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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3/31
    은영이 이야기
    사회진보연대 여성위
  2. 2005/01/26
    모두가 함께 한다면, 정규직화 쟁취 이룰 수 있다.
    사회진보연대 여성위
  3. 2004/12/29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활동을 돌아보며...
    사회진보연대 여성위
  4. 2004/12/04
    사랑과 연애에 관한 개똥철학(1)
    사회진보연대 여성위
  5. 2004/11/02
    부끄러운 남자와 종이가 필요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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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4/10/05
    전범민중재판운동의 미덕과 그에 거는 기대
    사회진보연대 여성위
  7. 2004/09/03
    그녀들이 여성부로 간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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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4/09/03
    빠르지만, 결코 빠르지 않은 그녀들의 권리찾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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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4/09/03
    가난..그건 우리의 숙명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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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4/09/03
    오늘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사회진보연대 여성위

은영이 이야기

은영이 이야기

 

진 재 연 | 정책편집부장

내가 은영이(가명)를 처음 만난 건 97년 겨울이었다. 도시빈민야학을 하던 동아리에서 철거지역 주민들이 떠나고 공부방에 아이들이 오지 않자, 급하게 들어간 곳이 근처의 한 보육원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은영이는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세 살 때 엄마가 보육원에 맡긴 후 다시 찾으러 오지 않았다. 물론 은영이에게는 기억도 없는 일이며 신상기록부에 한 줄 적혀 있는, 보육원선생님들한테 들었을 뿐인 이야기다. 사실 그 보다 은영이를 아프게 했던 건 초등학교 1학년 때 입양되었던 집에서 5년 만에 다시 파양(입양파기)되었다는 사실이다. 5년 동안 ‘가족의 구성원’이 되지 못한 채 지내며 상처만을 안고 다시 보육원으로 돌아와야 했다.

 

파양된 이유는 표면상으로는 은영이의 도벽이었지만, ‘피’가 섞이지 않은 은영이가 가족 구성원이 되기는 쉽지 않았다. 아이답지 않게 빨리 철들어 버려 속 깊은 은영이를 볼 때마다 파양을 겪어야 할 만큼 정말 도벽이 있었을까 의심스러웠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 나이 또래 아이의 행동이 가족에게 버림받을 만한 일이었을까. 아니, 처음부터 은영이는 단란한 가족안에서 ‘타인’일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사회에서 ‘가족’이란 두 가지 요건이 필요한데 하나는 (혼인이라는 제도를 전제하는) 남녀간의 결합이고 또 하나는 (부계만이 인정되는) 혈연이다. 그 둘 중 하나라도 만족하지 않는 비혼모, 비혼부, 동성/이성간동거, 한부모가족, 독신가구, 입양가구 그리고 그 밖의 공동체는 ‘정상가족’이 되지 못한다. 또한 ‘정상가족’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열등한 개인이 되어버린다. ‘입양’의 경우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정상가족’이 될 수 있지만, 한국사회에서 ’혈연‘의 구속력을 뛰어넘기란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정상가족‘에 대한 이데올로기속에서 개인들이 철저한 혈연주의적 배타성으로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만들어왔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 ‘정상가족’은 무엇인가? 우리가 전제하고 있는 가족,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단일한 가족형태는 존재하는가? 언론은 부모가 모두 건재(!)하고, 아들딸 비율이 적당하게 맞는 단란한 가족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내지만 정작 현실의 가족은 그렇지 못하다. 이미 많은 아이들이 이혼한 부모를 가졌고, 재혼한 부모를 가졌다. 혈연이 아닌 사람들이 가족안에 들어와 있거나, 동성애 가족을 이루기도 한다. 또 은영이처럼 부모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도 많이 있다. 내가 은영이를 처음 만났던 97년, IMF을 거치며 버려진 아이들이 보육원에 넘쳐났는데, 상황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당시에는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사람들이 잠시 보육원에 아이들을 맡긴 것이라면, 지금은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절망의 나락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이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정상가족’은 이미 오래전부터 대다수 사람들에게 이상이었을 뿐이며,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폭력은 사람들이 더 이상 그 ‘정상가족’조차 유지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비정상가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남자 친구와 다투고 새침해있던 은영이가 얼마 전에 술 마시고 던진 한마디. “고아는 고아끼리 결혼해야 하나봐요...”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정상가족’이라는 관념은, 은영이를 ‘고아’라는 열등한 존재로 짓누르고 그게 가끔 은영이를 힘들게 한다. 그런 은영이를 보며 나는 어떤 가족을 만들어야 할까, 나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면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본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공동체를 꾸리자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하기도 하고, 은영이를 알게 된 이후 관심을 갖게 된 입양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한다.(물론, 비혼에 경제력도 없는 나는 입양을 할 수 있는 자격도 안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도 하겠지만 내가 부모님 곁을 떠나 새롭게 갖게 될 가족, 혹은 공동체가 어떤 모습이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스물세 살의 은영이는 지금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과 살고 있다. 그들은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아주 어릴 적부터 ‘가족’이었다. 아니, 그 공동체가 가족으로 불리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은영이와 친구들의 공동체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를 유지해나갈 수 있는가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그 밖의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적 삶을 인정하고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세상을 위해 은영이와 함께 열심히 싸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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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함께 한다면, 정규직화 쟁취 이룰 수 있다.

모두가 함께 한다면, 정규직화 쟁취 이룰 수 있다.

서 정 은 | 서울열차 새마을 승무원

* 편집자주: 지난해 3월 3일 철도청은 새마을 여승무원 31명에게 12월 31일자로 계약해지 해고통지서를 보냈다. 새마을 여승무원 정규직화와 철도 비정규직 철폐 투쟁은 11월 25일 철도청 서울지방본부 앞 집회로 첫 포문을 열었다. 12월 중순 철도청은 전원 재계약을 약속했다. 그러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철도공사로 전환된 철도청의 여성차별적 고용정책과 비정규직 고용 확산에 맞서는 투쟁은 매주 화요일, 금요일 고속철도 대합실에서 계속되고 있다. 철도노조의 첫 비정규직 노동조합원이 된 20명의 서울열차 새마을 승무원들은 여승무원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사회진보연대는 여승무원 직제 폐지와 정규직화 요구를 갖고 이 투쟁에 연대하고 있다.

