 측의 죄의식 없는 시대착오적인 남성절대우월주의의 사고방식과 언론의 선정적이고 왜곡된 보도 등은, 이 사건 자체의 충격과 함께 대한민국 성범죄가 가지고 있는 총체적인 심각한 문제까지 모두 보여주는 것이기에, 밀양집단성폭행 사건은 그저 일례의 사건으로 간과할 수 없는, 이제는 성범죄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달라져야할 때임을, 행동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때임을 통감하게도 하는 사건입니다.
나아가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성범죄 발생률은 세계 선두권이나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에게 협박을 받고 경찰에게 폭언을 들어야 하며 미미한 처벌로 인해 동일 범인에 의한 중복피해자가 발생하는 일이 대한민국의 흔한 상황임을 네티즌들은 절실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땅의 수많은 성범죄 피해자들의 무너진 인권이 곧 우리 모두의 보호받지 못하는 인권 상황이란 깨달음과, 또한 누구나 언제고 성범죄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될 수 있는 대한민국 내 만연하는 성범죄에 대한 절박한 현실 인식에서 발로하여 우리 대한민국의 네티즌들은 다음과 같은 대책을 요구합니다.
첫째, 밀양 집단강간 사건의 철저한 조사와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
(-- 밀양사건의 경우 직접 강간에 참여한 가해자 뿐 아니라 사건을 방조하거나 묵인한 간접가담자까지 처벌하라. 또한 범행의 악랄함을 보아 일반 소년범으로 가볍게 처벌해서는 안된다. 또한 가만두지 않겠다며 피해자를 협박한 가해자의 가족 등에 대해서도 엄중 처벌할 것.)
둘째, 경찰의 강압적이고 원시적인 수사방식 탈피와 피해자의 인권 존중.
(-- 피해자에게 폭언을 한 경관에게 실질적인 중징계를 하고 자체감사로 폭언 뿐 아니라 비공개원칙과 피해자권리 원칙을 어긴 여타의 인권침해 여부를 철저히 가려내 징계, 보도하라. 성폭력 전담 여경기동대를 설치하고 요청 시 부족한 인원을 충당할 수 있도록 태세를 보완.)
셋째, 성폭력 범죄 가해자의 처벌에 관한 특별볍[가칭] 제정과 현행법 개정.
(-- 성폭력범의 신상공개 등 미국 메건법에 준하는 재발방지와 중복범행에 대한 예방법을 마련하라. 집단강간, 강도강간, 어린이나 지체부자유 여성에 대한 범행의 경우 범인 신원에 대한 보도 자유와 종신형 이상의 법제 마련. 형량의 상한선이 아닌 형량의 하한선 지정.)
넷째, 언론매체의 정확하고 옳바른 보도.
(-- 피해자의 신상을 거론하는 일체의 선정적인 보도를 중단하고 사건관련의 유사범죄나 선진국 처벌관례 등을 추가 보도하는 심층적인 보도를 하라. )

**** 밀양 집단성폭행 사건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성폭력근절 촛불을 크리스마스에 가족과 함께 밝혀주세요!”
▷ 12월 25일(토) 오후 4시 ◁
▷ 장소 - 종각사거리 ◁(1호선 종각역 4번출구 나와서 보신각방향 50미터)
1부 행사 - 세상에게 ' 자유외침대 '
2부 행사 - 세상속으로 성탄특집 ' 촛불희망탑 쌓기 '
*준비물 : 6개들이 1000원하는 초 한 박스와 여분 종이컵 6개
어려우신 분은 그냥 초 한 자루만 들고 오셔도 됩니다만 이날 촛불희망탑 행사에서 초와 종이컵이 많이 필요합니다. 집회운영진 쪽에서 다 준비하기엔 여력이 없사오니 되도록이면 부탁 드립니다.
*도우미 : 일찍 나오실 수 있는 분은 2~3시에 집회장소로 오셔서 피켓제작, 앰프 설치, 안내, 기타 준비를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재료는 다 있으니 몸으로만 도와주시면 됩니다.
이번 성탄특집 집회에서는 앰프까지 동원해서 발랄한 음악도 깔고 더 이상의 성적결정권에 대한 인권유린이 없기를 바랍니다. 성범죄 없는 밝은 세상을 소망하는 희망의 초를 시민과 함께 점화하고 탑으로 쌓아가는 촛불탑 행사도 특별히 기획 했으니, 많이 참여하셔서 연말을 마무리하는 멋진 추억이 되길 바랍니다.


**** 밀양 성폭력 사건과 관련한 까페와 클럽
(이들은 통합싸이트를 구축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http://cafe.naver.com/antimy.cafe
http://cafe.naver.com/notyourfault.cafe
http://cafe.daum.net/wpqkfehdhkwnj
http://kr.dcinside2.imagesearch.yahoo.com/zb40/zboard.php?id=dis27
http://dudghsdmltkdcj.cyworld.com
http://miboard.miclub.com/board/boardlist.php?bid=7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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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여성&quot;이 전쟁범죄를 기소한다는 것은..

"여성"이 전쟁범죄를 기소한다는 것은...

호 성 희 | 여성국장

전쟁에 반대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고, 전쟁에 반대하는 다양한 실천들이 있다.
눈이 맑은 아이들은 기소장을 쓰면, ‘싸우지 않을께요’란 다짐을 한다.
무고한 죽음들과 삶의 터전의 파괴.
이것만으로도 전쟁을 반대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총성을 멈추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이라는 집단적 주체가 전쟁에 반대한다는 것은, 전쟁지역에서 벌어지는 극단적 상황이 가리고 있는, 혹은 전쟁이 그것 자체로 합리화하고 있는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려 하는 것이다.

