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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활동을 돌아보며...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활동을 돌아보며...

이 황 현 아 | 노동조합 기업경영 연구소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에서 올 한 해 활동에 대한 평가를 써달란다. 떠밀려 원고 청탁을 받고 일주일 여 시간을 보냈는데 아직도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할지 난감하다. 내가 평가를 내릴 처지도 아닌 듯하고. 나는 다만 몇몇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의 활동에 동참한 것뿐인데. 하지만 이제 피해갈 수 없다. 조금 전 성희 동지로부터 독촉 전화를 받고 말았으므로.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는 올 해 두 가지 주제를 사회화하는 데 기여했다. 하나는 전쟁과 여성이라는 주제고, 다른 하나는 성매매라는 주제다. 전쟁과 여성을 주제로 해서는 지금 현재도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지만, 지난 6월 아시아 사회민중운동회의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던 “전쟁과 세계화를 반대하는 여성” 워크숍과 전범민중재판운동 여성기소인 총회(“여성의 이름으로 전쟁에 반대한다”)는 기존에 전쟁의 희생양으로서의 여성에 국한되었던 전쟁에 대한 접근을 여성주의 시각에서 짐짓 새롭게 조망하였다. 이런 노력은 페미니즘 시각에서 전쟁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목적으로 진행하는 전쟁과 여성 세미나로 이어지고 있다. 발리바르의 글을 소재로 한 세미나에서 폭력과 잔혹성을 화두로 20세기 후반부의 새로운 전쟁이 드러내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전쟁이 야기하는 폭력에서 민족주의, 인종주의 문제가 왜 중요한지, 폭력이 왜 성차별주의에 근거하는지 등을 살펴보았다. 폭력의 만연 속에 현재의 상황을 비폭력적 상황으로 규정할 수 없다면 우리에게 제기되는 문제는 당연히 반폭력일 것이다. 그렇다면 반폭력은 폭력을 어떻게 줄여나갈 수 있을까? 다양한 고민이 생겨난다. 폭력에 대한 대응의 한 방식으로 제기되는 반폭력을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 문제인 것 같다.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는 성매매특별법 시행 시기를 앞두고 일찌감치 성매매 문제에 대한 세미나를 준비하였다. 그런 만큼 네 차례 진행된 세미나는 회를 거듭할수록 현실 쟁점과 긴밀하게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성매매방지법 시행에 대해 눈먼 호사가들이 성욕, 인권침해라느니, 좌파정책(?)이라느니 하는 호들갑을 떠는 와중에 <사회화와 노동>에 실린 성매매 관련 글은 조용한 파문을 일으킬 만 했다. “성매매 방지법 논란,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가!”에서 성매매방지법의 근본적인 한계를 짚은 부분이나 노무현 정부의 성매매방지법 추진 이유 등을 설명한 부분은 신자유주의 정부의 여성정책이라는 일관된 좌표 속에서 성매매방지법을 읽는 코드라 할 수 있겠다. 모 단체에서 날라 오는 뉴스매거진 [“STOP! 성매매” 일일동향]이 성매매 없는 사회 만들기에 기초해 성매매 여성 노동자들의 증언을 통해 듣는 생생한 실태를 주축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성매매는 역시 없어져야 할 사회악으로 규정하게끔 유도하는 것에 비한다면 <사회화와 노동>에 실린 성매매 관련 글들은 어떤 면에서 독자의 자율성을 열어두고 있기도 하다. 단지 아쉬웠던 점으로 두 가지를 든다면, 한편으로 사회진보연대 여성위가 <참세상>이나 <피플타임즈>에서 진행되고 있는 성매매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애초 성매매에 대한 올바른 접근이라는 화두를 던진 만큼 토론이나 논쟁에 적극적인 의견 개진이 필요한 듯하다. 성매매방지법 폐지를 요구하는 개인이 <한국인권뉴스>를 통해 자기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는 것에 비한다면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의 목소리는 아주 작게만 들린다. 사회진보연대 여성위가 정부의 의도를 정확히 읽고, 가족의 위기를 재생산의 위기 측면에서 원인 분석하고 성매매방지법을 비판하고 있다면 그에 입각한 정치적 태도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또 한편으로 성노동자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이나 주장이 미흡했던 점을 들 수 있다. 성노동자의 생존권, 노동권, 시민권을 온전히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성노동자 개념을 경유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럼에도 사회진보연대 여성위는 애써 성노동자라는 기표를 혹여 외면하고 있지는 않나.

지난 5월부터 우리는 알찬 소식지 하나를 받아 보게 되었다. 바로 사회진보연대 월간소식지『여성, 삶, 노동』이다. 이 즈음에서 여성위원회 동지들이 아부가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한 마디 할 거 같다. 그런데 아부가 아니다. 동지들도 한 번 보면 안다. 요즘 여성주의를 표방한 웹진을 여럿 볼 수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유독 사회진보연대 웹진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소식지’라는 틀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 단순한 콘텐츠가 마음에 든다. 이들의 활동이 적어서라기보다는 이들의 취향이 드러내어 말로 하기 좋아하지 않는 것이라 여겨진다.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소박한 미덕이 아닐까. 이러한 미덕은『여성, 삶, 노동』전반에 흐르지만 특히 소식지 3호와 4호에 실린 최저임금현실화투쟁과 저임금 여성노동자 한마당(불안정노동과 빈곤에 저항하는 공동행동 3차 행진) 등의 연대투쟁은 여성의 삶의 절반을 차지하는 노동에 대해 신자유주의적 접근으로부터 이를 극복할 실천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진보연대 여성위가 올 해 역점을 둔 여성노동권 사업은 간병인 아주머니 노동자들과 청소용역 아주머니 노동자들과의 연대투쟁이었다.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의 핵심 활동이 신자유주의시대 여성의 노동과 삶에 꽂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여성노동권 문제에 대한 이들의 제기는 더 깊게 와 닿는다. 불안정노동, 여성의 빈곤화, 빈곤의 여성화가 신자유주의가 여성에게 노동자 민중에게 미치는 가장 큰 특징이라면 이를 돌파하기 위한 여성주의 전략은 연대투쟁이라는 실천적 매개를 지렛대 삼아야 할 것이다.

사회진보연대 여성위가 제시한 올해의 화두로 이런저런 평가를 했다. 근데 여성위 동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뭐 별로 예리한 평가를 하지도 반성적 평가에 기반해서 다가오는 새해의 전망을 내놓지도 못했다. 여성의 노동과 삶이 신자유주의 아래서 더 고달프기 때문이 아닐까 반문해본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자본주의 사회를 바꾸려 했던 발본적 접근이 무엇이었는지 더 고민해 볼 일이다. 이제 얼마 있으면 건강가정기본법이 시행된다. 새해에는 사회진보연대 여성위가 가족의 위기를 재생산의 위기로 접근한 만큼 신자유주의 아래 여성의 문제에 더욱 골몰했으면 바램이다. 여성노동자계급 문제에 목적의식을 명확히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노조페미니즘에 대한 개인적 관심이 좀더 충족되기를 기대한다. 더불어 여성노동권쟁취투쟁에 함께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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