걱정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했던 우리 새마을 승무원의 투쟁도 어느덧 2개월을 훌쩍 넘었다. 당시 우리는 우리의 억울한, 아니 어쩌면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고 이 사회 노동자들의 일부로서 비정규직의 부당함을 외치는 것에 대해 낯설고 이상하게만 바라보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시킬 것이며 진실로 공감하게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했던 것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우려와는 달리 우리의 일에 대해 자신의 일처럼 관심 가져주시고 함께 동참해주신 분들이 많았기에 차츰 힘을 얻어 싸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해가 바뀌면서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승무계약 연장을 하게 됐고, 이젠 보다 당당하게 정규직화 쟁취를 이루기 위해 한발 한발 나아갈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그 이후 어쩌면 그 모든 분들이 있었기에 너무도 쉽게 우리의 과제를 하나하나 풀어왔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의 더 큰 목표인 정규직화 쟁취 앞에서 정작 이 투쟁의 주체들인 우리들부터 하나 둘씩 흩어지기 시작했다. 과연 가능할 것인지 부딪혀보고 맞서보지도 않고 흔들리기 시작하여 투쟁에 앞서서 외치지는 못할지언정 힘겹게 이끌어주는 이들 뒤에서나마 함께 뛰며 서로에게 격려조차도 해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의 일,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될 수 없고 우리의 목표, 조금만 더 함께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용기를 주고 다시 한번 힘내자고 손 붙잡아 주는 이들이 있었기에 다시금 일어서게 된 것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나서서 외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고, 우리의 상황을 알릴 수만 있다면 밤샘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우리의 얘기를 호소할 때 일부에서는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등 돌리는 사람들, 심지어는 심신적인 압박까지도 가하는 이들이 있었고, 우리의 상황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알리고자 밤새워가며 또는 이른 새벽부터 작업한 홍보물을 무참하게 제거해 간 자들과 계속되는 신경전을 벌이는 일도 잦았다.
그렇게 뒤늦게나마 지난 몇 일간의 투쟁과정을 지켜보면서 누구에게나 힘들고 지칠 수 있는 상황을 보다 적극적인 투쟁을 시작하기로 했었을 당시 우리 승무원 중에서 극히 일부만 해왔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같이 함께해도 모자랄 정도로 부족한 활동들을 더군다나 이 추운 겨울에 체력이 바닥 날 정도로 이끌어 온 그 몇몇 승무원들이 대단하고 고맙게만 느껴졌고,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만큼 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부끄럽게나마 여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젠 모두가 함께하면 정규직화 쟁취, 진정으로 이룰 수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동안 우리 모두가 스스로 당연히 했어야 될 일을 이제야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다. 이젠 결코 작은 힘이 아닌 큰 힘으로 다가설 때이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큰 어려움과 장애에 부딪힐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우리 모두의 확고한 결의와 끈질긴 투쟁을 앞세운다면 반드시 우리의 투쟁은 성공적으로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두려워 할 것 없이 해낼 수 있다는 의지와 서로에 대한 믿음 또한 강하다면 반은 이뤄낸 것이라 본다.
이제 우리에게는 더 이상의 물러섬도 없을 것이며, 더 이상의 분열도 없을 것이다.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포기하지 않는 이상 어려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아가서 이 땅의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절대 희망을 잃지 말고 함께 의지하며 싸워간다면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조금씩 얻어가는 소중한 결실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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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활동을 돌아보며...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활동을 돌아보며...

이 황 현 아 | 노동조합 기업경영 연구소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에서 올 한 해 활동에 대한 평가를 써달란다. 떠밀려 원고 청탁을 받고 일주일 여 시간을 보냈는데 아직도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할지 난감하다. 내가 평가를 내릴 처지도 아닌 듯하고. 나는 다만 몇몇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의 활동에 동참한 것뿐인데. 하지만 이제 피해갈 수 없다. 조금 전 성희 동지로부터 독촉 전화를 받고 말았으므로.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는 올 해 두 가지 주제를 사회화하는 데 기여했다. 하나는 전쟁과 여성이라는 주제고, 다른 하나는 성매매라는 주제다. 전쟁과 여성을 주제로 해서는 지금 현재도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지만, 지난 6월 아시아 사회민중운동회의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던 “전쟁과 세계화를 반대하는 여성” 워크숍과 전범민중재판운동 여성기소인 총회(“여성의 이름으로 전쟁에 반대한다”)는 기존에 전쟁의 희생양으로서의 여성에 국한되었던 전쟁에 대한 접근을 여성주의 시각에서 짐짓 새롭게 조망하였다. 이런 노력은 페미니즘 시각에서 전쟁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목적으로 진행하는 전쟁과 여성 세미나로 이어지고 있다. 발리바르의 글을 소재로 한 세미나에서 폭력과 잔혹성을 화두로 20세기 후반부의 새로운 전쟁이 드러내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전쟁이 야기하는 폭력에서 민족주의, 인종주의 문제가 왜 중요한지, 폭력이 왜 성차별주의에 근거하는지 등을 살펴보았다. 폭력의 만연 속에 현재의 상황을 비폭력적 상황으로 규정할 수 없다면 우리에게 제기되는 문제는 당연히 반폭력일 것이다. 그렇다면 반폭력은 폭력을 어떻게 줄여나갈 수 있을까? 다양한 고민이 생겨난다. 폭력에 대한 대응의 한 방식으로 제기되는 반폭력을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 문제인 것 같다.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는 성매매특별법 시행 시기를 앞두고 일찌감치 성매매 문제에 대한 세미나를 준비하였다. 그런 만큼 네 차례 진행된 세미나는 회를 거듭할수록 현실 쟁점과 긴밀하게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성매매방지법 시행에 대해 눈먼 호사가들이 성욕, 인권침해라느니, 좌파정책(?)이라느니 하는 호들갑을 떠는 와중에 <사회화와 노동>에 실린 성매매 관련 글은 조용한 파문을 일으킬 만 했다. “성매매 방지법 논란,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가!”에서 성매매방지법의 근본적인 한계를 짚은 부분이나 노무현 정부의 성매매방지법 추진 이유 등을 설명한 부분은 신자유주의 정부의 여성정책이라는 일관된 좌표 속에서 성매매방지법을 읽는 코드라 할 수 있겠다. 모 단체에서 날라 오는 뉴스매거진 [“STOP! 성매매” 일일동향]이 성매매 없는 사회 만들기에 기초해 성매매 여성 노동자들의 증언을 통해 듣는 생생한 실태를 주축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성매매는 역시 없어져야 할 사회악으로 규정하게끔 유도하는 것에 비한다면 <사회화와 노동>에 실린 성매매 관련 글들은 어떤 면에서 독자의 자율성을 열어두고 있기도 하다. 단지 아쉬웠던 점으로 두 가지를 든다면, 한편으로 사회진보연대 여성위가 <참세상>이나 <피플타임즈>에서 진행되고 있는 성매매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애초 성매매에 대한 올바른 접근이라는 화두를 던진 만큼 토론이나 논쟁에 적극적인 의견 개진이 필요한 듯하다. 성매매방지법 폐지를 요구하는 개인이 <한국인권뉴스>를 통해 자기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는 것에 비한다면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의 목소리는 아주 작게만 들린다. 사회진보연대 여성위가 정부의 의도를 정확히 읽고, 가족의 위기를 재생산의 위기 측면에서 원인 분석하고 성매매방지법을 비판하고 있다면 그에 입각한 정치적 태도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또 한편으로 성노동자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이나 주장이 미흡했던 점을 들 수 있다. 성노동자의 생존권, 노동권, 시민권을 온전히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성노동자 개념을 경유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럼에도 사회진보연대 여성위는 애써 성노동자라는 기표를 혹여 외면하고 있지는 않나.