전쟁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강화한다

전시강간은 고대의 전쟁부터 양차 세계대전 그리고 현대의 수많은 국지전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끔찍한 공통점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전쟁의 우발적 결과가 아님을 말해준다. 전시강간은 적의 남성을 무력화하는 방법이었고, 전쟁에서 여성은 전쟁의 포획물이거나 지켜야할 사유재산처럼 취급되어 왔다.
우리가 새로운 전쟁이라 부르는 냉전 이후의 국지전들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과 상징들은 군사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이라크 전쟁에서 아부 그라이브 포로 수용소에서 성고문이 그러한 예이다. 남성들의 전투 참여는 적의 여성화와 강간의 상징을 통해 지배를 상징화한다. 심리학적으로 그들은 남성성을 지배적인 위치와 연결짓고 여성성을 열등한 적과 동일화한다. 이와 같이 적을 여성으로 상징화하는 것은 현실의 불평등한 남녀관계를 반영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라크에서 여성의 자유를 위한 조직(OWFI)’의 성명서에 따르면, “팔루자에서 2004년 10월 20일에 열린 무자헤딘 회의에서 이슬람주의 범죄자 압둘라 알 자나비와 팔루자의 슈라 위원회는 무자헤딘 전사들은 열 살 정도의 소녀들이 미군들에게 강간당하기 전에 그녀들을 먼저 강간해야만 한다는 율령을 발표했다. 수십 명의 대학을 다니는 소녀들은 청바지를 입었다는 혹은 히잡(베일)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종 심하게) 맞았다. 미용실에 가는 여성들은 종종 이슬람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아서, 수치의 대상이 되어 공개적으로 머리카락을 잘린다. 수천 개의 유인물이 매일같이 전국에 배포되는데, 내용은 베일을 쓰지 않은 채 나온, 혹은 화장을 한, 혹은 손을 흔들거나 남성들과 함께 다니는 여성들에 대한 경고이다. 1000명 이상의 여대생들은 이슬람주의자들의 테러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학업을 그만두었다.” 이러한 여성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은 ‘저항’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 또한 상징적 폭력들은 상품화되기도 한다. 얼마 전 부시가 바지를 벗은 채 들어올린 엉덩이가 연필꽂이로 만들어져 판매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의 피해가 생생히 드러나진 않고 있다. 부시의 이라크 침략전쟁에 도덕적 타격을 주었던 아브 그라이브 포로 수용소에서 성고문 사건 뒤편에는 여성포로가 가족에 의해 ‘명예살인 당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을 뿐이다. 명예살인은 이슬람 율법이 아니라, 악습 중에 악습이다. 전쟁에서 여성이 당한 피해는 사회적으로 치유되고 복구되어야 할 무엇이 아니라 단죄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명예살인과 같은 여성에 대한 극단적 폭력들은 다시 부활하고 강화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재건을 돕는다는 이유로 3600여명을 파병했다. 그러나 아직도 이라크는 전쟁 중이며, 미국의 종전 선언 이후 더 많은 민간인들이 사망했다. 전쟁은 파괴 그 자체이다. 현재 이라크 실업률은 50%를 넘고 있으며, 사회기반시설 뿐만 아니라 교육, 의료 시스템 자체도 파괴되었다. 전쟁이 가져온 가장 큰 폭력 중에 하나는 바로 빈곤의 확산이다. 이것은 민간인 학살의 다른 이름이다. 91년 걸프전부터 지금까지 좀더 천천히 오래 지속되어 왔을 뿐이다. 일 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라크 여성들은 가족과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이라크 현지를 다녀온 활동가들은 지난해 5월부터 미군을 상대로 한 성매매 여성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고 증언한다. 그녀들은 어렵게 생존하고 있는 것이고 전쟁의 또 다른 희생자들이지만 폭격이 멈춘 뒤에 그녀들은 다른 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전쟁반대를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반대하는 것과 분리한다면 말이다.

“여성”이 전쟁범죄를 기소한다는 것은..

집단적 주체로서 여성이 전쟁범죄를 고발한다는 것은, 전쟁이 여성의 이름으로 새롭게 기록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여성이 전쟁을 말하는 것은 금기였다. 한국에서 정신대 할머니들은 50여 년이나 긴 침묵을 강요당해왔다. 전쟁은 남성이 당사자이고, 남성만이 기록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치유되지 않는 것은 다시 더 심하게 곪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전운동은 여성의 이름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것을 새로운 대안적 전망을 가지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피해를 당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전쟁을 끝내는 것이 무엇을 끝장내야하는지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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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가정기본법, 건강한 가정의 기본인가

건강가정기본법, 건강한 가정의 기본인가.

최예륜 | 정책부장

 

보건복지부가 제출, 지난 2월 국회에서 통과된 ‘건강가정기본법’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건강가정법이 무엇인지 간단히 말하자면, 이혼, 저출산 등으로 해체상황에 직면한 가정문제에 국가가 직접 개인하고 지원하는 법안이다. 그러나 법안이 시행되기도 전, 폐지되어야 한다는 입장과 불평등 법이라는 비난 속에 국가인권위에 제소되는 등의 사건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여성단체들에서 쏟아지고 있는 법안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들을 검토해보고, 현재 정부가 시행추진중인 건강가정기본법의 목표와 내용을 살펴보자.

 

건강가정기본법은 우선,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규정하며 ‘가정’이란 가족구성원이 생계 또는 주거를 함께 하는 생활공동체로서, 구성원의 일상적인 부양, 양육, 보호, 교육 등이 이루어지는 생활단위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가정’은 ‘가족’ 이외의 공동체를 포괄할 수 없게 되고, 비혼동거/ 동성애부부/ 독거가구 등의 가정형태는 건강가정기본법의 가정에 해당될 수 없다. 이는 법안의 애초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대목이다. 가족형태의 변화와 위기상황에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가족법 이외의 별도의 ‘건강가정’ 관련법을 추진하는 것이 법안 상정이 본래의 취지가 아님이 분명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지난 7월의 건강가정기본법 난상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가정’을 정의함에 있어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뤄진 가족을 정의하고 있다며, 가족중심주의를 전제하면서, 건강가정 지원사업에서는 다양성을 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순적임을 지적하였다.
가족의 위기/변화 상황에 따른 구성원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을 최우선과제로 여기기보다는 건강한 가정을 기존의 핵가족(+부양할 노부모)으로 재정의함으로써 기존 가정으로부터의 이탈자를 방지하려는 억압적인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정부가 기존의 핵가족중심의 법 제도를 고수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핵가족의 가족형태가 파괴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아이 양육과 노인 부양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다. 쉬운 이혼과 결별은 성인남녀 스스로의 결정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아이양육, 노인부양 문제는 당사자만의 문제일 수 없는 사회적 문제로 부상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정부가 내놓는 대책이라는 것이 건강가정은 자녀양육과 노인부양에 대한 책임을 다하여야 하며, 사회구성원은 가정이 해체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가족의 위기인가 변화인가라는 허구적인 쟁점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02년 혼인, 이혼 통계결과‘에 따르면 2001년 혼인건수는 30만 6천600건, 이혼 건수는 14만5천 300건으로 조사됐다. 또한, 통계결과에 따르면 현재 노인 1인 가구 가족은 전체 8.7%에서 2020년에는 전체 가구의 20%로, 자녀 없이 부부만 사는 가구 또한 현재 12.3%에서 2020년에는 18.8%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고 한다. 이밖에 부부(무자녀)가족, 이혼으로 인한 편부모 가족, 재혼 가족, 맞벌이 가족, 소녀소년가장가구, 미혼독신가구, 혼전동거가구, 노인부부 가구, 동성애 가구 등 이른바 비주류 가족형태는 이미 전체 가구수의 3분의 1을 넘어서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가족형태의 출현에 대해 일각에서는 “가족의 사회화 기능결여가 초래한 결과”로 사회 전체의 가치관을 형성, 유지하는 자녀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존재하기도 한다. 또한 이에 대한 비판으로 이러한 가족형태 변화의 원인을 사회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가족형태의 발달과 개인의 삶이 중요한 가치관으로 대두되는 상황으로 제시하는 세력도 있다. 물론, 이들의 분석은 모두 맞다. 사회 전체의 가치관을 형성 유지하는 자녀교육을 수행하기에는, 아이들은 밤늦게까지 사교육에 시달려야 하고, 부모는 모두 일터로 나가 늦은 시간까지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개인의 삶이 중요한 가치관으로 대두되는 달라진 상황이란 스스로가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적극적 의사 표현과 사회참여의 확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핵심적 이유는 대다수의 가정이 과거의 남성생계부양자 중심의 핵가족모델을 목표로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여성의 경제참여의 증대가 긍정적 요소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 남성과의 등등한 지위로의 노동권의 보장이라는 측면보다는 전반적인 노동의 불안정화와 가사/육아 노동의 사회화된 시장을 저임금 여성노동자로 대체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이다.