지난 5월부터 우리는 알찬 소식지 하나를 받아 보게 되었다. 바로 사회진보연대 월간소식지『여성, 삶, 노동』이다. 이 즈음에서 여성위원회 동지들이 아부가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한 마디 할 거 같다. 그런데 아부가 아니다. 동지들도 한 번 보면 안다. 요즘 여성주의를 표방한 웹진을 여럿 볼 수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유독 사회진보연대 웹진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소식지’라는 틀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 단순한 콘텐츠가 마음에 든다. 이들의 활동이 적어서라기보다는 이들의 취향이 드러내어 말로 하기 좋아하지 않는 것이라 여겨진다.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소박한 미덕이 아닐까. 이러한 미덕은『여성, 삶, 노동』전반에 흐르지만 특히 소식지 3호와 4호에 실린 최저임금현실화투쟁과 저임금 여성노동자 한마당(불안정노동과 빈곤에 저항하는 공동행동 3차 행진) 등의 연대투쟁은 여성의 삶의 절반을 차지하는 노동에 대해 신자유주의적 접근으로부터 이를 극복할 실천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진보연대 여성위가 올 해 역점을 둔 여성노동권 사업은 간병인 아주머니 노동자들과 청소용역 아주머니 노동자들과의 연대투쟁이었다.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의 핵심 활동이 신자유주의시대 여성의 노동과 삶에 꽂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여성노동권 문제에 대한 이들의 제기는 더 깊게 와 닿는다. 불안정노동, 여성의 빈곤화, 빈곤의 여성화가 신자유주의가 여성에게 노동자 민중에게 미치는 가장 큰 특징이라면 이를 돌파하기 위한 여성주의 전략은 연대투쟁이라는 실천적 매개를 지렛대 삼아야 할 것이다.

사회진보연대 여성위가 제시한 올해의 화두로 이런저런 평가를 했다. 근데 여성위 동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뭐 별로 예리한 평가를 하지도 반성적 평가에 기반해서 다가오는 새해의 전망을 내놓지도 못했다. 여성의 노동과 삶이 신자유주의 아래서 더 고달프기 때문이 아닐까 반문해본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자본주의 사회를 바꾸려 했던 발본적 접근이 무엇이었는지 더 고민해 볼 일이다. 이제 얼마 있으면 건강가정기본법이 시행된다. 새해에는 사회진보연대 여성위가 가족의 위기를 재생산의 위기로 접근한 만큼 신자유주의 아래 여성의 문제에 더욱 골몰했으면 바램이다. 여성노동자계급 문제에 목적의식을 명확히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노조페미니즘에 대한 개인적 관심이 좀더 충족되기를 기대한다. 더불어 여성노동권쟁취투쟁에 함께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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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연애에 관한 개똥철학

사랑과 연애에 관한 개똥철학

정 지 영 | 정책부장

즐겨 읽는 만화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나나」라는 일본만화다. 거의 모든 순정만화가 그렇듯이, 이 만화의 중심테마도 ‘사랑’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너무도 평범하지만 등장하는 멋진 남성들이 모두 좋아하게 되는 여주인공’도, ‘온갖 고초에도 꿋꿋한 생활력으로 재벌 2세의 마음을 사로잡는 여주인공’도,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우는 밝은 모습으로 주변 남성들의 애틋함을 한 몸에 받는 여주인공’도 나오지 않는다. 당연히 모든 아픔 끝에 왕자님을 만나 행복해지는 신데렐라도 없다. 오히려 ‘사랑’을 하고 있어도 외롭고, 불안한 여성들이 있다. 그리고 그녀들이 현재의 사랑이 아닌 또 다른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고 해서 그 외로움과 불안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듯, 「나나」는 늘 안타깝고 가슴 아픈 느낌을 준다. 아직 철이 덜 들어서인지, 나는 순정만화를 보며 우여곡절 끝에 사랑에 성공하는 커플을 보며 행복감(대리만족인가?)을 느끼는 걸 좋아한다. 그러다 「나나」를 보면, 갑자기 현실을 실감하듯, 신데렐라 이야기에 행복해하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그런 느낌이 이해될 수 있을까? 늘 누군가 ‘특별한’ 사람이 생겼으면 하지만, 막상 그렇게 되고 나면 여전히 허전하고,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 말이다. 얼마 전에 한 선배가 그런 말을 했다.
“이상하지, 연애를 하는데도 외로워. 그 친구는 사람을 참 외롭게 만드는 사람인 것 같아.”
이 얘기를 들은 나와 내 친구는 그 선배에게 “그게 당연하죠. 연애가 모든 것을 채워줄 수는 없어요.”라고 대답했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은 쉽게 했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이 ‘사랑’에서, ‘연애’에서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나는 도대체 무엇을 바라는가? ‘사랑’이란 ‘아름답고, 소중한’ 감정이고 가치라는, 사회의 여러 관계와 문제들과 동떨어진 순수한 무엇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사랑’에 바라는 것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듯하다. 힘들고, 괴로울 수 있는 사회와 삶의 여러 문제들로부터 벗어나고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되길 바랄 수도 있고, 나에게 부족한 절반을 채워줄 ‘반쪽’을 만나기를 바랄 수도 있다. 물론 성욕의 문제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어려움은 콜론타이의 말처럼 “사랑이 절대 사랑하는 두 당사자들만의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에서 비롯된다. 사랑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리고 사회의 요구와 이익에 맞춰 적합한 형태의 사랑이 배타적으로 조직되어왔다. 봉건제 시대에 기사와 귀족부인의 정신적 사랑이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칭송되었던 것이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육체적-정신적 사랑을 가족 내로 통합시키는 동반자적 사랑이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그러하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적소유에 대한 상속과 노동력 재생산 시스템을 유지하기에 적합하도록 장려된 가족형태는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상화하는 사랑과 결부되어있다. 가족을 구성하는 두 당사자는 계약이나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사랑으로 맺어진다. 집안간의 중매, 부모의 의지에 따라 추진되던 결혼이 당사자간의 사랑을 중심으로 한 자유연애를 통해 성사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평생을 사랑과 믿음으로 함께 할 동반자를 만나는 것이 결혼이고 가족이란 생각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랑으로 맺어진 두 사람의 사이는 특권화되고, 그렇게 꾸려진 가족은 자본주의 사회 관계가 투영되지 않는 포근한 안식처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내가 느끼는 사랑과 가족은 결코 사회에서 동떨어진, 사회적 관계가 투영되지 않는 어떤 섬이 아니다. 연애를 해도 외로울 수 있고, 내 반쪽을 찾아도 안정감을 못 느낄 수 있다. 사랑과 연애, 결혼에도 사회적 관계가 투영되는 것이라면, 여성에게 주어진 부담과 억압 또한 비켜갈 수 없는 것 아닌가? 아까 말한 선배의 경험 또 한 가지. 연애를 해도 외로울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에 충격을 받은 선배는 여러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단다. 그 때 친구들이 보인 반응은 참으로 흥미로운데, 여성들은 대부분 수긍했고, 남성들은 대부분 ‘연애를 하는데 왜 외롭냐’는 반문을 했다고 한다. 일과 사랑을 당당히 병행할 수 있는 남성들은 연애 관계에서 여성에게 바라는 것은 ‘일’과 분리된 편안함, 안정감과 같은 순전히 ‘사적인’ 감정들인가 보다. 그리하여 그런 욕구를 받아줄 수 있는 대상이 생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남성들에게 그런 대상이 되어줄 여성들은 언제나 갈등적이지 않을까? 배려와 순종, 편안함을 미덕으로 배우고 자란 나는 늘 갈등한다. 내가 활동하고 운동하는 그 속에서도 늘 여성임을 자각하고, 여성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항상 날카롭고, 예민해야 한다. 그리고 연애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이런 예민함을, 그리고 예민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함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는 얼마나 피곤하고, 외로울 것인가.

사랑에 목숨 걸고 싶지 않아서, 사랑이 나의 날개를 결박하는 족쇄가 되기를 원치 않아서 나는 늘 우선순위를 되뇌인다. 사랑과 애정이 두 사람만의 배타적인 감정이 되지 않도록, 그리고 내가 바라는 인간 해방, 여성 해방의 세상에서 새롭게 형성될 남녀의 관계를 위하여, 내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늘 염두에 두고자 한다. 나 또한 사회의 외부에 있는 사람이 아니기에, 이것은 늘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

다시 만화 이야기. 「나나」에는 두 명의 나나가 나온다. 한 명은 사랑에 목숨 거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꿈인 나나다. 그녀는 삶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에 대면하기보다는 숨어버리는, 그래서 언제나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싶어하는 여성이다. 하지만 무조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가. 결국 예상치 못한 임신으로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현모양처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그다지 기쁘지만은 안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듯하다. 또 한 명의 나나는 프로 데뷔를 목표로 하는 밴드의 보컬이다. 사랑 ‘따위는’ 믿지 않지만, 집착과 소유욕은 대단하다. 사랑보다는 자신의 음악을 선택하는 자존감을 가진 여성이지만, 늘 어딘가 공허한 느낌을 느낀다. 둘은 서로에게 커다란 의지와 지지가 되지만, 서로의 선택에 대해선 침묵한다. 사랑에 목숨을 걸던 아니면 사랑을 믿지 않던, 그들이 처한 삶의 현실이 개인적인 선택으로 해결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서로 간에 연대를 형성하고, 여성이 당당할 수 있는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나가야 하는 게 아닐까? 결국 결론은 너무 뻔하지만, 어려운 말이 되어버렸다. 아직은 한참 가야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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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남자와 종이가 필요한 여자

부끄러운 남자와 종이가 필요한 여자

호 성 희 | 여성국장
 

난처함..그리고 화나는 이야기

나는 주말에만 약국에서 일을 하는데, 종종 당황스런 ‘사건’들을 겪게 된다.
대표적인 것인 ‘마취제 사건’이다. 한 아저씨가 들어와서 마취제가 있냐고 물어봤다.
“마취제요? 이제 약국에선 주사제를 다루지 않는데요..”
정말 없냐고 반복해서 묻는 아저씨한테 나는 의약분업 후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열심히 설명한다.
“그런데..마취제는 왜?...”
“에이~! 쪽팔리게...이렇게까지 말해야돼?! 거기다 뿌리는 거 있잖아!‘
전혀 모르겠다는 내 표정을 보고 아저씨는 투덜거리며 약국을 나갔다. 아저씨는 발기를 유지해주는 리도카인(마취제다^^) 스프레이를 찾았던 거다. 그런 게 있는 줄 알았나?! 내가 모르면 약국에 없는 거지..
이젠 쭈삣거리며 “저기...뿌리는..” 말만 들어도 알아서 ‘척’하고 꺼내준다. 이건 에피소드고.

대체로 병원들이 진료를 하지 않는 주말에만 일을 하는 나로선 미쳐 피임을 하지 못한 여성들이 사후피임약을 찾는 경우가 가장 당황스럽다. 엄청난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던 사후피임약인 ‘노레보’는 의사의 처방전을 조건으로 우리나라로 수입되었다(혹자는 이 과정을 의사들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처방전이 있더라도 약값(1만원)은 전액 본인부담이다.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할 수 있어야 하는 여성의 선택권은 의사의 ‘허락’과 비싼 약값을 지불해야만 주어(!)진다. 사후피임약은 성관계 후 가능한 빨리(12시간 이내 권장, 늦어도 72시간 이내) 복용할수록 효력이 높아진다. 주말이 지나면 헛된 시도가 되기 쉽상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불법행위를 한다. 그것 때문에 응급실을 가라고 할 수 없으니 먹는 피임약으로 용량을 조절하는 일종의 ‘대체용법’을 알려주는데, 이게 불법이다. 또한 이 방법은 피임의 ‘효과’면에서도 떨어지고, 부작용 가능성도 높다.

낙태합법화 국가가 선봉에 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년부터 자연분만시 산모가 따로 내야했던 본인부담비 8만원도 전액 건강보험에서 지원되고, 인큐베이터 사용료 등 미숙아 치료에 드는 건강보험 진료비도 전액 지원한다는 출산장려책을 내놨다. 반면 가족계획사업의 일환으로 보험 혜택을 받던 피임목적의 정,난관 결찰술 또는 절제술은 출산장려책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건강보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와 함께 예비군 훈련소에서 무료 시술되던 정관수술도 사라지게 된다. 어찌 보면,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데, 정부의 출산장려정책의 일관성이 없다는 문제제기가 신문지면에 종종 등장하였던 점에서 피임목적의 보험적용을 삭제하는 것은 정부의 때늦은 대응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한편에선 출산을 지원하고, 동시에 낙태는 물론 피임까지 억제하고자 하는 정부의 정책은 여성의 입장에선 정말 ‘현실성’ 없는 정책이다.

 

냉전시기 미국은 제3세계의 인구과잉은 빈곤문제를 야기해 공산화될 수 있다는 입장에서, 인구통제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과거 박정희 정권은 ‘가족계획’을 국가정책으로 추진해 이례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한국에서 피임기술과 기구는 이런 가족계획-출산억제 정책의 추진으로 여성들에게 대중적으로 보급되었다. 이런 이례적인 성공은 한국사회가 개인의 삶을 지원하는 사회적 안전망을 거의 갖추지 않은 채 가족단위 생존전략이 유일한 상황에서, 여성들에게 출산조절의 욕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가족계획정책이 수행되기 전부터 여성들은 ‘위험한 낙태’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가는 인구수에 관심을 기울였을뿐 여성들의 건강과 ‘자신의 신체를 통제할 권리’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에도 피임은 ‘부부’의 합의하에, ‘여성’의 책임이자 의무였을 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인구를 빨리 줄이겠다는 목표 아래 낙태합법화를 시도한 세력이 박정권이었다(64년 첫 번째 시도는 사회적 반발로 실패하고, 72년 유신하에서 광범위한 인공유산을 인정하는 모자보건법을 통과시킴). 결혼한 여성들이나 독신 여성들이나 한번쯤은 묵인된 불법 낙태를 하는 상황에서 낙태합법화 운동이 벌어지지 않는 지금의 상황과 참 대조적이다.

내가 어쩌든 뭐라 하지 말란 말이야

자신의 출산력을 스스로 통제하고 조절하는 것은 여성이 운명적이고 예측불가능한 삶에서 벗어나 자기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기 위한 기초적인 조건이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을 여성에게도 피임은 일상의 문제이며, 재생산과 분리된 성적 욕망을 실현하는 것 또한 침해되거나 평가받을 수 없는 여성의 권리이다. 그렇기때문이 여성이 선택하는 한에서 출산과 피임, 그리고 낙태 모두가 보장되어야 한다. 국가에겐 여성의 어떤 한 권리를 선택적으로 의무로 만들 권한이 없다. 다만, 권리를 보장할 책임이 있을 뿐이다.