현재의 가족위기의 상황은 개인의 가치관의 변화에 치중한 이러한 학자들의 분석보다 훨씬 복합적이다. 분명한 것은, 가족은 이전 시기에 비해 더욱 불안정해졌다는 점이다.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은 여성 해방과 남성과의 동등한 지위를 의미하지 않았다. 보수주의자들이 지적하는 가정교육의 역할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가정불안’의 책임은 일하는 여성들에게 떠넘겨지기 일쑤였고, 뿌리깊은 가부장제와 결합된 생계가장이 불명확한 핵가족모델은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여성의 노동시장진출은 가정 내에서의 증폭된 갈등을 야기했다. 이와 더불어, 한국사회 교육의 모순은 가정에 사교육비의 과다지출을 요구하였으며, 동시에 노인부양의 책임도 여전히 가족에게 있다. 또한 IMF 경제위기를 경과하며 해체되는 가정이 급증하였다. 이러한 사회구조적 변화는 기존의 아메리카 핵가족 모델(중산층)로의 지향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더 이상 가족은 기존의 체제가 요구해온 소비능력을 갖출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의 가족의 위기상황은 재생산의 위기(올바른 자녀교육기능까지 포함해서) 상황이며, 이러한 재생산의 위기에 기존의 가족이 더 이상 대처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가족/가정관련대책은 이러한 재생산의 역할을 가정내로 한정짓고, 국민의 의무로 강제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혼을 예방하고 출산을 장려하면 가족 위기가 해결되는가?

법안 제31조 ‘이혼예방 및 이혼가정 지원’에 따르면, 이혼하고자 하는 부부는 이혼 전 상담을 필수적으로 받고, 이혼이 불가피하다는 확인서를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받아야 법원으로 갈 수 있게 된다. 이는, 9조의 ‘가족구성원 모두는 가족해체를 예방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의무를 이혼을 어렵게 만드는 조항으로 강제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에 대해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행복과 자유를 억압해 국가가 설정한 기본 단위인 ‘가정’에 헌신하도록 강제하는 ‘이혼허가제’라는 비판은 이미 여성민우회 등의 비판에서 드러난 바 있다. 혼인/출산을 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정상’이라고 외쳐대는 사회에서 쉽게 이혼으로 이어지는 ‘불행한 결혼’들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이혼의 원인을 파악하려는 노력 없는 실질적인 이혼방지법이 불행한 결혼과 그로 인한 고통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암담하다.
한편 ‘1.17 쇼크’라 일컬어지는 출산율의 저하 또한 이 법안의 제정된 핵심적 취지이다. 법안 제8조는 ‘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출산률의 저하를 위기적 상황으로 인식하고 갖가지 정책을 펼치고 있다. 자연분만비와 미숙아 치료에 드는 건강보험 진료비 등을 전액 지원하는 등의 출산 장려책을 내놓는 데에는 진작부터 했어야 할 일이라는 수긍이 간다. 그러나 다른 한편, 출산장려차원에서 피임 목적인 정/난관 수술은 건강보험 대상에서 제외하고 말았다. 이는 자녀를 낳고 양육할 의무와 책임만을 강조한 것이며, 임신/출산과 한 쌍이 되어야 할 피임에 대한 지원을 포기한다는 것은 여성의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요소라 하겠다. 문제의 원인에 접근하지 못하고 위기의 피상만을 건드리다 보니, 가정 내 불화, 갈등의 문제를 가정의례를 수립한다거나, 건강한 가정문화 형성을 위해 노력한다는 실없는 해결책이 제시될 따름이다.

건강가정기본법 폐지! 사회적복지 강화!

건강가정기본법은 소수의 성공한 자, 부를 가진 자와 실패한 자를 양산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복지정책에도 여과 없이 관철되는 사례를 보여준다. ‘정상’가족을 중심으로 한 복지의 한정은, 늘어만 가는 이혼으로 발생하는 ’비‘정상 가정의 자녀를 책임지지 않는다. 또한 노인 부양 등의 문제를 가정 내의 의무로 떠넘기고 만다. (독거 노인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펼치는 단란한 ’정상가족‘의 모습을 담은 공익광고를 보라.) 재생산의 위기에 대처하지 못하는 현재의 가족 위기 상황에서 복지의 문제는 가족복지가 아니라, 탈가족화, 가족부양부담의 사회화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최저생계비, 최저임금 인상 등의 요구, 연금제도의 개혁, 보육, 부양시설의 확대 등 모든 사회운동의 요구들이 어디서 기인하고 있는가에 대해 간과한 채, 가족의 위기를 개인의 도덕적 문제로 떠넘기는 건강가정기본법안은 폐지되어야 한다. 현재의 가족 위기에 대한 진정한 분석을 결여된 채 강요되는 ’건강‘, ’가정‘, ’기본‘을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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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방지법 시행을 맞이하여