칭찬하다

약국을 오는 남자손님 중...아무말 없이 두리번거리거나 쭈뼛거리는 사람..대부분은 콘돔을 찾는 중인거다. 그래서 우리 약국은 콘돔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었다. 그래도 대부분 어찌나 쭈뼛거리는지..그런 상황에서 잘 찾을 리가 없다. 그런데 알고보면 대부분 기혼자다. 계산할 때 나는 부러 붙잡고 이야기를 한다.
“왜 부끄러워해요? (속으론 ‘결혼도 했으면서~’) 여자한테나 남자한테나 참 좋은 일이예요.”
콘돔을 사러오는 남자들보다 먹는 피임약을 사러오는 여자들이 더 많다. 그리고 피임약을 먹는 여성들의 상대는 ‘콘돔’을 거부한다. 그러니 내게 콘돔을 사러오는 남자들은 더 이뻐보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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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민중재판운동의 미덕과 그에 거는 기대

[5호]전범민중재판운동의 미덕과 그에 거는 기대 이 진 숙 | 인천지부 집행위원 9월 20일, 대학로 흥사단 강당에서는 전범민중재판운동 발기인 총회가 열렸다. 이곳에 모였던 대략 100여명 정도 되었던 사람들 중, 이 사업이 누구의 제안으로 시작되었고, 앞으로 어떤 모양새를 갖추며 진행될지를 잘 알고 온 사람들은 사실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파병군대를 철수하라며 50여 일을 곡기를 끊고 단식순례를 진행한 성직자와 동화작가,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이들을 지원하며 함께 했던 지역주민들, 사회운동을 하는 활동가들, 음악과 춤으로 전쟁반대를 외치는 아마츄어 문예인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그곳에 모였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이후 1년 반여의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전쟁을 반대한다, 점령군은 철수하라, 파병을 반대한다, 김선일을 살려내라, 파병군대 철수하라 등의 외쳐졌던 수많은 구호들만큼 많은 변화와 사건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광화문은 텅 비어 있고, 언론에서는 출국부터를 쉬쉬했던 자이툰 부대의 행적이 그 이름도 잊혀지지 않는 지난날 ‘배달의 기수’와 같은 형식으로 다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모든 것이 기정사실이 된 것 같은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무엇이 이들을 전범민중재판 발기인 총회라는 정체도 잘 알 수 없는 행사에 모이게 했을까. 더러운 침략 전쟁이 당장 중단되어야 하며, 거기에 힘을 보태는 한국군대가 하루 빨리 철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이들의 한결같은 바램이자 의지이다. 그러나 그 날 참가자들의 다소 이질적인 이력으로 보나, 전쟁 뿐 아니라, 세상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표현해온 방식을 보자면, 아마도 모인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각자의 동기와 배경이 그들을 그곳으로 이끌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생명과 평화를 존중하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 그 자체라는 신념에 기대어 지금 우리들의 만남과 행동은 정말 소중한 것이라고 말하는 김재복 수사. 이 전쟁이 하루만 일찍 끝나면 20명, 한 달만 일찍 끝나면 1,000여명 이라크 민중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고 말하는 동화작가 박기범.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좀더 나은 세상을 안겨주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회피하지 않고 아프게 두 눈뜨고 살겠다는 시민. 경제봉쇄로 가뜩이나 열악했던 이라크의 의료수준을 최악으로 끌어내려 생목숨을 꺾고 있는 이 전쟁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료인. 그리고 표현되지 않은 다른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침략전쟁 가담하는 노무현을 규탄한다’, ‘이라크 전쟁범죄 노무현을 심판하자’ 다같이 외쳤던 구호들. 이런 다양한 의지와 소망이 모여든 자리였던 만큼, 행사는 총회형식을 가지는 보통의 행사에서 보이는 이러 저런 토론과 의견이 바쁘게 개진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무언가 부조화스러운 것들이 한데 모여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게 하기도 했다. 아마 이러한 분위기가 서로 다른 이유로 적응이 안 되는 사람들도 꽤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서로 다른 이유로 이 사업에 다소 비판적이거나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연장에서 이 사업의 ‘대중적 성공’ 여부에 대해서도 누구도 확신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 이후 한국에서 벌어졌던 반전투쟁의 부침, 그것의 원인이며 동시에 결과로서 불거진 이런저런 논쟁과 주장들을 반면교사 삼는다면, 이 사업에는 앞선 운동들이 생산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미덕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이라는 극단적 폭력, 평화와 인권의 파괴에 대한 분노는 반전운동을 이끄는 기저로서 어떤 절대선 혹은 보편적인 인민의 권리와 연관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즉각적으로 대중들의 행동과 실천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사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생산되지 못한 많은 것들은 책임자 노무현에 대한 분명하지 않은 태도에 가로막힌 반전운동, 여성에 대해 배제적인 반전운동, 노동자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반전운동, 그리하여 대중으로부터 외면 받는 반전투쟁이라는 비판, 논쟁의 모습으로 나타났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만들었던 반전운동은 몇 차례의 극적인 계기를 지나 지금은 적절하지 못한 휴지기에 접어들어 있는 상황이다. 이 시점에 제안된 전범재판운동은 참여하는 사람 누구나가 기소인이 되고 각자의 기소장을 작성하는 사업의 주요 원칙에서 알 수 있듯, 모든 이들이 자신의 운동과 삶의 조건에서 자신이 지향하는 권리에 근거해 이 운동의 의미를 구성하고 참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전쟁의 주동자 노무현-부시-블레어에 대한 민중의 심판을 우회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전제로 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전범민중재판은 그 자체 들불이 되기보다,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고 반전운동에 동참했던 사람들에게 하나의 학교가 되어 성찰과 사고의 전환의 가능성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전범민중재판은 실제로 공간을 가지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공간이 되고,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함으로써 전쟁에 가담하는 이 정부가 이주노동자들도 탄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회복지에 쓰여야 할 돈이 침략전쟁으로 세나가고 있는 현실을 빈민, 장애인들과 함께 비판하고, 전쟁이 파괴하는 여성들의 고유한 권리를 함께 주장하고 운동 속에서도 소외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발견하고 성찰할 수 있는 조건과 공간을 만드는 것을 지향하는, 그런 것이다. 이러한 기능성이 실제 실현되고 전범민중재판이라는 운동의 흐름으로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이에 참여하는 개개인들이 해야 할 몫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이러한 노력이 이 운동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 싶고, 또한 그러한 노력은 전범민중재판이라는 하나의 사업을 그럴 듯하게 성사시키기는 것을 넘어서는 성찰과 고민을 요구하는 것이다 싶다. 그랬을 때, 전범민중재판이 법이라는 국가제도를 어설프게 흉내내는 이벤트나 선언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랬을 때, 우리는 텅 빈 광화문을 더 크게 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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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이 여성부로 간 이유는?

[4호] 그녀들이 여성부로 간 이유는? 호 성 희 | 여성국장 지난 26일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 있는 여성부 앞에 그야말로 아줌마들이 모였다. 그녀들은 민주노총 여성연맹 지하철 청소용역노조, 서울대병원 간병인 노조, 전국시설관리노조 고려대 지부에 속한 5-60대의 여성노동자들이었다. 여성노동자는 직업소개소, 용역회사의 중간착취를 거부한다! 이날 오전 서울노동청 앞에서는 서울지역 22개 병원의 25개 간병인 유료소개소 실태조사 결과가 기자회견방식으로 발표되었다. 이번 조사에서 25개 소개소 중 23개가 3만원 이상의 월회비를 받고 있었다. 간병인 소개료를 정하고 있는 직업안정법 제19조 1항과 노동부 고시에 따르면 월 3만원 이하의 소개료만 징수하도록 되어 있어 이들 유료소개소는 불법으로 과다 징수를 하고 있는 셈이다. 또 유료소개소들은 교육비, 의복비, 신발값 등 입회비 명목으로 7~22만원 정도를 간병인 구직자에게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중고령 여성노동자들은 이러한 10~20만원의 비용을 감수하고라도 일자리를 구하고자 하기 때문에 유료소개소는 이런 실정을 악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 24시간 5만원이라는 안 그래도 저임금을 받고 있는 간병인 노동자들은 간병제도가 부재하고, 고용이 불안정한 현실 때문에 이런 유료소개소의 중간착취를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용역 여성노동자의 현실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지하철 공사나 학교당국은 청소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지 않고, 용역업체를 통해서 고용하는데, 이런 용역업체의 이득은 그대로 청소노동자들의 저임금으로 결과하고 있다. 여기에 ‘최저가낙찰제’와 같은 용역업체의 선정방식은 청소용역 노동자들에게 저임금과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소중한 나의 일, 정당한 대가를 받고 싶다. 여성노동자는 저임금을 거부한다! 이날 여성부 앞에 모인 여성노동자들이 해결해야 할 공동의 과제이자, 가장 우선적 것은 바로 ‘저임금’ 문제이다. 그녀들은 모두 법에서 사업주에게 그 이상을 줄 것을 강제하기 위한 ‘법정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다. 여성연맹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은 이날 오후 작업을 거부하고 집회에 참석하였다. 용역업체에서 올해 인상된 최저임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요구하기 위해 투쟁중인 상황이다. 그녀들에게 최저임금은 파업을 통해서 쟁취해야 할 ‘최고임금’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간병인 노동자의 경우 하루 8시간으로 환산하면 약 1만 6천 원으로 최저임금 2만80원(2003년 기준)에도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노동자성 조차 인정받지 못해 최저임금제도 적용에도 제외되어 있는 상황이다. 여성일용 노동자는 안정된 일자리를 원한다! 서울지하철 공사와 오랫동안 용역계약을 맺고 있는 향우용역은 역마다 청소노동자들을 관리하기 위한 남성 관리장을 두고 있다. 대부분의 관리장은 청소반장의 역할보다는 청소업무의 관리 감독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여성노동자들의 채용이나 해고, 역사 전보배치 등의 인사권을 가지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이런 남성관리장에 의해 자행된 성희롱, 성폭력, 인권침해 사례들이 빈번했음에도 여성노동자들은 짤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말조차 꺼내지 못해왔었다. 그러던 중 2002년 성폭력 사건이 향우용역 측에 접수되었음에도, 용역회사는 이를 묵인하였고, 지하철공사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불안한 고용형태가 곧 여성노동자들의 인권침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인데, 이는 일반적인 성폭력 사례보다 훨씬 심각하고 사업장 문화로 만연되어 있다. 결국 여성노동자들의 불안정한 고용조건은 저임금, 장시간노동, 노동강도강화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성폭력 등의 인권침해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여성부 장관, 철모 쓰고 벙커에 들어가다.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이 이러한데, 여성부의 계획에는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어떤 사업이나 예산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여성노동자의 70% 이상이 비정규직인 현실을 감안한다면, 여성부는 적어도 70% 이상의 여성들을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이날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의 행진’에 참여한 여성노동자들은 대표단을 구성해 이러한 여성의 현실을 ‘증언’하기 위해 여성부 장관 면담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여성부장관은 한미 공동훈련인 을지훈련에 참여하기 위해 바쁘시단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여성들을 비정규직으로 내몰고, 저임금을 강요하여, 일을 해도 점점 빈곤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왔다. 이렇게 여성들을 빈곤하게 하는 조건 자체가 여성들에겐 가장 큰 차별인 것이다. 여성부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다면, 여성부는 ‘여성’을 팔아먹는 신자유주의의 수호자이자 수행자임을 드러낸 것이다. 이날 여성부 앞에 간 여성노동자들은 이런 씁쓸한 현실만을 확인하고 돌아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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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지만, 결코 빠르지 않은 그녀들의 권리찾기

[3호] 빠르지만, 결코 빠르지 않은 그녀들의 권리 찾기 -고대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며 송 강 현 주 | 사회진보연대 노동차장 “청소일 하는 거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이야. 이맘 아무도 모를 거야. 근데 내가 요즘 말이 트였어. 이제 하고 싶은 말 다해야지“ 고려대학교 시설지부(이하 고대 시설지부)가 창립총회를 하던 7월 1일, 부지부장님이 자신이 결의문을 읽겠다며 돋보기 안경을 꺼내 들고 하신 말씀이다. 96년부터 고대에서 청소일을 했다는 부지부장님은 이제 무서울 것이 없다며 들떠 즐거워하셨다. 내(정확히는 사회진보연대^^)가 고려대학교 청소용역 투쟁에 함께 한지 단 2주만에, 공식적인 대책위 논의가 완료된 후 3일만에 5~60대의 ‘어머님’들은 자신들의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지난 4월경부터 ‘불철주야’(고려대 학생들- 불안정노동 철폐를 주도할거야)와 인권운동사랑방 등의 지속적인 연대와 이후 투쟁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다고 해도, 여간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고용승계 보장하라! 근로형태 바꾸지마! 고려대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98년까지 고려대에 직접 고용되어 있었으나 여타 학교들과 마찬가지로 99년부터 용역으로 전환되었다. 2002년 노동조합을 설립했었으나 당시 지부장의 해고, 학교의 압력 등으로 곧 흐지부지 해소되었다. 그 후 2003년 고려대 미화원 협의회(이하 고미협)라는 형태로 친목을 유지하는 모임 정도가 진행되어왔다. 고대 청소용역 투쟁은 근로형태 변경에 대한 반대로 시작되었다. 학교측과 설명회를 가진 용역업체들이 그동안 노동자들이 오전부터 5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해왔던 (실제)근무시간과 형태를 3교대(주간 6:00-16:00, 오후 14:00-22:00, 야간 22:00-6:00)로 변경하며 일요일과 휴일 근무도 하게 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더불어 (70%에 육박하는)60세 이상의 노동자들을 해고한다는 소문이 소장과 건물 반장들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우리의 ‘어머님’들은 거의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고미협’의 이름으로 매일 일이 끝나는 오후 4시, 토요일엔 오전 11시 제2 학생회관에 모여 총회를 가졌다. 일에 지치고 집으로 돌아가 해야 일이 많아도, 보통 90명 정도의 노동자들이 매일 함께 모여 상황을 공유하고 크고 작은 결정들을 해왔다. 6월 22일 총회에서 향후 투쟁의 수준을 정하고 결의를 확인하기 위해 ‘근로형태 변경 시 근로계약을 거부한다’에 대한 투표를 실시했다. 결과는 찬성 77표, 반대 2표로 나타났다. 다음 날부터 투쟁과 상황은 급속히 달라졌다. 고대 청소용역 노동자의 이름으로 본관 앞에서 첫 집회를 하고, 건물별로 대표자를 뽑아 학교와 직접 면담에 들어가고,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설명회를 보이콧하고, 본관과 용역회사 사무실을 점거하는 등 짧은 기간 다양한 직접 행동을 만들어나갔다. 선정되었던 2개의 용역회사들이 용역 포기를 선언하고(실제로는 한 회사가 포기-9월부터 적용될 최저임금 인상분에 대한 문제와 노조 설립 등의 이유), 용역계약서에 60세 이상(남 65세) 노동자를 채용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삭제하며 학교와 용역회사로부터 100% 고용승계를 보장받았다. 3교대는 폐기되고 대신 9월부터 2시간 연장근로가 시행될 예정이다. 그리고 7월 3일(토) JD one이라는 용역회사와 노동자들은 노조 총회에서 집단적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스스로 세운 노동조합 노조가 없는 상태에서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을 계획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었다. 2년전 노조 설립 실패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주도적인 행동과 발언을 할 만한 노동자들이 없는 상태에서 ‘노조를 만듭시다’라고 제안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이판사판 투쟁을 결의하면서, 우리가 나가도 후배들이 똑같은 고생하면 안되지! 당당히 외치면서 대표자의 필요성을 공감했고, 서로를 추천했다. “노동조합 만들까요?”란 질문에 당연하다며 당장 만들어야 한다며, 빠른게 아닐까 조금은 망설이던 우리를 오히려 무색하게 했다. 창립총회를 진행하는 순간에 모두가 격양되고 기쁨에 가득 찼다. 앞으로의 투쟁이 더욱 중요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함께 있으니 얼마나 당당한지 알 수 있었다. 그녀들의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고대 시설지부 투쟁은 짧은 시간에 승리를 이루어 낸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불철주야’의 헌신적인 노학연대, 여타 사회단체들의 지원과 시설관리노조의 결합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100여명의 청소용역 노동자들이 흔들림 없이 2주간의 일정과 결정을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 활동을 오래하지 못했지만, 대책위는 곧 평가를 진행하고 이후 활동방향을 고민할 것이다. “요즘 소장이 함부로 못해! 학생들한테 이를까봐 그러는 거야”라며 기뻐하시는 어머니가 그것은 이제 당신들이 당신들의 조직을 가지고 스스로 발언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녀들이 어머니, 아주머니에서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로 일어서 있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사실 그동안 노동자들의 높은 결합력은 학생들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에 기인하는 면이 크다. 그래서 그녀들은 결합하는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다 여성이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 면티에 청바지 입은 모습이다 보니 그냥 학생이려니 생각해 버린다. 큰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냈지만 아직은 불안한 그녀들. 이제 고대 시설지부는 명실상부한 노조의 모습을 갖추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고 있다. 모든 일이 학생들 덕분인 줄로만 알고 있는 그녀들도 이제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돌아가며 무언가 말해야 하는 회의 자리에선 항상 ‘오메~ 떨린다. 아이고 인제 내 차례네!’ 아주 큰소리로 수줍어하다가도 차례만 되면 몇 시간이고 얘기할 태세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5~60대의 여성노동자들. 그녀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얼마 전 건물별 대표자회의에서 친분을 쌓기 위한 교육(놀이?)으로 ‘대단히’를 붙여 자기 소개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녀들에게 ‘대단히’란 말을 붙여 소개하기가 꽤 어려워 보였지만 재미있는 자리였다. 내 차례에 나는 이렇게 말해 보았다. “나는 대단히 잠을 많이 잡니다. 나는 대단히 술을 많이 마십니다. 나는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대단히 기쁩니다. 그래서 어머님들과 연대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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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그건 우리의 숙명인 걸...