[5호] 성매매방지법 시행을 맞이하여 송 강 현 주 | 노동차장 2004년 9월 23일 자정을 기점으로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이하 통칭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된다. 이 시기를 전후해 각종 언론 매체들에서는 남성들에 대한 처벌이 얼마나 강화되었는지를 선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경찰은 한달 동안 전국적으로 성매매 단속 특별반을 구성하는 등 집중 단속에 들어갔으며, 첫날 모두 138명의 성매매 사범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성매매방지법 제정에 이르기까지 성매매 방지법은 명칭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성매매 알선 범죄의 처벌과 방지에 주안점을 둔다. 그리고 성매매 피해자인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고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성매매방지법을 제정하기 위한 운동은 2000년 9월 19일 군산시 대명동에서 발생한 화재로 감금된 성매매 여성 5명이 사망한 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000년 10월 성매매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국가대상배상청구소송‘을 벌이는 활동들을 기반으로 2001년 4월 여성단체들 중심의 ’성매매 방지 특별법 마련을 위한 전문인 간담회‘가 구성되었다. 2001년 11월 국회에 ’성매매 알선 등 범죄의 처벌 및 방지를 위한 법률안‘을 청원, 2002년 9월 10일 86명의 여야의원들이 성매매방지법을 발의한다. 그리고 2004년 3월 2일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6개월 후인 2004년 9월 23일 본격적으로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내년에는 새로운 법률을 만들어 2007년부터 단계적으로 집창촌을 폐쇄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주요 내용과 의의 지난 9월 22일까지 남한에서 성매매 관련 처벌법은 1961년 제정된 ‘윤락행위등방지법’이었다. 성매매방지법은 기간 윤락행위등방지법이 가지고 있던 많은 악법 요소들을 변형시킨 대체입법으로 제정되었다. 그 내용들을 살펴보면, 우선 윤락이란 용어가 성매매로 변경하였다. 윤락이란 스스로 타락하여 몸을 버린다는 의미로 성매매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들을 감추게 되는 위험이 있으며, 성매매의 문제를 파는 자에만 초점을 맞추고 성을 파는 행위자에 대한 도덕적 비난을 함축하고 있다. 성매매가 성을 사는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는 만큼 성이 거래된다는 의미의 성매매란 용어가 적합하다. 그리고 윤락여성을 피의자로 처벌하던 것이 성매매피해자 개념을 설정(위계?위력 그밖에 이에 준하는 방법으로 성매매를 강요당한 자, 업무?고용 그 밖의 관계로 인하여 보호 또는 감독하는 자에 의하여 마약 등에 중독되어 성매매를 한 자, 청소년,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미약한 자 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중대한 장애가 있는 자로서 성매매를 하도록 알선?유인된 자,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당한 자)하여 그녀들을 비범죄화하고, 알선행위자와 남성 성구매자(기존의 경우 대다수 훈방처리) 처벌을 대폭 강화하였다. 그리고 성매매 강요 및 알선을 통해 얻은 재산상의 이익 몰수 및 추징을 통해 성매매 알선이 이윤추구를 위한 도구로 이용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성매매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보호처분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선불금 등 성매매와 관련된 채무관계는 무효가 된다. 이는 성매매 여성들이 성매매를 신고하는 것에 큰 장애가 되던 부분을 제거한 것이다. 본래의 문제의식에 미달하는 한계 그러나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하여 이번 9월 23일 시행된 성매매방지법은 애초의 성매매방지법 제정운동과정에서 입법 청원된 성매매방지법에 크게 미달하는 점들이 존재한다. 첫 번째 문제는 성매매피해자 개념의 축소에 있다. 성매매피해자의 규정에서 ‘선불금 등 채무의 이용에 의하여 성을 파는 행위를 한 자’가 제외된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성매매 여성들이 선불금 등의 채무로 인해 노예와 같은 조건 속에서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매매피해자 규정 중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당한 자’에서 ‘본인 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은 것을 불문하고’가 삭제되어 동의 여부를 따져 다른 해석이 발생할 수 있게 되었다. 장애인의 경우에도 장애 등급에 무관하게 성매매피해자로 보아야 한다는 요구가 ‘대통령령이 정한 중대한 장애가 있는 자’(즉 1, 2급 정신, 신체장애와 3급 정신, 신체 중복장애로 그 폭이 매우 좁다)로 한정되어 대다수 장애 여성이 성매매로 겪게되는 피해를 사실상 눈감아 버렸다. 두 번째는 성매매 여성의 보호?처벌 및 처리의 문제이다. 성매매 피해자를 위한 지원에서 외국인 여성은 3개월 이내의 범위에서 숙식을 제공하고 귀국을 지원한다(5조, 7조). 많은 외국인 여성들은 1996년 이후 E-6라는 연예인 비자를 통해 국내로 코리안 드림의 꿈을 안고 이주하고 있다. 이들의 자국으로 귀국 또한 자신의 의사에 의해 결정할 수 있어야 하며 귀국을 원치 않을 경우 국내에서 노동자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성매매 여성의 인권보장을 강화하기 위해 (규정상 피해자로 분류되지 않는)성매매 여성에 대해서 형벌 또는 보호처분을 선택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한 보다 유연한 사회복귀가 가능하게 하려는 초기의 고민들은 사라졌다. 대신에, 보호사건의 처리 및 보호 처분 결정은 검사와 판사의 몫이 되었다(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 3장에서 보호사건) 자발과 강제란 허구적 이분법을 지워버리자! 성매매 여성을 둘러싸고 자주 언급되는 문제가 바로 강요와 자발(때로는 동의 여부)이란 용어다. 이것은 강요에 의한 성매매 여성은 피해자, 자발적인 성매매 여성은 피의자라는 등식을 만든다. 현재의 성매매방지법도 강요에 의한, 그것도 저항능력이 없거나 판단능력이 모호한 여성만을 성매매피해자로 규정하고 처벌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매매의 형태는 성매매방지법의 문구처럼 그 자체로 ‘자발’과 ‘강제’로 간단하게 분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발성의 논리는 결국 성매매가 발생하는 문제를 여성에게 돌리려는 인식을 반영한다. 자발적 선택이 무엇인가. 그것은 적어도 자신의 발로 걸어갔는가가 아니라 ‘다양한 대안과 정보를 가진 상태’에서 성매매를 선택하는가, 그리고 성매매 여성은 ‘성매매 행위 전반에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가, 끝으로 성매매 여성은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그만둘 수 있는가‘로 바뀌어야 한다. 여성의 성매매 시장으로의 유입은 결코 개인적 선택의 문제로 축소될 수 없다. 이들의 자발적 유입은 진정한 자발성이 아닌 사회구조적인 제반 요인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문화, 여성노동자에 대한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상태, 복지서비스 절대적 부족 등 경제적, 사회문화, 제도적 요인들로 인해 양산된 것이다. 성매매가 보편화되고 산업화된 현실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언제나 성매매 여성 자신이다. 성매매 여성들이 어떠한 동기로 성매매에 유입되었든지 간에 성매매의 과정에서 여성들은 심각한 폭력의 피해를 입고 있다. 따라서 성매매에 대한 접근은 피해자인 성매매 여성에서 시작해야한다. 성매매 여성들은 모두 성매매 피해자이며 비범죄화해야 한다. 성매매 여성 대부분은 할 수만 있다면 성매매 시장을 떠날 것이다. 성매매 시장의 성장에서 정부에 대한 비판을 삭제할 수 없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성매매 문제를 방지하고 처벌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지금, 어찌하여 우리의 성매매 시장이 이렇게 거대해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정부의 성매매 관련 정책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자. 남한의 경우, 미군기지 주변의 군대매춘과 기생관광을 중심으로 ‘국가주도’의 체계적 성산업이 자리 잡았다. 일제시대부터 있어온 공창제는 1948년 2월 ‘공창제도 등 폐지령’이 발휘되면서 폐지된다. 이후 정부는 성매매 여성에 대한 단속조치와 함께 약간의 수용 설치 등의 선도책을 병행했으나 사창, 고급 요정은 더욱 번창했다. 그리고 정부는 미군 주둔 필요에 따라 미군매춘의 경우 오히려 장려하였다. 1961년엔 최근까지 성매매 정책의 골격을 이루는 ‘윤락행위등방지법’을 제정하게 된다. 반면 ‘관광산업진흥법’에서는 외국인 상대 성매매에 한해 윤락행위등방지법 적용을 보류한다. 미군매춘 문제 등 특정지역-단속을 면제해주는 적선지구-의 설치를 허용하는 절충안을 실시(1962년)했는데, 이는 70년대에 폐지된다. 국가적 과업으로 경제성장이 강조되면서 정책적인 차원에서 외화획득의 일환으로서 관광산업이 장려되었다. 관광산업을 빌미로 외화를 획득한 것이 이른바 ‘기생관광’이었다. 73년에는 ‘허가증’제도를 신설하여 많은 여성들이 나라경제 발전의 역군으로 국가가 장려하는 산업형 성매매에 종사했다. 미군이 감소하면서 기지촌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관계시의 관광특구 지정요구가 늘어난다. 그로 인해 동두천과 송탄, 이태원이 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 80년대에는 외국의 성산업에 한국여성을 수출했고, 90년대에는 외국여성을 수입(96년 E-6비자 발급 등)하게 된다. 외국여성의 수입은 저임금대체노동력 수입(이주노동자)이 확대되면서 더욱 증가하고 있다. 61년 이후 정부 성매매 관련 정책은 원칙적으로 금지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며, ‘윤락행위등방지법’이 존재해왔지만, 집창촌(集娼村)이란 형태는 당당히 대한민국의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경찰과 성매매업주들은 각종 편법과 비리로 얽혀있기도 하다. 지난 23일 대법원 1부는 상고심에서 2000년 군산화재참사 사건 당시 국가대상 배상청구 소송에 대해 "국가는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위자료 지급 책임이 있다"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성매매 여성들은 창녀에서 윤락녀로, 윤락녀에서 이제는 성매매 여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천대받는 인간이하 여성에서 선도하고 처벌해야할 대상, 이제는 국가적 보호의 대상이 되었다. 남한 사회의 성매매 정책과 역사에서 정부의 역할에 대한 비판이 지속되어야 한다. 성매매를 산업형으로 확대시키고 성매매 여성들을 억압하고 착취한 공동불법행위자로서 말이다. 성매매 근절과 성매매 여성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물론, 성매매 방지법이 얼마나 실질적으로 성매매 여성들을 보호하고, 성매매를 방지할 수 있을지는 지켜보아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강력한 법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범죄가 사라지지는 않듯이 그 자체로 성매매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윤락’에서 ‘성매매’로 바뀐 명칭이 즉각적으로 성매매 여성을 도덕적으로 타락한 여성에서 피해자로 바라보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성문화된 법은 성매매 여성의 권리를 위한 기반과 기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국내 유흥?향락 업소는 전국적으로 33만, 종사 여성은 100만 여명으로 추정한다(99년 여성개발원). 성매매와 관련된 논점은 이제 성매매 여성의 인간다운 삶, 성매매 여성의 시민권의 문제로 옮겨져야 한다. 강력한 처벌의 효과로 예상되는 성매매의 음성화, 그에 따라 인권의 사각지대에 이중으로 갇히게 될 성매매 여성의 문제를 방기할 수 없다. 성매매에 대해 법률적으로 금지를 택하더라도, 분명히 발생하고 있는 성매매 현장에서 성매매 여성이 성병과 폭력 등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그리고 재산을 지킬 수 있는 장치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몇 일 동안 일상적으로 남성들끼리 모여 있는 곳의 화재는 성매매 방지법이었다. ‘그래봐야 범죄가 많아지고, 성폭력만 오히려 늘어날 것이다’가 주요 내용이 된다. 이것은 남성의 성욕은 절제할 수 없고 반드시 해소되어야 하고 그를 위해 성매매가 필요하다란 전형적인 논리다. 그러나 사실은 반대다. 성매매 시장에서 항상 성매매되는 자는 여성이며, 성매매 구매자는 남성이고 수혜자도 남성이다. 남성들은 성매매가 있기 때문에 상품화된 여성의 몸에 쉽게 접근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자신의 쾌락과 이익을 위해 여성을 대상화하고 사물로 취급하는 경험을 하고 이는 오히려 성폭력을 증가시킨다. 성매매 시장이 이만큼 커졌어도 성폭력은 여성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고, 강간은 줄지 않았다. 오죽하면 ‘포르노그라피로 이론을, 성매매로 실습을 그에 기반해 성폭력을’이란 말이 있으랴. 성매매방지는 남성들을 대상으로 성매매 안하기를 결의시키는 것으로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성매매 근절은 개인의 결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2월경 최초의 성매매 방지 광고는 ‘성은 사고 파는 것이 아닙니다’만을 피력했다. 이제 왜 성을 사고 팔아서는 안되는 것인지, 이것이 남성들의 성문화의 문제임을 좀 더 대중적으로 선전해내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성매매 근절과 성매매 여성의 권리를 위해, 우리는 법제정과 개정 운동으로 한정되지 않는 남성중심의 이중적 성문화에 대한 투쟁 그리고 여성의 빈곤화에 맞선 투쟁을 차분히 기획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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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이 침해한 몸에 대한 권리

[4호] 공권력이 침해한 몸에 대한 권리 진 재 연 | 편집부장 ‘파병반대하지 말고 살이나 빼라’ 얼마 전 파병반대집회에서 무리 지어 있던 전경 중 한 명이 나에게 내뱉은 말이다. 정리집회를 하기 위해 열린시민공원으로 이동하던 중 대오 끝머리에서 가던 나는 먼저 간 사람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전경들 앞을 지나갈 때는 혼자였고, 전경 한 명이 나와 그들만 들을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 옆의 누군가가 키득대는 웃음도 들렸다. 순간 나는 흠칫 놀랐고 공포스러웠지만, 그들을 쳐다보지 않고 앞만 보고 계속 걸었다. 다섯 발자국 정도 더 걷는 몇 초 동안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어떻게 하지? 그냥 갈까? 가서 따질까?” 몇 초간 고민 끝에 결국 나는 몸을 돌려 그들 앞으로 가서 거세게 항의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며 모였고 나는 전경들이 나에게 한 그 말 ‘파병반대하지 말고 살이나 빼라’는 말을 몇 번씩이나 반복하며 내가 싸우고 있는 이유를 말해야 했다. 사람들이 함께 사과를 요구했고 그 부대의 책임자인 듯한 사람까지 와서 더욱 소란스러워졌을 때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결국 사과를 받고 돌아섰다. 도대체 내가 ‘파병을 반대하는 것’과 ‘살을 빼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전혀 관계없을 듯한 두 가지. 하지만,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느끼는 수치심과 모멸감이 나를 매우 무기력하게 만들 것이고, 그런 내가 다시 파병반대집회에 나오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이런 일은 집회에서 자주 일어난다. 전경들 앞을 여성이 혼자 지나갈 때 모멸감을 주기 위한 말 한마디 던지는 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 자리에서 제대로 대처할 어떠한 방법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저 모른척하고 지나가는 것, 그리고 혼자서 끙끙 앓으며 분노하는 것 뿐이다. 분노가 좌절이 되기도 하고, 몸을 향한 폭력은 치유되지 않는 정신의 상처로 오랫동안 남기도 한다. 그들의 목적대로 시위에 나온 여성들은 무력해진다. 주변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니 내 주위의 여성들은 나에게 용감하다(?)고 말했다. 그래, 우리에겐 이것조차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사실, 공교롭게도 그 날 집회에서 전날(8월3일)있었던 1078중대의 성폭력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매우 화가 나고 불쾌했었는데, 아마도 그 분노가 나를 용감하게 해주었나보다. 성폭력, 시위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수단 자이툰 부대 선발대가 달아나듯 떠났던 8월 3일, 청와대 앞에서 규탄집회를 하던 학생들과 전경들이 대치한 상황에서 성폭력이 발생했다. 전경들이 방패 틈 사이로 손을 뻗어 한 여성의 엉덩이를 꼬집었던 것이다. 그녀는 분명히 거부의사를 밝혔는데도 성폭력은 계속되었다. 피해자는 항의했고 함께 있던 집회참가자들은 용의자를 수사하라고, 제대로 사과하라고 요구했지만 중대책임자는 중대원 전체와 함께 도망쳐 버렸다. 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형사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며 112에 신고하라고 책임을 회피했다. 112로 신고한 후 달려온 파출소 소장은 피해자 중심주의의 기본적 원칙도 모른 채 피해자를 나오라고 하며 사건해결의 어떠한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경찰들과 맞닥뜨려야 하는 일인데, 공권력의 범죄를 공권력에 기대어 해결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시위현장에서 발생하는 공권력의 성폭력은 법을 집행한다는 미명 하에 자행되기 때문에 가해자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행동하게 된다. 이는 단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특정 개인의 욕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집회대오에 대한 기선제압을 위해 성폭력이 ‘조직적으로’ 이용되는 것이다. 즉 여성들을 위협해 시위대를 무력화시키고 시위자체를 방해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호소할 곳도 처벌할 곳도 없는 공권력의 성폭력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의 문제점 중 또 하나는 그 해결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성폭력은 또 다시 그들에 의해 규명이 가로 막혔고, 해결의 어떠한 의지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경찰이 도망가고 학생들이 뒤를 쫓는 기이한 풍경이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성폭력 신고를 받고 온 또 다른 경찰은 용의자가 있는 부대가 퇴각하는 것을 방치했다. 학생들은 법적인 해결보다는 1078중대가 진심 어린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하기를 원했지만 , 1078중대는 끝내 ‘그런 사실이 없으니 사과 할 일도 없다’고 했다. 이에 학생들은 이 사건을 국가인권위에 제소한 상태이다. 몸에 대한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 이 사건이 공개되고 동영상이 올려졌던 진보넷 독자의견란에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성 글들이 너무 많이 올라와 게시판을 폐쇄하기까지 했다. 여전히 성폭력과 싸우는 일은 더 많은 인내와 노력을 요구한다. 공권력이 자행하는 성폭력은 그들이 방패로 내리찍고 군화발로 짓밟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치유하기 힘든 상처들을 내지만 피해자는 그 어디에도 호소하기 힘들며 가해자는 국가, 법 등의 이름으로 어떠한 죄책감과 처벌도 없이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1078중대 사건은 일상적으로 존재해왔던 공권력의 성폭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을 뿐이다. 시민의 몸에 대한 권리를 지켜야 할 경찰이 오히려 성폭력을 자행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알려내고, 드러내기 힘들어 참을 수밖에 없었던 일들을 집단적으로 제기, 공동으로 해결하기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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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현실화 투쟁, 그리고 상관없는 이야기