[2호] 가난.. 그건 우리의 숙명인걸...성 평등... 그것도 배운 사람들이나 써먹는 말이지... 박 인 선 | 민주노총 여성연맹 1. 지하철 청소용역 여성노동자... 나는 그녀들을 대상으로 결성한 청소용역 노동조합에서 현장조직과 실무 일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 나를 그녀들은 '노조아가씨' 혹은 '박 간사'라고 부른다. 대부분이 50-60대의 여성노동자들인지라 때로는 간사라는 호칭을 잘못 이해해 '박 강사' '박 감사'라고 부르곤 하는데, 사실 그녀들에겐 위원장, 부위원장, 국장, 간사라는 직책이 가진 노조 운영과 체계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별로 익숙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다. 그냥 '노조' 면 다 정리되는 것이다. 그녀들은 노동조합 활동을 자신의 이해관계나 정치적 입지를 위해 고려할 만큼 정치적이지도 않으며 그녀들이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는 지극히 협소하기 때문에 노조 활동도 일하는 현장으로 국한되어 외부와 단절되어있다. 그녀들에게 있어 노동조합이란, 임금인상을 해주는 곳이고,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애쓰는 곳이고, 사회적으로 약자인 자신들의 유일한 빽이 되어 주는 곳이다. 그래서 그녀들은 노조에 대해 맹목적인 애정을 가지고 있긴 있지만 매우 비주체적이다. 2. 도시철도의 경우 노조를 결성할 당시 만해도 그녀들은 스스로를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라고 규정하고 당당히 내세우기를 꺼려했었다. 우선은 '청소노동'의 사회적 지위 때문이고, '여성'이라는 성적주체의 사회적 차별과 열등감 때문이다. '청소'와 '여성' 그리고 '노동자'의 결합은 자본주의적 경제논리가 지배하고 남성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노동시장 안에서 이미 주변화되고 저 지위인 최하층 노동력일 뿐이다. 노동조합 활동을 한지 얼마 안되어 현장을 방문했을 때 제일 많이 들었던 말, 그리고 아직도 끈질기게 해오는 그녀들의 충고는 '어서 시집가서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라는 것이었다' 젊고 배운 사람이 할 일도 많은 데 하필이면 청소 일하는 아줌마들하고 무얼 별 볼일 있다고 함께 있느냐는 것이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그녀들 스스로를 포함해) 뼈 속까지 느껴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인식을 바꾸기에는 너무 어렵다는 것을 푸념과 충고에 섞어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서, 같은 노동자라도 그 내에서 가진 편견과 배제 속에서 더욱 단단해진 것이기도 하다. '여성'이 수적으로 다수 포진되어 있거나, '여성들이 일차적으로 담당해온 재생산 노동' 또는 그 재생산 노동이 직업화된 경우를 통칭해 '여성노동'이라고 할 경우 여성노동은 자본의 이해인 생산성을 잣대로 그 가치를 평가 절하 당해왔다. 여성들이 가족 안에서 책임져왔던 가사노동과 양육과 같은 재생산 노동은 사회적으로 낮은 가치의 노동 혹은 주변적인 노동으로 간주되어 여성노동력을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한다. 청소용역직 여성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청소노동은 -지하철 뿐 아니라, 건물 및 공공기관의 청소 대부분을 여성노동자들이 담당한다. 그녀들은 일반적인 제조업, 사무직 노동자들의 생산력을 높히기 위한 쾌적한 환경 조성, 업무효율의 증대, 고객 서비스 제공이란 명목으로 화장실 청소(남녀 화장실 구분 없이)부터 사무실 내의 청소까지 청소전반을 담당하면서도, 그 노동의 가치는 청소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최저임금이라는 위치로 단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3. 사실 사회적으로 여성(재생산)노동은 특별한 교육과정이나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 비숙련 노동으로 취급되지만 동시에 '여성'에게만은 여성의 삶 속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도 기능적으로도 숙련되어야 할 소양이라는 이중적 기준으로 작동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성은 재생산 노동의 가장 숙련된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이라는 위치와 '여성노동의 사회적 지위'라는 이중 잣대로 노동시장 내에서도 소외 받고 있는 것이다. 그녀들은 소득분배 구조에 의해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최저임금으로 고용되며 각종 복지로부터 배제당하는 최하위의 노동력으로 시장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하지만 그녀들은 이러한 현실을 자신의 개인적인 능력이나, 가난과 무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들의 생존방식은 조금 더 적게 쓰고, 조금 더 안 뺏기고, 작은 돈에도 민감하며, 강자가 지배하는 사회구조에 능숙하게 편승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4. 그녀들은 운동을 통해 자신들의 처지가 쉽게 바뀌지 않을 거라는 현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전보배치, 해고, 성폭력 등의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을 지켜줄 보험과 같은 것으로 노동조합을 생각하기 때문에 노동조합이라는 공동체를 통해 또 다른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 밖에 없다. 더구나 그녀들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이전에 아내로서 어머니로 살아왔기 때문에 '여성권', '남녀평등'이라는 말은 자신들에게는 해당되지도 않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런 말은 교육을 받고 배운 여성들이나 써먹는 말일뿐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다. 혹시나 그녀들에게 그렇게 좋아하는 임금인상을 위해 아내의 자리를 소홀히 하고, 어머니의 역할을 그만두라고 요구한다면 그녀들은 아무런 미련 없이 임금인상과 노동조합에 등을 돌려버릴 것이다. 그녀들은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아이들을, 남편을 아무렇게나 방치하는 여성들을 얼마나 냉정하게 바라봤던가. 정규직 노동조합의 남성노동자들처럼 경제투쟁 뿐 아니라 그들의 형제애, 동지적 연대라는 거창한 울타리를 만들고, 사회적 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노동조합의 의미는 잘 모르지만, 그녀들은 지난 3-4년간 청소용역 노동조합의 경험과 의미를 이렇게 정리한다. "노동조합은 신나게. 투쟁은 화끈하게. 조직은 빵빵하게" 라고... ... 나는 자식들에게마저 청소노동을 하는 것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집보다 30분, 1시간을 더 가야 하는 역에서 청소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그녀들을... 용역대기실을 방문하면 쓰레기를 치우면서 발견한 아직은 쓸만한 물건들을 쓱쓱 닦아 가지라며 주는 그녀들을 ... 