[3호] 최저임금현실화 투쟁, 그리고 상관없는 이야기 류 미 경 | 사회진보연대 정책부장 어쩌면 평생 가도록 자신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지면을 할애 받지 못할 지도 모를 여성이 있다. 내가 잘 아는 50대 중반의 여성이다. 최저임금현실화를 위한 행진과 최저임금위원회 앞 밤샘농성에 참여하면서 나는 그녀와 닮은 많은 여성들과 마주쳤고, 그 자리에 그녀와 내가 나란히 앉아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8년 동안 그녀가 접했을 세상의 단면들이 내 머릿속을 스쳤고, 그 이야기들을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과 나눌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에 앉아 곱씹어 보았던 그녀의 일상을 내가 지금 이야기하려는 것은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기회를 언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56만원으로 당신이 살아보라! 최저임금 현실화하라! ‘최저임금 현실화’는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요구이다. 지난 2002년 ‘최저임금연대’가 발족하면서부터 이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본격 등장하게 되었고, 올해에는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이 민주노총의 주요 투쟁사안으로 제기되었다. 올해 최저임금이 정해지는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가 열리기 전날인 지난 6월 24일,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1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밤샘농성을 전개하였다. 그 자리에 모인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제가 저임금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생계임금을 보장한다는 취지와는 정 반대로 오히려 저임금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현실을 증언했다. 노?사, 그리고 공익위원 각 9명씩 총 27명으로 이루어지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을 결정하는데, 2003년의 경우 56만원으로, 전체 노동자 평균 임금의 1/3에도 못 미칠 정도로 턱없이 낮은 액수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최저임금법은 정해진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모든 사용자가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현실에서는 이 최저임금이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임금 상한선이 되고 있다. 사용자가 최저임금법을 위반하지 않으려면 법정 최저임금에서 100원 정도만 더 얹어주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이 최저임금이 임금 가이드라인으로 악용되고 있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결정기준을 적어도 전체 노동자 월평균 임금의 50%로 명시해서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를 보호할 것과, 최저임금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어있는 18세 미만 노동자, 양성훈련자, 수습노동자, 감시단속 노동자 등을 포함시킬 것, 최저임금 적용시기를 1월~12월로 정해서 회계연도와 일치하지 않아 최저임금법을 위반하는 사례가 없도록 할 것 등을 내걸고 투쟁에 나섰다. 그리고 올해의 경우, 노동자 평균임금의 50%라는 기준에 따라 최저임금을 766,140원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할 것을 목표로 했다. 올해의 최저임금은 결국 다음날 열린 최저임금위원회의 마지막 전원회의에서 641,840원으로 결정됐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제도개선의 문제는 전원회의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라 논외가 되었고(이 회의에서는 ‘제도개선 전문위’를 결성하여 이 문제를 별도로 다루기로 했다고 한다), 최저임금 인상률을 놓고 사용자쪽은 애초에 제시한 2.6% 인상안을 10.2%로 수정하고, 노동계도 전산업 정액급여의 절반 수준인 35% 인상안에서 13.1%로 수정안을 내놨고 표결을 통해 노동계 수정안이 채택된 것이라고 한다. 민주노총이 애초에 가지고 있었던 목표에 비하면 부족한 결과이다. 그녀의 이야기 그녀는 지금 노동부가 주관하는 여성가장 실업자 취업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양장기능사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고 훈련이 끝나면 취업을 지원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한 달에 30만원씩 지원도 받는다. 정말 오랜만에 공부라는 걸 해서 필기시험, 그리고 실기시험에 합격해두었다. 그냥 집에서 아무 일도 안하고 있는 것보다는 한 달에 30만원씩이라도 받으며 뭘 배우기라도 하는 편이 훨씬 나은 것 같아서 선택을 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훈련을 마치고 나면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앞길은 막막하다. 여기에 오기 전에 근무하던 곳을 생각하면 한숨만 난다. 고등학교 매점이었는데, 물건 주문하고, 정리하고, 쉬는 시간 10분동안 구름같이 몰려오는 아이들에게 정신 없이 물건을 판매하고, 장부 정리에 결산까지 매점의 모든 일을 모조리 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도 없었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구하게 된 일자리라 근로계약서 같은 것도 쓴 적이 없다. 그녀를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젊은 매점 주인은 자신의 허구헌 날 사정이 어려움을 호소한다. 이 매점말고도 다른 가게를 운영하려다 보니 자금사정이 안 좋다며 월급을 조금씩 깎는다. 방학 때는 수입이 절반으로 줄어드니까 월급을 절반으로 깎을 수밖에 없으니 내키지 않으면 그만두라고 한다. 과로로 병원에 실려갔다 온 다음날 매점 주인은 힘들어하시는 게 안쓰럽다며, 젊고 건강한 사람을 다시 구할 수 있으니 그만두라고 한다. 결국은 매점 주인이 자금사정이 좋지 않아 매점을 그만두게되었고 그녀는 일자리를 잃었다. 아마 최저 임금이 법적으로 56만원으로 정해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녀는 놀랐을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이도 많고 건강하지도 않은 내가 어디 가서 일자리를 다시 구하겠어? 이것도 얼마나 힘들게 구한 자리인데’라고 생각하며…. 그 전에 일하던 곳에서는 그나마 사정이 좋았다. 한 국립대에서 청소하는 일을 했다. 역시 아는 사람의 소개로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는데, 소개해 준 사람은 그 대학교에 직접 고용이 되어 있었지만, 그녀는 뭔가 달라진 제도로 용역업체에 고용되었다. 임금이 한 30만원 정도는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좀 지나서 대학이 용역업체를 다시 선정하는 기간이 돌아왔는데, 최저가 입찰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그녀가 고용되어 있던 용역업체가 선정이 안 되는 바람에 그녀는 그 대학교에서 청소하는 일을 그만둬야 했다. 남편이 있을 때는 자식들 뒷바라지하고, 시부모님 수발하는 일에서 벗어나 내 일을 갖는 게 소원이었는데, 그 일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다시 농성장에서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과정, 그리고 최저임금을 현실화하기 위한 투쟁과 그녀의 삶은 별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는 최저임금이나마 쥐어주는 일자리를 구하는 일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런데 내가 그녀를 떠 올렸던 건 그날 밤 농성장에서 만난 많은 여성들의 삶이 그녀와 너무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집안의 생계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음에도 , 그럼에도 식비나 공과금 이외에도 교육비며 치료비, 가끔 돌아오는 제사 비용 등 그녀들이 부담해야 할 가계비용은 어느 집과 마찬가지이다. 그녀들에게는 이를 감당할 만큼의 충분한 임금이 보장되는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원래 그녀들이 해야 할 일은 밖에 나와 돈을 버는 일이 아니므로 해고를 당하더라도 별로 개의치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해고가 두렵다면 열악한 노동 환경쯤은 충분히 감내할 것이라 간주된다. 가사를 돌보고 가족 구성원을 보살피는 주어진 일을 벗어나서는 이등 시민으로 간주되어 열악한 노동조건, 최저임금을 감내하도록 강요당한다. 이 때문에 최저임금을 현실화하는 투쟁은 여성노동자들의 요구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최저임금 현살화 투쟁과는 별 상관없는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 자리에 있었던 여성노동자들과 그녀가 함께 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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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는 존중받고 배려받아야 할 정당한 여성의 권리