건네주는 물건을 체면상 거절이라고 하면 두 번 권하지는 않는 그녀들을 ... 끼니를 거르는 모습은 그 누구라도 못 봐주고 안타까워하는 그녀들을 ... 아직은 미혼인 내게 빼놓지 않고 '결혼'과 '가정'을 가지라는 조언을 하는 그녀들을 ... 주변의 보아 둔 총각들을 중매해주겠다고 떼를 쓰는 그녀들을 ... 자신들을 도와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필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본능적으로 구분할 줄 아는 그녀들을 ... 하지만.. 나와 결코 다르지 않는 그녀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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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1호] 오늘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유 나 경 | 회원·공공연맹 에피소드 Ⅰ. '나 홀로 여성' 연맹 조직담당자의 활동이라는 것이 대부분 회의에 결합하는 경우가 많다. 지구상에 남녀는 분명히 50:50 비율이라고 하는데 - 정확히 통계를 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 그 회의자리에 여성이 단 한 명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많던 여성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이런 처지는 추측컨대, 연맹 내 대부분의 단위노조가 거의 다 그럴 것이다. 지금은 많이 익숙해져서 무뎌지긴 했지만, 활동초반에는 열이면 열, 나를 제외하고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이 모두 남성활동가들인 경우에는 '어~, 여자가 나 혼자네!'....의도하지 않게 소외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노동조합 내 여성할당제 도입을 아주 단순화시키고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바로 이러한 상황자체가 포함하거나 발생시키는 여러 문제를 고민하면서 출발했을 것이리라! 그 많은 여성들은 수많은 남성활동가들이 노동조합 조직의 주요 결정단위에서 피 터지게 운동을 얘기할 때, 집에서 밥상을 차리고, 애를 돌보고, 시부모를 모시고, 청소를 하고, 장을 보면서... 사회적으로 규정된 가족 내에서 의무를 수행하느라 바쁠 것이다. 공적인 의무나 가정 밖의 일들(직장)과 빈번히 일어나는 심한 갈등을 혼자 감내하면서 말이다. 여성의 총체적 행위가 직장보다 가정이라는 틀에 한정되고 평가되는 사회적 구조 속에서 노동조합 활동에 참여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조차 봉쇄된 채 말이다. 어쩌면 '노동조합은 남자들이 하는 일'이라고 여성의 위치를 아예 노동조합 내에 두고 있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계속 많은 단위노조의 회의참석을 해야 하는데, '나 홀로 여성'이라는 상황 그 자체가 노동조합 내부와 사회전반의 여성문제를 광범위하게 포함하고 있다. 오늘도 나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노조활동에서 자연스럽게 여성할당제를 생각하게 된다. '나 홀로 여성'이라는 상황 속에서 뽑아낼 수 있는 수많은 여성의제와 문제는 일일이 거론하지 않겠다. 여성할당제는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공공연맹은 얼마 전 여성할당제를 도입하여 노조 내 여성의 과소대표성을 해소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 그야말로 단초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에피소드Ⅱ. 남녀적대 "어디 악수나 맘놓고 할 수 있겠어?" - 연맹 내 '이승원 성폭력 사건'이 있은 후 평소 활동하면서 연맹 내 남성활동가들과 반갑게 인사하기 전 꽤 많이 들은 얘기다. 이 밖에도 "혹시 이것도 성희롱 아니야?", "요즘엔 무서워 죽겠어, 성희롱으로 걸릴까봐", "조심해야지~ 술도 편하게 못 마시겠네" 등등...일종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남성활동가 자신들 나름의 의견표시였던 것 같다. 이런 비슷한 류의 대화가 다른 여성과 남성활동가 사이에 오고가는 현장을 꽤 목격하기도 했다. 노조 내 남성활동가들이 운동을 했다고 해서 가부장성이 없거나, 여성의식이 유달리 높은 건 아니다. 사실 기대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한국사회 내에서 자라고 교육받아온 똑같은 남성들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내 남동생이나 오빠, 혹은 아빠가 가지고 있는 여성의식과 하등 다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진짜로 자신들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위와 같은 말들은 굳이 어투나 분위기를 언급하지 않아도 일반 여성들에 대한 적대가 이미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일종의 우회적 표현일 게다. 문제는 남성(활동가)이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어느 순간 그 말은 여성(활동가)들이 남성(활동가)들을 성희롱으로 되려 잡아먹는(?) 존재로 만든다. 남성(활동가)들을 비난하는 게 목적은 아니다. 여기저기서 비슷한 류의 말들을 들으면서 성희롱, 성폭력은 노동자계급의 연대를 해친다는 당연하지만 중요한 지점을 확인하고 싶다. 연맹의 사업과 계획, 노동운동을 같이 걱정하고 논의하던 동지들이 성폭력 사건이 터지자, 남성과 여성의 대립구도로 갈라져 '남녀적대'라는 올바르지 못한 지점에서 대립하는 것이다.(여기서 대립구도를 형성한 주체가 성폭력 피해자라는 생각은 절대금물!) 적어도 같이 노동운동 하는 조직 내에서는, 어떤 경우에라도 남성은 여성의 적이 아니라, 동료이고 동지이다. 그러나 남성이 물리적 힘의 우위, 권력적 위계를 무기로 성을 거래할 것을 강요하는 성희롱을 유발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둘 사이에 일어난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계급간의 연대를 해치는 중대한 범죄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 같다. "남성동지여러분! 성폭력, 성희롱에 대한 여성동지들의 문제제기는 남성활동가 때려잡으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간 연대를 해치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남녀적대는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해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은폐되고 확산되는 것이다. 언제나 원칙이 옳다. 성폭력, 성희롱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해결,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만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조합 내 노동자계급간 연대까지 해치고 남녀적대 유발하는 성희롱, 성폭력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분명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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