[2호] 생리는 존중받고 배려받아야 할 정당한 여성의 권리 송 강 현 주 | 노동차장 생리로 인한 결석은 병결? 얼마전 전교조가 교육부에 학생들의 생리로 인한 조퇴와 결석을 생활기록부상의 불이익이 없도록 공결로 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교육부는 생리는 ‘질병’이며, ‘악용의 여지’가 있으므로 공결로 처리할 수 없다고 답했다. 따라서 생리로 인한 결석은 병결로 처리된다는 것이다. 전교조 여성위원회는 지난 4월 12일부터 24일까지 전국 초'중'고 여학생 1265명을 대상으로 ‘여학생의 생리와 학교생활‘ 실태조사를 벌였다. 조사결과를 보면, 생리 때 학생들은 '복통'(64.4%), '움직이기 싫다'(57%), '요통'(45%), '눕고 싶어진다'(35%), '생리혈이 새어나와 힘들었다'(31.5%), '잠이 쏟아진다'(20.5%), '어지럼증'(17.1%) 등의 고통을 호소했다. 그리고 학생들은 ’생리결석 인정‘(40.2%)이 가장 필요하다고 꼽았고, 다음으로 ’조퇴‘(25.7%), ’보건실에서의 휴식‘(19.4%), '찜질팩 이용’(3.4%) 등을 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이번 전교조의 문제제기를 계기로 생리휴가의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여성인 우리에게 이 결과는 굳이 수치를 확인해 보지 않아도 예상 가능한 답변들이다. 한국의 보통 교육을 받고 자란 대다수의 여성들은 성중립성을 가장한, 여성의 문제에 대해 무감하고 성차별적인 교육기관과 정책, 교직원들에 의해 위 설문결과와 같은 고통을 철저히 개인이 감수하며 자라야 했다. 보건휴가 =생리휴가는 모든 여성의 권리이다. 보건휴가(월 1회 생리휴가 겸 임신 중 여성 태아검진휴가)는 국가공무원복무규정, 근로기준법 등에 명시되어 있었던 권리이지만, 여교사들의 경우 그동안 실제로 대체할 강사비가 마련되지 않아 보건휴가 사용이 사실상 어려웠다. 드디어 2001년 2월 전교조 서울지부와 서울시교육청의 단체협약에 따라 보건휴가 사용 시 대체 강사비가 예산으로 책정되었고, 보건휴가 사용이 현실화 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서울시 교육청은 보건휴가 사용을 사실상 제한하는 지침을 각 학교에 하달하였다. 대체강사 수당 신청 시 보건휴가를 사용하는 여교사의 (생리여부를 확인하는)문진표, 진단서를 첨부하게 하고, 전일휴가 사용이 불가능하도록 4시간분의 시간 강사료만 지원하는 등 각종 편법을 동원하여 보건휴가 사용을 제한한 것이다. 여성들에게 생리주기표 제출을 요구하거나, 4~50대 여성노동자들의 경우 폐경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건강검진을 강요하는 행동들은 교육 현장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업장에서 생리휴가 사용을 막기 위해 오랜 세월동안 자행되어온 사례이다. 이러한 행동은 여성의 모멸감은 무시한 채 이루어지는 인권유린이며 성폭력이다. 생리! 불순한 것' or 모성보호를 위해서'만'? 여성들에게조차 예전엔 (어쩌면 아직도) 생리를 하는 것은 부끄럽고 숨겨야 할 무엇으로 여겨졌다. 그나마 요즘이야 생리대를 사려고 여성 점원이 있는 점포를 찾아 동네 순회를 하거나, 그나마 사서 갈 때조차 생리대를 무슨 비밀스런 물건마냥 신문지에 돌돌 말아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주는 일은 거의 없는 듯하다. 그러나 생리는 여전히 입에 올리기 껄끄럽고 쉽게 놀림감으로 희화화된다. 최근 한 설문업체가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여성 3명중 1명은 보건휴가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엔 ‘회사의 압력’과 ‘남성 동료의 눈치가 보여서’가 있었다. 생리휴가를 사용하는 교사가 학생들의 교육권엔 관심도 없는 교사로 전락되고, 여성노동자의 생리휴가는 모성보호법, 주 5일제의 실시와 더불어 무급화 되었다. 때론 생리 현상을 여성이 아이를 출산하기 위해 겪는 고통으로서만 이해하며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가 형성되기도 한다. 그러나 생리현상은 반드시 임신, 출산으로 연결되어야만 보호되는 모성보호가 아니라 여성의 모성기능 때문에 발생하는 여성건강상의 특수한 현상이다. 생리불순, 생리통, 생리중단 등은 기'미혼여성 모두에게 건강을 파괴하고 모성기능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전 여성의 문제이다. 인식되고 지켜지는 여성의 권리를 위하여 작년부터, 거의 모든 여성들이 필요로 하는 생활필수품인 생리대 부가가치세를 없애기 위한 여성단체들의 운동이 벌어졌다. 그리고 올해 4월부터, 생리대의 판매과정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세가 부분 면제되었다. 4~5%의 가격 인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생리대 값은 여전히 비싸며, 심지어 일부 팬티라이너는 공산품으로 그나마의 면세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미 다 알고 있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계속하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여성들에게 생리란 고통도 비용도 모든 것이 개인이 전담하고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나의 기억이 맞다면, 사회진보연대는 1년 전쯤 집행위원 회의에서 기타 안건으로 ‘생리휴가 자유롭게 씁시다’란 말을 한번 하는 것으로 생리휴가 문제가 처리되었다. 많은 각종 노조 및 각종 운동 단체는 노동조건이 열악 그 자체이며, 그 사실을 알고 시작한 활동(노동)인 만큼 휴가의 유/무급을 따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문득문득 우리는 여전히 생리휴가가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사회가, 남성이 그리고 여성이 생리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가의 문제인 듯하다. 이글을 읽게 될 여성 활동가들에게 묻고 싶다. 여러분의 노동'활동 공간에는 눈치보지 않고 배려받으며 사용할 수 있는 생리휴가가 있나요' 생리가 여성의 질병이나 더럽고 부끄러운 무엇이 아니라, 여성의 생리적 현상으로, 지켜져야할 권리로 인식될 수 있도록 인식의 변화가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그와 함께, 그를 위해 생리로 인한 결석이 공결로 인정받고, 여학생들의 생리 시 건강을 위한 학교의 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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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자랑스런 여성노동자입니다.

[1호] 당신은 자랑스런 여성노동자입니다. 호 성 희 | 여성국장 내가 서울대 간병인 노조 집회에 처음 참석한 날은 2월 27일 서울노동청 점거 농성이 공권력 투입으로 강제 해산되고 난 후 서울노동청에서 항의집회가 있던 3월 2일이었다. 그날 따라 바람이 몹시 불어 굉장히 추웠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또 하나 기억이 남는 것은 정금순 지부장님이 발언하시는 모습이었다. 선이 있는 노트에 빼곡이 써있는 글씨를 또박또박 읽고 계셨다. 이러한 모습은 간병인 노조 집회 때 지부장님이 발언하시면 늘 볼 수 있다. 달라지는 게 있다면, 점점 더 유창해지는 지부장님의 발언이다. 늘 그때그때 투쟁상황을 미리 노트에 정리하시기 때문에 발언은 늘 새롭고, 그런 모습에 난 간병인 집회 때마다 긴장을 한다. 단언하건데, 요즘 정금순 지부장님만한 선동가는 없다고 본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줌마들이었습니다." '동지'라는 말도, 구호에 뒤에 붙이는 "투쟁~!"이란 댓 구호도 짧게는 10년, 길게는 25년을 서울대 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해온 아줌마들에겐 정말 생소한 말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간병인 노동자들에게 이러한 말들은 가장 자주 사용하고 친숙한 말들이 되었다. 8개월 동안 그녀들이 안 해본 투쟁이 없기 때문이다. 작년 9월 1일자로 서울대병원이 무료소개소를 폐지한 후 무료소개소 폐지 철회를 요구하며 병원로비농성, 단식투쟁, 환자보호자선전전과 서명운동, 교육부와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벌여왔고, 11월 25일 병원이 조합원들에게 병원출입금지 가처분을 신청한 이후론 인권위원회 농성, 서울지방노동청 농성투쟁, 병원정문 앞 선전전, 과천 노동부 앞 항의집회 등 장외투쟁을 벌여왔다. 지난 2월 27일에는 서울노동청 농성 3일만에 경찰투입에 의해 생전 처음 닭장차까지 탈 때는 욕설(?)도 서슴없이 나오더라고 하신다. 또 지난 4월 15일 총선이 있기 전 노동부 앞 집회에선 "노동자는 노동자들의 당을 찍어 보수정치를 심판해야 합니다."라고 발언하는 통에 사회를 봤던 민주노동당의 강상구 동지는 "지부장님 발언이 선거법의 선을 위험스럽게 줄타서 조마조마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간병인 노동자들은 투쟁을 하면서 서울대 간병인 지부를 건설했고, 8개월 동안의 힘들고 긴 싸움속에서 투쟁하는 여성노동자로 성장했다. 보이지 않는 노동 간병인 조합원들은 대부분이 50, 60대의 여성가장들이다. 때문에 그녀들의 수입은 가계에 필수적인 것이다. 하루24시간, 주6일이라는 장시간 노동에 최저임금(일일 20,080원)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이지만 서울대병원의 경우 안정적으로 간병일이 생기기 때문에 간병인 노동자들은 그러한 노동조건을 감내해 왔다. 그러나 전국 20만으로 추정되는 간병인들의 규모에 비해, 이들은 공식적인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공식 노동자들이며, 특수고용직이다. 전세계 여성노동자들의 94°? 비정규, 비조직 부문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들은 사회적, 법적 보호를 받기 힘들고 또한 노동권 단체들의 지원도 기대하기 힘든 형편에 있다.(마야 잔시, 2000) 바로 이러한 상황이 간병인들과 같은 여성노동자의 현실이다. 여성들이 노동하는 만큼(전세계 노동시간의 66, 빈곤층을 형성(전세계 빈곤층의 70하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인 것이다. 이는 여성들은 쉬지 않고 일하고 있음에도, 여성노동의 가치가 평가절하되거나, 가계수입의 보조로만 사회적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이러한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다. 이번 서울대 간병인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러한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드러내고, 간병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간병인 투쟁 과정에서 분명해진 것은 간병노동이 비공식화됨에 따라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간병인과 환자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간병인들은 4대 보험이나 노동권의 법적 보호조차 받을 수 없다. 환자입장에서 간병은 의료보험 적용 대상에 제외되고 있기 때문에 가계의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간병료가 없을 경우 간병일은 아내나 어머니, 딸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당신은 자랑스런 여성노동자입니다. "우리 같은 아줌마들이 여성노동자운동의 주력이 될 것입니다." 그녀들은 이렇게 당당히 말한다. 서울대 간병인 노조는 4월 23일 병원과 협의로 현장에 복귀하게 되었고 현재는 90명(투쟁당시 12명)의 조합원이 조직되었다. 끈질긴 투쟁의 성과가 조직 확대로 이어진 것이다. 어느 비정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끈질기지 않았고, 힘겹지 않았겠냐만, 기간 이만큼의 성과를 쟁취하는 일도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 투쟁의 성과를 유실하지 않는 것이 앞으로의 가장 큰 과제이다. 모두가 현장에 복귀했지만, 상근업무를 담당할 정금순 지부장님 말고도, 부지부장, 사무국장은 현장으로 복귀하지 않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서울본부의 "서울대 간병인 노조 투쟁지원 논의를 중단한다."란 지침이 아직도 철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법 상 간병인들이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은 앞으로 싸워서 쟁취할 문제이다. 그러나 함께 싸워야 할 동지들의 진정한(!) 연대가 없다면, 출발부터 실패할 투쟁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간병인 노조는 매주 토요일, 일주일 중 유일한 휴식 시간을 쪼개어 정기적인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가 노동자라는 것은 세상을 바꾸어야 할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녀들은 노동자로 서는 것을 그렇게 깨달았다. 그러한 소중한 깨달음과 실천에 배신의 화살로 생채기를 내서야 되겠는가?! 우리는 그녀들의 조직과 투쟁에 아낌없는 지지와 연대를 보내야 할 것이다. 당신은 누가 뭐래도 자랑스런 여성노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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